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이백(李白)의 '권주가(勸酒歌)'
地白風色寒(지백풍색한),
대지는 백설로 뒤덮이고 바람은 찬데,
* 地白(지백) : 눈이 와서 대지가 흰 눈에 덮여 있는 것.
* 風色(풍색) : 바람의 기운.
雪花大如手(설화대여수).
주먹만 한 눈송이가 공중에 흩날린다.
* 雪花(설화) : 눈송이. 눈송이는 자세히 보면 꽃 모양으로 생겼으므로 설화라 한다.
笑殺陶淵明(소쇄도연명),
도연명이 웃다 자빠지겠소,
* 殺(쇄) : 심함을 나타내는 조사(助詞). ‘쇄(煞)’로도 쓴다. 소쇄(笑殺)는 '참 우습다'는 뜻.
不飲杯中酒(불음배중주).
잔 그득한 술을 마시지 않겠다시니.
浪撫一張琴(랑무일장금),
그대 거문고 어루만져 봐야 부질없고,
* 浪(랑) : 헛되이. 쓸데없이.
* 撫(무) : 어루만지는 것. 소금(素琴)이기 때문에 '무(無)'라 말한 것이다.
虛栽五株柳(허재오주류).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은 것도 헛된 노릇.
* 虛(허) :헛된이.
* 栽(재) : 심다.
空負頭上巾(공부두상건),
머리 위 망건도 괜히 쓴 것이려니,
* 空(공) : 공연히.
* 負(부) : 배반하는 것. 어기는 것. 도연명의 葛巾은 술을 거름에 썼는데 왕역은 공연히 건(巾)만 쓰고 있으니 건을 배반했다고 한 것이다.
吾于爾何有(오우이하유).
내 존재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는지?
* 何有(하유) : 무엇을 하랴? 무엇이 있으랴? 무슨 상관이 있으랴? 곧 이젠 너를 모른체 하겠다는 뜻. 도연명의 <飮酒> 제20수에 '만약 다시 통쾌히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공연히 머리 위의 건을 배반하는 것이라 (若復不快飮,空頭上巾)'고 읊은 말에서 취한 것이다.
―‘술 안 마시려는 왕역양을 놀리다(조왕역양불긍음주·嘲王歷陽不肯飮酒)’ 이백(李白·701∼762)
* 嘲(조) : 비웃다.
* 歷陽(역양) : 안휘성(安徽省) 화현(和縣)에 있던 지명, 왕역양(王歷陽)은 그곳의 영(令)인 이백(李白)의 친구 王아무개. 이 시는 이백의 친구인 역양령 왕아무개가 술을 마시려 들지 않음을 비웃은 것이다.
주선(酒仙) 이백(李白)의 수많은 권주가 중 또 하나의 색다른 권주 방식. 비웃기라도 하듯 상대의 취향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시제가 흥미롭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주연까지 마련했는데 왜 그를 놀리는 걸까. 놀림이라기보다는 주흥을 돋우려는 우스갯소리로 이해하면 되겠다. 게다가 성 뒤에 이름자 대신 상대가 거주하는 역양(歷陽)이란 지명을 붙인 건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다.
백색 천지에 쏟아지는 함박눈, 음주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이참에 도연명(陶淵明)을 존숭(尊崇)한다는 그대가 술을 마다한다? 도 선생이 술 마실 때 곁에 두고 어루만졌다는 줄 없는 거문고, 오류(五柳) 선생이란 호를 지을 정도로 버들을 좋아한 취향까지 답습하려고 이것저것 살뜰히도 챙기시는구려. 한데 도 선생에게 망건이 왜 소중했는지 아시오? 술 걸러 서둘러 마시기엔 망건이 제격이었기 때문이오. ‘또다시 통쾌하게 술 마시지 못할 바엔, 머리 위 망건은 괜히 쓴 것이지’(도연명의 ‘음주’ 제20수)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이오. 술을 거부하는 건 그대가 건성건성 흉내만 내는 것이니 여간 실망스럽지 않소. 시인의 이런 놀림에 술 못하는 상대가 돌연 술을 들이켰을 리는 없겠지만 도연명을 흠모하는 마음만은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은 확인했을 듯하다.
시는《李太白集(이태백집)》23권에 실려 있다. 왕역양(王歷陽)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唐書(당서)》 〈地理志(지리지)〉에 “화주(和州) 역양군(歷陽郡)에 역양현(歷陽縣)이 있다.”고 하였으니, 왕역양은 역양현령(歷陽縣令)으로 왕씨성(王氏姓)을 가진 이백의 친구인 듯하다. 시에 나오는 낭(浪), 허(虛), 공(空) 세 글자는 모두 왕역양이 술을 마시려 하지 않음을 조롱해서 한 말이다.
趙任道(조임도)〈1585(선조 18)-1664(현종 5)〉의 《澗松集(간송집)》2권에 ‘주중(舟中)에서 도부(道夫)와 술을 권하며 서로 해학을 하였는데, 도부(道夫)가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으므로 희롱하여 지었다’는 한 絶句가 보인다.
“망우정(忘憂亭) 위에 사람은 이미 떠났고 망우정 아래에 물만 부질없이 흘러가네. 세상을 피해 신선을 배웠지만 오히려 이와 같으니 그대 지금 취하지 않고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忘憂亭上人已去 忘憂亭下水空流 逃世學仙猶若是 君今不醉欲何求]”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3월 01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