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혈액검사 사건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과 만나면 제일 먼저 화두가 되는 것은 건강에 대한 얘기들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관심을 가지지도 않던 아이들도 내가 조금만 아프다면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으라고 이만저만 성화를 대기도 합니다. 3년 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입니다. 나도 소변을 너무 자주보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자주 깨기 때문에 비뇨기과 선생님의 치료를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비뇨기과 교수님의 진료로 혈액검사를 받았습니다. 암을 앓은 사람이기 때문에 혈액검사에서 암으로 의심되는 단서라도 있는지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립선 암 수치가 아주 높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립선암 조직검사를 받아보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아주 담담하게 그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전립선암에 걸렸다면 이번에는 ‘치료 받지 않고 그냥 조용하게 혼자 치료를 해야 하겠다.’하고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에서처럼 나는 암이라면 치가 떨리게 싫고 겁이 납니다. 암 치료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6개월 전 검사에서도 다른 곳으로 전이 되지 않았다고 검사결과를 받았는데, 또 수치가 높게 나왔다면 암에 걸릴 가능성이 다른 사람보다 높고, 또 암에 걸렸다면 치료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나를 어렵게 할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권유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 비뇨기과 의사 선생님은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자꾸만 주장을 하기에 조직검사를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마취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검사도 해야 해서 보호자 없이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들통이 났습니다. 아들이 놀래서 수업을 빼고 달려왔습니다.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입원을 하고, 조직검사를 하고, 오랜 시간을 병실 천정을 바라보면서 죽음과 아픔, 암으로 투병하였던 지난 10년의 모든 어려움과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죽을 수 없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계속 어지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뒤 교수님을 만나러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다행하게도 암은 아니지만 전립선이 너무 비대해져서 아주 좋지 않다고 약을 먹으면서 계속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온몸의 긴장이 모두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3년 이상 열심히 약을 먹고 치료하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고 혈액검사를 받으면 수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혼자서 모든 사람들을 외면한 채 병을 품고 살려고 했던 내 옹졸했던 마음이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든 혼자 죽는 것이 진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나는 외로움에 빠져 죽음도, 고통도, 아픔도, 시련도 모두 죽음과 같이 두려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까지도 주님께서 나와 동행해 주신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동행해 준다면 나는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죽음까지도 동행해 줄 사람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동행(同行)’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다가가서 그분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병을 고치고, 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랑을 받으려고 다투어 예수님께 모여든 것입니다. 나도 주님께 힘을 받아 죽음도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고 그렇게 씩씩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의기소침해 있는 내게 당신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지난 한 달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까지도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큰 힘을 모든 분들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총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