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을 합니다
하늘엔 노란 크루아상이 걸려 있어요
초승달이라는 이름의 빵을 좋아했던 한 사람
문득 인간은 포유류
따뜻하게 데운 흰 우유와 설탕 알갱이
울고 싶지만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고요
나는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다
마중 나오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가끔은 산책길에 빨래를 하기도 하지요
코인을 넣으면 싱싱 돌아가는 빨래들
아무리 노크를 해도 이제는 열리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안다는 건 어른의 일입니까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날의 소풍
우리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신나게 돌아가던 자전거 바퀴
옷에는 주인의 정령이 스민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즐겨 쓰던 수건이 빙빙 돌아가고 있네요
초록 수건 위로 토끼 한 마리 뛰어놀고 있습니다
오른쪽 귀는 무언가 쫑긋거리는 중이고요
왼쪽 귀는 무심히 접혀 있습니다
저만치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 눈에만 보이는 검은 얼룩, 얼룩들
토끼가 해맑게 웃으면 웃고
찡그리면 찡그리는 동안
토끼도 나도 점점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가네요
애써 기억을 표백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이목구비는 최선을 다해 지워지는 중입니다
띵, 종료음이 울리자
봄날의 자전거 페달도 함께 멈춥니다
안녕
그림자 하나
새벽을 향해 스며들며
[무해한 복숭아],아침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