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라는 말은 그녀가 가장 즐겨 쓰는 말입니다
그 말을 나는
아니야,라고 알아듣습니다
그녀가 잘 있어요 그녀는 잘 자고 잘 먹고 그녀는 잘 가고 있어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차 말합니다
잘 있어야 한다고 언니는 잘 자고 잘 먹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하지만
잘 가라는 말은 해주지 않습니다
오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갈까? 하고 말하면 글쎄,라 말이 돌아오지요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레고 블록의 꽃다발을
오므려놓고 어제를
헤벌쭉 펼쳐놓고 오늘을
만들며 지냅니다
우리는 늘 차 안에서 만납니다
잠깐만 보자는 의미에서
점심을 먹자고 만나도 찬 안에서
김밥 두 줄을 함께 먹습니다
어떤 날은 차 안에 밤새 있었지요
그녀는 아파트 정원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를 보고 있었고
나는 투명한 새끼 거미가 눈앞에 매달려 잠든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관리 사무소 경비원이 손전등을 비추며 차 속을 들여다보다가 갔고
그 밤은 그녀가
글쎄,
라는 말을 스무 번 넘게 쓴 밤이었습니다
보고 있던 것들을 보는 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퍼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버릇을
나는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날 새벽 나의 얼굴에서
황금빛 실금이 가고 있는 모습을
그녀는 그림으로 그려
내게 보내주었습니다
[촉진한느 밤],문학과지성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