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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교회 고려장의 서곡과 한국교회 ①
기독교 도덕성 상실 ‘심각’
장달윤 무궁교회 목사
터키는 동로마제국이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은 당시 수도로서 세계를 지배하던 기독 교 심장부였으며, 세계 종교대회가 4회나 열렸던
곳이다. 그 외 지역 니케야, 에베소, 칼게톤 회의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신학과 교리의 골간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권세, 그 영화는 당시의 상징물인 소피아 성당(베드로 성당과 동격 규모)을 고려장으 로 만들어 마구간과 창고로 사용되다가 근간에 관광 붐이 일자 상처투성이인 성당을 수 리하여 관광명소로 만들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기독교 역사의 중심지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유는 기득권자들인
종교 지도자들이 부 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과 시대의 요청과
인민의 욕구를 외면한 체 거룩한 예수의 포장을 둘러치고 교리싸움,
감투싸움, 매관매직 등으로 이전투구를 하고 국민들에게는
과중한 세금과 강제노역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종교를 수단으로 이용 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구원과 소망과 안위가 허구에 찬 구호가 되었을 때 기독교에 대한 민중(교인들)들의 마음은 증오와 비판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
에 민중을 구원한다는 회교깃발을 높이 든 오스만제국 정복자 메흐멧2세가 “국민의 피 만 빨아먹는 부패한 기독교 종교왕국 타도”를 외쳤을 때 거대한 권력 앞에 숨을 죽이 고 복배하여 신음하고 있던 민중은 벌떼처럼 일어났고, 1453년 타락한 기독교 왕국은 6
주만에 썩은 고목처럼 쓰러졌다.
오스만과 터키 국민은 기독교를 타도하며 고려장을 만들고 오늘 마호멧 국가 터키를 건 국하였던 것이다. 또 역사를 잊어버린 어리석은 자를 보라. 구 러시아 기독교 왕국도 과 거 교회역사를 망각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동로마 제국의 전철을 밟다가 공산주의 민중
의 단두대에 올랐다.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그들 선조들이
피로 세운 기독교 왕국을 멸망시키고 자기들의 무덤을 팠던 것이다.
종교가 허울좋은 이상만을 외치고 시대와 민중의 요청을 망각할 때
그 종교는 반드시 그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멸망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임을 지금 한국교회 목사, 장로 들은 명심해야 하고 특히 교단장들의 선상에 이름을 드러낸 분들은 각성해야 할 것이
다. 기독교의 사회적 본질인 도덕성을 상실하면 “가마솥의 개구리”처럼 감각 없이 죽 어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초기 한국교회의 역할
세계 기독교 역사상 1세기 동안 한국교회처럼 부흥하고 발전한 나라는 없었다. 그 발전 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 필연은 신앙 선배들의 피나는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우리민족
의 잠을 깨워 주었고, 어두운 밤에 헤매던 우리 민족에게 서광을 비춰주었다.
첫째로 그것을 실례로 들면,
1. 반상제도를 폐지하고 신분계급을 타파하여 절대 다수 민중에게 환희를 공급하였고,
2. 인간 이하의 대접받고 억압받던 여성들에게 해방을 주었고,
3. 미신에 짓눌려 지쳐있던 민중들에게 미신타파로 자유를 주었고,
4. 천대받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고 찬송가를 만들어 문맹퇴치 운동을 일으켰고,
5. 축첩문화를 배격하고 일부 다처제를 타파하여 창조주가 부여한 여성들의 인권을 회복 시켜 주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과 새로운 삶의 지표를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한국 민중은 기독교를 선호하게 되어 벌떼처럼 교회로 모여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 의 필연적인 조건이었다.
둘째로는 발전한 기독교가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1.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제에 항거하여 3.1운동에 앞장서서 수많은 피를 흘리며 옥고 를 치렀고,
2. 8.15 해방 후 무신론 공산주의자가 밀물처럼 밀려들 때 반공에 앞장서서 수를 헤아 릴 수 없는 희생을 지불하였고,
3. 북한 공산집단에 생명을 내걸고 싸우다 설자리를 잃은 북한 기독교인들이 월남하여 험난한 역사와 고난 중에도 신앙을 위해 월남한 뜨거운 가슴으로 남한 교회와 협력하여 오늘의 기독교 문화를 꽃피우게
된 것인데 그것은 곧 신앙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한 필연적 결과였던 것이다.
안병욱 교수는 “한 나라가 흥할 때는 흥할만한 이유가 있고 망할 때는 망할만한 까닭 이 있어서 망한다”고 하였다.
기독교 정권 탄생과 야합과 비호
1. 기독교에 공헌한 정권과 야합
이 땅에 기독교 공동체는 누구도 질책할 수 없는 비대한 세력권을 형성하게 되어 기독 교 정치 지도자를 내고 그 지도자는 기독교 편에 서서 타종교에 할애하지 않는 군목제도 를 만들어 군 선교에 크게 공헌하였고 성탄절을 공휴일로 제정하는 공헌을 하였기에, 기
독교는 자기 이익에 도취되어 잘못에 대한 비판의 도덕적 기능을 상실하고 그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눈감아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고 부패한 정권에 동승하여 그들의 부정한 정권 재창출에
앞장서서 3.15 부정선거를 주도적으로 도왔던 것이 기독교
였다.(당시 대통령 주변인물이 거의 기독교인이었다.)
2. 정권 재창출을 위한 부정선거에 앞장선 기독교
그 부정선거는 천하에 보기 드문 피아노 투표, 올빼미 투표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그것 은 3인조를 짜서 1인 감시 하에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하게 하였고, 군부대에서는 기표소 뒤에 구멍을 뚫어놓고 감시하며
이승만과 이기붕을 찍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명
령에 불응하는 자를 불러내서 구타하기도 하였다. 실 예를 하나 들면,
내가 잘 아는 한섭규 대령은 당시 근무하던 모 부대에서 “양심파인
젊은 대학생 신병이 지시를 거부하고 소신껏 투표를 하자 그를 끌어내어 구타하는 것을 보고 구타를 중지시켰다”고 하였다. 이런 부패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전국 기독교 단체는 지지대회를 열고 기도회까지 열어 “이승만은 모세, 이기붕은 여호수아”라고까지 외치며 선량한 성도들과 우민들을 선 동하여 부정선거에 앞장섰던 것이다.
3. 교회는 4.19 희생자 185명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선거가 끝나고 기독교의 의도대로 이승만을 대통령,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러자 정의감에 충혈된 대학생, 교수, 민중들이 4.19
혁명을 일으켜 불법 기독교 정권을 타도하였다. 그 불법정권은 최후수단으로 4.19 혁명의사 185명의 심장에 총탄을 박았지만 부패 기독교 정권은 추방과 자살과 사형으로 막을 내렸다. 그 결과 성북구 수유리에 4.19 국립묘지를 만들어 기독교 정권의 부패상을 만대에 고발하며 소리치게 하였다. 그
영령들의 가슴에 박힌 총탄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들의 심장을 관통시킨 그 총알의 책임
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래도 기독교는 그 책임이 없다고 변명할 자신이 있는가? 자기의 정체성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동로마 교회 고려장의 서곡과 한국교회 ②
“종교 지도자들은 회개해야”
장달윤 무궁교회 목사
회개와 자성 없는
한국교회 목사들
중앙청 앞 선혈의 붉은 피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에 기독교 지도자들은 회개도 자성도 없이 기독교의 사회적 본질인 정의와 진리, 원리와
원칙의 도덕성을 상실한 채 피냄새가 듬뿍 나는 권력실세들이 등장할
때마다 조찬기도회를 한답시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
해 안달을 하였으며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정치고문이란 자리에 출세한 장군처럼 버젓이 참석할 때 김수환 추기경은 단호히 거절했다.
기독교와 천주교가 국민에게 보여준 차이점이 무엇인가?
허울좋은 조찬기도회는 이제 그만하고 앞으로 정치를 잘한 대통령에게만 임기만료시 감 사의 석찬 기도회를 열어주자. 그러면 부패를 막고 바른 정치를 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며 기독교가 부패정권에 견제장치가 될 것이다.
1. 석찬 기도회 제안
앞으로는 가장 깨끗하고 정직하게 국가에 공헌한 대통령에게만 석찬
기도회를 열어주자
고 제안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석찬 기도회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은
기독교의 무서운 심
판을 받는 것이며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대통령으로 기독교와 국민을
두려워하며 정치
를 하게 될 것이다.
신앙불감증의 목사 장로들의 타락과 총대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잡고 있는 지성인들
경제성장과 더불어 교회가 비대해지고 부귀와 영화를 만끽하자 기독교 지도자들은 명예
욕에 중독되어 막대한 돈을 뿌려 감투싸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민의원 선거비가 1
억 7천인데 반해 7당 5락이니 10당 7락이란 천하에 없는 용어를 만들어 추태를 반복하였
다. 모든 조직책 하나에도 매관매직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망국의
질병인 지역 당파
를 만들고 동료들을 헐뜯고 성도들의 순수한 헌금으로 선량한 신앙양심들을 매매하고 있
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 않다 말할 자 있으면 양심을 뽑아들고 나와
보라.
그리고 비웃음 받는 부도덕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자화상과 그들의 공염불은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기독교의 역동성은 고동을 멈추고 기독교의 신자들은 교회
를 이탈하고, 대학과 지성인들과 민중의 부정적인 시각은 기독교와
목사들을 조준하여
방아쇠를 잡고 있다.
민심이 이런데도 어찌 코방귀만 끼고 태연자약할 수 있단 말인가? 교인들 앞에서 회개
를 외치기 전에 먼저 우리들의 타락을 인정하고 우리가 먼저 베옷을
입고 회개하여 양
식 있는 민중들과 지성인들의 손가락의 방아쇠를 풀게 하자.
동로마 제국과 한국교회 목사들
오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세속자들과 비교하여 한치의 차이도 없이 악취를 풍기며 방향감
각을 상실하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 터키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의 고려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콘스탄티노플의 종교지도자들은 풍전등화 격인
종교왕국의 운명은
망각한 채 교권싸움에 연연하고 소피아 성당의 마리아 상의 눈동자
빛이 진하느니 흐리
느니 시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그들과 비교하여 무엇이 다른
가?
망국직전에 쓰러져가는 종교왕국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내어댄 참된 선지자들의 충고
를 거절하였다. 그들 선지자들은 성서를 이탈한 교회와 교권을 지적하여 필탄을 갈겼
다. 그 실례로 신학박사요 대학총장인 카톨릭 사제 존 후스(John
Huss)와 제롬 등이 광
야의 소리를 외쳤을 때 웃기는 놈이라고 비웃고, 귀를 막고 그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화형시키고 말았다. 콘스탄스 공의회에서 후스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자고 불러놓고 대세
에 억눌린 양심파 성직자들의 동요가 두려워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곧 바로 화형
에 처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희희낙락하며 승리의 자축을 벌였다.
(1415년)이 어찌 천인
공노할 범죄행위가 아니었던가? 그런 타락하고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의 감투싸움, 이권싸
움, 파렴치한 행태가 동로마 기독교 제국을 고려장으로 만들고 오늘의 이슬람 국가를 탄
생하도록 한 것이다.
휘트먼은 “도덕적 양심은 나라의 등뼈”라고 했는데 등뼈가 골다공증에 걸려 부러졌
다. 오늘 한국교회 목사 장로들은 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양심선언한 총대 장로를
왕따시켜 죄인을 만들지 않았는가? 존 후스의 사형과 무엇이 다른가?
부정과 부패가 하
늘을 찌르는데 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
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기독교 대 사회적인 운
동을 일으키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결어
오늘의 기독교가 본연의 의무와 사명감을 망각하고 신앙양심 불감증
환자로 만행을 지속
한다면 소피아성당의 뒤를 따르는 것은 자명한 역사의 진리다. 그러므로 멸망을 자초하
는 “꾼” 종교지도자들은 즉시 회개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떠나라.
어찌하여 교회를 이
렇게 타락시키고 있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경거망동은 그만하고
그렇게 함이 진정
으로 한국교회를 위하는 길임을 알라. 그렇지 않으면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며 지옥은
그대들의 “별장”이 될 것이다.
오늘 한국 기독교 목사, 장로들은 대 사회적인 시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부정부
패, 부도덕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방관만 하고 있어서 되겠는가? 정의와 진리, 원리와 원
칙의 십자가 깃발을 높이 들고 이 사회의 부패를 막아야 하고 감시해야 하고 심판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 사회적인 사명이다.
1. 교회 거짓의 남발과 공신력 실추
어찌하여 교회가 기부금증명서를 허위로 떼어주며, 거짓 교인증명서를 발행하는가?
어째서 상납금을 적게 내기 위해 세례교인수를 줄이고 예산을 속여서
보고하는가?
교회가 이중 장부 탈세기업체인가? 교회공신력이 땅에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어찌하여 손을 얹고 맹세하고 신문에 보도하고 표리부동한 언행을 밥먹듯 하는가?
어찌하여 엄벌에 처하겠다고 공언하고 불법이 판을 치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용두사
미가 되었는가? 그냥 보아 넘어가는 것은 공범이 아닌가? 사회는 교회의 공언과 교회가
발행한 공문서를 믿지 않는다. 공신력을 상실한 개인과 사회와 국가는 반드시 망한다.
공신력이 상실된 종교집단은 배척을 당하고 암환자처럼 죽어간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대 사회적 본질인 공신력을 회복하자. 그럴 때 이 땅에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
지 않고 부정부패와 야합하여 자괴감에 사로잡혀 침묵을 지키고 그것들에 동승하며 아편
중독자처럼 오늘을 지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2. 대학의 지성들이 교회를 보는 시각
나는 지난 7월 10일 서울대 기독학생과 미국행 비행기에 동승하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는 말하기를 자기와 일반 학생들이 교회를 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①오늘
날 기독교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②기독교가 이 민족과 나라를 위해
필요한 존재인가?
③종교지도자 목사들만의 풍요와 사치와 안위만을 위한 사업집단이
아닌가?”라고 하였
다. 이 어찌 그냥 들어 넘길 말인가?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늘 젊은 지성대학의 양심, 내일의 이 나라의 주인들은 기
독교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 비판하고 있다. 동로마제국의 민심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들은 무서운 의분으로 계속 증오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이여! 회개하자. 참된 소리에 귀를 막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이사야와 예
레미야의 예언의 소리를 들었다면 바벨론 포로와 노예생활은 없었을
것이다. 듣지 않는
것까지도 좋다. 때리고 협박하고 투옥시켰다. 그 소리를 듣는 귀가 막히고 들어도 외면
하는 기독교는 민중에 의해 파멸되고 성도들의 피땀을 모아 건축한
화려하고 거대한 교
회들을 소피아 성당의 고려장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3. 한국교회가 사는 길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초교파적으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투쟁해
야 한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도태되고 만다. 그것
이 역사의 진리이다. 그 날의 콘스탄티노플 지도자들을 회상하며 내일의 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는 회개하고 연합하여 대 사회적인 공신력을 회복하여야 한다.
본인은 4년 동안 홀로 지역 구청의 부정을 고발하며 대법원까지 갔으나 패소하였다. 그
러나 지금도 진실하고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재심청원 준비를 하고 있으며 반
드시 승리하여 한국교회 이름으로 만천하에 공개하여 주님의 이름을
빛낼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먼저 회개하고 부패 공무원의 추방운동과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초교파적 기독교시민연대를 구성하여 6.10 항쟁과 같은 운동을 일으켜 정의의 선봉자가
되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때 산 위의 등불이 될 것이고 정지된 교회의 역동성이 회복
되고 이 땅에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는 때 복음화운동은 빛 좋은 개살구
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각 종교 단체장들이여! 02년 총대들이여! 그곳을 향해 부정을 고발하고 정의의 소리를
외치자. 니느웨성의 왕처럼 베옷을 입고 티끌을 쓰고 회개운동을 일으키자.
도대체 지금까지 하고있는 짓거리들이 무엇인가? 그러고도 종교 지도자라고 자부심을 갖
고 종교단체를 대표한다며 그 자리에 앉아 사인을 하며 얼굴을 들고
그 길을 활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장에 철판을 깐 자들! 더럽고 뻔뻔스러운지고, 오호 통제여!
장신대 뒷동산에 주기철 목사 기념비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건만 추호의 가책 없이 손가
락으로 태양을 가리고 동서남북을 쏘다니다니! 그대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만신창이가 되
어 썩어가고 구더기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부디 동로마 교회의 전철을 밟지 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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