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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사당 관악산 관음사(冠岳山 觀音寺)를 찾아서 ①
-초입부터 일주문, 즉심즉불비, 대웅전, 관음전까지-
병신년 정월순례로 관악산 관음사에서 연주암에 이르는 순례를, 지난 신년회에서 결정 한 대로 때를 기다려 공지를 올리고 법우님들을 기다렸으나 신통한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관악산이 갖는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늘 접하는 곳이라 별다른 이목 을 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접하고 있는 곳이라도 우리가 마음을 내면 비상한 곳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 이니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달리 볼 수도 있습니다.
순례에 앞서 2주 전에 비니초님과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순례할 경내의 사진을 미리 담고 사찰순례시간과 탐방로와 경과시간 등을 자세히 담아 실측을 해서 순례일정의 이정표를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번 순례지는 몸과 마음을 다지는 곳이라 마음을 끌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사정이 각기 다른 까닭에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서 한 자락의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이 라 생각됩니다. 그런 중에도 10여명의 동참의사를 보고 기쁘게 생각하며 많으면 많은 대로 좋고 적으면 적은 대로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행무상이라 늘 변동수를 염 두에 두고 있지만 선약이 후약에 밀리는 모습을 보면 선약이 후약보다 무거운 것이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을 말씀했고,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지나가세." 라는 연연연세과연죽(然 然然世過然竹)의 부설거사의 말씀이나 김삿갓의 말씀처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갑니다.
각설하고, 순례를 상고해 보면 순례 전날 순탄했던 것이 별로 없습니다. 비가 오고 바 람이 부는 등 해서 '이거 가 말아.' 하고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늘 말씀드렸지요.
"이것은 우리 순례길을 닦으려는 청소작업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세요." ^^
이번에도 전날 세찬 비가 내리는 등 하루종일 날씨는 어수선했습니다. 그래서 불참의 의사를 표한 분도 있었습니다. 동참하시는 분들께 동요하지 마시라고 다음과 같이 메 세지를 띄워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비가 와서 내일이 걱정이 되시죠?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오늘의 비는 순례길을 닦는 청소지 방해가 아닙니다. 내일 순례는 문제가 없습니다." ^^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종 흔들림 없이 동참하신 묘법님, 염화님, 미소님, 정파님, 석원님, 그리고 비니초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침 7시 50분 집을 나서서 동네 하림각 정류장에서 염화 미소님을 만나 전철4호선이 있는 숙대입구로 향하였고, 거기서 묘법님을 만나 사당역으로 향했습니다.
사당역 4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는 8시 40분정도였습니다. 최소 일곱, 많게는 열한 분 이라 생각했는데 전날 세 분, 당일 한 분이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동참하지 못 하신 다는 연락을 받아서 모두 일곱 명이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당역에서 만날 분은 정파님과 석원님인데 정파님은 8시 45분경에 오셨고, 석원님은 약간 늦어서 관음사로 직접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기에 9시 출발을 당겨 8시 47분에 관음사로 향했습니다.
관음사 가는 길은 역에서 그대로 100m 남짓 직진하다가 도로가 나오면 90도로 방향을 바꾸어 직진하고, 거기서부터 그대로 직진하면 나오는데, 사당역에서 관음사까지의 거 리는 약 1km 정도입니다.
날씨는 구름이 다소 끼었고 황사현상이 조금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차차 더 맑아지리 라 기대하며 만면에 웃음을 띠고 도란도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관음사로 향했 습니다.
관악산이 보입니다.
관악산공원 안내도
관악산 탐방로선(冠岳山 探訪路線)
우리가 관음사를 참배한 후 갈 곳은 관음사 옆으로 난 맨 왼쪽의 탐방노선입니다. 꽤 멋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조금만 더 가면 관음사가 나옵니다.
꼭 5년 전에 묘법님과 화광님, 그리고 현실님과 관음사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9시 17분, 관악산 관음사 일주문에 이르렀습니다.
관악산 관음사 일주문
이 일주문은 불기 2551년(2007) 봄, 종하(鍾夏)스님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일주문은 해당 사찰의 대문입니다. 그래서 일주문에는 소속 산명과 사명을 밝힌 편액 이 걸려 있습니다. 관악산 관음사(冠岳山 冠音寺).
이 문은 기둥이 '한 일자(一字)' 모양이므로 일주문(一柱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一)이란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입니다.
관악산 관음사 일주문(冠岳山 觀音寺 一柱門) 편액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관음사 가는 길 풍경
일찍이 조선 초기의 문신인 변계량(卞季良)이 관음사의 절경을 이렇게 읊었다고 합니다. 관음사가 조선 초엽에는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관음사(觀音寺) - 변계량(卞季良) -
冠岳之南淸溪陰 관악지남청계음 관악산 남쪽 청계산 그늘에
변계량(卞季良 1369~1430) 선생은 어떤 분인가?
선생은 고려 말, 조선 전기의 학자로,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입니다. 고려말 이색(李穡)의 제자로서 전교(典校), 주부(注簿) 등의 벼슬을 지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권근(權近)의 뒤를 이어 20여 년간 대제학(大提學)을 맡으면서 조선 전기 관인 문학의 규범을 마련한 인물입니다. 저서에 《춘정집(春亭集)》이 있습니다.
관음사의 길잡이이자 수호신인 관음대장군과 관음여장군
예전엔 여기에 목장승이 세워져 있었는데 석장승으로 바뀌었네요. 천하대장군 지하여 장군과 같은 뜻이죠. ^^
길 양 옆으로 석등이 많이 세워져 있네요.
관악산 관음사 안내문
관악산 관음사에 왔으니 관음사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입니다. 여기에 관음사에 대한 안내문이 있어 전문을 옮겨 봅니다.
관악산 관음사 (冠岳山 觀音寺)
『관음사(觀音寺)는 관악산 줄기의 북쪽 사면인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519-3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서, 신라 말엽인 895년 (진성여왕 9년)에 도선국사(道詵 國師)가 창건한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관음기도도량 (觀音祈禱道場)이다.
1977년 극락전 해체시에 발견된 상량문(上梁文)을 보면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 4월 21일(康熙55년)에 극락전을 개축하였고, 영ㆍ정조 시대에 쓰여진 《범우고》와 《가람고》및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관음사에 대한 대강의 기록과 함께 사 찰 근처에 승방벌(僧房坪)이라는 마을과 승방교(僧房橋)라는 다리가 있었던 사실을 기 술한 것으로 보아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봉은말사지》에 의하면, 1924년에 전석주(田石洲) 스님이 요사채 1동을 신축하 였고, 그후 정태선(鄭泰善) 스님이 삼성각과 극락전을 다시 개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서는 창건 역사와 유래에 걸맞는 발전을 하지 못하고 당우의 황 폐화와 사세의 위축으로 그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1973년 진산당(晉山堂) 박종하(朴鍾夏)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사찰중흥을 위한 장기불사계획을 수립하고, 1977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형 대웅전을 다시 짓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부터1989년 사이에 범종각 신축 및 범종 조성,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 삼성각 증ㆍ개축, 정ㆍ측면 각 1칸의 용왕각 증ㆍ개축 및 ㄱ자형의 요사채(7칸)를 신축하였다.
그리고 1992년에는 대웅전 마당 지하에 대 강당을 신축하고 강당 내에 3천불을 조성하 였으며, 1997년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형 명부전과 동측 요사채 1동(3칸)을 추가 신축하였고 재단법인불교방송이 발원한 불교방송개국기념대탑(9층석탑)을 경내에 유치 조성하였다. 뒤이어 2001년과 2002년에는 요사채와 공양간을 크게 신축하고 저수조와 미타전을 조 성하였다. 또한 2005년에는 대웅전 좌측에 석조 관세음보살입상을 조성하여 가람의 격을 더 한층 높였으며, 2007년 봄에는 관악산 산문 초입에 일주문을 건립함으로서 30 여년에 걸친 장기대작불사를 마무리 짓고 현재에 이르렀다.』
관악산 관음사 가람배치도
《전통사찰총서》에 의하면, 조선시대 후기인 철종 때까지는 절의 역사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조선초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라는 인문종합지리지에 변계량(卞 季良)이 관음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있어 관음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철종 14년(1863) 8월에 행념스님이 당시 철종의 장인으로 안동 김씨의 세도가인 영은 부원군 김문근(金汶根)의 시주를 받아 사세를 일신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고종 20년인 1883년에 봉은사 스님들이 다시 고쳐 지었다는 설도 있다 하나 확실치는 않다고 합니 다.
철종 때 관음사를 중창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었던 김문근(金汶根 1801~1863)은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노부(魯夫)입니다. 인순(鱗淳)의 아들로 이순 (李淳)에게 입양되었고, 이조판서 수근(洙根)의 아우입니다. 김문근은 당시 철종의 장 인으로 영은부원군(永恩府院君)에 책봉되었으며 제2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요인물 이었습니다. 금위대장, 총유사, 훈련대장 등 군사요직을 거쳤으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순(忠順)입니다.
관음사 주변 모습
대웅전 가는 길
관음사는 황심행님의 원찰이라 5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황심행님이 반갑게 맞아 주 셨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가사가 바빠서 보이지 않으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이 부처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은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고도 합니다. 육조(六祖)의 법을 이은 마조도일선사(馬祖道一禪師)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심시불(自心是佛)이라고 믿으라.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즉심즉불(卽心卽佛), 혹은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 제창(提唱)하였 습니다.
마조선사의 문하인 법상선사(法常禪師)는 스승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한마디로 대오철저(大悟徹底)한 분입니다. 《마조록(馬祖錄)》의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대매산(大梅山)의 법상선사(法常禪師. 752~839)가 처음 조사(祖師. 馬祖道一)를 뵙고는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조사께서 대답했다.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
법상은 크게 깨닫고 그때부터 대매산에 머물렀다.
조사께서 대매선사가 산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한 스님을 시켜 묻게 하였다.
"화상께서는 마조선사를 뵙고 무엇을 얻었기에 갑자기 이 산에 머무십니까?"
법상이 말하되,
"마조선사께서 내에게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是佛]' 하였다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머문다네."
스님이 말하기를,
"마조 스님 법문은 요즈음 또 달라졌습니다."
법상이 물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라고 하십니다."
법상이 말하기를
"이 늙은이가 끝도 없이 사람을 혼돈시키는구나. 너는 네 맘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해라.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가 조사께 말씀드렸더니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매실이 잘 익었구나."」
관음사의 두 번째 문
일주문이 서기 전에는 이 문이 일주문이라 불렸습니다. 이제 일주문이 있으니 이 문은 금강문(金剛門)인가? 이 문을 들어서면 넓은 곧바로 대웅전이 나옵니다.
비니초님과 미소님
대웅전(大雄殿)
이 대웅전은 1977년에 지은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입니다. 안에는 본존 석가모니불과 좌보처 문수보살, 우보처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佛身充滿於法界 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 몸 온 우주 법계에 가득하사 普現一切衆生前 보현일체중생전 일체 모든 중생 앞에 두루 두루 나투시고 隨緣赴感靡不周 수연부감미부주 인연따라 감응함에 두루 하지 않음 없네. 而恒處此菩提座 이항처차보리좌 허나 여기 보리좌에 항상 앉아 계신다네.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넓고 넓은 자비원력 항상하여 다함 없고 汪洋覺海渺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넓은 깨침바다 헤아리기 어렵다네.
대웅전(大雄殿) 편액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지장탱화(地藏幀畵) -불기 2518년(1974) 조성-
신중탱화(神衆幀畵) -불기 2521년(1977) 조성-
화기(畵記)에 「世尊應化 二五二一年 丁巳至月朔日 造成奉安 于冠岳山觀音寺 大雄殿 中壇」이라 했으니, '불기 2551년 정사년(1977) 음 11월[至月] 초하루[朔日], 관악산 관음사 대웅전 중단에 봉안하였다.'는 뜻입니다.
이 때의 증명법사는 고암 상언(古庵祥彦)이고, 금어(金魚)는 인법(印法)이며, 주지는 종 하(宗夏) 스님입니다. 참고로 적어 보았습니다. ^^
천장의 연등 모습
헌성비(獻誠碑)
이 헌성비는 1973년 진산당(晉山堂) 박종하(朴鍾夏)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사찰중흥 을 위한 장기불사계획을 수립하고, 1977년에 많은 신도들이 동참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형 대웅전을 중창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시주자들의 이름을 새겨 길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여겨집니다.
비 옆면에 '불기 2524년(1980) 경신년(庚申年) 3월 주지 晋山鍾夏 중창(重創)'이란 명 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종무소 및 요사. 공양간 등이 있습니다.
ㄷ자 형태의 건물 같이 보이지만 두 개의 독립된 건물입니다. 왼쪽은 팔작지붕의 공양 당이고, 오른쪽은 ㄱ자형 팔작지붕의 건물 중앙은 종무소, 우측은 요사채입니다.
지하에 법당이 있는데 어린이ㆍ청소년법회를 여는 것 같습니다.
요사채 옆은 지하법당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는데 이곳은 들어가 보지 못 했습니다.
옥외 관음전 모습입니다.
소나무가 마치 일산(日傘)을 받쳐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기 2549년(2005)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입상(觀世音菩薩立像)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
왼손엔 감로수(甘露水)가 든 보병(寶甁)을 들고 오른손은 중지를 동그랗게 말아 쥔 설법 인(說法印)을 하고 계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범어 아왈로끼떼슈와라 보디쌋뜨와(Aavalokiteśvarā bodhisattva)를 한역 한 말인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은 광세음(光世音)ㆍ관세음(觀世音)ㆍ관음(觀音)으로 한 역하였고, 현장법사는 관세자재(觀世自在)ㆍ관자재(觀自在)로 번역하였습니다.
관자재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은 같은 명호지만 지혜를 강조할 때는 관자재보살이라 하 고, 자비를 강조할 때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이 친숙하지요. 나무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南無 大慈大悲 救苦救難 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觀音菩薩大醫王 관음보살대의왕 중생의 병 고쳐 주는 관음보살 대의왕 甘露甁中法水香 감로병중법수향 감로병 속에 있는 법수가 향기롭네. 灑濯魔雲生瑞氣 쇄탁마운생서기 마의 구름 벗겨지고 상서기운 일어나서 消除熱惱獲淸凉 소제열뇌획청량 끓는 번뇌 사라지고 청량함을 얻으소서.
다음은 삼성각과 삼성각 벽화이야기와 사리탑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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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서 깊은 관음사의 유래와 관련기록 등을 순례에 되 짚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_(())_
관음사가 이 지역에서 포교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 스님의 원력이 곳곳에 배어 있고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_()_ _(())_
나무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 옴 아로륵게 사바하" 구족신톨력 광수제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고아일심 귀명정례.
몇번 참배할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번 순례로 인하여 관음 도량 확실하게 알게 되었내요.
더불어 우리가 관세음 보살님의 위신력에 귀명 해야하는지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관음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 그리고 관음 신앙에 대해 자세한 설명 순례를 통해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잠깐이라도 황심행님을 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감사합니다. _()_ _(())_
5년 전과 5년 후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함께 못해 아쉽구요_()_
함께하시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소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길 걷기입니다. 감사합니다. -^ _()_ _(())_
관음사 두루 살피시고 다음에 이어지는 관악산도 오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신원사가 아니라 남산
언제나 백우님의 상세한 순례기를보면 그때 함께한 시간들이 다시금 떠오른답니다.
감사합니다._()_
예전에 관음사를 각기 찾으신 바 있는데 이번에 함께하니 참 좋았습니다. _()_ _(())_
모양만 살피고 가면 무슨 절인지 잘 모르게 됩니다. 저 즉심시불(卽心是佛)비를 세운 뜻만 알아도
이번 순례는 의미가 있다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비가 내려 내심 걱정했는데.... 백우님의 친절한 문자까지 보내주시고...
그 덕분인지 날씨가 상쾌하고 좋았습니다. 약간의 황사가 있었지만 전혀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랫만에 뵙는 백우님을 비롯하여
정파님, 묘법님, 비니초님, 처음 뵙지만 반갑게 맞이해주신 염화미소 부부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게 되어 무척 즐겁고 그 시간이 또다시 그리워 집니다.
향불님들 모두모두 건강하십시오.
늘 전날은 비가 내려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지만 당일에 일을 그르친 적은 없습니다. _()_ _(())_
향불교가 순례하면 천상에서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만나 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