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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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는 이미 8천년전에도 옥(玉)으로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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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가덕도 8000년전 유적지에서 나온 6점의 옥제품
국제신문
2011-05-31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_print.asp?code=&key=20110601.22003221925
약 8천년 전 무렵 공동묘지가 부산 가덕도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이곳 출토 옥제품.
2011.02.17.
연합뉴스
https://news.v.daum.net/v/2011021710064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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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8천년전에도 옥(玉)으로 많은 물건을 만들어왔으며
유리의 경우
2천5백년 전에 이미 중국보다 더 수준 높은 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드러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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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97년 4월 7일 (1면)
경향신문 1997년 4월 7일 (18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40700329101012&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04-07&officeId=00032&pageNo=1&printNo=16071&publishType=00010
유리의 원료가 한국산이며
당시 한국의 유리는 중국과 달리 첨가물에 [바륨]을 쓰지 않았고
발달된 선진기술인 [산화납]을 썼다 하네요.
동아일보 1997년 4월 12일 (29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publishDate=1997-04-12&officeId=00020&page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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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에서는 이미 8천년 이상 전부터 옥(玉) 물건을
2천5백년 이상 전부터 유리 물건을 만들어왔으며
특히 마한에서는 금, 은보다 옥(玉)과 유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합니다.
(흔히 백제 유물이라 칭해지는 것 중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마한의 유물입니다.
백제 왕조는 소수의 사람들이 남하한 것이고
백제의 백성들 대부분 마한사람들이었죠.)
마한 유리 + 옥 장신구
전북 완주 상운리
https://m.facebook.com/JeonjuMuseum/posts/2378397012215689/
이상 3장 - 충북지역 출토 <마한 유리-옥 목걸이>
유리구슬 만드는 틀 - 전남 담양 태목리 유적 출토
http://kwangju.co.kr/article.php?aid=1591110000696881310
익산 입점리고분 유리목걸이 - 마한
http://www.inadri.kr/skin_mw1/travel_view.php?unsingcode1=1509584189&board_data=aWR4PTEx||&PHPSESSID=3910073a9b148cc57b02f183bb35d723#img5
마한(백제) 유리구슬 목걸이
청주시 신봉동 출토
https://cheongju.museum.go.kr/www/selectPsgudList.do?key=90&psgudCd=M0105
익산 미륵사지 석탑 출토 유리구슬 등 유물
https://news.v.daum.net/v/20100526113115786
마한, 백제 때 이미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종류의 유리가 발견됩니다.
아래 논문은 나주의 [정촌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유리만 해도
각기 성분이 다른 여러가지 종류의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유리를 사용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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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정촌 고분군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 조성과 특징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https://www.e-jcs.org/journal/view.php?number=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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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역시 마한의 풍습과 문물에 더하여
북한, 만주 지역에서 남하한 사람들의 문화가 융화된 것...
함양 출토 목걸이
https://www.news1.kr/articles/?1405160
김해 양동리 목걸이
http://www.tongsangnews.kr/webzine/1902/sub_11.html
부산 노포동에서 출토된 각종 장신구
김해 양동리 목걸이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key=20130926.22022191609
경주 출토 가야목걸이
https://asia.si.edu/ko/object/54%ea%b0%9c%ec%9d%98-%ea%b5%ac%ec%8a%ac/
고성 내산리 34호분 목걸이
http://www.hanryeo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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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도 놀랄, 찬란한 1700년전 가야 구슬공예, 이제야 보물 된다
2020.09.07.
헤럴드경제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이 해방후에도 사학계 주류로 이어지고 역대 정권들도 4국시대 중 신라를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과정에서
홀대받던 가야 문화재 중, 찬란했던 가야 구슬 공예가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야 비로소 보물로 인정받게 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민 누가 보더라도 이게 과연 1700년전 기술인가 놀랄 정도로 찬란한 모습이라는게 중론이다.
1700년전 가야 구슬공예.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가야가
다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나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도 완전하여 역사‧학술‧예술 가치를 지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구슬의 재질도 금, 은, 유리, 금박 입힌 유리, 수정, 호박, 비취 등으로 다양하며,
형태도 판옥(板屋, 편평하게 가공한 옥제품), 곡옥, 대롱옥(대롱처럼 기다란 형태의 옥제품), 다면옥(多面玉, 여러 면을 깎은 옥제품) 등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曲玉)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곱은옥(曲玉)이나 둥근옥(球玉)을 만든 목걸이였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에서 출토된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또한,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와 질감이 조화를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의 세련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金官伽倻) 시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에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하다가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되었고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으며,
평균 지름이 6~7㎜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은 것으로 보아 여기에 깃들인 가야인들의 시간과 정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마노(瑪瑙)는 수정과 같은 석영광물로서, 원석의 모양이 말의 뇌수(腦髓; 머릿골)를 닮았다고 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유리를 곡옥(曲玉)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당시 유리세공 기술이 매우 우수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 양동리 고분군에선 1984년 이후 557기의 유구에서 5100여 점의 유물을 출토했고 특히, 여러 색의 크고 작은 유리구슬들을 다량 발견했다.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제작 시기는 3세기로 추정된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목걸이를 구성하고 있는 수정(水晶)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학계의 연구를 통해 경상남도 양산(梁山)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또한, 가공 기법 또한 오늘날의 세공기술과 비교해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美的) 감각을 보여준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은 ‘(가야인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 이영주위재보, 혹이철의위식, 혹이현경수이, 부이김은수위진)’고 적고 있다.
https://news.v.daum.net/v/20200907095612723
백제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
https://www.youtube.com/watch?v=csb-f4L-9xM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사필귀정(事必歸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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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대한민국 국립공원 사진공모전 수상작 중에서
내장산
오대산 - 월정사
태백산 - 한강의 시작
북한산 다락능선에서 바라본 포대능선과 망월사 상고대
감사합니다.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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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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