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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운산은 남해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부초처럼 점점히 떠 있는 다도해의 섬들을 두르고 남해땅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남해바다 최고의 전망대이다. 우리 나라 섬 산 중 제주 한라산과 울릉도 성인봉 다음으로 높은데 이름처럼 정산 부근에 항상 맑은 구름이 머무는 산이다. 또한 5월의 철쭉은 그 어느 산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남해섬에는 12경이 있다니 과연 보물섬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남해 12경을 더듬어 보자. 1경 : 금산과 보리암, 2경 : 남해 대교와 충렬사, 3경 : 상주해수욕장, 4경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5경 : 이락사 - 이충무공 전몰유허, 6경 : 남면 해안관광 도로와 가천 암수바위, 7경 : 노도 - 서포 김만중 유허, 8경 : 송정해수욕장, 9경 : 망운산과 화방사, 10경 : 물건 방조어부림과 물미해안 관광 도로, 11경 : 용문사(호구산), 12경 : 창선~삼천포 연륙교
04:30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동안 한 차례 진눈깨비도 내리고 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 않으니 일출 구경은 진즉 물건너 갔고 아무리 남쪽이라고는 해도 섣달 새벽 바람이 어찌 봄바람 같으랴? 방한복을 걸치고 환하게 불 밝힌 화방사 아래 해우소에 들어가니 오성호텔 화장실에 버금갈 만큼 깨끗하고 단정한데 은은한 방향제 냄새가 후텁지근한 버스속에서 갇혀 띵한 머리를 개운하게 해준다
운영진이 마련한 꼬마 김밥과 콩나물국으로 새벽동자를 마치니 산행 다닌 이후 첨으로 도시락을 안가져오고 행동식으로 빵만 챙겨온 나는 아내의 선견지명을 확인하는 성찬이 되었다.
05:30 일출시간이 07:40분인데 천천히 올라가자 해도 버스에서 5시간이나 시달린 조급증이 난 사람들이 말귀를 알어먹을 턱이 없고... 행장을 꾸리고 랜턴을 들고 세멘트 도로를 잠시 오르니 왼편에 화방사 지붕 서까래가 얼핏 보이는데 평소 절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도 스님들의 불심정진에 방해될까 신경 쓰이고 또 어두운 밤에 대열에서 이탈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자제하고 망운산을 향해 올라간다
화방사는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고현면(古縣面) 대곡리(大谷里) 망운산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한 연죽사(煙竹寺)를 고려 중기에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현재의 위치 가까이로 이전하여 중창하고 영장사(靈藏寺)라 하였는데, 이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자 1636년(인조 14) 계원(戒元)과 영철(靈哲)이 현재 위치에 다시 건립하고 화방사라 한 것이다.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승당·산신각·요사채 등이 현존하는데,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 건물로서 내부구조와 조각이 조선시대 법당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물로는 옥종자(玉宗子)와 금고(金鼓), 2000자로 된 이충무공비문목판 등이 있다. 이 중 옥종자는 사찰이 건립되어 불상을 봉안할 때 불을 밝히는 옥돌등잔이다. 이것은 한번 불을 붙이면 꺼뜨려서도 안 되고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여서도 안 되는데, 이 옥종자는 1234년 이전에 제작되어 임진왜란 때 불이 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절은 용문사·보리암과 함께 남해군 3대사찰 중 하나이며,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닥나무가 자생한다(미디어 Daum에서) |
05:42 초장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나무에 매달린 부처님 설법 한 마디가 눈길을 끈다. "화방사를 조용히 비켜간 너의 정성이 가련하니 이거라도 받아 가거라!" 하는 듯 부처님의 자비가 아닌가?... 나무아미타불!.....
초장의 오름길은 이렇게 중앙분리대(?)를 설치해 교행에 배려를 했다. 이번 산행에서 많은 참고를 했던 "한국의산하" 이향진님의 기록을 잠시 빌려온다.
06:22 일직선으로 오르던 가파른 오름길은 여기서 임도와 만나고 겨울 가뭄으로 수량이 적은 약수터에서 적당한 그림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리는데 초반 컨디션 불량으로 힘들어 하던 애숙이 오늘따라 NG를 세 번이나 내는 바람에 자기도 허리깨나 아펏을 게다...ㅋㅋㅋ
06:46 여기서 남해 일출을 보자고 그 먼 길을 왔지만 일출을 못 보았다고 서운해 할 것 없다. 세상만사 일체유심조 아니던가? 그래도 이렇게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장 얻었으니.... 음각된 글자위에 얌전하게 들어앉은 상고대가 이채롭다.
상고대였다.... 마른풀 위에 내린 히끗히끗한 상고대가 새벽 어둠과 조화되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가 오르면 사그러질 상고대는 애틋한 슬픔을 보인다.
뒤에 따라 오던 아내가 연신 하품을 해댄다. 버스칸에서는 혼자 잘만 자더니 산행하면서 하품을 하다니?....나한테 빨리 가라고 말은 못하고 혹시 지겹다는 신호로 벽력같은 고함을 치는거 아닌가 모리겠따.ㅋㅋㅋㅋ 이기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닌가?.....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그럴 듯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내는 이제 바뻐진다.
서걱거리는 마른 풀에 달린 상고대와 하얀 눈길 그리고 중계탑의 빨간 불빛, 거무티틱한 구름속에 붉으스레 밝아오는 하는 하늘!....참 아리끼리하고 묘한 그림이 된다.
선두는 바람막이 안부에서 잠시 쉬면서 급유를 하는데 쇄주 한 모금에 소금 바른 김 한 장이 빈속을 짜리리하게 저려온다.
그다지 힘든 산행은 아니었지만 어째 그림이 슬퍼 보인다.
다다익선이라 했지만 흔전만전 많다고 다 좋은게 아닐게다... 눈이 조금은 모자란 듯 아쉬움 속의 산행길은 삶도 이래야 된다고....
용두봉을 향하여
구상나무와 얼음꽃
당초 저 아래 둥그스럼한 관대봉까지 코스에 넣었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라 바라다 보는 걸로 만족 해야했다.
뭔일 생겼수?....
해가 뜨지 않는 날이야 어디 있겠냐 마는 산 위에서 보는 태양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과 환희로 진저리 치게 한다
흐~미!....눈만 뜨면 바라다 보이는 저 쪽빛 바다와 산아래 오손도손 모여 사는 저 그림이야 말로 늘상 꿈꾸어 왔던 유토피아가 아닐런지?..정말이지 남해는 축복 받은 땅이 분명하다.
스포츠파크 - 1999년 착공에 들어간 남해 스포츠파크는 준설토 매립으로 황폐화된 서상매립지를 사계절 스포츠 관광지로 가꾸기 위해 396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천연잔디 축구장 5면과 인조구장, 수영장, 야구장, 테니스장, 풋살 경기장 등 종합 체육시설을 갖췄다. 그리하여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덴마크 국가대표팀의 숙소와 훈련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후에도 각종 전국 축구대회와 대표팀을 비롯한 일선 팀들의 동계훈련지로 인기를 끈 바 있다. 이렇듯 축구에 대한 노하우를 인정받은 남해군은 올해 초에 열렸던 ‘U-17 아시아 여자 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남해로서는 처음으로 공인된 국제대회를 치렀다(남해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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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벌써 봄을 탐한다.
서면사무소 구내의 송덕불망비에서 따뜻한 시골 인심과 참된 목민관의 흔적을 흐뭇한 마음으로 드려다 본다. 궁금한 마음에 현직 부면장님을 통해 그분의 행적을 알어 봤으나 후손들도 뿔뿔이 흩어져 살고 면지나 군지에 기록도 없고 오직 1915. 5~1932.8 재직했다는 기록밖에 없단다. 아쉬운 역사의 기록이다.
그것 참!...그림만 봐도 마른 침이 고인다.....ㅋㅋㅋ
회장님 부재중에 무사히 산행을 마친 회원들에게 덕담을 나누는 부회장님
마치 흰 종이가 바람에 날리듯 갈매기들의 몸짓이 부드럽다. 이놈들도 힘든 먹이 사냥을 피하고 공것을 즐기니 3D업을 기피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매 한가지 인가 보다
산 때문에 맺어진 삼천포와의 인연이 3번째다. 다음에는 와룡산에서 보자구요...
남해군 주민의 대부분은 큰 섬인 남해도와 창선도에 거주하고 있다. 유인도인 조도, 호도, 노도에는 69가구 189명이 생활하고 있고, 나머지 65개의 섬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도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1973년 6월, 길이 660m의 남해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직접 연결되었고, 1980년 창선교가 놓이면서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아름다운 삼천포!....를 뒤로하며 생선을 좋아하는 형님을 위해 마른 생선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끝)
첫댓글 이젠 남해는 남해대교도 있고...창선교도 있고...삼천포와 연결되는 삼천포대교도 있어서...이쪽 저쪽을 다 다니니...쪼매 복잡할겁니다.ㅎㅎㅎ 멋진 산행하셨습니다.
천리길 무박도 마지않는 열성이면 한번쯤은 감동먹어 환하게 떠 올라 줄만도 한데 요즘 하늘은 누구를 닮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원... ^^ 그래도 누님과 함께 땀흘리신 뒤 남해의 싱싱한 횟감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행복한 여정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지명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뿌리가 그곳이다보니요. 서면 면사무소가 일본시대에는 서상에 있질않고 남상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무슨공덕을 했길래 자손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는지..어릴때 부친이 늦동이인 저를 앉혀놓고 6.25때 소위 빨갱이들 청산대상 1호로 지목되어 망운산을 넘어다니며 피신한 이야기를 하곤했죠. 그래서 금산보다 망운산이 더 친근감이 있습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