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이소호]
이사 날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는 밥솥을 두고 왔다
엄마 밥솥만 혼자 이사 가는 이유가 뭐예요?
손 없는 날은 이삿집센터 값이 배로 뛰어
우리 집은 어째서 미신과 행운, 요행이
우선일까
우리는 머리를 남쪽으로 머리를 두고
침대 발치에 거울을 두지 않는다
집 안에서 우산을 펴지 않고 금을
밟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와 텔레비전 사이에 놓인 아버지
다리를 넘었다
개념 없는 년이라고
어른은 넘나드는 게 아니라고
화를 냈다
텔레비전 속에는 죽음이 즐비하고
희망은 날씨뿐이다
아나운서는 코로나 이후
가정 폭력 지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잠시
지옥이 있었다
엄마는 도마 위에서 푸르게 멍든 생선의 눈알을
판다
까맣게 변해버린 생선의 대가리를 자르고
살만 발라 아버지 숟가락 위에 얹었다
엄마 엄마는 왜 드시지 않으세요?
아버지 먹고 그다음이 우리야
아버지는 살 한 조각을 한입에 쏙
넣었다
사이 우리는
살이 모두 사라진 생선의
뼈를 계속해서
헤집어 놓았다
생선은 뒤집는 게 아니야
있는 그 자리에서 먹어야지
복 나가
여기서 더 불행해져도 괜찮아?
나는 먼저 이사 가버린 밥솥을 생각했다
이 집을 가장 먼저 탈출한 밥솥을
- 홈 스위트 홈, 문학과지성사, 2023
* 손 없는 날이 빨간 글씨로 씌어 있는 달력이 있다.
그런 달력을 일부러 구해서 집에다 붙여 놓는 집.
귀신을 피해 다니니 돈도 많이 벌고 사고도 당하지 않지 않았을까.
어떤 달력은 '오늘도 무사히'라고 두손 모아 기도하는 천사같은 소녀가 그려져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한쪽집은 손없는 날을 피해 다니고
한쪽집은 매일 매일 두손 모아 무사하길 바라고.
아마 나한테는 귀신도 붙었다 마귀도 붙었다 했는데 내가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두손 모으지 않았는데 무사하지 않으면 어쩌지.
이렇게 육십년 넘게 살았는데 귀신이 뭔 이득이 있다고 들러붙을까.
두손 모아 기도 안해도, 되는 일은 되었고 안되는 일은 안되었는데
지금 다시 인생을 되돌릴 수도 없고.
신문에 있는 오늘의 운세는 木씨 성을 조심하라고 하니
그 성씨들을 만나지 말까?
만나도 사는데 지장 없겠지.
개념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