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 곽도경
누가 눈물 떨구어 흙 속에 묻었나
누가 그 슬픔 빠져나오지 못하게 시멘트를 덮었나
단단한 바닥 틈서리 밀어내며 올라온 눈물 그렁그렁한 그 아이
ㅡ시화집『오월의 바람』(두엄, 2020) ******************************************************************************************************************** 세상에 진달래꽃 밖에 없는 줄 알다가 등산을 시작하고부터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진 꽃이 제비꽃이었습니다. 제비꽃도 보라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북한산을 등산하다가 노랑꽃이 모다기모다기 노랑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반해서 사진을 찍기 사작했습니다. 노랑제비꽃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그저 노랑제비꽃도 있구나 싶었는데 흰꽃이 핀 제비꽃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비꽃이 무려 60여종이 넘고 지금도 계속해서 잡종이 생겨나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보라색 외 처음 본 노랑제비꽃을 비롯하여 호제비꽃, 흰제비꽃, 흰젖제비꽃, 흰털제비꽃, 잔털제비꽃, 왜제비꽃, 잎 모양이 고깔을 닮아 고깔제비꽃, 태백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지명 이름을 딴 태백제비꽃, 남산제비꽃, 뫼제비꽃, 민둥뫼제비꽃, 서울제비꽃, 졸방제비꽃, 털제비꽃, 자줏잎제비꽃, 엷은잎제비꽃, 콩제비꽃, 잎이 노루발풀처럼 예쁜 알록제비꽃, 금강제비꽃, 이파리가 단풍잎을 닮은 단풍제비꽃, 줄민둥뫼제비꽃, 북유럽이 원산지라는 삼색제비꽃(팬지) 미국 제비꽃이라는 종지나물 등...
만나지 못한 제비꽃도 많지만 이름을 열거한 제비꽃들 내가 사진을 찍어놓고도 솔직히 다시 만나면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수 없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등산을 하는 초봄 연둣빛 이파리들이 산야를 물들기 전 제비꽃을 만날 때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지나 갑니다. 그래서 제비꽃 시를 몇 편 쓰기도 했지만 좋은 시를 쓰지 못해 제비꽃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제비꽃 시는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흔드는 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기 곽도경 시인의 마음을 뒤흔드는 제비꽃 시 한 편을 봅니다. ‘어느 슬픔이 제비꽃을 낳았나’ 제목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올 봄에도 집 근처 콘크리트 바닥에서 보라색 꽃을 멋지게 피운 아이를 만나 즐거웠는데 이 시를 만나 다시 한 번 그 제비꽃 생각이 났습니다.
누가/눈물 떨구어/흙 속에 묻었나// 누가/그 슬픔/빠져나오지 못하게/시멘트를 덮었나
누가 눈물을 떨구어 흙 속에 그 슬픔 빠져나오지 못하게 시멘트로 덮어놓았을까요. 이런 시 한 편을 읽노라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백 번 천 번 생태가 어쩌고 자연이 어떻고 말하면 무엇하리오, 이 시 한 편이 다 말해주고 있는 것을...
-시하늘 내가 읽은 시에서 옮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