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좋은 동시 [ 총 10편] |
한국동시문학회 | 2024년 6월 |
총괄부회장 | 박혜선 | 선정위원장 | 이묘신 | 선정위원 | 권영욱, 이옥근, 차영미 |
ㄱㄴㄷ 쇼트트랙
김보람
ㄱ들이 얼음 위를 달린다
ㄱ ㄱ ㄱ ㄱ ㄱ
바짝 구부린 엉덩이에 얼굴이 닿을 듯 붙어
쌩쌩 트랙을 달린다
앞서가는 ㄱ이 방귀라도 뀌었나?
두 번째 ㄱ 세 번째 ㄱ이
갑자기 홀라당 뒤집혀 ㄴ되고 ㄷ된다
힘내라! 힘내라!
경기장을 울리는 뜨거운 응원
다시
ㄱ ㄱ ㄱ ㄱ ㄱ
되어 끝까지 달린다.
-『ㅎ의 독립선언』 (2023 브로콜리숲)
여름비
문삼석
여름비가 내리네.
제비가 날개를 터네.
무당벌레는 나뭇잎 뒤로 숨고,
길 가던 달팽이는 즐겁게 배를 미네.
자락자락, 자락자락……
여름비는
자장가처럼 내리는데
신이 난 개구리가
목청을 높이네.
-『나는 솔잎』 (2022 아침마중)
팽나무를 만나거든
유이지
거기서 모퉁이를 지나 계수나무 두 그루를 또 지난 후에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서세요. 생강나무 두어 그루를 지나 골목 안쪽 옹
기종기 이어진 이웃들의 담 밑에 꽃다지, 노루귀, 꽃마리, 양지꽃
아롱다롱 피어 있거든 몸을 낮춰 인사하며 가세요. 가다 보면 유
난히 개울물 소리 다정하게 재잘대는 곳에 오리나무 세 그루가 보
일 거예요. 멈춰서서 개나리 울타리에 연노랑 보리수나무꽃 피어
있는 집, 거기가 우리 할아버지 주소예요.
-《동시 먹는 달팽이》 (2024 봄호)
어제 저녁때 온 아이
유희윤
새야 새야
왜 왔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잠자러 왔니?
도와주세요. 말도 못 하고 대문 앞에 쓰러진 아이,
파르르 떨며 슬픈 눈 둘 곳조차 모르던 조막만 한
아이야. 조금만 참아. 괜찮을 거야. 곧 나을 거야.
소독약과 연고가 상처 깊은 네 등 어루만져 주고.
기운 차려, 기운 좀 차려. 맑은 종지 물과 좁쌀과
삶은 계란 노른자가 밤새도록 네 곁에 있었잖니.
아침이야, 해 떴어, 눈 좀 떠 봐. 눈 좀 떠보라니까.
새야 새야
왜 왔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잠자러 왔니?
-《동시마중》 (2024 3·4월)
우리 집 울타리에 꽃 폈니?
이화주
전화 왔다.
“우리 집 울타리에 장미꽃 폈니?”
아들 집으로 살러 간
이웃에 살던 할머니한테서
뛰어갔다.
“전화 왔어.
할머니한테서 전화 왔어.”
‘오~’
‘우~’
‘에~’
오므리고 있던
하얀, 하얀 입술들, 장미꽃 입술들
동그랗게 벌리며
‘아~ 아~ 아아 아~~~’
향기로운 노랫소리
하얀, 하얀 노랫소리,
‘찰칵’
할머니한테 전송한다.
-《동시마중》 (2024 5·6월)
하나 빼기
전자윤
네 명에서
하나 빼기를 해서
엄마, 오빠, 나
셋이 남은 줄 알았는데
하나 빼기가 아니고
새 대장 뽑기였다
지금부터 대장은
엄마라고 그랬다
오빠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나만 몰랐다
하나 빼기도 아니고
새 대장 뽑기도 아니고
나만 쏙 빼고 정하기였는데
-『난 반항 하는 게 아니야』 (2024 천개의바람)
아무래도
하인혜
왜 이제껏
안 데려가시는지
하늘길 떠나기를
손꼽아
헤아리는
백 네 살 안나 할머니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깜빡 잊으신 것 같다고
물어봐서
꼭 알려 달라고 합니다
-《동시발전소》 (2024 봄호)
바다
한명순
눈도 파랗고
발도 파랗고
목소리마저도
온통 파래졌네
종일
파란 하늘만 바라보더니,
-《아동문학세상》 (2023 봄호)
억울한 접시
한상순
접시는 하얀 잇몸 속에 이빨을 감춰두었어
맛있는 음식이 제 입에 들어와도 좀처럼 이빨을 안 보였지
물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으르렁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어
식탁에서 물러나다 엉덩이끼리 부딪혀 웃음이 나올 때도 꾹 참았어
웃음이 빵 터져 들통날까봐 감춰둔 이빨 조심조심 입조심을 했지
그런데 어쩜 좋아
오랜만에 씽크대에서 만난 친구랑 서로 껴안고 얼굴 부디다
그만
덜컥, 이가 빠져버렸네
언젠가 한번 제대로 센 이빨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센 이빨은커녕
이 한 개 빠졌다고 이제 집에서까지 쫓겨나게 생겼네
-《내일을 여는 작가》 (2024 봄호)
깁스 푼 날
황남선
까만 아스팔트로 깁스한 지구의 등을
박박 벅벅 긁어 주고 싶다
-『밑줄 지우면 큰일 나』 (2023 브로콜리숲)
첫댓글 올려주어 잘 읽음. 그러나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