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그렇듯, 10월부터 1월 초까지는 쉬는 게 일입니다. 프리랜서의 일이란 게 그렇습니다. 요즘이 딱 보릿고개이지만 매년 반복되어 대비가 가능하기에, 마음 편하게 놀며 이삭줍기하듯,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평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내년 상반기는 입도선매하듯, 매주 5일이 꽉 찼으니 그로서 행복한 일이지요. 열심히 놀아야지, 오래 못 본, 원거리에 있는 친구 만나러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하였지만,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3개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휴식을 취한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라 위안하지만, 못내 아쉽습니다.
공단 일을 십 수년하다보니, 출장 다니며 점심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가성비 좋은 맛집을 꽤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확산 시점부터는 오전 혹은 오후에 일을 몰면서 식사를 가급적 피했기에 최근 3년여 출장길에 식사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 전 출장 10여년 경험 덕분에 아직도 지역별 맛집 리스트가 머릿속에 들어있습니다. 그저께는 어머니께서 국수를 드시고 싶다 하시어 국수마을을 위시한 노원동 국수골목과 성서국수 등이 있는 성서 국수골목을 떠올렸다가 성서로 갔습니다. 노원동에는 잔치국수만 있는데 반해 성서에는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비빔국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서 국수골목 식당들은 주차가 어렵지만 가성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비빔국수, 잔치국수 합쳐 9천원 혹은 만원 가격에 맛은 어디가도 빠지지 않으며, 곱빼기도 가격이 같으니 말입니다. 지난번에 어머니께서 맛에 대만족해하셨던 성서국수는 내부수리 중이어서 이화국수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비빔국수, 저는 잔치국수. 둘 다 기대했던 맛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맛있다”를 연발하시며 평소보다 1.5배 정도를 드셨습니다.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주인장께서, 다른 분이 계산을 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반가운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7년 전까지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습니다. 제가 퇴직한 이후 전화 통화만 두어 번 한 게 전부였는데 거기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20살 정도 적지만, 저보다도 고지식한 원칙주의자로,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던 친구였습니다. 저를 알아본 계기가 놀라웠습니다. 국숫집 들어왔는데 어머니 얼굴을 보고 어디서 뵌 분인데 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제가 매주 보내주는 주말편지, 블로그에 올라왔던 어머니 얼굴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습니다. 조만간 그때의 동료들과 함께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서. 열심히 사는 그의 모습을 보고 기분 좋았습니다. 원래 미남이었고 체격도 반듯한 만능운동맨이었는데 여전해 보여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주말편지, 블로그를 열독하고 있음에 더욱 기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전화 통화 몇 번 할 때 조만간 한 번 보자, 말만 했었는데 이제 직접 보며 약속을 했으니, 조만간 길게 정담을 나눌 시간이 있을 거란 겁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계획만큼 많은 지인들을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이 친구와의 만남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내년 초까지 남은 2주 만이라도 오래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더 많이 만나고, 최소한 전화통화만이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습니다. 이제까지 육십 수년 간 맺은 셀 수 없이 많은 인연, 더 소중히 이어가야지요.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주말입니다.
매년 겨울에 만나는 눈도 마냥 기분 좋게 해줍니다. 기분 좋게 내리고 빨리 녹아 교통사고 등 피해는 최소화하고 겨울 기분을 느끼게 해주면 최고입니다. 이번 눈이 그러했습니다.(타 지역은 피해가 컸지만..)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962521314
만남(모셔온 글)========
우리가 만나기 전에는 서로 먼 곳에 있었다.
너는 나의 먼 곳, 나는 너의 먼 곳에, 우리는 그렇게 있었다.
우리는 같이 숨쉬고 살면서도 서로 멀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먼 곳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배경까지 만난다는 말이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상처와 슬픔까지 만난다는 말이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현재뿐만 아니라
네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과 네가 살아갈 미래의 시간까지 만난다는 말이다.
-----안도현의 '네가 보고 싶어서 바람이 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