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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누가복음 23장 강해 3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장 26-누가복음 23장 33
누가복음 23장 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오늘 말씀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당시에 가장 흉악한 죄인이 죽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죄없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님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고 죄가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이를 깨달을 때 나와 다른 사람의 죄를 인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지옥에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아멘
1.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간 시몬
2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예수님은 무리에게 넘겨져 해골이라는 골고다를 향해 갔습니다. 아니 걷는 것인지 기어가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70킬로그램이나 되는 나무 십자가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밤새워 심문 받았습니다. 39대의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빌라도가 있는 안티니우스 요새와 헤롯이 있는 시온산을 왔다리갔다리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체력이 바닥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졌습니다. 무릎이 까졌습니다. 군인들은 지나가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잡아서 그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시몬이 이렇게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을 때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시몬의 아내가 바울의 영적 어머니요, 그의 아들 루포가 로마 교회의 기둥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몬으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시몬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짐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기쁨으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다윗과 같은 큰 은혜를 주십니다.
2.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27,28절을 보십시오.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 뒤에는 여자들이 따라왔습니다. 여자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이 돌뿌리에 무릎이 찍힐 때, 피방울이 흙에 뚝뚝 떨어질 때 눈물을 비 오듯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 대한 동정심과 인간적인 감정으로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인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동정심으로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우는 사람들과 자신들의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서 울어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나의 죄를 깨닫고 울며 회개해야 합니다. 빌라도가 나는 죄가 없다고 손을 씻을 때 유대인들은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은 자와 그 자손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후손까지도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습니다. 오스크리아 황태자를 죽이고 일차세계 대전이 일어나 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아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죽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도 인간의 죄로 이렇게 참혹한 십자가의 받았는데 하물며 죄많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그 심판이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눈물을 흘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심판을 면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그곳에 없었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 36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골고다 언덕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너희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도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내몰고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을 박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까? 인간은 다 죄인이고 예수님은 그 죄 때문에 십지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놀러와’를 진행했던 김원희씨는 어느날 교회에 가서 찬양 예배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통곡을 하게 하셨습니다. 아엠 선교회의 마이클 조 산교사는 비염을 수술한 후에 자신이 예수님을 채찍질 하는 사람이었음을 환상 중에 보았습니다. 아일랜드의 최마태 선교사는 제주도 학생 수양회에 가서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의 길을 가고자 결단하였습니다. 나는 두 번 십자가를 보면서 내가 바로 예수님에게 발길질한 자임을 깨닫고 통곡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까운 사람을 미워한 것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둘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울며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으면 십자가에 못박은 무지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십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 이단에 빠지고 여자들과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모니카가 아들 어거스틴을 위해서 교회에서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암브로시오주교는 눈물로 기도하는 자의 자녀는 망하지 않는다고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죄를 위해서 울며 기도해야합니다. 개그맨 이성미씨는 욕쟁이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아들에게 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이 네 말대로 아들에게 해줄까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통곡하며 회개하고 욕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아들이 큰 사고를 일으켰을 때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아들이 변했다고 합니다.
한국사 일타 강사인 전한길씨는 고3때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학비가 없어서 대학을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허랑방탕하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농에서 몰래 학자금 준비한 돈뭉치를 내 놓으며 울었을 때 그는 비로소 회개하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자신의 눈이 멀어도 좋으니 아버지가 한번만 일어나게 해달라고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아버지를 살려주시고 말씀을 하시고 웃으며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할 심판의 무서움
29~3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의 받을 심판을 예언하십니다. 한 생명의 잉태는 모두의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에는 사람들은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보지 못한 여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날은 차라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당합니다. 심판은 엄청나게 끔찍하고 무섭습니다. 자식 있는 부모는 두 배의 고통을 겪습니다. 사람들은 TV에 홍수로 산이 무너져 산에 깔려 죽은 사상자 보도가 나면 ‘저 사람은 참 복도 많지~ 내가 저기 깔려 죽었으면’ 하고 비참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날에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합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맛봅니다. 예수님은 푸른 나무와 같은 아무 죄 없는 예수님도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지옥 형벌을을 받는데 마른 나무와 같이 예수님을 못박은 자들이 얼마나 더 큰 고통이 있을 것이냐고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죽은 후에는 살아 있는 자들이 받는 고통보다 더 큰 심판의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날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도 회개치 않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영벌을 받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죄를 울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지하여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결국 로마 디도장군에게 200만, 히틀러에 의해서 600백만이 학살당했습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환난을 당하고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와 무관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 죄인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인과 간음을 하고도 죄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단은 그에게 한 가지 비유를 말했습니다. 나단이 예를 들어서 양이 많은 사람이 양 하나 있는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잡아 먹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윗을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단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서 다윗은 내가 나쁜 놈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바로 나!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내가 바로 죽어서 지옥 형벌을 받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 받아 죽게 되고 회개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4.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32,33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은 해골이라는 골고다 언덕까지 구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올라왔습니다.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군병들에게 사형준비를 지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를 땅에 눕히고 우악스럽게 예수님을 잡아 십자가 위에 포갰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허리춤에 천 조각 하나만 걸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벌레 보듯 찡그리는 미간과 , 재수 없다며 침을 퉤, 퉤 뱉는 입과 혈기로 실룩거리는 볼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심기를 최대로 긁는 갖은 욕설과 듣기 민망한 모욕적인 말이 예수님의 귓가에 들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책망도, 원망도 하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두 병정이 각각 오른쪽, 왼쪽에 앉아 예수님의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적당한 위치에 손을 놓고 끈으로 칭칭 감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한 병정이 커다란 못과 망치를 들고 와 동그라미 부분에 못을 댔습니다. 망치로 못을 쾅! 쾅! 내리쳤습니다. 못은 예수님의 살을 뚫고 뼈를 깨고 나무까지가 박혔습니다. 병정들은 이제 예수님의 두 발에 못을 내리쳤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이제 병정들은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몸의 무게를 느끼게 되면서 못 박힌 손에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물같이 쏟아졌으며 모든 뼈는 어그러졌습니다. 심한 갈증으로 혀는 입천장에 붙었습니다. 그렇게 6시간을 매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으로 절규하시며 소리 질렀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소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일시적으로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못 박힘은 우리가 못박힐 것, 예수님의 절규는 우리가 질러야할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형제도는 페니키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처형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잔인하여 로마시민에게는 금지가 되었고 식민지 백성들 중에도 반역자, 흉악범들만 십자가 처형을 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는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몸이 점점 쳐지고 못 박힌 살이 찢어졌습니다. 파리들이 그 주위에 날아와 피를 빨았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예수님을 보고 외쳤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우리가 평화를 누리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의 죄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에 대해서 반드시 벌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라도 벌하시는 분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이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 우리는 죄가 무섭다는 것을 깨닫고 죄를 반복하여 지을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인간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자신의 아들을 벌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지옥 형벌을 맛보지 않게 하시고자 아들에게 지옥 형벌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자신의 아들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며 회개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인하여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결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지옥 형벌을 맛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며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닫고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고 울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았으면 이제는 다시는 죄를 반복하여 짓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도 옛날 생활을 반복한다면 진정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십자가를 보면서 울며 기도하는 가운데 죄사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우리와 우리 이웃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0.1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누가복음 23장 강해 3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장 26-누가복음 23장 33
누가복음 23장 28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장 강해 사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