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3-38)
1. 새벽은 늘 오묘한 시간입니다. 하늘은 아직 어두운데, 희미하게 먼동이 틉니다. 이 시간에는 모든 것이 정적 속에 잠긴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어떤 일이든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돕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의 새벽도 그러했습니다. 성전에서부터 끌려온 한 남자가 빌라도의 관저로 호송되고 있었어요. 군사들의 갑옷은 횃불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돌바닥에 부딪히는 발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습니다. 관저를 가로지르는 차가운 새벽 공기는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높은 천장에 드리운 깃발이 묵직하게 늘어져 있었고, 그림자들이 벽 위에서 서로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그 한복판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결박된 채로도 당당한 눈빛을 가진 이 남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바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이 결박된 채로 군중 앞에 서 계셨지만, 눈빛은 결코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그를 보며 의아해합니다.“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권력과 진리, 그리고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뒤흔드는 질문이었습니다. 진리가 감추어진 것처럼 보이는 세상 한복판에서, 진리이신 예수님이 빌라도와 맞서 계셨습니다. 빌라도는 대리석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며, 질문을 던졌습니다.‘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그의 말에는 냉소와 조롱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당혹감이 스쳤습니다.
2. 빌라도의 질문에 34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빌라도는 정치적으로는 노련했지만, 예수님이 던지신 질문,‘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냐?’앞에서는 자신이 판단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머뭇거렸습니다. 그의 교활함은 진리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빌라도 스스로 하는 말이라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을 하거나 그의 왕권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유대인들이 한 말이라면, 그는 단순히 유대교 지도자들의 고소 내용을 따라 기계적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으로 빌라도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는 단순한 재판관 이상의 역할로 진리를 깨달을 기회를 제공받았지만, 결국 회피하고 맙니다. 35절,“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빌라도는 교활한 정치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어요. 예수, 네가 유대인이지 나는 아니다. 너 유대 나라 사람들이 너를 나의 재판에 넘겼는데,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향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으로 심문을 시작했지만 실상은 그 질문에 집중 공략을 하지 못했습니다. 빌라도가 주님을 심문했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누가 누구에게 심문을 했는지 역할론도 애매합니다. 빌라도의 한계성이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빌라도가 나라와 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36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도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우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은 결박된 손을 아래로 내리고, 고요하지만 강렬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그 순간,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은 단순히 빌라도에게만 들린 것이 아니라, 그 대리석 벽을 넘어 영원한 진리를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그의 눈은 빌라도의 영혼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눈빛을 끝까지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부터 십자가에서 마지막 운명하실 때까지 세상 나라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이 선포하고 가르치신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주님은 빌라도의 심문 자리에서도 끝까지 세상 나라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세상에 속했다면, 내 종들이-천사들이 싸워 유대인들이 나를 체포하여 너에게 데려오지 않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했다면, 그 누가 나를 대항해서 싸울 수도 이길 수도 없음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이 빌라도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4. 37절,“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예수님은 과연 언어 마술사와 같으셨어요. 자기가 할 말을 다하시면서 상대방이 자기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 나라 이야기만을 쏟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나라 이야기만 하는 빌라도 앞에서 끝까지 하나님 나라 이야기만을 쏟아내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 왕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태어났고 세상에 왔다. 또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왔다.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는 나의 말에 귀를 열고 듣는 자들은 무릇 진리에 속하였다고 선언하셨어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의 심문에 주님이 끝까지 그가 알지도 듣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와 진리 이야기를 고집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빌라도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당시 정치인들은 대개 로마 황제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정치적 연줄을 잡아서 권력을 얻었어요. 빌라도는 루키우스 세야누스의 추천으로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주후 26년 경부터 유대 총독에 부임했습니다. 약 10년 정도 통치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를 황제에게 추천해준 세야누스가 세력을 잃으면서 동반 퇴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 출세라는 것이 이렇게 허무합니다. 빌라도의 통치 방식은 잔인하고 강압적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잔인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13장에,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치인은 대체로 자기의 정치적 노선에 따른 이익을 위해 모든 재판이나 판단의 준거로 세워요. 세속주의-성공주의의 대명사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는 어떻게 언행을 했습니까? 그는 주님의 영적인 권위 앞에서 함부로 세속 권력을 내세우지 못했습니다. 주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심문을 했지만 이 건으로 주님을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6. 빌라도는 예수님이 자신과 같은 세속적인 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주님도 빌라도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소속이 세상이 아니시고, 하늘임을 밝히셨어요. 빌라도는 세상 나라 이야기를, 주님은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시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였습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이 말이 너의 말이냐 다른 유대인들이 나에 대해서 한 말이냐고 역질문을 하셨습니다. 빌라도가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고, 너와 유대교인들이 다투는 문제가 아니냐고 역정을 냈습니다. 이 문제는 내 문제가 아니라 너와 유대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냐고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황제 아래서 왕에 대해 논쟁인데, 빌라도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정치적 기회주의자요, 냉소적 회의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데는 명석하고 잔인했지만, 예수님 앞에서는 조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주님은 빌라도의 심문과 유대 군중들 앞에서까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끝까지 조금도 이탈하지 않으시고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선로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 훗날 성령이 임하시고 알고 깨달을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7. 예수님께서 빌라도를 향해서도 말씀하신 것은 빌라도가 지금 깨닫지 못해도, 성경을 읽는 자들이 유대이든 이방인이든지 훗날 알고 깨닫게 될 것을 기대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동안 이렇게 언행을 하신 것을 보면, 오늘 우리도 세상을 향해서 어떻게 언행을 해야 하는지 주님이 본보기가 되어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금 내가 전하는 말을 다 알고 이해하지 못해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 어느 순간, 모두 알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복음 제시
8.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답하셨습니다.(337절) 진리는 복음을 말하고,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복음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요10:3,“양은 그(목자)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주님은 요10: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약속해주셨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에게,“진리가 무엇이냐?”물었지만 끝내 진리를 알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 미완성 인생을 살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힘과 위치에 너무 몰두했습니다. 진리가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계산과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압력과 유혹 속에서 진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복입니다.
기대
9.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알고 누리고 산다면, 우리는 인생 최대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빌라도는 당시 최고의 권세를 누렸고, 예수님과 1:1로 얼마든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진리이신 주님을 앞에 두고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으로 그쳤어요. 빌라도는 진리 앞에서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도 우리 손에 들려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울려 퍼집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고도 그것을 끝까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나라에 속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2000년 전 빌라도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초대입니다. 진리에 속한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길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자가 됩니다. 진리의 음성에 귀를 열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을 선택하십시오. 인생의 일은 멀리 있어 보이지만,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빌라도가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매일 묵상 책을 통해서, 개인 통독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