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후배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있다!!
논어(論語) 제9편 자한(子罕) 22장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 후배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장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하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젊은이들이 40, 50세가 되어도 이름이 나지 않으면
역시 두려울 것이 없느니라”
먼저 기독교 신약성경 마태복음 20장 16절을 인용한다.
포도밭 주인이 품꾼들에게 포도밭 일을 시켰다.
하루(아침 9시부터 오후 5시로 추정)품삯을
하루 한 데나리온(denarius)씩 품꾼들과 약속하였다.
※데나리온(denarius)-로마시대의 화폐단위
또 주인이 11시쯤에 놀고 있는 다른 일꾼에게 일을 시켰다.
하루 종일 일이 끝나고 하루 품삯을 줄때에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일한 일꾼에게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었다.
그리고 또 오전 11시에 일을 한 일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한 일꾼이 항의를 하였다
왜 11시에 온 일꾼과 하루 종일 일을한 우리와 품삯이
같느냐고--
주인의 대답이 유명하다.
“천국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IT산업이 등장한 이후로 시간이 다르게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신문기사마다 딥페이크(Deep Fake)가 등장한다.
이제는 작은 구멍가게도 무인판매점 키오스크(kiosk)다.
예나 지금이나 진보(進步)의 과정에 있는 인간은
뒤에 오는 후진(後進)을 두려워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신경 써야 한다.
이것은 지구 생물의 필연적(必然的) 환경이다.
후배(後輩)들이 오늘의 우리들보다 훨씬 앞서가야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후배(後輩)는 변화하는 사회의 새로운 세대다.
이런 현상은 불가피하지만
옛것이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미래가 있다는
증거다.
새로운 기회가 많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발전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제2편 위정편(爲政篇) 4장에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
30세에 독립했다.
40세에 남의 유혹(誘惑)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50세에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
는 내용이 있다.
논어의 이 장(章)을 빌리자면
40세, 50세가 되어도 명성(名聲)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위의 논어에서
말하고 있다.
공자는 말하기를
젊은이는 두려운 존재다
어찌 뒤에 오는 자라고 오늘의 기성세대보다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필자 30세까지 그때만 하여도 산에서 땔감을 해왔다.
그러니 대한민국 산천(山川)이 벌거숭이가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치수(治山治水)사업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지금 북한의 산하(山河)가 대한민국의 1960년대 같다는
신문기사를 종종 본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장작이나 연탄을 땔감으로
준비할 때면 좀 유식하다는 어른들은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을 하였다.
※후생가외(後生可畏)-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
연탄이나 장작도 늦게(뒤에) 들여온 것이 위에 쌓이지 않느냐?”
늦게 태어난 젊은이가 먼저 태어난 어른을 딛고 위로 올라
서는 것은 생존(生存)의 자연현상(自然現象)이다.
후배(後輩)에게 추월(追越)당하지 않고 정진(精進)할 것을
스스로 애써 노력(努力)하라는 비유의 말이다.
나이 좀 많다고 “에헴”하고 티를 내어서는 하루아침에
후배(後輩젊은이)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글 한자를 같이 쓰지 않고 한자(漢字)를
사용안하고 한자음(漢字音)만 사용하는 불합리 때문에
“후생가외”라는 말을 사용하기는커녕 뜻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특히 논어(論語)라는 고전(古典)을 읽는 사람도 드물다.
“후생가외(後生可畏)”의
깊은 의미가 담긴 좋은 말을 지금이라도 익히는 것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사회 근본(根本)을 버리지
않으리라
“후생가외(後生可畏)”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에게 뒤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함과 동시에
젊은이를 격려하며 좋은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2500년 전의 논어(論語)를 IT시대에 읽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무한경쟁시대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후생가외(後生可畏)”에 대한 격려의
뜻은 사라지고 비생산적인 경쟁심만 늘게 되면
논어(論語)의 깊은 뜻을 잃게 된다.
성공적인 삶은
“베스트(best)”를 향한 자리다툼이 아니다.
“온리(only)”를 향한 자기발전이다.
세상이 1시간이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과 “후생가외(後生可畏)”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