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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상식 [한국사] 1960년대를 돌아보며 - 월남파병의 '신화'에 대해서.
술먹는 하마~ 추천 0 조회 473 04.01.30 23:03 댓글 2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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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4.01.31 18:17

    첫댓글 박정희가 카터 대통령의 방한때 미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 카터가 화났다던데 이때까지는 미국을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던건가요?

  • 작성자 04.01.31 19:00

    우방으로 생각했다기보다는 1960년대에는, 권력강화를 위해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당시에 한국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터행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정부의 '정통성' 여부를 걸고 넘어지게 되면서 한-미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고 싶습니다.

  • 작성자 04.01.31 19:00

    이런 1970년대의 한-미관계의 변화는..이전에 비해서 미국의 압력이 강화된데에 비해, 박정희정권의 권력은 오히려 안정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입장을 숙이지 않았고 그러므로 일어난 분쟁이라고 생각하며, 박정희의 미국에 반감은 이러한 분쟁의 산물이라 봅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니 가르침이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 04.02.01 03:03

    하마님께/유신체제는 제4공화국으로 지칭하는 게 어떨런지요. (그것도 공화국이라고 해야 한다면... -_-) 베트남 파병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전에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된 내용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04.02.01 03:06

    흐음 그렇군요;; 제 글을 다시 읽다보니 용어 사용이 비일관적이네요;; 앞으로는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 ..))

  • 04.02.02 15:57

    인상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을 글로 옮기지 못할까 하는 자책도..

  • 04.02.02 16:35

    (야사)베트남에서 울나라 군인 아찌들께서 미군들 눈을피해 에무십육에 탄약에 슐탄까지 날라왔다는 사실. 정말 눈물겨운 국방에 일조하려는 몸부림이었습죠. 첨엔 미군도 눈감아주다가 나중엔 제재에 들갔으나 이미 나갈만큼 나간 상태라 ㅎ. 실지로 빼온게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거지나라라, 비참했던 과거.

  • 작성자 04.02.03 01:21

    부모님// 거시적 역사관이란 몇몇 눈물겨운 '감동스런(?)' 이야기는 참고로 하되, 전체적인 사실과 기타 제반사항을 따져봄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그 '눈물겨운'이야기만 바라보는 것은 역사관이 아니라 '감상'에 더 가까운 것이라 봅니다. ^^

  • 04.02.03 00:41

    잘 읽고 갑니다. ^^ 새롭게 따져보며 공부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 04.02.04 22:46

    공화국은 제헌, 개정에 따라 바뀐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1 공화국, 장면때가 2 공화국이고 박정희때가 3 공화국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노태우때였나, 그 때가 6 공화국으로 알고 있는데 그 후로 헌법은 개정되지 않아서 계속 6 공화국이라는군요. 문민 정부, 열린 정부... 이것처럼 정부의 수식어구는 바뀌지

  • 04.02.04 22:46

    만 말입니다.

  • 작성자 04.02.04 23:33

    네. 그러한 점에서 유선헌법으로 개헌을 시행했던 1970년대의 박정희 행정부는 제 4공화국이라 표기함으로서 용어의 일관성을 추구했었어야 하는데...지적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몰운대님, 매마다 보여주시는 관심에 역시 감사를 표합니다. ( ..))

  • 04.02.05 14:46

    국제관계도 은원이 잇지요 우리는 625의 미군참전으로 미국에 대해정치적 군사적 채무가 잇지요 국제고나게에서 그런건 치명적이지요 임진왜란의 명군참전 으로 생긴 채무을 아세요

  • 04.02.05 14:48

    그채무덕에 광해왕은 15000천의 대국은 만주에 파견해야햇지요

  • 04.02.05 14:50

    또 용병이라고 욕하는거 우리역사책에 조선조정이 처의 강요에의해 러시아와 청과의 국경분쟁에 지우너군을 파병한 것을 우리국사책은 나선정벌이라하지요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서술하지요 ,자국사를 비하하는것은 못된버릇이지요

  • 04.02.05 15:34

    청과 명과 같은 나라의 관계와 조선의 관계가 지금의 한미관계와 같습니까.. 그리고 요즘 누가 나선정벌을 좋게 기술합니까.. 오히려 효종의 북벌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들 말하는데요.

  • 작성자 04.02.05 16:07

    ^^ 완암님. 님께서 말씀하시는 '보은론'은 1960년대에서도 '잠깐' 나온 이야기 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의 우리나라의 여론은, 국력면에서나 국방측면에서 파병은 무리이거나 수천명 단위의 파병만이 가능하다는 여론이 대세였고.

  • 작성자 04.02.05 15:56

    그러한 점에서 3천여명 가량의 비전투부대인 비둘기부대의 파병이 이루어졌을때, 우리나라의 국력한계내에서 '보은'은 했다는 이야기가 대세였죠. 지금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1960년대 반공시절의 사람들조차도 생각 안한 '보은'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다시 언급하시는 이유는 무엇이신지요?

  • 04.02.05 23:06

    ㅋ 너무 글자가 많이 틀렷군요 (나선정벌 아 그런가요 보은이 아니랍니다 힘에 밀리는거지 고구려 같은경우는 청이나 왕망의 신나라의 출병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햇지요) 힘이 안되면 빚을 갚아야하는거고 힘이되면 채무도 탕감받는게 국제사회이지요

  • 작성자 04.02.06 01:39

    제가 이 글의 서두에서 '한국지도부가 먼저 파병을 제안했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힘이 안되면 빚을 갚아야한다.'(즉 힘있는 미국이 요청했으니 힘없는 한국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라는 논지로 주장을 펼치시는 것은, 제글을 제대로 읽어주시지도 않고 비판하시는 것 같군요.

  • 작성자 04.02.06 01:41

    즉, 힘있는 쪽이 갚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힘이 되지 않는 쪽이 '자청'하고 나선 것이기 때문에, '힘에 밀리는 상황'자체가 성립이 안되었으므로, 힘이 있느냐 없느냐등의 님의 말씀들은 논제를 이탈한 것이라 보고 싶군요.(그리고 '빚'이라 부르기에 적합한지의 여부에도 이의가 있으나 논제를 벗어나므로 자제하죠.)

  • 04.02.06 12:57

    청천님// 카터가 화났던 것은 정상간에 회담에 있어 전에 내용과 수위에 있어 어느 선까지 할 것인지 미리협약하는데 이를 박통이 일방적으로 어기고 혼자 미군철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합니다.. 이에 카터는 딴청을 하며 두 정상의 자리는 갈때까지 가게됐죠

  • 04.02.06 12:56

    카터행정부와 박통은 처음부터 사이가 안좋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친인권적인 카터정부와 반인권의 박통과의 어쩔수 없는 충돌이기도 했지만 과거 카터가 상원시절 방한 박통과 만나길 원했지만 당시 카터의 지지율이 낮다는 것을 이유로 박통은 카터를 따돌리고 푸대접해 보낸 전력이 있었죠..

  • 04.02.06 12:57

    뭐 이런 개인감정이 당시 정상회담이 뒤틀린 이유가 될수는 없을지 몰라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치긴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 04.02.06 12:59

    당시 미국이야 당연히 우방이었지만 카터가 주한미군철수 내지 축소 지향했고 박통은 막무가내로 막아보려 한거죠

  • 04.02.09 00:41

    뭐 하나 덧붙여도 될런지요..현대사수업들을때 배운건데요,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피해나 문제점은 정치적인 것말고도 많더라구요.. 첫번째로는 제3세계권으로부터 고립을 당했었다네요.식민지용병역할을 자처했다는..남의 싸움에 끼어든 그런.. 또 고엽제 피해 있잖아요..블루싸이공이란 뮤지컬을 본적있었는데..고엽제 피

  • 04.02.09 00:44

    해자의 모습을 그린 슬픈 내용이었죠..실제로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라는 것도 가슴이 미어지죠. 이건 우리나라가 피해본 내용이지만 더 끔직한 피해를 당한건 베트남양민들이랍니다.전과를 보고하기위해 무고한 양민들을 죽였데요.우리가 미군의 양민학살에 분노하는 것만큼 그들에게도 상당히 가슴

  • 04.02.09 00:49

    아픈 과거이겠죠. 한국인 2세 문제도 있어요..우리나라가 겪은 것과 매우 흡사하죠..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앞으론 이런 일 만들지 않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것같네요..저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 작성자 04.02.09 01:58

    mystory님//네. 부족한 글에 지적과 좋은 말씀을 덧붙여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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