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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36계는 줄행랑이 아니랑께요
모든 무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소림권법의 총 기술은 36가지이며, 이 36가지 기술 중 마지막 권법은 필살기다. 필살기는 이름 그대로 서로 죽음으로 겨루는 마지막 한판 권법이다. 허지만 이 죽음의 권법을 고수들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하수들이 즐겨 써먹는다.
35가지 권법으로 싸워도 승산이 없을 때 36번째 최후의 권법인 필살기必殺技를 사용하면 두 고수는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고수들이라도 죽음은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니 고수들 뿐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싫다. 죽고 싶은 놈은 치매 걸린 죄 많은 놈이거나 정신이 또라이 같은 년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치매 걸린 놈의 대다수는 젊은 시절 바람으로 아내를 많이 울린 놈들이다. 그러니까 여자를 많이 농락했을수록 지독한 치매에 걸리는 것이다.
왜냐면?
바람피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쳐 간 여자들의 기억을 지우면서 생생한 기억까지 지워 버리거나 또는 무질서하게 정력을 과소비하느라 생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마저 탕진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렇다면 여자들은?
한마디로 남편 등골 빼 먹은 년들이다.
왜냐면?
새끼들 굶기지 않으려고 죽어라 일했는데도 수입 적다고 빡빡 긁거나 또는, 상사나 거래처 기분 맞추느라 스트레스 받아 비실거리는 남편의 능력이 59초 밖에 안 된다고 상습적으로 투정부리는 년을 귀신인들 가만 두고 보겠는가? 혼을 빼버리지. 역시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고수들은 36번째 필살기를 사용해야 할 막상막상의 대결상황이 되면 36번째 권법은 사용하지 않고 서로 도망간다.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라! 다음엔 반드시 죽여주마!”
도망가면서 하는 고수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앞뒤 곰곰 따져보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허지만 서로 살자고 하는 말인데 어쩌겠는가?
살아남기 위해 써 먹는 이 기술을 권법세계에서는 36기라 한다. 이 36기가 내공18기에 속하는지 외공18기에 속하는지 그것도 명확하지 않지만 이 두 가지를 합쳐 속세에서는 36계 줄행랑이라 한다.
최사장도 손가락을 지키기 위해 소림무술 36기를 쓸 때라고 판단했다.
허지만 최사장은 소림권법은커녕. 태권도 도장 문 앞에도 안 가본 사람인데 어떻게 소림권법으로 자신의 손가락에 기필코 장 지지려는 이 흡혈거머리 같은 제비일당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절대 불가능할 것 같지만 천만에다.
최사장은 소림권법의 마지막 기술인 36기는 도사급 실력이지만 속세에서 이 36기를 36계 줄행랑이라 부르기 때문에 기분이 항상 개운하지 않았다.
허지만 최사장에겐 이 비열해 보이는 36계줄행랑을 당당하게 써 먹는다.
오랜 세월 갈고 닦아, 능수능란하게 써먹는 이 기술을 차원이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당당한 것이다.
이 36계줄행랑을 최사장은 언제부턴가 망로라고 부른다.
처음엔 망도亡道라고 부르다 최근엔 망로忙路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망도에 ‘도’ 자가 들어가서 꼭 도망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미, 요거이 뭔 줄행랑이다요? 줄행랑이란 도망가는거인디?”
“그럼 사라지는 거야?”
“워메. 답답혀서 미치겄어야. 타인의 경우엔 줄행랑이 확실하지만 말이여. 본인에겐 망로여.”
“망로亡路라면 노망 든 사람이 다니는 전용길 이라는 뜻이네? 차로車路처럼?”
“워미! 워째 그로코롬 무식하다요? 망로라는 건 말이여! 본인이 전자사업항께 항시 바쁘잖소? 긍께 고런 망이 아니고 다른 뜻이여. 바쁠 忙망. 알았능가?”
이렇게 자신만의 주관이 확실한 최사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지키기 위해 36기 아니, 망로를 선택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세 여자들 앞에서 조금 치사한 감도 있지만, 이 소림권법만이 지금 닥친 대단한 위기를 탈출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비록 죽는 것은 아니지만 손가락을 잃는다는 것은, 최사장에겐 공포보다 질 낮아지는 삶이 더 두려웠다. 손가락이 없으면 우선 젓가락질도 힘들 것이고, 골프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똥 눌 때나 오줌 눌 때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은 생각에 최사장은 몸을 후두둑 떨었다.
최사장은 믿었던 채은숙 마저 딴청을 부리자 참담한 위기를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용수철처럼 의자 위로 펄쩍 올라가 식탁 테이블을 가볍게 뛰어 넘어, 6m 전방의 카페아웃인문을 열기만하면 자유가 있고 광명이 있으며 안전이 보장된다. 소중한 자신의 손가락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최사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마자, 앉았던 자신의 의자위로 올라가기 위해 한쪽 다리를 의자에 잽싸게 올려놨다.
허지만 제비가 최사장보다 날쌨다. 잽싸게 일어나 의자위로 올라가려는 최사장의 다리를 우악스럽게 당겼다. 최사장은 제 힘의 반동에 의해 앉았던 의자 위에 꼬꾸라졌다.
“퍽!”
“아이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문질렀다.
제비가 당긴 다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이마가 의자 등받이에 부딪친 것이다.
일곱 사람의 시선이 최사장을 향해 매섭게 쏟아졌다.
마치 염라대왕의 사자들이나 피에 굶주린 좀비들 같은 표정들이었다.
첫댓글 몹쓸 놈어 친구들 36게 법을 써도 제비 일당에게 걸려 들었군요.
ㅎ
젠틀맨님은 아직 이런 경험 안당해 보셨군요..ㅎ
역시 젠틀맨님의 카리스마가 돋보입니다
다음 이야기 월요일 뵐께요
농담으로 받아드릴수 있는것임에도 불구 하고 지나치게 일행들은
최사장만 달구네요..
ㅋㅋㅋ
과연 그럴까요?
이제 아침 저녁 시원해졌어요. 가을철 대비하시고 이번 주말 멋진 시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