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5편 군인과 사람들>
④호숫가에서-43
“그렇습니다. 누나.”
쪽머리여인은 언제나처럼 천복을 아랫목으로 앉히고, 자신은 윗목으로 비껴 남자를 마주보고 앉아서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유희는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수는 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잠자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동안 삼년 가까이에 키가 훌쩍 자라있었고, 얼굴의 용모도 또한 뽀얀 게 제법 귀태가 나는 게 돋보이었다.
천복은 물끄러미 만수의 잠자는 모습을 내리어다보면서 모름지기 초례청에서 마주하여 여러 사람들이 축하하면서 지키어보는 가운데, 맞절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유희는 천복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아내일 수밖에 없다고 여기어지는 거였다.
혼인이란 남들에게 보이어주는 지극히 외형적인 겉치레의 요식행위로서 겉모습만 화려하게 꾸미어놓은 단순한 잔치마당일 게 틀림없다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었다. 그리고 유희는 천복이 옥희와 혼인하여 부부가 되었던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천복을 진실로 사랑하면서 그 남자의 씨앗을 소중히 배태하여 혼자 낳아 쩍말없이 키우면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뒷맛도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아는 훌륭한 여자이었다.
그리고 언제인가, 천복이 옥희에게 사주도 건네지 않았던 무렵 그녀는 천복의 집을 찾아와 해가 지었는데에도, 천복의 옆을 떠나지 않자, 경산이 까닭을 물었을 때 솔직담백한 어조로 거침없이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하였었다.
천복은 이렇듯 천재일우로 그녀를 만나게 되는 호기가 주어지는 까닭도 실은 우연히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방금 대문간에서 그녀의 울먹임은 인고(忍苦)의 슬픔이 마치 압축된 기름틀에서 맑고, 투명한 참기름이 흘러나오듯 비련의 애처로운 비애가 압축되어 나오는 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서로 헤어지어서 멀리 떨어져있으면, 이렇듯 실감할 수가 없었으니, 이야말로 인간에게 본디 지워진 원죄가 아니던가.
“동생, 만수엄마의 마음고생을 알아?”
그런데 쪽머리여인이 잠자는 만수를 내리어다보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듯하는 천복의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듯이 이렇게 다잡아묻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무언가 뒤틀려 잘못된 건만 같아서요.”
천복은 문득 눈가에 물기를 서리면서 적이 젖어드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가 말을 받았다.
“난, 동생을 질책하고 싶지 않아. 방금 동생의 말대로 뒤틀린 운명이겠지. 만일 내 남편이 지금 나의 앞에 나타난다면, 반갑기는 한량이 없겠지만, 그것을 무릅쓰고라도, 남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어떠한 불가항력이 감추어져있더라도 난, 남편을 질책하고 말 거라 생각해. 벌써 남편과 헤어진 세월이 십오 년이나 무정하게 흘러가고 말았어. 이 조그만 내 손으로는 그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을 감히 잡을 수가 없었어. 몸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어. 흐-흑!”
“...!”
그녀는 이야기를 길게 씹어 삼키더니, 기여 어깨를 크게 허물어뜨리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천복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그녀가 격한 슬픔으로 도지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남편에겐 아무 죄가 없어도 말이야.”
그녀는 끝내 아내를 두고 떠난 죄악이 남편에게 귀착되지는 않더라도, 남편에게 질책할 거라 말하였다.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을 왜 함께하지 못하였느냐는 울부짖음이었다.
그것이 누가 누구에게 책망할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도, 그렇게 되고야 말리라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었다. 하기에 부부의 이별이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 모두가 공범(共犯)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녀가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무정한 세월을 탓하지 않더라도, 어느덧 그녀의 인생과정은 청춘을 잃고, 중년으로 치닫는 막바지에서 망실의 세월을 터무니없이 으깨었던 거였다.
그녀에게 정답이 있을 리 없었다. 오직 조용하고, 평화로운 땅에 그 무엇이 포화에 불을 댕기었는지 의구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녀는 천복과 만수엄마이야기를 하려다가 한바탕 자기의 설음을 토하여내더니, 눈가에 수분을 뿌리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에 잠기었는지 초점을 한 곳에 던지어놓고는 입을 다물어버리었다.
천복은 높다란 벽에 예스럽게도 걸리어있는 최복동의 사진에 눈을 보내고 있었다. 수백만 명이 죽어가서 인간에게 사별의 허무함과 이산의 고통을 짓씹어야하는 한국전쟁은 그 시작부터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유희가 밥상을 들이어왔다. 본래 아침은 쪽머리여인이 하고, 저녘은 유희가 하였으나, 오늘따라 쪽머리여인이 울적하여 밥솥에 밥만 잦히어놓은 채 천복을 방으로 들게 하다보니, 밥상을 유희가 차리었던 거였다.
“오빠, 시장하겠어요. 우린 나 때문에 거의 저녁을 늦게 먹어요.”
날씨가 제법 싸늘하였는데, 싱싱하게 보이는 동태에 두부를 넣고 끓인 국이 제법 따끈하고, 맛깔스러워 보이었다.
“시장기가 생길 때 밥을 먹으면, 식욕이 왕성해지더군.”
천복은 이렇게 말은 하였지만, 유희가 벌어서 식량을 달아간다는 생각을 하여보면, 그녀에게 연민과 애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첫댓글 밥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는 여인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여염집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게 아쉽습니다
밥상?
여자들에게는 한이 맺히는 일이지요.
하루 세끼 밥상 봐서 방에 들이는 일이야말로 여성들의
타고난 고생이지요. 그러나 그때 직접 살아가던 여성들은
그걸 고통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저 먹을 것 입을 것만 많으면
좋겠다고 하였으니 지난날 여성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었어요.
그러한 여성들의 희생정신이 있기에 한 가정 또는 나라도 융성해졌지요.
그런데 지금은 !!!!!!!!!!!!!
남편을 공경하는 마음에 밥상을 눈썹높이로 들고 갔다는 거안제미란 사자성어는
이제 남편이 아내를 위해 밥상을 드는 것으로 바뀔 정도입니다
@대우 擧案齊眉야 속뜻은 아내가 남편에게 공경하는
뜻이겠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거안제미하더라도
괜찮겠네요.
그렇지만 남녀평등이란 남자가 주방에서 밥짓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이 있고
태생적으로 되어있는데 남자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네요.
밥상은 그만두고 결혼한 여성들 아이나 셋 정도 속속 뽑았으면 합니다.
아이는 안 낳고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면 집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