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Dhdz56T6Z5Y
고후 2:17,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듣습니다. 2023.6.18.
요즘 핸드폰에는 전화를 받거나 걸 때에 자동저장 기능이 있어서, 전화를 할 때마다 통화 내용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번거롭지만, 전화가 끝나고 나면, 대수롭지 않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는 전화 녹음된 파일은 삭제해야만 합니다. 일일이 삭제하기가 번거로워서 주기적으로 적어도 1달에 한 번씩은 확인하고 삭제를 해야만 합니다. 무슨 서류에 관한 내용을 전달 받을 때에는, 대뜸 ‘적을 준비가 되었습니까?’라는 멘트를 듣게 됩니다. 그러면 대수롭지 않게 ‘네, 말씀하십시오. 준비가 됐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굳이 적지 않아도 전화가 끝나고 서류를 작성하고 준비할 때에 통화 내역을 확인해 보면 됩니다. 정말 편리하고 언제 어디서나 녹음이 가능한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마치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이 행동이 CCTV나 차량용 블랙박스를 통해서 녹화되고 있는 것처럼. 여러분이 통화 내용이나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특히 전화 통화할 때에 자동으로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제 어디서나 말 조심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말씀을 듣거나 또는 복음을 전하면서 말하게 될 때에, 여러분은 말씀이나 복음을 듣거나 말하게 됩니다. 그 때에 그 말씀과 복음이 어떠합니까? 실제로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여러분이 말하거나 듣는 말씀은 과연 어떠한 말씀입니까?
어떤 분들은 종일 욕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이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한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업상의 이야기를, 또는 취미생활에 대해서, 또는 말할 때마다 음담패설(淫談悖說, 음란하고 도리에서 어긋난 말)을 내뱉는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말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어떻게 말하고 들어야 합니까?
첫째, 수많은 사람들이 (속이는)장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대포장하고 속이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물건이 잘 팔리려면, 포장을 잘 해야 합니다. 물건이 좋지 않아도, 포장만 잘하면 된다는 그런 거짓된 사람들입니다. TV 과대광고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런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이라고 말해 버립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목회를 하거나 신앙생활을 할 때, 잇속을 따집니다. 더 좋은 조건을 따집니다. 그래서 언제나 움직일 준비되어 있다는 투입니다.
고후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수 많은’(폴로이, 폴루스)는 ‘많은, 큰, 위대한’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해석을 하든,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다닌다면, 다니던 회사에서 더 좋은 회사로, 더 좋은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를 받아 옮길 수가 있습니다. ‘스카우트’는 ‘고르다, 골라오기’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더 좋은 교회로 옮겨갈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만족스런 신앙생활을 위해서 소위 말하는 더 좋은 교회로 옮깁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 때문이라고들 말하지만, 교회를 옮기는 것이 무슨 신앙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여서, 더 조건이 좋은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을 기회요, 주님의 축복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다’는 뜻을 유념해야 합니다. ‘혼잡하게 하다’(카페레우온테스, 카페레우오의 부정과거능동태)는 ‘장사하다, 교육하다, 행상하다’는 뜻의 능동형 과거형입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주어가 하나님이 아니라, 본인 자신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가 (중고상품을) ‘여기 저기서 팔거나 팔려고 제공하다’는 뜻으로, 그 특징이 거짓이나 기만적인 행동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좋지도 않은 중고제품을 좋은 것처럼 속여 가면서 여기 저기 팔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목회자나 성도들이 위대하게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중고제품 취급해서, 어떻게 든지 팔고야 말겠다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말씀 그 자체보다 더 좋은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여야만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란 순전함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크고 위대한 수많은 목회자나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아, 그 목사님, 말씀이 좋다, 그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서 큰 은혜를 받았다’. 이런 식의 말들은 서슴없이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 교회의 목회자의 말씀입니까? 설령 여러분이 목회자를 통해서 말씀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 때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란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예배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아, 오늘 목사님의 말씀이 왜 저래. 실망스러워’이런 믿음은 성도들의 신앙을 망가뜨립니다. 예배자로 온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자로 온 것입니다. 비록 목회자의 설교가 엉망일지라도, 여러분이 눈을 가만히 감고서 본문을 읽고 있고 묵상하면, 말할 수 없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분에게 설교로 전달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설교보다 성령님의 강력하고도 따끔한 메시지 앞에, 큰 은혜를 받고 회개와 통회하는 시간이 엄습해 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해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중고제품을 팔 듯이 속임수와 거짓으로 전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자세로 교회를 선택하고 더 좋은 교회로 옮긴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전했습니다’.
‘순전함으로’(에일리크리네이아)는 ‘진실함, (동기의) 순수성, 성실’이란 뜻으로 ‘(의미상) 태도와 말이 정직하고 숨김이 없음’(가식이나 꾸밈이 없음)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 어떤 가식이나 꾸밈이 없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예배 잘 드리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숨김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여서, 말씀을 전할 때에 숨김이 없이,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하면서 성도들을 의식해서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설교하면서 ‘청중몰이’식 설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순전하게 하나님께 받은 말씀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믿음이라면 어떠한 교회와 설교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말해야 합니다.
설교자들이나 성도들이 착각하기 쉬운 게 있는데, 말씀을 전하거나 들을 때에 지나치게 청중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또 청중들인 성도들은 소위 ‘자신들에게 맞는 말씀’을 찾으려고 교회나 설교자를 선택하려 합니다. 이런 자세는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 앞에서 설교하고 전했습니까? 비록 청중이나 전도의 대상자에게 설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후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야 하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해야 합니다. 자기 말을 하거나 청중들의 입맛에 맞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야 하니까, 마치 하나님께 설교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떨림으로 순전하게 말씀을 전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