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무르팍이 되기 위해서 [이문숙]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난 뒤
무릎을 편애하기 시작했다
무릇 무릎이라 하면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픈 무릎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르팍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불쑥 솟아난 돌의 미간
서걱거리는 잎을 달고 꼼짝 않고 서 있던
마가목 나동그라진다
나는 엎어져서 깨진 무릎을
들여다 본다
찌륵거리며 건너온다
그만 저곳으로 갔던 게 아니다
아직 마가목은 파르스름 흠칠대는 기류를 흘려보내고 있다
귀뚜라미 수염 같은
가슬가슬한
귀뚫이의
마가목 가지는 하나도
헐거워지지 않았다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철제 난간에 저를 뻗어
걸치고 있다
무릎이 무릇 무르팍이 되기까지
콱 힘주어 일어서기까지
-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까지, 문학동네, 2016
* 우리의 신체는 각각 수명이 있다.
사람마다 수명이 다르듯 신체 각 부위의 수명도 다르다.
무릎이 무르팍이 되는 것은
무릎을 많이 쓰고 희생 시켜서 깨지고 약해지고 아프다.
노인들이 아이구구, 하는 것은 괜히 엄살을 떠는 게 아니다.
젊은 무릎들은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돌아서서 무릎이 왜 아프다는 거야, 궁시렁거린다.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과 가족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궁시렁거릴 게 아니고 무릎에 왕관이라도 씌워 주어야 한다.
무르팍도사는 있어도 무릎도사가 있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무르팍도사를 위해 명아주 나무로 지팡이를 하나씩 만들어주자.
왕관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