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03호]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
미스터 션샤인의 말투로 말하겠소
햇살 좋은 아침이면 앞마당으로 나가 빨래를 너오
그곳에 돌배나무, 목련, 배롱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생강나무, 이팝나무, 자작나무들을 심었소
자작나무에는 따로 이름을 붙여주었소
가난하고 아름다운 사냥꾼의 딸, 꽃 피는 봄이 오면, 자작나무 우체국, 레아 세이두, 장만옥, 톰 웨이츠, 김광석, 빅토르 최, 칼 마르크스, 체 게바라, 아무르, 아르디 백작, 상처 입은 용, 짐 자무시, 짐 모리슨, 닉 케이브, 탕웨이, 아르튀르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들, 이들은 가난하고 아름다운 나의 열혈동지들이오
돌배나무는 대낮에도 주먹만 한 별들을 허공에 띄우오
그 여름 폭풍은 내 마음속에 있었소
폭풍우 치는 낮과 밤을 동무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견디오
폭풍우 치는 한 계절이 지나면 장난처럼 고요하고 맑은 저녁이 내 작은 창가로 오오
그리고 기적처럼, 등잔불 피어오르는 고요한 밤의 생이 시작되오
나는 늘 등외에 있는 삶이었고 세상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삶을 꿈꾸었소
심지어 때때로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때도 많았소
오랑캐의 말을 듣는 누군가의 귀처럼 푸른 이파리들 돋아나는 아침이오
침묵의 함성이 하나의 행성이 되는 시간이 오고 있소
지나가는 바람이 배롱낭구의 매끄럽고 단단한 살결에 입맞추는 아침이오
미스터 션샤인이 빨래를 널고 있는 무한의 아침이오
-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달아실, 2023)
***
주말에는 <정선아라리 문학축전-문학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박정대 시인이 사회를 보았는데, 뜻밖에, 사회를 무척 유연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보는 모습
보기에 좋았습니다.
초청받은 시인들의 시와 낭송도 보기에 듣기에 좋았습니다.
내년에 있을 문학콘서트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다음 달에 박정대 시인의 신작 시집이 달아실시선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
박정대의 시는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드라마로
때로는 그림으로
그때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오지만
박정대의 시는 마침내
시종 박정대라는 시를 펼쳐보입니다.
이번 시집은 박정대라는 시의 진수를 보여줄 겁니다.
시집을 읽는 당신도 어느새 오랑캐가 되어
박정대라는 시에 흠뻑 취해 있을 겁니다.
다음 달에 만나 뵙겠습니다.
2023. 9. 18.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저도 박정대시인님 팬
그 진수를 빨리 느껴보고 싶네요
정선의 숲속책방 강기희님의 부재도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