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지도인의 49일 폐관수행과 적멸 체험담 산승은 근간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만길 벼랑에 매달려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사투의 마지막 순간 과 같았다. 그러나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보니 그대들에게 격려와 경책의 의미로 몇자 싶고나 절지絶地로 들어와 오불관(五不觀: 다섯 가지 감관을 다스림)에 든지 123일이 되었다. 단식을 시작한지 38일이 되었다. 모두들 잘 알다시피 이곳의 옹달샘은 천하에 비할 데가 없이 물이 좋고 수량도 항상 풍부하였다. 언제나 철철 넘쳐 십수년의 세월에 단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 심했던 여름 가뭄과 겨울 가뭄에도 이곳의 물은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 단식 수행을 시작하기 10여일 전의 어느날이었다. 하루는 어떤 노인이 찾아왔다. 사람이 오지 않는 이 곳에 약초꾼처럼 보이는 매우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망태기를 매고 찾아온 것이다. 기침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왠 노인이 산승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산승은 묵언 중이어서 말은 못했지만 사람을 보니 내심 반가웠다.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니, 이 노인은 다짜고짜 험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행을 할랑가,낙행을 할랑가?" 대뜸 반말투로 묻는 것이었다. 산승은 마음 속으로 '무슨 낙행을...'하면서 우물쭈물 하였더니, 이 노인은 "배 터지게 마시고 뜨끈뜨끈히 지지면서 그게 무슨 고행인고?" 하며 눈을 부라려 대는 것이었다. 이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산승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번개같은 느낌이 있었다. 산승이 속으로 '문수는 대자대비 하다던데. 비록 문수라해도 대겁 전에는 도반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하나는 빠르고 하나는 늦을 뿐 일 수도 있는 것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노인이 "아직도 생각이 많군"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한번 더 눈을 부라리며 험하게 꿰뚫어 보는 것이었다. 이에 산승이 무념으로 응대하니, 휭하니 가 버리고 말았다. 결국 응락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산승이 은연히 놀라 옹달샘으로 가 보니, 옹달샘은 콸콸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괜히 놀랐구나.' '물은 자연의 흐르믕로 흘러내리는 것인데 지가 무슨 수로 막아'하며 씩 웃고 말았다. 부엌의 물통이 다 비어 있다시피 하였지만, 공연히 싱거운 기분이 들어서 물 떠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산승의 지혜가 부족한 것이었다. 안심하고 그 날 하루를 잘 지내고 다음날 아침이 왔다. 물통을들고 옹달샘으로 가보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칠 일이 터진 것이다. 참으로 경천동지할 노릇이었다. 놀라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옹달샘이 물이 한 방울도 남지않고 완전히 바짝 말라 있는 것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필자도 이곳에 가보았는데 물이 마를 곳이 아니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끝에 '어제 밤 날이 너무 추워서 땅 속 수맥이 잠시 얼어붙었겠지. 날이 풀리면 물이 다시 나올 것이야' 하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시 느긋하게 가라앉히고 몇 모금 남은 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부터옹달샘으로 가보니,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더 메말라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지라 자연 부담이 컷다. '지금은 물을 마셔야 하는데,물이 없이 어찌 얼마나 지내겠나' 물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후에 들어서 산승은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했다.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을 각오했다. 물없이 견뎌 이기고 인욕, 청정을 닦아서 고행을 완성한다는 선인의 뜻을 받아 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바싹 마른 옹달샘 바닥에서는 먼지가 날 지경이다. 이제 49일을 대고행으로 정한 시각이 이틀 남았다. 이틀이 지나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된 것이니 하나가 완전히 끝어지면 숨이 끊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소의 접연 조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 다음, 그대들이 알다시피 그대들을 동원하여 12L짜리 물통으로 다섯 개 분을 험하고 가파른 먼길을 운반하여 준비하였다. 이것이 49일 동안의 물 전부였다. 더 운반을 시킨다면 천신들은 분명히 '중생의 괴로운 땀을 마시며 수행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드디어 49일 폐관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1.8L짜리 물병으로 재어보니 12L물통은 제 양이 못되었다. 1.8L 물병으로 6번을 채우니 7번째는 겨우 바닥에 고였다. 그렇다면 7일째마다 물을 거의 쓰지 않고도 물병 하나로 하루를 써야 겨우 5주를 버틸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남은 2주중 6주가 문제였다. 마지막 7주째는 정定의 힘으로 지내니 문제가 되지 않지만 6주째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로 지루한 고행이 되고 말 터였다. 첫날 1.8L의 물로 하루를 지내보았다. 이 물을 다섯으로 나누어 그 중 하나로 아침에 얼굴을 문지르고 , 입을 헹구고, 손에 물을 바르고, 다시 아껴두었다가 밤에 발을 씻었다. 나머지 넷으로 한 모금씩 목을 축였다.하루 종일 정진으로 일관하는 시간 속에 일주일이 지났다. 마음은 평안하였으나 기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원래 하루에 1.8L의 물병으로 네 병은 마셔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기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주가 지나고 첫 일요일 아침, 얼굴에 물을 바르다 몇년전 T.V에서 본 몽고의 초원 생활이 떠올랐다. 초원의 아이들이 물이 없어서 양치질한 물로 다시 토끼처럼 세수하고 그 물로 다시 손발을 씻는 것을 보고 '참,가엽구나!'하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내 처지가 그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없는 인간의 괴로움을 처절히 느끼고 있었다. 물은 차라리 피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물 한 방울의 귀중함을 세삼 깨닫고 있었다. 둘째 주가 지났다. 힘들지만 지낼 만 하였다.오직 정진 또 정진 하였다.셋째 주가 지나고 넷째 주가 되었다. 그렇게 절약하여 마신 물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 다시 하루가 지나 이십 구일째가 되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어졌다. 호흡이 약간 곤란해지는 것 같고 시력이 떨어져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맥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일어서려면 벽에 의지해야만 했다. 만일 예전처럼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면 등산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저녁이 되니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더니 이내 심장도 얼음장같이 느껴지고 답답하고 무거웠다.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 약간 물을 끓여 마셔 보았다. 그래도 몸이 따뜻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전신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갑자기 눈앞이 보이지 않고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호흡도 식는 듯하더니 호흡 자체가 곤란해지고 마침내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마음은 또렷하게 돌아왔는데 몸은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죽는가 보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생강즙만 있으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생각이 들자 '생강,생강,생강'하고 외마디 일념으로 생강 염불을 하게 되었다. 깊은 산 절봉 아래서 혼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생강 생강즙만 있으면 살아날 것이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렇게 밤을 지새고 대략 오후 1시쯤이 되었다. 아직 숨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 사람 있소?, 사람 있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력을 다하여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여 다보는 것이었다. 바라보니 육십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키 작은 노인이 서 있었다. 그런데 생강을 한 망태기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꿈인지 생시인지도 따지지 않고 "이제는 살았구나,과연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나면서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모르게 전신으로부터 힘이 솟아 맨발로 뛰어나가서 생강을 만지면서 희열이 념처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겉잡을 수 없게 흘러 내렸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드니, 노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물 한 잔을 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멈칫 해졌다. 물이 있긴 하지만 겨우 한 병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 십 여일을 버텨야 했다. 한 잔 한 잔이 말 그대로 생명수 였다. 이런 생각에 멈칫하고 있으니, 노인은 갑자기 소리를 꽥지르며 "물좀 달라구" 하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부엌문을 가르키니,노인은 물병을 덥석 집어서 벌컥벌컥 마시더니 묻지도 않고 자기 물병에다 남은 물을다 채워 넣었다. 손으로 멀고 먼 육십령을가리키며 산을 넘으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뜩 돈을 주고 생강을 달라고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묵언 중이라 말을 할 수 없으니 손으로 땅에다 글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뭇가지를 집어드니, 고개를 흔들면서 혀를 끌끌 차더니 노인은 돌아서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노인장,그 생강 한 쪽만 주오, 나 한 번 만 살려 주오.'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뜨겁게 솟아 입안에서 마구 맴돌고 있었다. 쫒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들었으나 묵언 정진 중이었으므로 말을 할 수 없었고 차마 구걸할 수 있으랴. '나는 수행자다. 깨끗한 마음의 수행자, 대청정의 수행자이다. 자, 하늘을 보자' 하면서 마음을 다졌건만, 어지된 일인지 기진맥진해서 힘이 쭉 빠지더니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 얼마쯤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가 나를 일으켜 앉히는데, 부드럽고 따뜻한 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입안에 다 바가지에 가득 찬 물을 대주는 것이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물을 배불리 마시면서 속으로 옛날 젖을 먹던 시절 맡았던, 엄마의 젖가슴에서 나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황망한 중 에도 너무나 고마워 몸을 일으켜 절을 하고 싶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살려 주러오셨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맙소'하면서 몸을 움직이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고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너무나 놀라서 눈을 번쩍 뜨니, 사람은 없고 차가운 땅에 쓰러져 있었다. 꿈이었다. 그 차가운 땅위에서꾼 남가일몽이었다. 그래도 현실같이 느껴졌다. 두리번거리며, 누가 있을 것만 같아 자꾸 찾아보았다. 그러나 수십 년전 에 돌아가신 분이 나를 도우러 오신다니, 말이 되지 않는 덧없는 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수십 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다. 세상에서 단 한 분,할아버지만 살아 계신다면 나를 살려 주러 오실 텐데, 아~아~ 근년에 결코 느껴보지 않았던 슬픔이 하늘에 가득히 솟아났다. '아~ 할아버지, 내 평생에 내게 유일했던 다정한 혈족, 백 번을 죽는다 해도 여전히 너무나 그리운 그 분, 아아~ 깊은 산 속에 움막 하나 지어 놓고 할아버지, 부모님 모시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서로 비비며 마주보며 살 수 있다면 아아~ 행복할 것이다.' 생각을 다듬고자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폐관의 규칙은 절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다시 생사를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호흡을 조절했다. 호흡을 깊이 조절하여 들어가자 마음이 안정되고 생강의 생각이 사라졌다. 물이 한 방울도 없으니 오히려 그 동안 물을 아끼려고 애쓰던 마음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극한 상황에서는 강해지는 법이다.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정진의 고삐를 바짝 조이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생사의 마음을 비우고 감관을 닫고 마음에서 떠오르는 미세한 집착마저 다 놓아 버리자 실로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실로 깊고 안온한 정진에 들어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기력이 회복되고 마음은 평안 하였다. 31일째 아침이 되었다. 이번 49일 정진이 원만히 끝나고 나면 잠시 휴식하고 다시 49일씩 두번이 더 남아 있다. 마음을 지극 히 바로 잡기 시작했다. '끝없이 더욱 깊이 반성하여 진정한 구경각을 이루리라. '삼계를 뛰어 넘는 멸진정을 완성하리라' 하고 다짐했다. 마음은 티 없는 하늘처럼 깨끗해졌고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32일째 아침이 되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집착이 안으로부터 단멸하여 마음이 끝없이 밝았다. 저녁이 되자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밤이 되자 몸에서 빛이 환하게 나는 것이 보였다. 몸이 자꾸 공중에 뜨는 것 같고 정신이 몸에서 사라졌다 돌아왔다 하는 현상이 생겼다. 다시 더 지극히 무념하여 마음을 가다듬으니 정신이 까막까막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현상은 없어졌다. 그러나 빛이 나고 공중에 뜨는것 같은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밤 11시쯤 되었는데 의식이 사라지는 것 같이 졸음이 왔다. 호흡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고 심장도 뛰지 않는 듯 하였다. 정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마음을 일념으로 하여 호흡하였다. 이윽고 호흡이 의식되지 않는 무호흡의 무념 상태에 이르렀고 이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었다. 찰나에 마음을 점검해 보니 일체의 망상이 단멸하였다. 마지막 이틀 물이 없어지니 일체의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지극한 멸진의 선정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에는 일절 욕망과 번뇌, 공포가 사라졌고 오직 무념할 뿐이었다....... 마음을 무념으로 계속 다스리면서 좌복에서 일어나 깨끗한 승복으로 갈아입고 대충 집을 정리하였다. 가사를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하여 좌복에 다시 앉았다. 산승의 일생은 이제 산속에서 홀로 열반상을 보이는 것으로 족하였다. 찰나에 세상을 향해 한 번 빙긋이 웃었다. 다시 좌선 자세를 잡자 곧 체온이 없어지더니 심장도 멎고 의식도 사라졌다. 다만 황홀하여 끝없이 아름다운 빛으로 된 세상이 펼쳐졌다. 빛은 무한으로 밝아지면서 다시 무한으로 분열하는 듯하였다. 무한의 빛이 무한의 빛의 바다로 회귀하는 듯 하였다...... 눈이 부셨다. 아침이 밝은 것이다.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호흡을 가늘고 길고 깊게 하면서 허공에 있는 진기와 수기를 가득 들이 마셧다. 옹달샘에 가보니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녹아서 그런지 깨끗한 물이 찰랑찰랑 가득히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허공의 기를 당분간 계속 쓰기로 하고 물을 마시지 않았다. 오늘은 38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하여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모든 행동과 인생의 모든 일이 다 마음의 장난이다. 그러나 마음 또한 무상한 것이어서 절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할 일은 단지 한 가지라도 불법을 바르게 익히는 것이다. 수행자는 오직 분발하여 마음 안팍의 경계를 끊고 정진 또 정진할 뿐이다. 아래에 수행에 요긴한 몇 가지 당부를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첫째, 방안에 갇힌 벌이 봉창의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고자 할 때는 마땅히 공기의 흐름을 살펴야 하듯이 수행자는 마음을 잘 살피어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한다. 둘째,마음은 싸울 대상이 아니다. 억지로 할 수록 싸울수록 더욱 분란해진다. 길들이지 않는 듯이 길들여야 한다. 셋째,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던지 집착해서 하기 때문에 허물이 되는 것이다. 정진할때는 과다한 의욕이 아닌 지극한 원력을 갖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집착과 원력은 물위에 뜬 기름과 같아서 서로 사귀지 못한다. 하나는 욕망이요 하나는 지혜다. 넷째,안심을 닦아야 한다. 옛말에 무사들이 칼로 눈앞의 콩을 자를 때, 정신 통일이 되면 콩이 바위만큼 크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 통일에 익숙한 무사라도 마음이 안심이 되지 않으면 실수를 하는 법이다. 콩을 자르기 전에 안심 여부에서 이미 결과는 나는 것이다. 이처럼 수행자도 좌복에 앉기 전에 안심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해내고 말겠다는 분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분명한 마음, 느낌 자신감이 안심을 갖게 해준다. 다섯째,부동의 마음이다. 아무리 뛰어난 근기의 수행자라도 일말의 갈등과 불안,장애가 있기 마련이다. 또 정진에서 오는 피로와 고단으로 인한 장애가 있다. 문득 뒤돌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이 불안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불안,갈등 장애에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태양의 빛에는 그림자가 있지만 법계의 빛에는 그림자가 없다. 부동의 정진력을 갖게 되면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법계의 소식이 스스로 전해지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오직 한 길/김열권 에서 발췌
절지도인의 49일 폐관수행과 적멸 체험담
산승은 근간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만길 벼랑에 매달려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사투의 마지막 순간 과 같았다. 그러나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보니 그대들에게 격려와 경책의 의미로 몇자 싶고나 절지絶地로 들어와 오불관(五不觀: 다섯 가지 감관을 다스림)에 든지 123일이 되었다. 단식을 시작한지 38일이 되었다. 모두들 잘 알다시피 이곳의 옹달샘은 천하에 비할 데가 없이 물이 좋고 수량도 항상 풍부하였다. 언제나 철철 넘쳐 십수년의 세월에 단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 심했던 여름 가뭄과 겨울 가뭄에도 이곳의 물은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 단식 수행을 시작하기 10여일 전의 어느날이었다. 하루는 어떤 노인이 찾아왔다. 사람이 오지 않는 이 곳에 약초꾼처럼 보이는 매우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망태기를 매고 찾아온 것이다. 기침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니 왠 노인이 산승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산승은 묵언 중이어서 말은 못했지만 사람을 보니 내심 반가웠다.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니, 이 노인은 다짜고짜 험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행을 할랑가,낙행을 할랑가?" 대뜸 반말투로 묻는 것이었다. 산승은 마음 속으로 '무슨 낙행을...'하면서 우물쭈물 하였더니, 이 노인은 "배 터지게 마시고 뜨끈뜨끈히 지지면서 그게 무슨 고행인고?" 하며 눈을 부라려 대는 것이었다. 이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산승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번개같은 느낌이 있었다. 산승이 속으로 '문수는 대자대비 하다던데. 비록 문수라해도 대겁 전에는 도반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하나는 빠르고 하나는 늦을 뿐 일 수도 있는 것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노인이 "아직도 생각이 많군" 하며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한번 더 눈을 부라리며 험하게 꿰뚫어 보는 것이었다. 이에 산승이 무념으로 응대하니, 휭하니 가 버리고 말았다. 결국 응락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산승이 은연히 놀라 옹달샘으로 가 보니, 옹달샘은 콸콸 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괜히 놀랐구나.' '물은 자연의 흐르믕로 흘러내리는 것인데 지가 무슨 수로 막아'하며 씩 웃고 말았다. 부엌의 물통이 다 비어 있다시피 하였지만, 공연히 싱거운 기분이 들어서 물 떠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산승의 지혜가 부족한 것이었다. 안심하고 그 날 하루를 잘 지내고 다음날 아침이 왔다. 물통을들고 옹달샘으로 가보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칠 일이 터진 것이다. 참으로 경천동지할 노릇이었다. 놀라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옹달샘이 물이 한 방울도 남지않고 완전히 바짝 말라 있는 것이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필자도 이곳에 가보았는데 물이 마를 곳이 아니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끝에 '어제 밤 날이 너무 추워서 땅 속 수맥이 잠시 얼어붙었겠지. 날이 풀리면 물이 다시 나올 것이야' 하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시 느긋하게 가라앉히고 몇 모금 남은 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부터옹달샘으로 가보니,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더 메말라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지라 자연 부담이 컷다. '지금은 물을 마셔야 하는데,물이 없이 어찌 얼마나 지내겠나' 물이 전혀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후에 들어서 산승은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했다.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죽음을 각오했다. 물없이 견뎌 이기고 인욕, 청정을 닦아서 고행을 완성한다는 선인의 뜻을 받아 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바싹 마른 옹달샘 바닥에서는 먼지가 날 지경이다. 이제 49일을 대고행으로 정한 시각이 이틀 남았다. 이틀이 지나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몸이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된 것이니 하나가 완전히 끝어지면 숨이 끊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소의 접연 조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 다음, 그대들이 알다시피 그대들을 동원하여 12L짜리 물통으로 다섯 개 분을 험하고 가파른 먼길을 운반하여 준비하였다. 이것이 49일 동안의 물 전부였다. 더 운반을 시킨다면 천신들은 분명히 '중생의 괴로운 땀을 마시며 수행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드디어 49일 폐관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1.8L짜리 물병으로 재어보니 12L물통은 제 양이 못되었다. 1.8L 물병으로 6번을 채우니 7번째는 겨우 바닥에 고였다. 그렇다면 7일째마다 물을 거의 쓰지 않고도 물병 하나로 하루를 써야 겨우 5주를 버틸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남은 2주중 6주가 문제였다. 마지막 7주째는 정定의 힘으로 지내니 문제가 되지 않지만 6주째는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로 지루한 고행이 되고 말 터였다. 첫날 1.8L의 물로 하루를 지내보았다. 이 물을 다섯으로 나누어 그 중 하나로 아침에 얼굴을 문지르고 , 입을 헹구고, 손에 물을 바르고, 다시 아껴두었다가 밤에 발을 씻었다. 나머지 넷으로 한 모금씩 목을 축였다.하루 종일 정진으로 일관하는 시간 속에 일주일이 지났다. 마음은 평안하였으나 기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원래 하루에 1.8L의 물병으로 네 병은 마셔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기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 주가 지나고 첫 일요일 아침, 얼굴에 물을 바르다 몇년전 T.V에서 본 몽고의 초원 생활이 떠올랐다. 초원의 아이들이 물이 없어서 양치질한 물로 다시 토끼처럼 세수하고 그 물로 다시 손발을 씻는 것을 보고 '참,가엽구나!'하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내 처지가 그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없는 인간의 괴로움을 처절히 느끼고 있었다. 물은 차라리 피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물 한 방울의 귀중함을 세삼 깨닫고 있었다. 둘째 주가 지났다. 힘들지만 지낼 만 하였다.오직 정진 또 정진 하였다.셋째 주가 지나고 넷째 주가 되었다. 그렇게 절약하여 마신 물이 이제 거의 바닥이 났다. 다시 하루가 지나 이십 구일째가 되니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어졌다. 호흡이 약간 곤란해지는 것 같고 시력이 떨어져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맥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일어서려면 벽에 의지해야만 했다. 만일 예전처럼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면 등산도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저녁이 되니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더니 이내 심장도 얼음장같이 느껴지고 답답하고 무거웠다.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 약간 물을 끓여 마셔 보았다. 그래도 몸이 따뜻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전신이 차갑게 굳어지더니 갑자기 눈앞이 보이지 않고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호흡도 식는 듯하더니 호흡 자체가 곤란해지고 마침내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마음은 또렷하게 돌아왔는데 몸은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죽는가 보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생강즙만 있으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생각이 들자 '생강,생강,생강'하고 외마디 일념으로 생강 염불을 하게 되었다. 깊은 산 절봉 아래서 혼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직 생강 생강즙만 있으면 살아날 것이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렇게 밤을 지새고 대략 오후 1시쯤이 되었다. 아직 숨은 넘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 사람 있소?, 사람 있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력을 다하여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여 다보는 것이었다. 바라보니 육십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키 작은 노인이 서 있었다. 그런데 생강을 한 망태기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꿈인지 생시인지도 따지지 않고 "이제는 살았구나,과연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나면서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 모르게 전신으로부터 힘이 솟아 맨발로 뛰어나가서 생강을 만지면서 희열이 념처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겉잡을 수 없게 흘러 내렸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드니, 노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물 한 잔을 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멈칫 해졌다. 물이 있긴 하지만 겨우 한 병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 십 여일을 버텨야 했다. 한 잔 한 잔이 말 그대로 생명수 였다. 이런 생각에 멈칫하고 있으니, 노인은 갑자기 소리를 꽥지르며 "물좀 달라구" 하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부엌문을 가르키니,노인은 물병을 덥석 집어서 벌컥벌컥 마시더니 묻지도 않고 자기 물병에다 남은 물을다 채워 넣었다. 손으로 멀고 먼 육십령을가리키며 산을 넘으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뜩 돈을 주고 생강을 달라고 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묵언 중이라 말을 할 수 없으니 손으로 땅에다 글씨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뭇가지를 집어드니, 고개를 흔들면서 혀를 끌끌 차더니 노인은 돌아서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막히고 '노인장,그 생강 한 쪽만 주오, 나 한 번 만 살려 주오.'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뜨겁게 솟아 입안에서 마구 맴돌고 있었다. 쫒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들었으나 묵언 정진 중이었으므로 말을 할 수 없었고 차마 구걸할 수 있으랴. '나는 수행자다. 깨끗한 마음의 수행자, 대청정의 수행자이다. 자, 하늘을 보자' 하면서 마음을 다졌건만, 어지된 일인지 기진맥진해서 힘이 쭉 빠지더니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 얼마쯤 지났는지 모르겠다. 누가 나를 일으켜 앉히는데, 부드럽고 따뜻한 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입안에 다 바가지에 가득 찬 물을 대주는 것이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물을 배불리 마시면서 속으로 옛날 젖을 먹던 시절 맡았던, 엄마의 젖가슴에서 나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지 궁금하면서도 그 순간에는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황망한 중 에도 너무나 고마워 몸을 일으켜 절을 하고 싶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살려 주러오셨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맙소'하면서 몸을 움직이려는데 말이 나오지 않고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너무나 놀라서 눈을 번쩍 뜨니, 사람은 없고 차가운 땅에 쓰러져 있었다. 꿈이었다. 그 차가운 땅위에서꾼 남가일몽이었다. 그래도 현실같이 느껴졌다. 두리번거리며, 누가 있을 것만 같아 자꾸 찾아보았다. 그러나 수십 년전 에 돌아가신 분이 나를 도우러 오신다니, 말이 되지 않는 덧없는 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수십 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다. 세상에서 단 한 분,할아버지만 살아 계신다면 나를 살려 주러 오실 텐데, 아~아~ 근년에 결코 느껴보지 않았던 슬픔이 하늘에 가득히 솟아났다. '아~ 할아버지, 내 평생에 내게 유일했던 다정한 혈족, 백 번을 죽는다 해도 여전히 너무나 그리운 그 분, 아아~ 깊은 산 속에 움막 하나 지어 놓고 할아버지, 부모님 모시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서로 비비며 마주보며 살 수 있다면 아아~ 행복할 것이다.' 생각을 다듬고자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폐관의 규칙은 절대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다시 생사를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호흡을 조절했다. 호흡을 깊이 조절하여 들어가자 마음이 안정되고 생강의 생각이 사라졌다. 물이 한 방울도 없으니 오히려 그 동안 물을 아끼려고 애쓰던 마음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되었다. 이제는 마음으로 이겨내는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극한 상황에서는 강해지는 법이다.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정진의 고삐를 바짝 조이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 생사의 마음을 비우고 감관을 닫고 마음에서 떠오르는 미세한 집착마저 다 놓아 버리자 실로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실로 깊고 안온한 정진에 들어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기력이 회복되고 마음은 평안 하였다. 31일째 아침이 되었다. 이번 49일 정진이 원만히 끝나고 나면 잠시 휴식하고 다시 49일씩 두번이 더 남아 있다. 마음을 지극 히 바로 잡기 시작했다. '끝없이 더욱 깊이 반성하여 진정한 구경각을 이루리라. '삼계를 뛰어 넘는 멸진정을 완성하리라' 하고 다짐했다. 마음은 티 없는 하늘처럼 깨끗해졌고 밤하늘의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32일째 아침이 되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집착이 안으로부터 단멸하여 마음이 끝없이 밝았다. 저녁이 되자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밤이 되자 몸에서 빛이 환하게 나는 것이 보였다. 몸이 자꾸 공중에 뜨는 것 같고 정신이 몸에서 사라졌다 돌아왔다 하는 현상이 생겼다. 다시 더 지극히 무념하여 마음을 가다듬으니 정신이 까막까막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현상은 없어졌다. 그러나 빛이 나고 공중에 뜨는것 같은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밤 11시쯤 되었는데 의식이 사라지는 것 같이 졸음이 왔다. 호흡이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고 심장도 뛰지 않는 듯 하였다. 정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마음을 일념으로 하여 호흡하였다. 이윽고 호흡이 의식되지 않는 무호흡의 무념 상태에 이르렀고 이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되었다. 찰나에 마음을 점검해 보니 일체의 망상이 단멸하였다. 마지막 이틀 물이 없어지니 일체의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지극한 멸진의 선정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속에는 일절 욕망과 번뇌, 공포가 사라졌고 오직 무념할 뿐이었다....... 마음을 무념으로 계속 다스리면서 좌복에서 일어나 깨끗한 승복으로 갈아입고 대충 집을 정리하였다. 가사를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하여 좌복에 다시 앉았다. 산승의 일생은 이제 산속에서 홀로 열반상을 보이는 것으로 족하였다. 찰나에 세상을 향해 한 번 빙긋이 웃었다. 다시 좌선 자세를 잡자 곧 체온이 없어지더니 심장도 멎고 의식도 사라졌다. 다만 황홀하여 끝없이 아름다운 빛으로 된 세상이 펼쳐졌다. 빛은 무한으로 밝아지면서 다시 무한으로 분열하는 듯하였다. 무한의 빛이 무한의 빛의 바다로 회귀하는 듯 하였다...... 눈이 부셨다. 아침이 밝은 것이다.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호흡을 가늘고 길고 깊게 하면서 허공에 있는 진기와 수기를 가득 들이 마셧다. 옹달샘에 가보니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이 녹아서 그런지 깨끗한 물이 찰랑찰랑 가득히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허공의 기를 당분간 계속 쓰기로 하고 물을 마시지 않았다. 오늘은 38일째 되는 날이다. 그리하여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모든 행동과 인생의 모든 일이 다 마음의 장난이다. 그러나 마음 또한 무상한 것이어서 절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이 할 일은 단지 한 가지라도 불법을 바르게 익히는 것이다. 수행자는 오직 분발하여 마음 안팍의 경계를 끊고 정진 또 정진할 뿐이다. 아래에 수행에 요긴한 몇 가지 당부를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첫째, 방안에 갇힌 벌이 봉창의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고자 할 때는 마땅히 공기의 흐름을 살펴야 하듯이 수행자는 마음을 잘 살피어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한다. 둘째,마음은 싸울 대상이 아니다. 억지로 할 수록 싸울수록 더욱 분란해진다. 길들이지 않는 듯이 길들여야 한다. 셋째,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된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던지 집착해서 하기 때문에 허물이 되는 것이다. 정진할때는 과다한 의욕이 아닌 지극한 원력을 갖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집착과 원력은 물위에 뜬 기름과 같아서 서로 사귀지 못한다. 하나는 욕망이요 하나는 지혜다. 넷째,안심을 닦아야 한다. 옛말에 무사들이 칼로 눈앞의 콩을 자를 때, 정신 통일이 되면 콩이 바위만큼 크게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 통일에 익숙한 무사라도 마음이 안심이 되지 않으면 실수를 하는 법이다. 콩을 자르기 전에 안심 여부에서 이미 결과는 나는 것이다. 이처럼 수행자도 좌복에 앉기 전에 안심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해내고 말겠다는 분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분명한 마음, 느낌 자신감이 안심을 갖게 해준다. 다섯째,부동의 마음이다. 아무리 뛰어난 근기의 수행자라도 일말의 갈등과 불안,장애가 있기 마련이다. 또 정진에서 오는 피로와 고단으로 인한 장애가 있다. 문득 뒤돌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이 불안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불안,갈등 장애에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태양의 빛에는 그림자가 있지만 법계의 빛에는 그림자가 없다. 부동의 정진력을 갖게 되면 마치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법계의 소식이 스스로 전해지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오직 한 길/김열권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