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여름 [육호수]
거울에 붙은 모기를 죽이려다
무언가를 죽이려 다가가는 얼굴을 들켰다
웅덩이에 빠져 몸을 휘젓는 지렁이를 빤히 바라보다
깜짝 놀라 지렁이를 건져냈다
정오의 태양은 태양으로 가득했고
손차양을 하다
손등에 난 점 하나를 처음 발견했다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구름에게 하루를 다 내어주어도 좋았다
그해 여름엔
거울에 피를 묻히지 않았고
거울 속에 손을 넣어 지렁이를 건져냈다
감감히 잠겨가는 감나무 그늘 아래 앉아
외면할 수 없음은
포기일까 망설임일까 생각했다
몸을 휘젓기도 했다
구름에게 하루를 떼어주고 맞바꿔온 소원을
여름이 다 가기전에
다시 하루와 맞바꿔왔다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2023
* 해마다 그해 여름은 더웠다 했지만 올해는 조금 더 오래 더웠다.
게다가 비가 많이 와서 습하고 끈적거렸던 여름이었다.
다행히도 오늘 추분이라니 아, 여름이 가긴 가는구나.
논에 벼가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으니
아직은 기후변화에도 우리나라는 절기를 지키는 절개가 있구나 싶다.
모기는 구경한 적 없는 것 같고
무사히 물리지 않고 여름을 잘 견뎠다.
잘 가라 손짓하며 멀어져가는 여름을 나도 물끄러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