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4.2. ) 말씀/ 요한복음 3:16 가장 큰 기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랫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초등학생 딸 안나가 있었습니다. 안나를 새 학교에 데려다 준 첫날, 아이가 학교에서 벌인 행동에 부모님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가족은 다 같이 식당에 갔고, 안나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사회 시간에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시험을 보았다고 합니다. 안나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이미 배운 내용이었기에 모두가 바쁘게 답을 써나려 가기 시작했지만 배우지 않았던 안나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안나, 걱정하지 말고 아는 걸 쓰면 된단다.” 시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정답을 공개했습니다. 학생 대부분이 정답을 맞힌 듯했습니다. 정답은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피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멕시코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중국 만리장성, 인도 타지마할,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으로 이것은 2007년에 발표된 새로운 세계7 대 불가사의입니다. 저도 이 중에 인도 타지마할 묘와 로마 골로세움은 가보았습니다. 8월에도 6분이 다시 갑니다. 안나의 엄마는 배운 적이 없는 안나가 어떻게 썼을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넌 어떻게 썼니?” “선생님이 그냥 아는 것을 쓰라고 하셔서 전 이렇게 썼어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첫째 볼 수 있는 것, 둘째 들을 수 있는 것, 셋째 말 할 수 있는 것, 넷째 느낄 수 있는 것, 다섯째 웃을 수 있는 것, 여섯째 생각할 수 있는 것, 일곱째 사랑할 수 있는 것 이라구요.” 안나가 들려준 이야기에 안나의 부모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 자신들 조차도 그동안 얼마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소중한지 잊고 살았는지 안나와 가족들은 즉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는 답 이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무 대가 없이 주신 모든 것들이 진정한 불가사의 기적들인 것인데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것입니다. 어떻게 어린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감동입니다.
볼 수 있는 것 정말 불가사의 기적입니다. 우리 몸에 적은 두 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는 것이 참 신비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맞는 봄이 되니 온천지 산에는 연분혼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저 여린 것들이 긴 겨울 모진 찬 바람을 어떻게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지 생각해보면 기적입니다. 그 기적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는 것을 보면 감탄을 연발하게 됩니다. 4월이면 주작산 진달래가 활짝 피는데 ..올해는 좀 더 일찍 피었습니다. 마음이 자꾸 끌려 지난 목요일 지홍집사와 다녀왔습니다. 주작산 진달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감동들입니다. 여러분, 고대도시 페트라 잉카 유적지 맞추피추에 가본적 있습니까? 그곳만 불가사의겠습니까? 긴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매화꽃, 진달래, 춘란 모두가 불가사의한 기적 아닙니까? 작은 두 눈으로 온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입니다. 저는 아침마다 산 아니면 바다로 가서 큐티를 하고 기도하고, 글을 쓰고 또 묵상을 합니다. 차 뒷문을 열어놓고 바다로 행해 놓으면 큐티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썰물 밀물이 어떻게 오고 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썰물 밀물이 디면서 뻘이 들어나면 칠게들이 들락날락하고, 바다 갈매기들이 내려 앉아서 무엇인가를 잡아 먹습니다. 그 많은 물들이 시간이 되면 나가고 시간이 되면 다시 들어옵니다. 게들도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몸을 움직여서 막상 바다로 내려가 보면 그 많던 게들이 구멍 속으로 다 사라지고나 잡아봐라 합니다. 그러면 저는 구멍만 바라보다가 칠게 대신 고동을 잡아서 바닷물에 해캄을 시킵니다. 바다의 움직임 생물들의 움직임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합니다. 자연을 접해보면 매일 매일이 기적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지만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 이었습니다. 설리반 선생을 만나 그 희생적인 사랑으로 일어나 눈 뜬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내가 삼일만 볼 수 있다면’ 이란 고백이 있습니다. 만일 눈을 뜰 수 있다면 많이도 아닌 3일입니다. 첫째 날에는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설리번 선생님과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며,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그들의 특징도 나의 마음 깊숙이 간직하겠다. 그러다 어느덧 오후가 되면 오랫동안 숲속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적셔지다가 나의 손끝의 촉감으로 아무리 만져서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던 저녁의 황홀하게 불타오르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떨리는 기적을 보고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나무나 풀잎에 붙어있는 진주알같이 아름다운 이슬방울들, 아침 하늘에 날아다니는 예쁜 새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집에 내려와서 아침을 먹고 싶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영화나 연극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손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리지 못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셋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고 싶다. 점심 즈음에는 영화관에 달려가 내 손가락 끝으로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었던 대형 화면에 비춰지는 아름다운 신들을 감상하겠다. 그러다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감상하고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지난 삼일동안 만이라도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한 암흑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보고 체험하는 일 아닙니까? 3일이 아니라 평생. 기적이란 행복도 마찬가지 이지만 저 먼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삶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상시 사사롭게 생각했던 것들이 헬렌켈러 입장에서 보니 다 기적이고, 다 감사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3일이 아니라 평생을 헬렌켈러가 보지 못했던 기적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무슨 기적이 필요합니까? 더 무슨 욕심이 필요합니까? 걷지 못하는 사람에겐 마음것 걸어다니는 것이 기적이고, 보이지 않는 삶에게는 보는 것이 기적이고,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겐 마음것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고, 아직 시력이 있어서 마음 것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기적이고, 대장 기능이 좋아서 마음것 화장실 가서 배설 할 수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건강 한 사람은 잘 모릅니다. 건강을 잃어보면 압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변형용 목사님 가톡에 제주도에 부부가 여행하는 행복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동안 두 분이 다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을병으로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먹을 것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하나님 은혜로 완치하고 여행하는 모습이 정말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시를 한 편 보내왔습니다. 행복은 일상을 다 잃고나서 어찌 그립던지 지팡이 없이 걷고 오르고. 마음껏 심호흡하고, 가리지 않고 먹고, 편한 배설을 하는 것, 누우면 금방 잠들고, 철마다 거칠 옷이 있는 것, 아직 책을 읽을 수 있고, 차 한 잔 하면서 대화 나눌 수 있는 것. 이런 건 당연하지 않고 그토록 바라던 일상의 행복..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보니 일상으 모든 것들이 다 행복이고 기적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7.18]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너무 쉬운 말이지만 머리로 깨달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가? 잃어버리고 없으면 있는 것들이 다 행복이고 감사조건이고 살아있는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수용소 군도 6권을 읽고보니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유의 공간이 천국이고 행복이구나 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면서 원망도 불평도 많습니다. 세상 더럽다고 욕도 많이 합니다 수용소 군도에서는 불평을 못합니다. 고발하는 밀정들이 있고, 불평 한마디에 징벌 감방에 들어가 못 먹고 추우에 떨고 병들고 죽을 고생을 합니다. 영한 20도 오르내리는 그 감방에서 10으 본면 평생 불구가 되고, 15알이면 그 안에서 대게 죽습니다. 불평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이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 마음 숨 쉬는 것을 감사해보았습니까? 갈비뼈를 다쳐보면 마음껏 숨수고, 재채기를 하는 것도 기적이며 행복입니다. 위산 과다로 한 2년, 입안 염증 등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껴보니 평상시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기적임을 알았습니다. 피부로 고생하다보니 마음껏 머리 감고 샤워하는 것이 기적임 인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 날을 맞아 산을 오르며 기도하고, 산장에서 떡을 떼고, 독서를 하고, 돌아와서 하루 일과를 해 나가다보면 감사입니다. 요즘 코로나 끝나서 마스크 안 끼고 마음 거리 식당을 홀보할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가가운 사람들 만나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것, 모든 것들이 다 기적입니다. 무엇보다 요즘 우리는 함께 독서를 하면서 성장 해 가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변화되는 기쁨 Ehgsk 큰 기적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사람은 변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변화한다면? 기적입니다. 이런 변화의 기적이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럼 무엇이 이런 변화와 성장의 기적을 이룰까요? 최고의 기적은 단연 사랑입니다. 저는 안나가 칠대 불가사의 중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넣은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안나는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사랑이 기적이라고 깨달았을까? 저는 오랜 삶을 산 후에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죽은 것, 죽는 것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계 칠대 불가사의가 아무리 신비해도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사의도 아닙니다. 그저 죽은 것들입니다. 기적은 변화하는 것이고 생명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웃고 보고 느끼고 행복해 하며 사랑하는 것들 모두가 살아있는 것이며 그게 기적입니다. 지금 새로워지고,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면 기적입니다. 그 중에 최고의 기적이 사랑인 것은 사랑은 바로 웃게 하는 힘, 감사하게 만드는 힘, 행복하게 하는 힘의 소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상에 가장 큰 기적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한번은 바리새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바다에 던져저서 고래 배 속에서 3일을 살다 나온 요나의 사건을 말합니다. 이는 죽으시고 무덤에 갇혔다가 3일 후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최고의 표적이요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광야의 반석에서 물을 마시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먹는 등 숱한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은 달라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계속 어려울 때마다 원망 불평 반복하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은 사람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가 십자가 상에서 믿고 변했습니다. 예수를 사형 집행하던 백부장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와 변화되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죽지 않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기적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은 3:16절에서 하 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십자가의 사건 중심에는 위대한 사랑이 있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수 있으셨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쓰시고 죽으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죽고 다시 사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아직 죄인 되었던 원수 같은 나를 대신해서 죽으실 수 있으셨는가? 어떻게 죄로 죽을 자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모든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도 계속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살아있는 자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큰 힘이며 기적인 것입니다. 이보다 불가사의한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사랑을 붙잡은 사람은 반듯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기적을 일으키셨고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동안 도저히 해도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삶속에 많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하면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 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 사랑으로 일상의 삶 속에 변화의 기적을 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 주시는 주님의 은혜 매일 매일 감사하고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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