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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진리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게 전개되며 추구하지만
대부분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번번히 실패하거나 헛다리만 짚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따나깨쳤다고 하는 것을 직관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자다가 봉창뚜드리는 소리만 하는 것 같고. ,, 거기에 착각하는 사례로서 즐비한 저주파의 파동만 발생시키게 됩니다.
그 맥락은 대부분 포스트 모더니즘 문명세계에서 오는 페단인데, 모든 것이 진리일지데 진리와 비진리로 구분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오류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금한덩어리를 보았음에도 한쪽은 금 아님, 한쪽은 금으로 취사선택하여 여전히 금인 것을 금아닌 것으로
오인하여 이를 쓰레기처럼
유기하는 작업만 하는 선별과정으로 논 하고 결정해 버리는 모순을 내포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점이라 그러합니다.
그렇게 되면 온 덩어리 금을 사금 몇쪼가리로 구별하여 이를 부수고 빠세고 가루를 내어서 저울 위에 올려놓고는반짝거리는 사금을 바라보면서 획기적인 수학이라고 경건해하여 신통방통 한 듯이 자화자찬 한다 이 말입니다.
이를 정의라고 버릇하는 통념이 일반화 되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읍니다.
매양 금인데 금의 온존함을 보지 못하는 탓입니다. 그렇다고 죄는 아닙니다, 착각의 논리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명제에 빠져 나름 심각하고 진지스러운 표정으로 착각한 사실을 입증하는데는 무리고 없으므로 (금에서금을 발견한 것이므로) 이를 마치 경건화 하는데
이러므로 유기된 진리에서 떨어져나간 같은진리의 입장에서 유기되었는데 이 유기된 명제들이 가만히 있읍니까? 쓰레기 취급받으면서도 활동을 하지 않겠는가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뒤 덮고
공격하며 그래 나는 쓰레기다 오염되볼래 하는 식으로 세상에 경고장을 내 보내고 있는 와중입니다.
이러한 흑백논리의 여과적 의미로 실험정신에만 의존하는 것은 필요한 것은 동의하나
제한적이며 한계적인 단위별에 정신이 다 집중되므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참다운 발견은 사람들의 인식점의 관찰과 통찰을 진지하게 구축하는 전제하에 전체를통각하는
사고인식으로 개혁해야 하는
사고력으로 전환 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세간사 살아가며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나 자연흐름의 동태는 전부 진리 그 자체입니다.
또한 진리라고 말 하는 것도 구차합니다. 진리라는 말을 낼 수도 없다 이 말입니다.
모두가 금덩어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금덩어리인데 금덩어리라 특정할 만한 말이 의미가 없다 이말입니다.
이 까닭은 진리를 논하면 전체가 진리인데 포스트 모더니즘은 진리가 비진리와 동시에 나타내는 습관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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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나서 누구를 린치하고 서로 싸움질 하고, 내 마음 나도몰라 하고 사랑의 불가피한 배신때리는
심순애 심정도 그것은 진리라고 포함시켜 논하여 이치의 공정성을 찾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포용함의 수용적 원리도 함께 함축되어져 있는 사물의 이치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러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진리 비진리를 다 포함하여서 제정리를 해야
모든 것이 진리의 지평을 열게 되는 것이고 , 그 진리라는 언어나 문자도
구차하여 내비릴 정도가 되어야 온존한 진리의 자체가 보인다 이 말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진리라는 의미를 말씀하실때
말하는 문자나 언어마져 내비리라 이렇게 정의하는 성인들의 말씀됨은 지당하고 맞읍니다.
모든게 진리이며 모든것이 금덩어리다 하는 이러한 이치에 대하여 본인이 이야기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수십년간 글쟁이 흉내를 내지만
내가 스스로 지어낸 말 단 한마디도 없읍니다, 전부 성인들께서 하신말씀을 소개 한 것 뿐입니다.
금강경 제 6분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의 석존의 말씀이 있읍니다.
정신희유분이라 함은 바른믿음은 아주 희소하다는 뜻인데, 바른믿음은 올바른 진리를 확연하게 믿는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인데.
진리는 이미 구축되어있읍니다, 성인의 말씀자체가 진리라고 여기신다면 이와 같읍니다..
이 금강경 을 의역하게되면
비진리세계 에서 진리의 세계로 건너가고자 하면 그 사이에 강이 있어 그냥 건널수는 없는 입장으로 상정하여 살펴본다면 예를 들어 표현하여
비진리세계에서 진리세게로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뗏목이 있어야 함인데 (불경, 부처님 경전)
일단 건너간다라고 하면 건너가서 진리의 언덕에 다달았는데 뗏목(불교의 가르침의 경전, 진리의 내용) 을 짊어지고
육지인 언덕위를 올라 가야 하는가 , 아니면 뗏목을 강에다 놔두고 언덕에 (진리의 세계) 올라가 진리를 밟아야 하는가 를
말씀하신 것이 금강경 제 6 정신희유분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이라는 자체의 성인의 말씀인 진리의 경전도 다 내비리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표상점은 이렇다는 것이지요. 진리라는 경전(뗏목) 을 짊어지고는 진리의 경계점에 오르지 못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뗏목을 강가에 놔두면 다시 다른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여 뗏목으로 이용해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거가는데
도움이 되므로 그냥 강에 놔두면 되므로 유기하는것도 아닌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말씀인 경전은 그러므로 뗏목입니다, 진리를 실은 배입니다, 이를 반야(배)라 하고 지혜라 합니다.
그런고로 부처님 법은 뗏목으로 누구나 공유하고 피안으로 건너갈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하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경전자체를 들고 돌아다니고 어디 시장을 가더라도(진리의 의미) 경전책을 이고 다니지는 말라
하심과 같은 것이 성인의 경전 말씀이다 이 뜻입니다.
그리고 수행을 하고 공부하여 진리의 언덕에 올라가보면 건너온 차안에도 있는 언덕처럼 건너온 피안의 언덕도 똑 같음을 보고.
뗏목도 그것을 가르켜 준 진리의 말씀인것도 죄다 알게 되는바. 차안피안그리고 뗏목 세가지다
다 금덩어리임을 발견할때 , 진리를 체득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다기 억지로 건너갈 필요도 없으며 그 자리에서 진리를보는 것이니 현실의 모든 세간사도
전부 진리다 이 말이니다, 이를 발견하는 곳이 진리처를 보는 자리이고 수행자의 결론은
그냥 그자리에 머무는 힘을 지니게 되는 상태를 발견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차안이 다르고 피안이 다르며 뗏목도 다르다는 전제하에 수행을 하고 진리를 깨치겠다고 경전을 피고 공부를 하지만 일단 뗏목으로 건너가서 피안이라는 진리의 언덕에 오르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분리되고 취사선택하는 명제로 인식하지만
결국 피안으로 오르고 보면 전부가 진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대 깨친다 이러함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공부는 바로 이를 말합니다.
이로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을 소(牛) 라고 했읍니다.
소는 말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버릴것이 단 하나도 없읍니다.
그런고로 소를 진리의 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무슨의미냐.
소는 한평생 남의 살점도 안 먹고 초목을 의지하여 먹는데 그것도 아주 억센 풀도 먹으면서
되새김하여 소화하고 단백질이 견고한 근육과 살을 만들어 육체로 나타내고
노는 날이 없이 인간을 위하여 하루종일 일을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기로 제공되고, 가죽은 옷이나 추위를 피하는 방패막이로 쓰이고
뼈도 전부 필요이상으로 인간들의 식생활에 다 발라먹을 정도로 어느하나 내 버릴 데가 없읍니다.
소는 똥도 인도에 가보면 연료로 쓰고 집안 벽을 소똥으로 조성할 정도 입니다.
그리고 뿔이 있읍니다,
불합리한 해악으로 공격하면 반드시 반응을 보이고 한 성격할때는 그 힘이 아주 억셉니다.
다만 정직성으로 순응하여 반응을 나타낸다 이 말입니다.
소가 미리 공격하는 것 본 사람있읍니까? 시비걸면 그것과 맞대응으로 돌려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뿔을 가진 동물이 순한 짐승이 되는 것입니다.
착한자는 뿔은 지녀야 한다 이 말입니다.
또한 소의 우항은 약재로 유명합니다.
아주 놀래거나 경끼를 하여 숨이 넘어설정도로 신체대사조절이 막힐때는 우황청심환의 약은
만병토치약이 됩니다.
백중날 조상에게 천도지낼때 힌소의 똥이 필요합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소의 똥을 부처님 전에 받쳐야 어디하나 버릴때 없는 소의 이 귀한 보석같은
것에 미천함으로 땅에 버려진 것을 부처님게서 향기로 받아지닐때
부모 조상님 들이 지옥에 덜어져 해멜때 백중의 정성드린 공양을 바친 다음
여러가지 음식과 똥의 향을 피워 일단 수행자이신 성직자 스님을위해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조상천도를 해 주는 운전사로서 가이드이므로 험한길을 가서 우리 조상님을
천도하는데 까지 가서 제를 올리므로서 정성을 드려 공양하는 것이 백중날 아닙니까?
그와 같읍니다. 소는 똥도 금덩어리입니다.
소 내장만 금덩어리도 아니고 소 가죽만 금덩어리도 아니며 소의 전체가 전부 금덩어다 이 말입니다.
모든 진리는 그러하다.
그러므로
예를든다면 진리 비진리라는 지평의 광할하게 세상모습이 펼쳐저 주어졌는데.
자꾸 비진리라는 명제를 찾아내면서 버리고 자꾸 진리라고 여기는 명제만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 광막한 지평은 전부 다 내비리고 그 지평의 아주 극지점으로 마치 송곳같은 날카로운
쇠막대기로 1 평도 안되는 깊이로 자꾸 깊에 파 들어가는 결과만 초래한다 이 말입니다.
이를 우물안에 개구리라고 장자가 논평했읍니다. 진리를 찾다가 우물안에 개구리가 되어서
되겠읍니까? 광막한 지평 전체가 진리자체다 이 말씀입니다.
그 광막한 지평을 다 내비리고 말입니다. 금에서 금을 자꾸 분리하고 금을 찾는 황당한 진리의 착각을
온존함으로 단언하는 모순점을 말합니다.
지금 진리를 행한다거나 하는 것을 말로 주장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대부분 이 짓거리를 한다 이 말입니다. 저도 매 한가지 입니다.
글로서 진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진리의 측면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것과 같읍니다.
다만 이러한 것이 있더라 정도로 알려주고 소개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지
진리의 당체는 온존함을 발견해야하며 스스로 인식의 지평을 개혁하여 스스로 목도할때
전부가 진리이므로 진리라는 말이나 문자도 다 놔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리라는 생각이나 궁리하는 것을 다 놔버릴때 전부가 온통 진리임을 본다 이 말입니다.
이를 쉽게 전제하여 말한다면
모든 세계가 이미 나인데 나라는 존재를 내 몸을 한계로 제한하고 나를 찾는 진리의 마당에 서서
모든 세상이 나라는 사실을 발견할때는 이미 나라는 존재의 생각점을 놔 버리게 된다 이 말입니다.
이를 무아(無我: 내가 없음) 지경을 본다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두가 나인데 내가 특별하게 지정되어있을 수 없음을 보는 자리입니다.
나는 없는 것이 내가 아니고 모두가 나라는 사실로 인식점을 개혁을 할때 내가 없는 것과 같음을
보게된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읍니다.
진리의 속성에 대한 마지막 종점은 바로 이러하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모두가 진리다, 모두가 전부 금덩어리다 이 말과 같읍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진리의 공부를 행할때 결론은 무엇인가 " 환지본처" 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위한 공부를 하고자 하여
머리깎고 처자권속 다 버리고 토굴에 들어가 공부를 한답시고 면벽 십년 을 처박혀 있었다 합시다
진리를 구현하는 과정은 되겠지요. 하지만 결론을 버킹검입니다.
옳은 진리를 깨쳤다면 다시 세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이를 "환지본처"(還地本處) 라 합니다.
세간으로 다시 돌아와 처자 권속도 다시 만나 동안 미안했다고 이해를 구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 하면서리
이불속에서 아방궁도 키우고 사회활동도 하면서 봉사 헌신 하면서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세상의 현주소와
어깨동무를 하고 같음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된다 이 말입니다..
저는 불교도 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도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야 불교도가 된다 이말입니다. 불교아닌것도 다 함축하여 한마음을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몸이 너무 쇠약해서 입원중에 의사의 권유로 불교도인 저를 보고 보신탕을 약으로 이용하면 효과가 있을테이니 우선 몸을 추스리라는 적극적인 권유 말씀을 해 주었읍니다.
죽었다가 살아난것이 너무 반복하므로 의사가 안스러웠던 것 같읍니다.
목적하는 바가 있어 몸을 추수려 소기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입장도 나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몸소 계율을 지키는 자인데, 개고기를 먹다니... 이를 취할때가 있읍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정관념의 계울의 규정에 걸려 여기에 메이면 진짜로 계율을 지키는 고정관념에 묶여진것이니 비계율을 포함하는 하나를 행할 수 없다 이 말이기도 합니다.
자유롭지 않으므로 그러한 계율을 이미 계율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수행의 입장에서 기본 지침을 지니고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의 입장에서 진리의 터울이라는 의미와 현실의 비진리라는 의미의 고정관념을 깬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진리를 목도하는 자가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한 분이 계십니다, 이중에서 원효대사를 보기로 들 수 있읍니다..
원효대사 처럼 수행하고 깨친다음 다시 속세로 환지본처하고 승려신분에서 지키는 계율자체를 깨뜨리고 환속하여 무열왕 딸냄이를 꼬셔 아내로 맞아 들이고 신라모든 나라에 불사를 추진하여(무열왕 장인의 지원을 받고)
대한민국 사찰의 대부분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다 축조하여 불사를 발전시킨 계기가 된 것입니다.
무열왕과 그 딸이신 효석공주인지 하는 분과 결혼을 한 그 분들도 전부 금덩이리임을 발견한 진리를
견한자로서 원효대사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환지본처 했다 이말입니다.
해동불교로서 전세계에서 부처님 이래 유래없는 대 과업과 진리를 발견하여 전파한 위대한 고승입니다.
대한민국의 불교의 기본적 근간을 다 세워놓은 진정한 깨침을 이룬 각자 입니다.
또한 실제로 부처님 의 중생들에게 공양을 받는 모습을 보게되면 이러합니다.
부처님께서 걸식하실때 중생들이 공양한 음식에는 벨에벨 고기종류가 다 들어 있었읍니다.
부처님께서는 율법을 제정하신 교주인데 당신 스스로 그 공양을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받아 먹어야 했읍니다.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그 음식을 바치는 중생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일곱집 만 순서대로 불특정하게 찾아뵙고 중생들에게 공양을 받읍니다.
빛 7 을 말합니다.
이 공양을 받으면 다시 이 공양받은 만큼 진리를 배워 중생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의미이행을 꼭 하게
된다는 다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로 태어난다...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일러주신 경계입니다.
공양을 받으면 빛 7 은 원운동(당시 부처님의 깨친 마음으로는 원각경) 다시 돌이켜야 하므로
공양의 빛을 진리의 체득을 하여 반드시 해당 공양주에게 복을 주는 공덕을 쌓아 회향 (다시 돌려줌)
해야 한다는 수행원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보편적으로 음식으로 사용한 고기음식도 그날 먹은 음식에 대하여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므로 고기도 받아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이 이치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면 이러합니다.
우리들은 매일 생각이라는 것을 먹습니다.
그렇지요 외부의 작용 등 동태를 보고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을 냅니다, 그렇지요?
스스로 나 혼자서는 외부의 의존성관계성이 없이는 절대 생각을 못 내기에 하는 말입니다.
나 혼자서 절대로 스스로 생각을 낼 수가 없읍니다, 외부의 상대가 주어져야 외부를 보고 생각을 내서
자기 마음속으로 가져가는 원리가 생각입니다.,들판에 꽃을 보면 꽃을 보고 저것은 꽃이 생각을 낸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내는데 생각을 내는 당사자로서는 그 생각을 자기 몸에서 음식을 취한것과 같은이치입니다.
꽃을 보고 생각낸 것이 자기 몸(속) 에 생각이 머물기 때문에 생각을 취햇다, 생각을 먹었다 라는 것으로도
이치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꽃을 생각한 당사자는 꽃이 자기 몸에 살이되고 뼈가되고 피가되는
것과 같은 자양분이 되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생각한다면 꽃은 관세음보살처럼 이미 사람 생각으로 사람몸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를 육화 라 하는 것입니다.
육식으로 생각을 내는 인간은 그 생각이 윤회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것입니다.
몸도 이렇게 유기적 소통의 운동으로 매번 변화 한다 이 말입니다.
이를 뒤집어 말한다면 내가 본 꽃에 의하여 나는생각을 냈으므로 (마음작용) 나는 찰나지간에 꽃이 되어지는
순간이다 이 말입니다. 이를 빛을 본다 하는 것입니다. 이 꽃은 꽃을 보는 당사자에게 공양한것이고
그 공양점을 다시 그 당사자가 회향하는 빛의 작용으로 돌려 받게 됭어있다.
이를 인과응보 현상이라 하고 삼매인중에서 보현보살 행원으로 일어나는 생명의 소통자리 입니다.
꽃을 보고 생각을 낸 것이 내 몸에 들어가 있는 형국을 말합니다.
이를 장자의 논리대로 말한다면 내가 꽃인가 내가 사람인가? 도시 몽중이로다 하는 것과 같읍니다.
스스로 내가 꿈속에서 꽃이 되어있는데 정신 차려보니 또 나자신이 된 것이므로
내가 꽃인가 ? 하고 꿈중의 허망한 모습이 자기 자신이다라고 하는 여기며 산다 하는 것이니
이를 뜻합니다.
꽃도 내 마음이요 나라는 몸도 내 마음에서 온것이니이를 원효대사의 말씀처럼 일체유심조 라고 전파한
법어가 됩니다. 진리라는 금덩어리는 꽃도, 나의 몸도 다 금덩어리가 됩니다.
마치 고등어 한손을 먹으면 내 몸속에 고등어가 들어가 머물러 나의 살이되고 피가되는 순간이다 이 말입니다.
내가 고등어가 되어 머무는 것이되고, 고등어가 당사자 인 먹은 사람의 살이 되었으므로
고등어가 사람으로 육화 하여 사람이되어지는 순간입니다. ( 만약 진리의 본체가 무아지경이라는 것을 본다면)
그러므로 생각은 자기 몸에 들어가 있기에 생각을 먹은것과 같다 이 말입니다.
그 어떤 상대적인 평가를 하고 내는 생각대로 나는 그렇게 같음을 행하는 부처이므로
외부의 상대자에 대하여 저 사람은 참 좋다! 라고 생각을 내고 그 생각을 다시 자기가 먹었다면
그사람을 좋은 사람이라는것을 먹었으므로 그 사람도 자기를 좋다라고 여기기는 사람에게
들어간 결과이므로 좋은사람으로 순간 찰나에 탄생한것과 같읍니다.
이를 소통이라 하고 이심전심이라 하는 것으로 업식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양태에 따라 좋고 나쁨은 결정되는 것이고 거기에 대하여 회향되는 것이므로 생각자체가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생각을 낼 수 있는 모든 만물은 전부 금덩어리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될때
환지본처를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신탕을 불가피하게 먹게 되면 그 보신탕의 개고기는 내가 먹는데, 공양을 받는 마음으로 내가 개고기를 공양 받는다 고 생각을 낸다고
마음먹으면 (약간 합리화같은데 말입니다, 이를" 자리이타"라 니도 좋고 나도 좋다입니다: 불교적 정의)
보신탕의 주체가 되는 그 살점은 나의 몸속에 들어가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 말과 같읍니다.
그 보산탕의 고기 당사자는 사후적인 상태로 내 입에 들어가서 사람으로 환생하는 찰나 입니다, 이를 육화 라 합니다. 윤회의 기본입니다. 내가 그 생명을 해 한것은 아닌 인연을 가지고는 있읍니다.
좋게 공양의식을 행함도 계율이다 이 말입니다. 이를 역관한다 합니다.
경허스님의 대선사도 나날이 소주만 먹고 생활했읍니다, 이로서 역성보살이 되십니다.
이는 만 중생의 모든 일상이 전부 진리의 처처라 하여 환지본처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돌아가신다 합니다, 있던대로 도로 간다는 의미인데 이를 환지본처 한다라고도
할 수 있읍니다, 이와 같읍니다.
성철스님은 항상 이러한 이치를 법문하며 스님들에게 연기법을 강의하시곤 했읍니다.
보신탕을 먹을때 그 마음이 어떤가에 대하여 공덕인가 죄악인가로 갈려지는 것인데
보신탕 자체가 진리의 본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을 발결할때 깨어나는 과정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일체유심조라 원효대사의 말씀은 바로 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마음먹기에 따라 나는 개의 살점을 인간으로 환생케 해준 부처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원효대사의 화쟁론이기도 하고 종교적 진리의 고정관념을 없애고 무아지경으로
무인상 무아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이면 보살일새니라 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원효대사는 금강삼매론을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는 유명한 강설교재가 되었읍니다.
이와 같다 이 말입니다, 진리는 따로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더라 , 일체 유심조 를 달관한 원효대사의 화엄사상입니다.
저번에도 소개하였지만
내 아내는 내 아내만이 아닙니다, 친정집안의 부모에게 아주 중요한 보물같은 자식이고
밖에 나가면 친구들간의 교류를 하는 문화인이며 사회인이 되고, 직장에 나가면 직장인이며
자식한테는 어머니존재이고 혹은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도움받고자 할때는 내 어머니 처럼
여겨야 할 것이고, 때로는 나의 누이동생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이를 고정관념을 없애라는 뜻이 성인의 말씀이다 이 말입니다.이를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
금강경에서 설하고 계십니다.
진리의 당체는 오로시 불성을 지닌 부처님이 내 아내로 이름하고 같이인연한다 ! 이를 진리의 당체를 믿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경전말씀으로서 진리의 자체로 세상을 가르치고 있는데 특징은 말입니다.
나라는 관점에서 보게된다면 전부 외부에 존재한 것 을 마주하고 흠모하고 존경하면서
진리의 당체를 배웁니다.
그렇지요 다만 예수님의 말씀도 성경말씀이니 외부에 있고 부처님 의 말씀인 경전도 외부에 있는 것을
취해서 읽고 독송하고 참구하고 합니다.
이 무른 진리의 체(體)라는 성인 말씀이 내 생각에 묻어서 내 몸에 들어와서 소화를 시킬때 성인의
말씀여부가 오롯이 나의 몸이 되어 젖어든다 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오롯하게 객관성의 진리를 체득하게되면 자기자신자체도 객관화 되는 것으로 몰록 젖을때
깨어나는 이치가 있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그 이전의 과정중이라면 아직도 외부의 대상을 궁리하는
상태를 진행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대부분 정도의 정상점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다다르지 못하고 만다 이 말입니다.
왜인가? 아직도 유일하게 나라는 존재가 남아있기 때문에 주객의 대상으로만 설정되는 과정의 내면의
정체성을 해결하지 못하여서 (외부에서 찾으므로 자아의 내면은 모른다)
곤곤해진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외부로 확장하는 공부를 하지만 그래도 내부로 지향하는 공부는 없을까?
궁극적으로 나는 무엇인가? 라고 하는 생각에 사무칠때 외부로 확장하기 보다 자기자신의 정체성에
대허여 현실적으로 동반한 세간의 삶을 포함하여 나는 누구인가를 구체화 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부는 없을까 하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가 하고 물어보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자기자신의 내부로, 내면으로 파고드는 공부가 있는데 이를 逆觀法(역관법)
이라 하여 객관적으로 생각을 확장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자 하는 생각을 내야 하므로
거꾸러 자기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분석요체로 관찰하는 관법을 말하는데 이를 易(역) 이라 하고 자기 존재성에 대하여 과거로 파고 들어가는 사색법을 말합니다.
易(역)이라 함은 변화를 의미하는데 변화하는 기원의 처음 시작점으로 거꾸러 파고 들어가는 관찰법을 역관법이라 하는 것을
역이라 이름한다 이 말입니다.
나라는 당체의 존재성에는 그렇다면 무엇이 존재하는가? 거기에는 육친관계가 결부되어있읍니다.
나의 존재처와 아주 불가피하게 결부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적이며 사실적이고 우리들이 항상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감에 가장 가까운 인연이 바로
육친관계인데 이 육친이 각기 존재성으로 결부된 것도 있지만 모두가 같은 금덩어리로서
바로 내 곁에 주어진 같음 진리의 금덩어리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어야 이 진리의 당체를
깨친자가 된다 이 말입니다.
내인생은 나의것! 이거 황당스러운 철없는 퍼포먼스입니다.
혼자 살아낼 수 있다는 저네하에 육친관계의 모든 금덩어리를 배척하고 자기 부분적 금덩이를
지니고 그것이 온존한 금덩어리임을 착각하는 어리석음이다 할 수 있읍니다.
나의 존재를 통찰해본다면 조상부모, 부모, 배우자와 나, 여식자식 등 의 8 자 관계가 결부되어 자기존재는
현실적으로 그 정체성으로 모든 금덩어리 결정체로 진리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 관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결부되어져서 나의 존재는 결정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어있읍니다. 그런고로 육친관게는 영원히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필연적인 나의 몸과 같은 존재로서 육친관이 위대한 나의 보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생은 실패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ㅑ.
그러므로 내인생은 나의것! 온니 미!(only me) 이거 안됩니다,.
독립적일 수 가 없는 존재의 정체성을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정의하고자 한다면 나의 가족론에 대하여 동시적으로 함께 파악해야
나의 정체성과 진리의 가치설정을 확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나에대한 정체성 (카르마) 의 본색을 밝히고자 하는 열정에 들어서면 나의 구체적인 존재에 대하여
육친관계와 주변인연을 유추비교하여 지수화풍공의 빛의 운동을 적용하여 삼각법의 운동으로 연결지어 결부된
힘의 관계로 인생운동이 시작되는데 팔자식의 여덟가지로 분화되어있는 사실로서 육친관계의 운동여부로서 정체성의 실제적 인생반경이 이루어
진다 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읍니다.
이 결부된 인연의 자연적 불가피성의 당체롤 현실화 하는 것은 마주하는 육친관계라고 이름합니다,
모든 개개인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 행불행여부는 육친관계론의 연대성과 불가피성의 동태로 결정되는 것인데
내 스스로 아무리 강하고 똑 똑해서 8 자 의 육친중에 7 자가 당사자를 도와주지 않거나, 육친관계를 잘못인식하고 간과하거나 한다면 자기 정체성은 그러한 간섭작용 의 여부에 의하여 불행으로 결정난다는 엄정한 사실을
공식이나 법이나 이치로서 확연하게 알 수가 있다는것을 말합니다.
아주무서운 이야기도 됩니다.
외부로 경전말씀을 하신 성인들도 결국은 외부의 대상이지만
내부의 정체성에는 육친관계의 가족 의 모든 일체의 결부성에서 아주 막대한 보석궁의 몸으로 나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자본사상가들은 이를 간과하고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편린으롤 자기 자신만을 인격화를 내 세우고 개인화로 모든 결부된 인연을
유기하는 정신상태가 만연되어져 있다 이말입니다, 이는 대부분 기회주의자로 흐릅니다.
기회주의자로 흐르게 되면 기회주의를 행한만큼 다시 받아야 하는 인과율을 동시에 지니고
인생을 가야한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자책입니다. 상대골대에 골을 넣은다는것이 자기 골대에 자책으로 골을 넎는 코스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는 법칙입니다.
다만 자유의지로서 나는 스스로 독립된 인권성품만 주장하므로서 결부성을 관과하여 철리의 이치인
관계론을 등한시 하여 그에 겉맞는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와중이다라고 그렇게 말 할 수 있읍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씀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가족들의 대상과 마주할때도 이는 적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족관계에 대하여 서로 균형론과 결부성을 보고 육친관계의 소통점을 잘 구현하지
않으면 절대 불행이라는 적극적인 자극점의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육친관계론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규명하는 태도와 가족이 무엇인지 어떤개념인지 구체화 하고 이를 밝히는 학문이
바로 음양오행상극상생 이론에서 그 이치를 찾을 수 있다 는 것을 말합니다.
금덩어리은 본연한 자신의 정체성과 결부된다, 만고의 진리입니다.
인생은 독불장군이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관계론이고 육친지간에 서로 의존성의 에너지 현상을 상호반응하지
않으면 그 인생의 정체성은 아주 낙후되고 거리에 해메는 노숙자 신세도 육친관계의 기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주팔자식에 대하여 자기 당사자가 아주 강하게 주어졌다 합니다.
자기 별을 낳아주는자기에 유리한 육친관게의 별들만 포진 되었다면 그 당사자의 기운은 상당히 강하게 존재한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합니다.
이렇게 강한사람은 우선 자연법칙으로 홀애비가 되고, 여자당사자라면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자식복도 아내복도 재물복도 명예복도 전혀 없읍니다.
왜그러한가 자기만 특출나게 강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속성만 발달되었으므로 다른 외연관계는 전부 자기보다 약해야 성립되는 성품으로 발전 되어지기 때문에 고립되어지며 외부의 소통에도 자기만 강한 고집으로 일관하여
소통이 안되는 결과치를 생산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아내는 살다가 도망가기도 하고 아내는 너무 강한 남편의 힘에 의하여 시름 시름 않다가 죽거나
불안한 정서로 자식을 낳다가 사망하는 등의 여러가지 불상사 요소를 받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남자 혼자 살아내는 홀애비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면을 지닌자는 성직자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말입니다 성격이 강하고 독합니다.
대신 종교적 진리안에 집중할때는 도리어 아주 훌륭한 인성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큰 인물도 된다 이 말입니다.
하지만 서로 육친간에 공유하거나 공존의식이 없어지는 결과를 발생시키는 성격흐름의 페단이 주요 원인이
이렇게 강한 별을 가진 팔자식인데 너무 강함에 출가하여 모든 가족들과 격리되는 생활을 한다면 다른 육친과계의 가족들은 영향을 받지 않아서 좋고, 당사자는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는 성품으로 발전하여 서로 좋은 것입니다.
육친관계를 밝혀보는 팔자식의 음양오행의 개념공부는 이렇듯 양태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를 이해한다면 이에 대한 균형론을 깨치고 육친관계의 소통하는 방법을 찿아내어 정상치로
균형을 잡으므로서 인생의 가치에 훨씬 더 효과적이며 복락을 유지하는 대안이 마련 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자식은 운명론이지 숙명론을 아닌것입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은 자기와 결부된 육친관계는
전부 진리이며 금덩어리다 이 말입니다. 외부에서 찾아서는 아니된다 이 말입니다.
일차적인 진리의 발견은 육친관계의 소통점을 이치적으로 찾아 함게 균형을 잡아나가는 일입니다.
이를 중도사상이라 하는 것을 부연해서 소개합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인연의 변화를 바른 상태로 추구하면서 개진할 수 있다라는 사주팔자식의 개념을 확실하게 정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육친법은 말입니다, 특징이 있는데 12 인연법이라 하는 카르마가 정해진 인과율의 이치가 확연하게 존재한다는 사실부터 출발합니다. 이를 인식하는 선상에서
역(逆) 으로 근거를 살피는 작업부터 하면서 안을 밝히고 그리고 외부로 나와 지평을 확대하는자세를 지녀야
인간의 도리이고 인륜이 굴러간다 이 말이됩니다.
현재 지금 이순간으로 인생을 논 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속에서 육친관계를 자기에게 주어진 정보상태에서
인식하고 육친관계를 잘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결과치를 지니게 되면 이상하게도 운로가 그냥 누가
등을 띠다미는 것처럼 술술 해결되는 상태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를 운이라 합니다.
그런고로 인생의 사주팔자는 운이 따르고 운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개척의 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이렇게 일단 정의하고 출발해봅니다.
육친법의 규명은 시공의 과거점의 한계점까지 파고 들어가는 逆(역:거슬릴 역) 을 궁리하느 일 입니다.
무한한 미래로 확장만 시도하면 절대 근원은 모릅니다.
예를 들어
12345678910 11 ....계속 나가면 근원의 기원을 파악할 수 가 없다 입니다.
이를 역으로 ----- 11 10 9 8 7 6 5 4 3 2 1 로 나가면 출발점을 보는 이치가 되므로
원인규명력의 힘이 부여되며, 확실한 자기 정체성의 기준을 살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이를 아트만을 이해하는 관점이라고 힌드니즘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읍니다만
빛운동은 무시무종입니다,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내 인생길에 시작점을 통찰하게되면 그와 같음이 확연하게 돌아와 결과치를 동시에
표현한다는 것을 공부한다 이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공부의 제 1 차 수학은 자기의 능력점을 확실하게 발견하고 능력만큼 인생범주의 틀을
잡아놓게 되는데 그 범주로서 확대지평을 열면서 최고도의 상승지점을 쉽게 올라가는 방법이
열리는 것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운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직접드라이브해야 됩니다.
그래야 운이 내 말을 듣읍니다.
.
그러므로 음양오행을 공부해야 합니다. 오행은 지수화풍공(공간) 의 오대와 같은 것입니다.
미신이 아닙니다.
저번시간에 나열한 육친관계를 일단 살펴보고 시작해보기로 합니다.
丙 甲 戊 癸
申 子 寅 酉 구조에서
시 일 월 년
태어난 일간 甲 木 에서 (양목) 같은 오행인 寅(지지의 木) 卯(음목: 지지의 목) 乙(천간 음목), 甲목과 같은 甲 의
3가지 관계에 대하여 비견 패재 겁재 에 대하여 알아보았읍니다.
태어난 당사자가 이러한 비견 패재 겁재를 만났을때 (팔자식이 해당별이있을때) 자신의 힘을 더 보태어 주는 것을은 있으나 (같은 오행이므로 ) 단지 같은 오행이 뭉쳐 있지만 형제지간이나 바깥에 친구지간이 많아지는 현상과 같음으로 서로 경쟁력도 더 생겨나서 승부작용이 강해지는 성격이 된다 할 수 있읍니다.
결국은 군비쟁재 ( 群比爭財) 가 된다 라고 하는 것인데 무리가 함께 재물을 발견하면 서로 돈 때문에 다툰다는
의미입니다..
군비쟁재란 같은 무리가 길을 걸어가다 돈을 주었다 합시다 ( 돈은 재물의 財 를 말함인데 만약 갑목에서 토를 보면 갑은 토를 이기므로 <목극토: 상극개념> 갑이 남자라면 갑이 만약 토를 보면 토를 이기면서 소유하게 되는바
토는 재물이고 아내나 처가 욉니다.(목극토) 남자는 여성을 취하는 오행개념 때문입니다. 이로서 여럿이 갑목이 가니까 돈을 100만원을 주었다 하더라도 4 명의 친구가 가면
이돈을 최소한 25 만원 갈라야 하고 , 이중에서 친구하나가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까 나를 더 많이 주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충돌이 일어나기 쉬운관계로 군비쟁재가 된다 이렇게 표현한다 이 말이니다.
또한 여성이(남자로서는재물) 하나이면 남성들친구들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형국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군비쟁재 라 이름합니다.
이렇게 갑목에서 같은 목을 많이 보는 사주팔자식은 그러므로 동업을 해서는 아니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사업을 해야 합니다, 또한 어디에가서도 보증을 서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로 음양오행의 육친법을 다 이해하게 되면 팔자식이 보이고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하여
취해진 환경상테에서 균형론을 스스로 포진하여 처신에 완벽을 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패재 라 같은 오행의 별은 반복해서 보게되면 형제싸움이 심해지기도 하고 같은 오행중에 겁재까지
주어지면 배다른 형제도 함께 있는 가족관계이므로 불화가 있다 이 말과도 같은 이치를 말합니다.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번 이상 취하고 사셨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를 유추논리로 추정한다라는 논리도 출현하게 되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됩니다.
인단 갑목은 같은 오행은 음이던지 양이던지 형제자매이고 배다른 형제를 지치앟는 것으로 일단
정리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갑목에서 같은 목을 보게되면 비견, 패재(겁재) 등 두가지 상법이 용어로 나타나므로 용어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위 사주구조에서 보면
갑목 일간에서 특히 월지에 인목을 봅니다. 그렇지요? 월지의 중요성은 사주의 제목(문패) 를 정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환경적 배경을 보는 자리로서 당사자의 성품은 결정하므로
울령을 보는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월간월지는 부모니므이 자리)
갑목에 인목이 월령으로 받추어 주어 힘을 발하지만 형제가 있으면 서로 떨어지고 멀리서
사이를 지키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소개한 사실이 있읍니다, 군비쟁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음에는 인수라는 갑목을 생해주는 별이 있으면 이를 인수라 함인데 어머니별이고 문학의 별.
문서의 별이라 이름합니다, 이를 연계하여 공부하기로 합니다.
일단 해당 사주에 갑목은 자수(水)인 인수가 많아
자기를 생해주고 있는데 다시 인목이 크게 작용하므로 너무강함을 추구함인데 군비쟁재에 걸려
서로 경쟁관계로 노출되어져 있기에 여기에 또 갑목을 생해주는 물이 많아 더욱더 당사자가 강해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럴 수 록 형제지간에 서로 떨어져 살아야 육친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소통할 수 있다
이렇게 보는관점입니다. (수생목 의 상생개념에서 수는 목을 생하므로 수는 어머니 가 됩니다, 어머니 힘을
받으면 어머니 사랑함을 받아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어머니의 자비심도 함께 영향을 받아
인자해지는 특징이 있는데 어머니 별이 많아 어머니 정을 많이 받으면 아전인수(我田印受: 자기 밭에만
물 대달라하는 성격) 성격으로 발전할 수 있읍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해달라는 데로 다 해주기 때문에 버릇이 그렇게 되어지므로서 받는 것만 알지
남을 주는 것은 맹탕입니다.
그러므로 인수라는 별이 단 하나가 사주팔자식이 힘있게 존재하는 것이 제일 좋읍니다.
여러 인수별(水) 이 많으면 과유불급이다 라고 할 수 있읍니다, 독립심이 없어지고 자기 논리에만
신경쓰기 때문에 남의 말을 고지 듣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만 이류려는 성격이 강해진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인수의 별이 태어난 일간 아래 일지에 주어지면 이 남자는 마마보이가 됩니다.
갑목의 당사자 아래 지지에는 배우자가 앉아야 하는 해당 사주를 보면 갑일에 子 水 가 앉아있읍니다.
인수인 어머니가 앉아 있다 이말입니다.
이 남자가 결혼하게 된다면 아내 와 의논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와 의논하는 형국이 되다보니
아내가 기분이 좋겠읍니까?
대부분 이러한 처지에 있으면 이혼할 위기나 서로 별거하여 살아가는 경우가 흔하고 대부분입니다.
음양이치로서는 왜 그러한 까닭을 가지는가를 소개한다면
갑목에 어머니는 水 입니다.
그런데 갑목의 아내되는 처는 재성이므로 토가 됩니다, (목극토)
토인 아내인 재성은 시어머니가 되는 갑목의 어머니 水 를 이기려고 달려듭니다
(토극수) , 그러므로 어머니는 며느리 의 일을 자꾸 아들인 갑에게 꼬드기고 불평을 이야기 하게
되어있읍니다.
그러면 갑목은 마마보이이므로 어머니 말을 듣고 아내만 나무라는 격이 됩니다.
이 세상의 진리는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이기게 되어있읍니다, (토극수 ) 이므로
이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는 안 좋게 되어지는 문화형태를 지니는데
결국는 나중에 며느리 한테 시어머니가 진다는 사실을 깨쳐야 합니다
누가먼저 늙고 누가 먼적 죽읍니까? 시어머니가 더 일찍 돌아가시고 힘이 없어지는 늙음의 길목도 시어머니가
먼저 찾아오기에 며느리한테 나중에는 지게 되어있다 이 말입니다.
또한 갑목의 아내 토 가 다시 자식을 낳는다면
그 자식의 오행을 토생금 (아내가 금을 낳으므로 금이 자식이 되고 시어미 입장에서는 손주를 보는 격임)
으로 금을 보게되면 이 금이 일차적을 갑목 당사자를 극합니다 (금극목)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한테는
관성이 되는데 자식한테 극을 당하므로 아버지는 항상 자식한테는 지게 되어있읍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꾸 화를 내고 지적질을 하면 그 자식이 대항하는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앞에서 더 이상 아내늘 시어머를 위해서 지적질을 할 수 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는 시어머니가 결국 불리하게 됩니다. 이치가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은 마음대로 못한다는 자연적운동이치가 이렇게주어진다 이 말입니다.
아내는 자식을 앞세우고 아버지를 통제하게 하는 힘이 생겼읍니다, 이러한 힘의 역학관계를 잘 꾸려
나가야 집안이 편하게 되고, 이렇게 자기 당사자 아내자리에 어머니가 앉아 잇으면 서로 격리되어
떨어져 사는 것이 좋읍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사이가 좋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처신은 많은 불행을 예방해준다 이 말입니다.
여자의 힘은 자식을 낳았을때 말년이 보람되고 인간의 힘을 드러내는 정당성을 확보한다 할 수 있읍니다.
자식 안놓는다고 좋을 거 하나도 없읍니다, 오히려 불리한 것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배우자끼리 마치 참새가 외줄전기를 타고 앉듯이 외줄을 서로 타고 인생을 걸어가야한다" 라는 속담도 있읍니다.
이번에는 해당 사주팔자식에
癸 水(음 水) 壬 水(양수) 子 水(지지 양의 水) 亥 水(음의 수) 에 대하여 갑목과 한번 관계를 지어
육친관계에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보기로 합니다.
水 는 나무를 낳아줍니다, 이를 (水生木) 이라 합니다. 다시 반복해봅니다
물이 있어야 나무를 생기게 하고 물이 있어야 나무는 자랍니다.
이러한 고로
갑목에서 水 를 보면 水가 자기자신은 목을 낳아주었기때문에 水 는 갑목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사주상에 월령에 水 가 있으면 갑목 일간 당사자는 인수격이라 합니다.
어머니를 인수(印受) 라 합니다. 이 용어를 잘 외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월령에 인수가 있으면 어머니 사랑을 많이받는 주인공입니다.
어머니 사랑을 온존하게 많이 받으면 공부도 잘 합니다.
이로서 인수가 붙어있는 문패를 달면 이 사람은 학문의 장을 여는 기회를 받아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운명선상에서 출발하게됩니다.
아이야! 내가 보따리 장사를 하더라도 너만은 공부를 가르치고 정성을 다 하겠다, 이러한 사랑을 받는다 이
말입니다, 참좋은 운명의 헤택을 육친관계에서 어머니 마음으로 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식은 더욱더 애틋한 사랑을 받게됩니다.
그런고로 공부를 많이 하면 어떻게 된다? 관록의 관청일에 녹봉받는 직업을 갖게된다 이말입니다.
그것은 갑목에서 관청은 (관성의 별을 관청이라 하고 관청은 오행으로 庚금과 辛 금 그리고 지지 酉 금 申 금을 의미합니다: 관성은 위에서 소개한것처럼 자식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통제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는 소리는 여기서 기인합니다)
자기를 통제하고 자신 갑목이 눈치를 보고 처신을 신분계급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말이 됩니다..
나를 통제하고 나를 극하는 관성의 금은 자신을 통제하는 상극법칙에 의하여 금극목의 이치인데 이러한 관계로 주어진 역학관계가 이루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이 관청의 금이 갑목을 누루지만 금(금은) 인수인 水 를 낳아줍니다.(금생수) 이러한 水 인수는 그러므로 학문의 별도 되고 어머니 별도 되는 이치인바, 갑목인 일간을
생해주므로서(낳아주므로서) 쓰리쿠션으로 관인상생을 해 주기 때문에(금생수생목) 갑의 힘은 학문이 있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으므로 인자한 성품으로 발전하는 성품을 소유하고 있으므로성을 사회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신감이 있고 능히 관청의 눈치를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사려가 깊음) 이러한 구조를 자니면 관록을 받는 공무원으로 출세가도를 향하는 기회는 확보한다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학관계가 사주팔지식에 놓여있으면 인생이 아주 복락이있고 저명한 교수가 되는 기회가 있거나
재산을 많이 가지는 자로 일신이 잘 풀리게 됩니다, 이를 관인상생격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별들이 알맞게 사주팔자식에 안배되면 관록운을 지니고 국가에 녹봉을 받는 벼슬아치가
된다 이름하는 것이 관인상생격이라 하는 것입니다, ( 갑목을 극하는 금을 보면 정관격(관성, 음에서 양 , 양에서 음, 편관격: 음에서 음 양에서 양을 보는 경우의 이름)
또한 남자일주가 甲 이라면 남자가 통제를 받는 것은 관청뿐만(경 금, 신금 등) 아니라, 자식한테 통제를 받게 됩니다.자식에게 통제받는 볅이 있으므로 그 자식이 현명하고 똑똑하게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것과 같은 이치가
동시에 대두된다 할 수 있읍니다.
운명론을 이렇게 유추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편관 정관의 관성별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자식을 이기는 아버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주에 관성이 두퉁하고 세력이 있게되면 자식운도 좋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당 사주팔자식은 월령에 寅木 이므로 水 가 없어 인수격으로는 보지 못한다 할 수 있읍니다.
<사주의 문패는 월지로서 일간과 비교해서 결정한다>
그러므로 갑목 에서 癸水, 壬水, 子水, 亥水 등 을 보면) 이는 인수(印受) 라는 이름을 부치는데
음에서 양,ㅡ 양에서 음을 보면 인수 이고 음에서 음 양에서양을 보면 편인이라 이름합니다.
편인은 기능직의 특수 솜씨가 뛰어나서 별정직을 선호하게 되는 관록을 지니고
편인이라 함은 친 어머니가 아니고 서모 양모 등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인수가 없이 편인만 사주팔자식에
있으면 편인도 친어머니가 되는 법칙도 있다라고 일단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편인이 서모가 되는가 하며는
양의 甲 목에 癸 水, 子水 는 음수 이므로 인수입니다.
그런데 양의 갑목에서 壬水, 亥水 는 양입니다, 양에서 양을 보면 편인입니다.
임수 해수는 바다 물입니다, 그러므로 갑목의 나무를 아예 물의 힘이 커서 갑을 표류시킵니다.
그러므로 갑목이 물위에 떠서 표류하는 형상입니다. 바다의 부력이 갑복을 밀어낸다 (부력)
입니다, 친 엄마처럼 사랑해주지 않고 밀어낸다는 자연이치가 있어 서모라 이름합니다.
자식은 일단 친모가 키워야 성경이 비뚤어지지않읍니다.
이혼을 해도 자기 자녀를 안고 가는 어머니는 현명한 여성이 되는 이치기 이것입니다.
자식은 치마에 싸고 인생역정을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 인륜의 도 가 된다 할 수 있읍니다.
별 희한한 합리화를 펴면서 내인생은 나의것 아무리 그렇게 포장해 보아도 자연적이치에
순화 되지 못하므로 자식 과 헤어져 사는 어머니는 많은 아픔의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친 자식과는 늘 소통하는 상태에서 이혼을 해도 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주상에 서모인 편인이 많은 사주는 편인격으로 성격이 아주 잔인하게 변하여
아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읍니다, 결손가정에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편인이 많은 사주는 그 사람 스스로의 의중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였고
편인을 올빼미라고 하였읍니다.
남 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항상 밤에 활동하는 등 소외성을 많이 지니는 경향입니다.
이를 효인살( 梟印殺) 을 지녔다고 하여 올빼인 梟(효) 를 씁니다.
이러한 사주는 해당 당사자를 기능면으로 전문화 시키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주 기능이 발달하고 손기술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에 집중하는 힘이 강해진다 하는 것이므로
취직을 해도 별정직으로 취직하거나 전문직의 의사 등의 특수전문분야에 강한 힘을 지닌다는 장점도
있읍니다.
오늘 인수와 편인 두가지를 공부했읍니다.
다음에 계속해서 소개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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