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02호
결혼과 이혼 혹은 사랑에 관한 포에트리 슬램
박제영
내가 오는 동안
너는 갔구나
네가 가는 동안
나는 왔구나
오는과 가는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동안
갔구나와 왔구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져
마침내 멀어졌구나
멀어진 것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동안을
누구는 밀물과 썰물이라 부르고
누구는 자전과 공전이라 부르네
허무하고
맹랑하고
맥락 없는
언어의 시소게임을
무게 중심이 사라진 문장을
당신이 시라고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나 잡아봐라
영구 없다
며
나는 게 눈 감추듯
사라질 테다.
- 『말하자면 텅 빈 우리, 텅 빈 우리라는 모순』(달아실, 2025)
***
오랜만에 자작시를 띄웁니다.
이번 주말에는 정선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정선아라리문학축전에서 자작시를 낭송해야 하거든요.
전통적인, 전형적인 시낭송보다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에 가깝게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생각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요.
2년 후 그러니까 2025년쯤에는 일곱 번째 시집을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집 제목을 일단 "말하자면 텅 빈 우리, 텅 빈 우리라는 모순"으로 정했습니다만,
이 또한 그때 가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덥지만, 가을색이 완연한 날들입니다.
말하자면 책을 읽기에 참 좋은 날들이란 얘기입니다.
일일일독(一日一讀)하시기 바랍니다.
사족. 제가 "시의 본질은 가벼움에 있다"고 얘기하면, 오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그분들에게는 개미는 자기보다 5천 배 무거운 것도 거뜬히 들어올린다는 얘기를 들려드립니다. 시는 가볍디가벼워서 우주를 너끈히 담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이성선, 「미시령 노을」 전문).
2023. 9. 1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25년이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