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일본에 갔을 때, 카레를 처음 맛을 보았다.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된장국에 길들여진 강릉 촌놈의 입맛에는 도무지 이상한 음식일 뿐이었다.
그후 전혀 먹지 않다가 여동생이 일본에 온 후, 여동생이 졸라서 할 수 없이 두 번째 먹어 보곤 다시는 먹지 않았다.
처음 본 음식은 또 있었다. 초밥이었다.
아야세 역 앞의 회전 초밥은 내 젊은 날의 식욕을 채워주었다.
뱅글뱅글 돌아다니는 것을 날름 주워서 잽싸게 먹어치우는. 도무지 감질나서 재미가 없었다.
주방장 보고 한꺼번에 많이 달라고 해도 거절이었다.
나는 대단한 식욕과 소화력을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은 겨우 다섯 개에서 여섯 개 먹는데, 이십개 넘게 먹었다.
아야세 역 앞의 초밥집을 갈 때마다 주방장은 내가 오면 반갑게 맞았다.
먹어본 초밥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은 ‘아유초밥’이었다. 아유는 일본어로 ‘銀魚’다.
일본의 은어는 물이끼 향이 난다고 해서 ‘香魚’ 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제법 비싼 물고기다.
그 당시 강릉 옥계에 가면 널린 것이 은어였는데 말이다.
카레를 다시 보고 먹었던 것은 한국에 돌아와서 였다.
그러나 일본의 카레와 한국의 카레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색깔부터가 달랐다. 일본의 카레는 거의 갈색에 가까운데 한국의 카레는 노란색이었다.
카레를 알려면 그 기원인 커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커리는 3000년 전 인더스 문명에서 그 형태가 발견됐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음식이다.
지리적으로 여러 문명의 교차로에 있었던 인도는 일찍이 커리의 핵심재료가 되는 코리앤더, 클로브, 카다멈, 육두구, 생강, 마늘 등 여러 가지 향신료를 받아 들일 수 있었고 이런 향신료들을 지역이나 취향에 따라 배합한 것들을 마살라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마살라를 넣고 고기, 생선, 치즈, 요거트 등 지역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조리한 여러가지 종류의 스튜들이 있었다.
그것들이 카레였다.
일본의 카레는 개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혼슈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 해군 기지에서 커리를 먹었으며,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각기병 예방을 위해 커리를 도입했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무렵, 영국의 해군제도를 본뜨는 과정에서, 인도를 지배하고 있는 영국의 해군 식단에 포함되었던 카레를 받아들여 일본 해군을 통해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당시 영국해군에서는 비프 스튜에 오래된 재료의 군내를 없애기 위해 카레를 사용한 스튜 요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일본에서 이를 받아들여 밥 위에 건더기와 함께 끼얹어 먹는 요리인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일본 카레에 대한 원형을 ‘니쿠자가’라는 고기감자조림 음식으로 보는 설이 있다. 니쿠자가는 감자, 고기, 당근, 양파를 조린 음식인데, 여기에 카레가루를 더해 일본 카레가 탄생했다는 설이다.
니꾸자카는 이자카야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
1890년대 즈음에 해군에서 요일 감각을 잃기 쉬운 해상에서 토요일 저녁마다 카레라이스가 나오는 습관이 생겼으며 이 영향으로 오늘날 해상자위대에서도 금요일 저녁에 카레라이스가 나온다.
해군에서 시작된 이 카레라이스 조리법은 요코스카식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은 카레라이스가 처음 등장하던 곳이 요코하마 남쪽에 있는 도시인 요코스카에서부터였다고 한다.
이후에 전역한 수병들이 군항 요코스카와 고향에서 카레집을 차리면서 전국적으로 카레가 퍼지게 되어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일본에는 '카레의 날'이라는 기념일도 있으며, 1982년 전국학교영양사협의회에서 학교급식 개시 35주년 기념으로 1월 22일에 전국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카레로 내놓았다고 한다.
카레에는 영국의 인도 지배의 역사와 함께 영국 제국주의를 본 받으려는 일본의 야망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