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9월도 손톱에 봉선화 물 못들이고 그냥 보내 !!
필자 어린 시절(7~15세)에는 사내아이들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드렸다.
주로 오후에 봉숭아 꽃잎에 소금을 조금 넣고 몽돌로 콩콩 찧어 감나무 잎에 싸서 새끼손가락과 약지(藥指)에 감아 쌌다. 때로는 통증을 참고 하룻밤을 보낸다.
아침에 손가락을 풀면 손톱과 살에 봉숭아 꽃물이 들여 있다 며칠 지나면 손가락 살에 봉숭아물은 빠지고 손톱에만 아주 곱고 소박한 봉숭아물이 들여 있다. 어림잡아 한두 달은 봉숭아물들인 손톱을 달고 다닌다. 추억해 보면 아름답던 시절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손톱 화장용 매니큐어(manicure)가 없었다(있었겠지만 볼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
필자동네에 “남산여관”이라는 요정(料亭)이 있었다. 이곳 기생들도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던 기억이 난다.
이곳 삼양동에 이사온 지 8년 해마다 7,8월 되면 정원에 봉숭아꽃을 볼 때마다 “손톱에 물들여 볼까” 하다가 그냥 보냈다. 올해도~~~~ 문득 “봉선화 연정”을 부르고 멀리 간 가수가 생각난다.
사학자(史學者)이며 언론인(言論人)이고 문학평론가인 문일평(文一平)이 쓴 꽃에 관한 책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봉숭아에 대한 아래의 글이 있다.
【홍도애(洪陶厓)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4월조(四月條)에 女娘及小童 皆以鳳仙花 調白礬 染指甲이라 적혀있다. 위의 한자(漢字)내용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모두 봉선화와 백반을 섞어 손톱을 물들인다.”뜻이다.】
봉선화는 여름이면 정원이나 마당, 길가에서 꽃이 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봉선화에 관한 자료를 보면 봉선화의 학명 “Impatiens(참을성이 없는 꽃)”라 설명되어 있다.
영어식 설명에는 “Touch me not(손대지 마세요)”라고 하였다.
민간에서 봉선화는 여러 약재로 요긴하게 쓰였다. 봉선화를 마당이나 장독대에 심는 것은 뱀을 쫓기 위해서다 뱀에 물렸을 때도 봉선화로 치료했다는 속설이 있다. 땀띠, 사마귀등 피부 질환에 사용하는 약재 꽃으로 가날픈 꽃잎에 비하여 독한 식물이다.
봉선화 꽃과 잎을 찧어 손톱에 붙이면 붉은색이 물든다.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이는 것은 보기 좋은 뜻도 있지만 아이들에게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젊은 여인들은 첫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다. 노인들은 저승길을 밝히기 위해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였다. 필자가 8년 동안 “봉숭아물들이기”를 베르기만하고 실천안한 것은 아직은 죽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봉선화 꽃물을 손톱에 물들인 역사적 배경은 오래 되었다. 고려 25대 충렬왕(忠烈王)과 몽골제국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의 설화(說話)가 전한다.
충선왕이 몽골에서 생활하던 중 가야금을 타고 있는 소녀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에 궁궐 궁녀를 조사하였더니 고려에서 온 한 소녀가 손가락을 모두 싸매고 있었다. 바로 봉선화 꽃물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문헌에서 봉선화에 대한 기록은 1241년 고려 후기의 대 문호 이규보(李奎報)가 펴낸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봉상화(鳳翔花)”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 기록에는 7,8월이면 오색으로 꽃이 피어 비바람이 불어도 열매가 자라 씨가 터져나는 꽃을 ‘봉상화’(鳳翔花)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봉상화(鳳翔花)”는 봉황(鳳凰)이 나는 모습을 가진 꽃을 형상화한 명칭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조선조 전기의 문신 서거정(徐居正)의 “봉상화’(鳳翔花)”라는 한시(漢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래의 한시(漢詩)다 봉상화(鳳翔花) -서거정(徐居正) 花開無數映雕蘭-많은 꽃 피어 난간을 비추니 五色分明翥鳳鸞-오색 분명하게 나는 봉황(鳳凰)과 금조 帶露秋香尤可愛-이슬 두른 가을 향기 더욱 사랑스러워 折來閑挿膽甁看-꺾어와 한가히 꽃병에서 바라보네
이렇듯 “봉상화(鳳翔花)”로 불러온 명칭이 “봉선화’(鳳仙花)”로 바뀌게 된 이유와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봉선화의 꽃물을 손톱에 들이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문헌에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황진이의 연인으로 알려진 소세양(蘇世讓)이 펴낸 양곡집(陽谷集)에 전해지는 시(詩) 봉선화(鳳仙花)이다. 아래의 시다
봉선(鳳仙) 夭嬌柔枝帶雨斜-가냘프고 어여쁜 가지 비 맞아 기울더니 薰風開遍女仙家-훈풍에 미인의 집 봉선화가 활짝 피었네 纖纖指甲須紅染-가늘은 손가락 여린 손톱에 붉은 물 들이려 共把金盆夜搗花-고운 질그릇에 밤새 꽃을 찧고 있구나
이와 같은 소세양(蘇世讓)의 시에서 볼 수 수 있듯이 당시 손톱에 물을 들이기 위해 봉선화 꽃잎을 따서 찧고 이를 손가락에 싸매어 밤새운 사실은 우리의 소박한 생활 속에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조선 중기의 문신 신광한(申光漢)의 시 “봉선화자해(鳳仙花自解)” ▷조선 중기의 문인이며 학자인 권호문(權好文) 의 시 “우중상봉선화(雨中賞鳳仙花)”
▷김도조(金度祖)의 시 봉선화(鳳仙花) ▷조선조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의 “염조(艶調)”라는 시에 봉선화 꽃과 손톱에 꽃물을 들이는 감성과 전통을 노래한 시들은 수없이 많다.
이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역사속 조선 중기의 보석(寶石)같은 천재적인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여자가 무슨 시집(詩集)을 내느냐?” 조선에서는 시집을 못내고 중국과 일본에서 시집이 출판되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 “난설헌집”에 실린 “손가락에 봉선화 물을 들이며”라는 칠언시가 있다.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花歌)”의 초반 구절을 보면 봉선화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을 들이던 우리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시(詩)에 담고 있다.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花歌) 손가락에 봉선화 물을 들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 金盆夕露凝紅房-금분에 어린 저녁 이슬 규방에 서리니 佳人十指纖纖長-미인의 열 손가락 어여쁘고도 길구나. 竹碾搗出捲菘葉-대나무 절구에 찧어 배추 잎으로 말아 燈前勤護雙鳴璫-등불 앞에서 귀고리 올리며 동여매었네. 粧樓曉起簾初捲-단장한 누각서 새벽에 일어나 주렴을 거두니 喜看火星拋鏡面-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 拾草疑飛紅蛺蝶-풀잎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가 나는 듯하고 彈箏驚落桃花片-아쟁을 탈 때는 복사꽃잎이 떨어진 듯 徐匀粉頰整羅鬟-볼에 분 바르고 비단머리 단장하니 湘竹臨江淚血斑-소상강 대나무에 붉은 눈물 아롱진 듯 時把彩毫描却月-이따금 고운 붓을 쥐고 반달눈썹을 그리면 只疑紅雨過春山-붉은 비가 봄 산을 뿌리고 가는 듯하구나.
우리의 옛 시골에서 한여름 장독대나 울타리 아래 피어나는 봉선화(鳳仙花)는 바로 우리 민족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움 그 자체다.
올해도 8,9월을 그냥 보낸다 내년 이맘때는 손가락이 더 쭈글쭈글할텐데---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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