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랭킹.
글쓴이 김유석(roby10) 조회수 3469
작성일 2003-06-17 추천수 58 추천
반대수 2 반대
안녕하셨습니까. roby10 인사 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독분비관에 긴 글 좀 올리려고 합니다.
(벌써부터 지겨우시다구요?^^)
후추 가족 여러분들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얼마 전, 독일의 KICKER지에서 분데스리가 40주년을 기념해 독일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지요?(참고: 분데스리가는 1963년에 출발했습니다.)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부문 영예의 1위는 '전설의 골게터' 게르트 뮬러
가 차지했고, 우리의 차범근 감독이 자랑스럽게도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
다고 합니다. 후추인 여러분들께서도 이 소식은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저도 스포츠 신문을 통해서 1위가 게르트 뮬러, 9위가 차범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머지 순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2주 전 쯤 후추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서호정 아우님이
[역대 분데스리가 공격수] 순위를 저에게 메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순위를 정확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KICKER지에 실린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랭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Gerd Müller(FC Bayern. 60,3%)
2. Uwe Seeler(Hamburg SV. 15,9%)
3. Klaus Fischer (Schalke 04. 5,1%)
4. Ulf Kirsten (Leverkusen. 4,9%)
5. Stéphane Chapuisat(Dortmund. 3,3%)
6. Giovane Elber (FC Bayern. 2,7%)
7. Horst Hrubesch (Hamburg SV. 1,8%)
8. Klaus Allofs (Köln. 1,7%)
9. Bum-Kun Cha (Leverkusen.1,6%)
10. Karl Heinz Riedle (Dortmund.1,4%)
11. Dieter Müller(Köln. 1,3%)
위의 공격수들 중에서 디터 뮬러, 클라우스 피셔, 홀스트 후루베쉬,
클라우스 알로프스등은 차범근과 같은 세대에 볼을 찼던 선수들입니다.
특히 피셔와 후루베쉬는 그 시절에 서독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이자 세계
적 센타포오드로 평가 받았던 선수들입니다. (물론 디터 뮬러와 알로프스
역시도 서독 대표팀 스트라이커였습니다.)
이러한 공격수들 틈에 차범근 이름이 9위에 올라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
스럽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차범근은 당시 분데스리가를
대표했던 특급 공격수임이 분명 할 뿐더러 세계적 공격수였다는 것이 이번
설문 조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 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독일 축구 팬들이 아직도 차붐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놀라웁고 한편으로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순위가 발표된 후, 후추 독분비관에
이에 관한 내용의 글이 몇 개 정도는 올라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 올라 왔더군요.(혹시 올라 왔는데 제가 못 읽었는지요?)
그래서 오늘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KICKER지 설문 조사 순위에 오른
공격수들에 대해서 글을 한 번 올려볼까 합니다. 그들이 전성시절 어떤
플레이를 했으며 또한 어떤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대신, 순위에 올라있는 공격수들 전원에 대해서 설명 드릴 수는 없고
예전 선수들 즉, 우베 젤러, 게르트 뮬러, 클라우스 피셔, 후루베쉬,
디터 뮬러등에 대해서만 글을 올리겠습니다.(최근 선수들에 대해서는
후추인 여러분들께서 나중에라도 글을 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요즘 선수들에 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거든요.)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후추 가족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더 들어 주십시오.
다름이 아니옵고, 오늘 제가 다룰 공격수들은 전원 다 추억의 선수들입
니다. 이 선수들 중에는 제가 알고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는 선수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가지고 있는 축구 전문
서적을 많이 참조해서 글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여러분들께 미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예를들어, 우베 젤러 같은 경우는 50년 대 중반 ~ 70년 대 초까지 활약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제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선수입니다.
제가 우베 젤러의 명성만 알고 있을 뿐이지, 우베 젤러가 뛰는 모습을 테
레비 혹은 비디오등을 통해서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하일라이트
조차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우베 젤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약간 대머리' 였다는 것 이외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 전문 서적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어요.
제가 참조한 서적은 일본 축구 전문 서적인 [사커 대백과:선수,클럽 편]과
일본 축구 전문 잡지인 [STRIKER 100]이라는 것인데 이들 서적에 우베 젤러
를 비롯한 과거의 공격수들에 대해 꽤 자세하게 실려져 있습니다.
이 서적들에 실려져 있는 주요 내용과 더불어 제가 예전부터 주어들은
이야기(상식) 등을 짬뽕해서 글을 올릴테니 여러분들께서는 '그런가 보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제가 올리려고 하는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에 대한 내용은 몇주 전에 서호정 님이
서형욱 님께서 운영하고 계시는 사이트인 '풋볼 토크' 에 이미 올리신
적이 있습니다. 호정 님이 엑기스만을 뽑아서 아주 깔끔하게 올려 주셨더
라구요.(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호정 님이 '풋볼 토크' 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계시거든요.)
오늘 제가 올리는 글의 내용과 서호정 님이 이미 풋볼토크에 올리신 글의
내용이 경우에 따라서는 간혹 중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호정 님과 제가 얼마 전에 몇 차례 이메일로 이들 선수들에 대한 정
보를 교환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 점에 대해서도 '그런가 보구나' 하고
후추인 여러분들께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우베 젤러(Uwe seeler): 36년 생.
소속: 함부르크SV - 코크시티(아일랜드 팀인 것 같습니다.)
월드컵 출전: 58, 62, 66, 70년 대회.
매우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인 우베 젤러는 신장이 169cm밖에 안되는 단신
스트라이커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헤딩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더
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왼발, 오른 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공격수였다고
합니다.
66년 런던 월드컵 당시 서독 대표팀 주장이 우베 젤러였다고 하는데 이 때
베켄바우어가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온 거랍니다. 우베 젤러는 월드컵에
네 차례나 참가했으나 우승은 물론 득점왕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역대
세계적 명스트라이커를 논할 때 반드시 이름이 거론되는 선수라고 하네요.
우베 젤러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성실성, 책임감, 신뢰감이라고 하는데
역대 독일 스트라이커 중에 독일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가
바로 우베 젤러와 루디 푈러(현 독일 대표팀 감독)라고 합니다.
우베 젤러는 현역 시절 상대방 수비수로 부터 강력한(더러운) 파울을 당하
더라도 절대 흥분을 한다던가, 항의를 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걸로 유명했다고 합니다.(차범근과 일본의 나카다가 이와같은 타입이지요.)
서독 대표로서 A매치 72게임에 출전해서 43골을 기록한 걸로 나와 있더군요.
지금까지 전세계 축구 선수 중에 월드컵 4회 출전해서 매 대회마다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는 펠레와 우베젤러 단 두 사람 밖에 없답니다.
참고: 우베젤러의 아버지도 축구 선수 출신이라고 하는데 함부르크에서
맹활약 했었다고 합니다.
* 디터 뮬러(Dieter Müller): 54년 생.
소속: 오펜바하 키커스 - FC 쾰른- 슈투트가르트 - 보르도(프랑스) -
그라스호퍼(스위스)등. 이외에도 여러 팀을 거침.
월드컵 출전: 78년 대회.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해 드렸습니다만 디터 뮬러의 경우는 차범근과 같은
시대의 선수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이상하게도^&^) 제가 당시 디터
뮬러가 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스타일의 공격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유명한 선수라는 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
지요.)그렇기때문에 디터 뮬러에 대해서도 할 수 없이 제가 가지고 있는
서적을 참조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디터 뮬러는 장신을 이용한 헤딩이 주무기였고, 유연한 몸놀림을 이용한
페인팅이 수준급이었다고 하는데 그 페인팅에 이은 슛팅이 압권이었다고
합니다. FC쾰른 소속 당시 76~77, 77~78년 시즌 독일컵 2연패를 했고 2년
연속 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디터 뮬러는 77년, 대 브레멘전에서 혼자 6골을 터뜨린 적이 있는데 이 기
록은 36년간 깨어지질 않고 있다고 합니다. 분데스리가 통산 535게임에
출전해 177골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는 역대 7위에 해당되는 기록이라고
하네요. 대표팀에서는 A매치 12게임에 출전에 9골을 기록했답니다.
솔직히 저는 디터 뮬러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스트라이커인 줄은 이번에
랭킹 보고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져 명성만 조금 있는' 공격수인
줄 알았거든요. 디터 뮬러는 81년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한 후부터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후 국내외 여러 팀을 전전하며 재기를 노렸
으나 결국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89년에 완전히 축구화를 벗었다고 합니다.
* 클라우스 피셔(Klaus Fischer): 49년 생
소속: 1860 뮌헨 - 샬케04 - FC쾰른 - 보쿰.(특히 샬케04에서는 70년 ~ 81년
까지 활약.)
월드컵 출전: 78, 82년 대회.
1970년 대 중반 ~ 80년 대 초까지 MBC에서 방송해 주던 분데스리가를
거의 빠짐없이 봤다고 제가 여러차례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렸었지요?
그 당시에 제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 공격수 중의 한 명이 바로 샬케04의
클라우스 피셔입니다. 지금도 피셔의 플레이하는 모습이 아주 또렷
하거든요.^^
당시 피셔는 '제 2의 게르트 뮬러' 로 평가 받고 있던 선수였습니다.
피셔는 샬케04에서는 백넘버가 9번이었고 대표팀에서는 8번을 달고
뛰었었어요.(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8번을 달고 활약했지요.)
검은 색 머리의 피셔는 큰 체격의 스트라이커가 아닙니다. 제가 피셔
의 신장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176cm 전후인 걸로 기억 하거든요.
피셔는 파괴력있는 공격수는 아니지만 페널티에이리어 안에서 매우 강했
습니다. 몸싸움도 잘 했고 볼에 대한 집착력이 굉장했어요. 키핑력이
아주 좋았거든요.
후추 가족 여러분, 칠레가 자랑하는 세계적 스트라이커인 살라스 아시지요?
피셔가 바로 살라스와 아주 비슷한 타입의 스트라이커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피셔보다 살레스의 몸이 더 두텁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피셔는 ‘오바 헤드킥’ 으로 유명했던 선수예요.
피셔가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오바 헤드킥 잘 하는 걸로 소문이 나 있었
거든요. 특히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전(서독VS프랑스) 에서 피셔가
터뜨린 천금과 같은 오바 헤드킥 골은 전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피셔가 터뜨린 그 오바 헤드킥 골은 다름아닌 연장전 후반에 터진 동점골
이었거든요.
당시 상황을 조금 설명 드리자면,
양팀은 전,후반을 1대1 무승부로 마치고 연장전에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서독이 그만 연장전 전반에 프랑스에게 연속 두 골을 허용하며
스코어가 3 대 1로 벌어지고 맙니다. 거의 패색이 짙었지요.
그러나 서독은 포기하지 않더군요. 연장 전반 종료를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리트바르스키의 짧은 센터링을 받은 루메니게가 골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을 당깁니다.
그리고 난 뒤 서독은 연장전 후반에 들어가 파상 공세를 펼쳐 나가는데
연장 후반 초에 또 다시 리트바르스키가 왼 쪽에서 우중간 쪽으로 깊이
센터링을 올리자 이 볼을 뛰어들던 '헤딩 교과서' 후루베쉬가 한 가운데
로 뛰어드는 피셔의 뒷 쪽으로 떨어 뜨려줍니다. 이 볼을 피셔가 몸을
정지시키며 그대로 오바헤드킥 골로 연결 시킨 것입니다.
김영걸 님을 비롯한 후추 올드 팬 여러분들께서는 이 게임을 기억하실텐데
정말 죽여주는 게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게임은 역대 월드컵 최고의 빅게
임 중 하나일 겁니다. 결국 양팀은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서독이 프랑스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지요.
(당시 프랑스 미드필더진은 플라티니, 티가나, 쟝기니, 질레스 이렇게
4인방이었는데 이 4인방은 당시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고 있던 브라질
미드필더진(지코, 스크라테스, 세레조, 팔카오)과 쌍벽을 이룰만큼 화려
했습니다.)
피셔는 서독 대표로서 A매치 45게임에 출전해서 32골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1게임에 평균 0.7골을 터뜨린 거라고 합니다. 이 숫치는 게르트
뮬러의 평균 1.1골에 이은 역대 2위라고 하더군요. 또한 피셔는 분데스
리가 통산 535게임에 출전해 268골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기록 역시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참고: 피셔에 대한 득점 기록등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서적을 참조한 것인데
피셔가 현역 시절 이렇기까지 많은 득점을 올렸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
해서 새삼 알게 됐습니다. 피셔의 플레이 스타일은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린 것이구요.
* 홀스트 후루베쉬(Horst Hrubesch): 51년 생.
소속: RW 엣센 - 함부르크 SV - 도르트문트
월드컵 출전: 82년 대회.
홀스트 후루베쉬('루베쉬'라고도 합니다.)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독분
비관에서 몇 차례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후루베쉬는 '헤딩 괴물'로 불리울 정도로 완벽한 헤딩 능력을 구사했던
장신 센타포오드인데 함부르크SV 전성시절(70년 대 말 ~ 80년 대초)의
주역이었습니다. '페널티 킥도 헤딩으로 넣을 수 있다!' 라는 말이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후루베쉬의 공중전 능력은 탁월했거
든요.(얼굴 생김새는 완전히 거인 타입에요.)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에서 서독과 프랑스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3 대 3으로 비기고 난 뒤 결국 승부차기로 승패가 갈렸다고 방금 위
에서 말씀을 드렸었지요? 이 승부차기에서 서독이 프랑스를 5 대 4로 이겼
는데 이 때 서독의 마지막 킥커가 후루베쉬였어요. (이 이야기도 제가 예전
에 해 드렸지요.)
저는 지금도 이 승부차기 장면이 기억에 생생한데 당시 후루베쉬가 승부차기
킥커로 나올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야무지게 볼을 차는 선수가 아니
라서 승부차기 킥커로 나올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거든요. 비록 제가
그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후루베쉬가 깔끔하게 성공을 시키더만요. 골을
성공 시키고 난 뒤 후루베쉬는 두 팔을 들고 펄펄 뛰었습니다.
(당시 서독은 칼츠 - 브라이트너 - 스텔리게 - 리트바르스키 - 루메니게
- 후루베쉬 순으로 승부차기에 나섰습니다. 스위퍼인 스텔리게가 실축을
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전원 성공시켰습니다.)
그 시절 국내 축구팬들은 거의다 서독을 응원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차범근이 뛰고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지요. 낯이 익은 선수들이
워낙 많았거든요.
후루베쉬는 전성 시절 백넘버는 9번이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함부르
크SV에서도요. 분데스리가 통산 224게임에 출전해 136골을 터뜨렸다고
하더군요.
후루베쉬는 지난 유로2000 대회 때 독일 대표팀 코치로 참가를 했더라구요.
테레비 화면을 보고 후루베쉬란 걸 금방 알 수가 있었습니다.
리벡 감독 옆에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앉아 있길래 누군가 했더니
후루베쉬더라구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후루베쉬 얼굴이 여러차례 화면에
잡혔는데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중계 하면서 후루베쉬에 대한 얘기를 해주지
않더군요. 참~~ 섭섭하더라구요.
참고: 79년에 함부르크SV가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대표 1진인
화랑팀과 두 차례인가 평가전을 가졌었는데 그 때 후루베쉬도 내한했었어요.
만프레도 칼츠와 마가트등 서독 대표팀 주전 선수들도 함께 왔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당시 케빈 키건도 왔었다고들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그 때 키건은 안왔습니다. 이 부문에 대해서는 저를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KICKER지 설문 조사 결과에서 랭킹 7위에 오른 클라우스 알로프스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서독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였습니다.
당시 서독 공격진은 칼 하인츠 루메니게, 알로프스, 헤네스, 루디 푈러
이렇게 4명이었는데 루메니게가 부상이 심해서 전 게임에 나오질 못했습니다.
나와서도 제대로 뛰질 못했어요. 그래서 나머지 셋이 돌아가면서 뛰었거든요.
(헤네스라는 선수는 후루베쉬와 더불어 헤딩을 전문으로 하는 당시 바이에른
뮌헨 소속의 장신 스트라이커였는데 그의 친형이 바로 현 바이에른 뮌헨
제네럴 매니져인 '우리 헤네스' 입니다. 우리 헤네스는 74년 뮌헨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지요. 우리 헤네스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현역에서
조금 일찍 은퇴를 했는데 제네럴 매니져로서 크게 성공을 이룬 인물입니다.)
후추인 여러분, 제가 알로프스를 알고는 있는데 볼 차는 걸 많이 보질
못해서 어떤 타입인지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제가 오늘 아주 여러분들께
큰 죄를 짓는 기분입니다.^^)
더구나 제가 가지고 있는 서적에도 알로프스에 대해서는 나와 있질 않아서
여러분들께 말씀을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영예의 1위를 차지한 게르트 뮬러에 대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게르트 뮬러(Gerd Müller): 45년 생.
소속: TSV넬트리겐 - 바이에른 뮌헨 - 이 후(79년 경), 미국 프로리그 진출.
월드컵 출전: 70년, 74년 대회.
- 우승 경력 -
* 월드컵 우승
* 분데스리가 리그 우승, 독일컵 우승, 챔피언컵 우승, 컵 위너스 컵 우승
* 세계 클럽 선수권 우승(현 도요타 컵. 당시에는 인터컨티넨탈 컵이라고
했습니다.)
(이 우승은 모두 바이에른 뮌헨 소속 당시에 이룬 것이랍니다.)
- 개인 기록 -
* 월드컵 통산 14골.(70년 대회 10득점, 74년 대회에서 4득점)
* 분데스리가 통산 365골 기록. 역대 1위.
(바이에른 뮌헨 소속(64년~79년)으로 427 게임에 출전했다고 합니다.)
특히 71~72시즌에는 무려 40골 기록.
* 대표팀 A매치: 62게임에 출전해 68골 기록.
- 개인 수상 경력 -
* 독일 연간 최우수 선수상 2회
* 리그 득점왕 7회
* 유럽 최우수 선수상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게르트 뮬러는 오로지 페널티 에이러어
안에서 주로 득점을 올리는 스트라이커이지요. 역대 세계적 스트라이커 중,
페널티에이리어 안에서 게르트 뮬러 만큼 강한 선수는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없겠지요. 게르트 뮬러에게는 매 게임 2, 3명의 상대 수비수가
끈질기게 따라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늘 한 순간에 뮬러를 놓쳤다고 합니다.
일본의 오쿠데라 말을 들어보면 특히 게르트 뮬러가 수비수를 등진 상태에
서 때리는 터닝슛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수비수들이 뻔히
알면서 당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볼 키핑력이 대단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게르트 뮬러는 신장이 크다거나 혹은 파괴력이 있는 스트라이
커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스피드가 있느냐? 그것도 전혀 아니거든요.
그러나 득점에 관해서는 기록으로도 나타나 있듯이 타의 주종을
불허 했음이 분명합니다. 단신인 뮬러가 헤딩 슛을 터뜨릴 때 보면 기가
막혔다고 하는데 헤딩 슛을 하려고 점프를 뛰었을 때는 마치 키가 쑥
늘어나는 느낌을 주었다고 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스트라이커들은 본인이 득점을 올리지 못했을 경우 군소리
들을 많이 하지요? '나한테 볼이 오질 않았다, 패스가 좋질 않았다. 혹은
감독의 전술이 잘못 됐다....' 이렇게들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틀린 얘긴
아니지요.)
이러하기 때문에 웬만한 팀에는 스트라이커들에게 좋은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메이커 내지는 훌륭한 미드필더들을 꼭 한,두명 두지 않습니까.(비어
호프의 경우 토마스 헤슬러 센타링이 제일 받기가 쉬웠다고 하더군요.
헤슬러의 패스와 센터링은 헤딩하기 참 편했다고 합니다. )
그런데 게르트 뮬러는 전성시절 이와같은 '유치한 핑계(?)' 를 대질 않았
다고 합니다. 뮬러는 “좋은 패스든 나쁜 패스든 무조건 페널티 에이리어
안으로만 넣어달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처리 할테니까!!“ 이러한
자세와 생각을 갖고 늘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게르트 뮬러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게르트 뮬러는 79년 시즌 부터인가 미국 프로 리그로 진출을 했는데 미국
에서는 성공을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상당한 외로움을 느꼈었다고 하더
라구요. 그 후에 뮬러가 알콜 중독과 대인 기피증이 걸린 것입니다.
이 병으로 인해 오랜 세월 고생을 했었지요. 제가 이에 관한 이야기도
예전에 해 드린 것 같은데.....
독일의 젊은 엄마들은 애기들을 잠재울 때 게르트 뮬러에 대한 이야기를
애기들에게 자장가처럼 조용히 들려준답니다.
(옛날에~ 옛날에~~, 게르트 뮬러라는
털복숭이 축구 선수가 있었단다~~~잠이 오니? 노이빌레야~~)
뭐 이런 식 아니겠습니까! ^&^
참고: 70년 대 ~ 80년 대까지 서독 분데스리가에 '뮬러'라는 성을 가진
선수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게르트 뮬러를 필두로 위에 거론 된
디터 뮬러, 한스 뮬러, 드레 뮬러, 부르그스 뮬러등 있었어요.
그래도 '뮬러'하면 뭐니뭐니해도 게르트 뮬러였지요.
KICKER지 설문 조사의 순위에 올라있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하겠습
니다. 5위에 랭크되어 있는 Stéphane Chapuisat(스태판 챠우페스트) 라는
선수가 과거의 선수였는지 아니면 최근 선수인지를 제가 전혀 몰랐었는데
알고 보니 이 선수가 바로 차범근이 가지고 있던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최다 골(98골)기록을 깬 선수라고 합니다. 일명 '사퓌자' 라고 불리운
다지요? 스위스 선수라고 하더군요. 사퓌자는 도르트문트에서 백넘버 9번을
달고 활약했었답니다. 이것은 서호정 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호정 님도
풋볼토크의 천성면 님께 들었다고 하더군요.)
- KICKER지 설문 조사 순위(1위 ~ 11위)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후추인 여러
분들께서 알아 두셔도 좋을만한 독일의 유명 공격수 두 명 정도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이들 선수들에 대해서도 역시 제가 가지고 있는 서적을
참고 해서 말씀 드릴께요.)
* 헬무트 란 (Helmut Rahn) : 29년 생
소속: 알테네센 - 올데09 - 쾰른등에서 뛰었고, 네덜란드 리그에서도 잠시
활약했었다고 합니다.
월드컵 출전: 54,58년 대회에 참가한 것 같습니다.
란은 전형적인 측면 공격수였답니다. 당당한 체격에 신장도 무척 컸다고
하거든요. 파워풀한 돌파에 이은 오른 발 슛팅이 주무기였다고 합니다.
란은 현역 시절 별명이 “보스”였을 정도로 리더쉽이 대단히 뛰어났다고
하더군요.
A매치 40게임에 출전해서 21골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유럽 축구를 공부하고 계시는 신세대 후추인 여러분들은 무슨 일이 있더
라도 헬무트 란이라는 선수를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헬무트 란은 역대
세계적 공격수 특히 독일 역대 스트라이커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 되거든요. 독일의 명스트라이커 1호가 헬무트 란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란이 50년 대 ~ 60년 대에 활약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저 역시
그져 란의 명성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 죠셉(유프) 하인케스(Josef Heynckes) : 45년 생.
소속: 보르시아MG - 하노바96
(하노바96에서는 약 3년 정도 뛰고 나머지는 전부 보르시아MG에서 활약
했다고 합니다. 하노바96이란 팀이 독일 클럽 팀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
클럽 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월드컵 출전: 74년 대회.
하인케스는 70년 대를 대표하는 서독의 스트라이커이자, 보르시아MG의 황금
시대를 이끈 주역이었다고 합니다. 천재적 미드필드인 쿤트네쳐의 절묘한
패스를 받아 골을 터뜨리는 게 당시 하인케스의 일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쿤트네쳐 기억 나시지요?^^)
역대 서독 대표팀 사상 '최강의 전력' 은 1972년 유럽컵 당시의 팀이라고
하는데 당시 서독의 주득점원이 바로 하인케스였다고 합니다.
하인케스는 분데스리가 통산 369게임에 출전해 220골을 기록. 이 부문
역대 3위라고 하거든요. 하인케스는 현역시절 분데스리가에서 언제나
게르트 뮬러와 득점왕 경쟁을 벌였을 정도로 탁월한 득점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73 -74시즌에는 30골로 게르트 뮬러와 득점왕을 공동으로 수상했고
74 -75시즌에는 단독으로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아울러 리그 우승 그리고
UEFA컵 우승까지 차지했다고 하더라구요.
하인케스는 게르트 뮬러처럼 페널티에이리어 안에서 주로 골을 터뜨리는
타입의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빠른 발을 이용해 측면을 부술 수 있는 능력
을 갖춘 공격수였다고 합니다.
19살 때 명장인 헤네스 바이스 바일러를 만나면서 그와 함께 무명팀이었던
보르시아MG를 일약 유럽의 명문팀으로 성장시켰다고 하더군요.
하인케스는 바이스 바일러 감독의 코칭 철학을 배우며 성장했는데 은퇴 후
베르티 포그츠와 함께 보르시아MG를 이끌었다고 합니다.(바이스 바일러
감독도 기억 나시지요?)
하인케스는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에 리그 2연패를 이룩했고, 스페인에
서도 세 팀 정도를 지도했다고 합니다. 특히 2000년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에는 챔피언스컵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지요.
참고: 제가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지금껏 하인케스
라는 인물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하인
케스라는 선수를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진짜루요.
지금까지 제가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70년 대 ~ 80년 대) 독일의 유명
선수들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조금 씩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영~~ 아니더군요. 제가 하인케스라는 수퍼스타도 모르면서 그동안
후추인 여러분들 앞에서 간간히 주둥이를 나불대 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제
자신이 너무도 뻔뻔스럽고, 한심스럽네요.(물론 쪽도 팔립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참, 김영주 님 컬럼[제목: 냄비 여론의 희생양, 에리히 리벡]에 하인케스
이름이 나와있더군요.)
역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들에 대한 글은 대략 이쯤해서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이번 KICKER지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1위~11위)에는 칼 하인츠
루메니게,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 비어호프 등의 이름이 빠져 있는데
아마도 이번 설문 조사는 분데스리가에서 오랜 세월동안 뛴 공격수들만을
대상으로 해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 선수
들이 빠진 것 같거든요.
만일 루메니게, 푈러, 클린스만, 비어호프등을 다 포함해서 설문조사를
했다면 순위의 변동은 약간 있겠지요. 그렇게 됐을 때 차범근은 과연
몇 위에 해당 될까?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는 그래도 15위권 안에는 너끈히 들어갈 것 같습니다.
사실 15위권 정도도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30위 권 안에만 들어가도
영광이라고 저는 봅니다.)
독일은 유독 세계적 스트라이커를 많이 배출한 나라이지요.
계보를 따져 보자면 헬무트 란 ~ 비어호프까지라고 유럽 전문가
들은 얘길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독일은 비어호프 이후에는 세계 톱 클라스의
스트라이커를 배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추 가족 여러분!
제가 오랜만에 큰 맘 먹고 긴 글 올렸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후추에 처음 들어오신 분들께서는 매우 지루하셨을텐데요....^^
하지만 조금 있으시면 적응이 되실 겁니다.^&^)
역대 분데스리가 공격수들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들께 설명 드릴 수
있는 건 대략 여기까지입니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요?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제 글에서 틀린 부분 내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후추인 여러분들께서 많이 고쳐 주시고, 보충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후추인 여러분들 중에는 분데스리가에 정통한 분들도 많이
계시고 또한 귀중한 자료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올 걸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울러 최근 선수들(90년 대에 활약했던 리들레, 키리스텐, 그리고 최근의
스테판 챠우페스트, 에우베르등....)에 대해서도 꼭좀 자세하게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P.S: 실은 루메니게, 루디 푈러, 클린스만, 비어호프등에 대해서도
글을 쓸까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이들 선수들에 대해서까지 글을 쓰게
되면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될 경우 글 쓰는 저도
힘이 들고 후추인 여러분들도 읽기 힘드실 것 같아서 그냥 참았습니다.
이들 4명 선수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 기회에 글을 올려 볼께요.
언제 쯤 올릴꺼냐구요?
음~~, 추석을 즈음해서 특집으로 한 번 올려 볼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필이 꽂히면 8.15 기념으로 올릴 수도 있구요.
행여 필이 안꽂히면 크리스마스 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이봉석 님!
후지다 카즈유키가 효돌한테 목이 졸려 KO패 했다면서요?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천하의 맷집' 후지다가 무너지다니.....
히링 두들겨 팰 때 효돌이 무서운 놈인 걸 알았습니다.
효돌한테는 힉슨도 2분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노게이라도 얻어 터졌는데 힉슨이라고 견디겠습니까.
역시 매에는 장사가 없고, 싸움엔 왕도가 없나 봅니다.
첫댓글 스크롤;;;압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