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밥보다 못한…” MZ세대 장병들의 ‘군투’ 진짜 원인은?오징어 없는 오징어국?
부실 급식 논란 들여다보니
유종헌 기자
입력 2021.05.29 03:00
국군 전체에 초비상이 걸렸다.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이 머리를 숙였고, 두 달 동안 전군 지휘관 회의가 네 차례나 열렸다. 북한의 도발도, 관심 병사의 탈영도 아니다. 다름 아닌 ‘급식’ 때문이다.
휴가 복귀 등으로 임시 격리된 일선 부대 장병들이 부실한 도시락 사진을 잇달아 소셜미디어에 찍어 올리는 폭로가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군대 밥이 교도소 밥보다 못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공개된 급식 사진을 보면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계룡대 근무지원단)’ ‘김치와 계란찜 하나 있는 도시락(육군 39사단)’ ‘먹다 남은 토마토에 고등어 한 조각(육군 11사단)’ 등 형편없는 수준이다. 일각에선 이번 급식 대란이 ‘군투(군대판 미투)’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방부 장관이 직접 일선 부대를 방문해 격리 병사 도시락을 점검하고, 각군 지휘관들이 연일 격리 장병 관리를 강조하자 일부 부대에선 격리 장병 도시락은 반찬을 무조건 많이 담아주는 웃지 못할 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최근 휴가에서 복귀한 한 병사는 “부실 급식 폭로 이후 간부가 매 끼니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면서 “혹시 우리가 급식 사진을 찍어 올릴까 봐 예방 차원에서 촬영한다 들었다”고 했다. 도대체 ‘부실 급식’이 뭐길래, 국방부 장관부터 초급 간부까지 쩔쩔 매는 걸까.
/일러스트=유현호
◇갑자기 닥친 코로나, 턱없이 부족한 인력
군에서 급식은 다음과 같은 체계를 따른다. 먼저 국방부에서 매년 급식비와 연간 배식량, 칼로리 등을 포함한 급식 방침을 수립한다. 그다음 군별로 식단을 구성하는데, 육군은 군단급 단위(5만명 내외)로 통일된 식단을 짠다. 각 부대는 인근 보급 부대에서 주기적으로 식자재를 할당받아 부대 내 냉장고에 보관하고, 취사병(조리병)들이 매일 휴가 인원 등을 고려해 예상 배식량만큼 조리한 다음 장병들에게 나눠준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휴가 복귀 후 일정 기간 격리되는 인원이 생기면서 문제가 터졌다. 상당수 부대는 식당과 멀리 떨어진 막사나 체육관 건물을 임시 격리소로 사용한다. 이 경우 취사병이나 담당 간부가 조리된 음식을 직접 임시 격리소까지 날라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배식하게 하거나 따로 도시락에 담아 보내주는 ‘이동 배식’을 해야 한다. 문제는 상당수 부대에서 다른 장병들이 먼저 식사를 받은 후 격리 장병에게 줄 음식을 담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부대에서 격리 병사에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전에 선호 메뉴가 소진되는 일이 벌어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동 배식까지 신경 쓰기에는 취사병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군에 따르면 육군 중대급 이하 부대 기준 병사 150명당 취사병은 2명에 불과하다. 식사 준비를 돕는 민간 조리원도 80~300명 기준 1명이다. 수도권 한 방공포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던 이모(28)씨는 “취사병 중 한 명이라도 휴가를 가는 날에는 두 명이 끼니마다 네 가지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이 상황에서 매일 격리자 숫자에 맞춰 이동 배식까지 챙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윤형호(예비역 대령)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는 “전방 야전 부대의 인원이 지속해서 줄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현장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면서 “그간 관리 사각지대에 있던 소규모 부대에서 문제가 다발적으로 터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식자재 조달 및 납품 과정에서 소위 ‘물품 빼돌리기’ 등 비리가 발생해 식자재가 부족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그러나 군과 전문가 모두 이런 의혹엔 고개를 저었다. 육군 관계자는 “내부 감사 결과 아직 비리를 의심할 만한 정황은 없다”고 했다. 해군에서 군수 업무를 맡다 군납 비리를 내부 고발한 공로로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은 김영수(예비역 소령) 국방권익연구소장은 “최근에는 내부 감찰 시스템이 잘 정착돼 납품 과정에서 물품을 빼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해당 부대 전체의 급식 질이 나빠졌겠지만, 지금은 격리 병사들의 급식에서만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8일 페이스북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에 올라온 육군 39사단의 부실 급식. 다른 반찬 없이 밥과 김치, 계란찜 하나만 놓여 있다. /페이스북
◇“군 급식 외주화도 검토해야”
부실 급식 폭로가 계속되자 국방부는 지난 7일 현재 1인당 하루 8790원인 병사 급식비를 내년부터 1만500원까지 올리고, 돼지·닭·오리 등 육류 공급을 10% 늘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부실 급식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수 소장은 “미군은 음식을 비롯해 경호, 경비 등 비전투 분야는 민간 군사 기업(PMC·Private Military Company)이 담당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저출산으로 병력 자원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음식만큼은 민간 업체에서 담당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윤형호 교수는 “이번 급식 대란은 급식비가 적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지휘 사각지대에 있는 부대에서 인력 부족으로 발생한 문제”라면서 “단기적으로는 격·오지의 인력 충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급식 외주화 등은 예산 사정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실제로 육군은 이번 폭로 이후 급식 외주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공정 민감한 MZ세대, 소셜미디어로 몰렸다
이번 ‘군투’ 사태의 또 다른 특징은 장병들이 부실 급식 문제를 군 내 지휘 계통이나 군인권센터 등 외부 시민 단체가 아니라 특정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알렸다는 것이다. 팔로어가 16만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육대전)’는 지난해 2월 비닐로 덮인 식판 위에 김을 비빈 밥만 있는 일명 ‘주먹밥 급식’ 사진을 처음 올린 이래 최근까지 육군 12사단, 1사단, 39사단, 11사단 등 총 11건의 부실 급식 사례를 제보받아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 사례들은 이후 국방부 조사에서 실제 장병들에게 배급된 식사로 확인됐다.
장병들의 이런 소셜미디어 폭로는 엄밀히 말하면 보안 훈령 위반이다. 군은 부대 관리 훈령상 ‘병 휴대전화 사용 수칙’ 등을 통해 병사들의 부대 영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군에 따르면 병사들이 영내에 휴대전화를 반입하기 위해서는 ‘국방 모바일 보안’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 앱은 부대 안에서 카메라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병사들은 어떻게 부대 안에서 급식 사진을 찍어 올린 걸까. 일선 장병들은 휴대전화를 두 개 반입해 하나만 간부에게 제출하고 다른 하나는 보안 앱 설치 없이 사용하거나, 아이폰의 ‘프로파일 삭제’ 기능을 통해 국방부 보안 앱을 무력화하고 있다. 한 공군 장병은 “보안 앱이 휴대전화의 사용 기록을 모두 추적하기 때문에 ‘꼼수'인 걸 알면서도 보안 앱 우회 방법을 공유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장병들이 부실 급식 문제를 외부로 알리는 것이 군 기강 해이와 군사 보안 유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 육군 장교는 “불공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MZ세대의 특성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이러다 자칫 민감한 군사 기밀이 새 나가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육대전’ 페이지를 운영하는 김주원(27)씨는 “군 내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는 대중에 공론화해 해결하는 방식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했다. 김씨는 “제보를 받으면 먼저 해당 부대의 지휘 계통과 ‘국방헬프콜’ 등을 통해 해결해보라고 조언한다”면서 “제보받은 부실 급식 문제는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다. 증거 자료가 명확하고, 공개해도 된다는 판단이 든 사례만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폭로가 계속되자 국방부는 지난 7일 휴대전화 기반 앱을 통해 익명으로 내부 비리 등을 신고할 수 있는 ‘군대판 고발 앱’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장병들은 부정적인 분위기다. 수도권 부대에 근무하는 한 육군 병장은 “군 내부 신고 체계로 부실 급식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왜 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부로 알렸겠느냐”면서 “국방부가 운영 중인 ‘국방헬프콜’ 제도도 이미 유명무실해지지 않았느냐”고 했다.
#아무튼 주말
유종헌 기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겠습니다.
출처 “교도소 밥보다 못한…” MZ세대 장병들의 ‘군투’ 진짜 원인은? - 조선일보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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