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구 메니어의 봉황기 추억

드디어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가 시작된다(8.3 화요일). 지금은 그 인기가 별로지만 70년대와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야구는 그야말로 전국민의 스포츠였다. 연일 라디오중계를 해주었음은 물론 티브이로 중계되던 결승전 경기는 한일전 못지않은 빅카드였다. 당시 야구에 미쳐있던 나는 봉황대기 전 경기를 관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아침이면 어머님이 싸주신 도시락과 음료수를 챙겨 들고 동대문 야구장으로 출근을 하였다. 다른 대회와 달리 방학중에 경기를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등받이도 없는 널판지 의자에 앉아 아저씨들의 담배연기를 안주삼아 도시락을 까먹던 나. 3번째 경기가 시작되는 오후 2~3시가 되면 업습하던 졸음. 경기장에 진하게 배어있던 땀냄새. 애애애앵 요란하게 울려대던 사이렌 소리. 1회전이나 2회전에 꼭 탈락하던 재일동포 야구단(당시 재일동포 야구단은 고시엔 대회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중에 긴데쓰에서 활약한 김의명 선수가 기억난다). 예선전없이 전국의 고교야구팀이 참가하는 터라 말도 안되는 에러가 속출하던 경기.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봉황대기 고교야구의 압권은 1981년 결승전이다. 선린상고와 경북고가 맞붙은 그날 경기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당시 선린상고는 소위 초고교급 선수가 둘이나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박노준과 김건우선수. 이에 맞서는 경북고에는 얄밉도록 야구를 잘하던 유중일 선수와 좌완의 에에스 성준 선수가 있었다. 솔직히 누가 봐도 선린상고의 우세였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해 고등학교 야구에서는 두 팀이 결승에서 자주 부딪쳤다. 결과는 경북고의 완승이었지만. 하지만 1회 선린상고가 무려 석점을 내면서 우승신화는 선린에게 기울어지는 듯 했으나, 아아 어찌 잊으랴, 홈으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던 박노준 선수의 발목이 겹질리고 말았으니. 전국의 고교야구 팬, 특히 여성, 의 눈물을 자아내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당시의 선린상고는 지금으로치면 80년대의 해태나 일본의 요미우리를 방불케하는 초호화맴버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그것이 징조였을까? 한점 한점 야금야금 쫓아오던 경북고는 드디어 역전을 시키고 봉황대기 우승을 거머쥐고 말았다.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순간 눈물을 흘렸다. 저놈의 경북고를 평생 저주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떻게 천하의 선린을 이기다니. 이후 나는 골수 안티 삼성이 되었다. 하여간 그렇게 경기는 끝나고 경기장이 쓸쓸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아, 이제 여름이 끝났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선수들의 땀과 관중들의 환호도 어느새 사라지고 여름의 끝자락이 여운처럼 남아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봉황대기는 여름의 절정에 시작되고 여름의 끝에 마무리된다. 어느 팀이 이기던, 전국이 모든 고등학교 야구팀들이 모교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관중들께 보답을 해주기를 바란다. 자! 이제 시작이다. 봉황대기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