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外編 16篇 성선繕性 제1장】 " 지여염교상양知與恬交相養 이화리출기성而和理出其性"
莊子 外編 16篇 繕性篇 解說(장자 외편 16편 선성편 해설)
‘선繕’은 치治의 뜻이고 ‘성性’은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말하는데 〈선성繕性〉편의 문장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지혜와 편안한 마음이 서로 길러준다[지여염知與恬 교상양交相養].”는 구절이다. 즉 지知와 염恬[무욕 담백한 마음, 편안한 마음]이 서로 잘 길러주면 인간의 본성[성性]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의 조화[화和]와 질서[이理]가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이 ‘화和’와 ‘이理’는 이어서 ‘덕德’과 ‘도道’와 동일시되는데,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보아온 ≪장자莊子≫의 사상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고 여전히 도가적道家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편의 작자作者는, 용납하지 않음이 없는 부불용無不容의 덕德을 인仁으로 표현하고 있고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는 도道를 의義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에 대한 접근 정도가 상당히 심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선성繕性〉은 무위자연의 도道를 근본으로 전제하고 ‘존신存身’과 ‘득지得志’를 설명하면서, 원초原初의 질박質朴함으로의 회귀回歸를 그 특징으로 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을 ‘나를 바르게 한다[정기正己]’는 유가적儒家的 수양론修養論과 절충한 점에 그 독자적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80902
莊子 外編 16篇 繕性篇 第1章(장자 외편 16편 선성편 제1장)
[제1장 해석]
세속에 살면서 본성을 닦아서 학문으로 원초原初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거나 세속에 살면서 욕심에 골몰하면서 사려思慮를 통해 밝은 지혜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을 일러 몽매한 백성이라고 한다.
옛날 도道를 잘 다스린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혜를 길렀고, 지혜가 생겨나더라도 그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함이 없었으니, 이것을 일컬어 지혜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지혜와 편안한 마음이 서로 길러주면 화和(인간 사회의 조화)와 이理(인간 사회의 질서)는 본성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다.
덕德은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것이고, 도道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이다. 만민萬民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덕德은 인仁이고, 만물萬物을 다스려 질서 지우지 아니함이 없는 도道가 의義이다. 의義가 분명해지고 만민萬民이 서로 친애親愛하는 것은 충忠이고, 마음속[충忠]이 순수독실純粹篤實해져 본래의 모습[정情]으로 돌아가는 것은 락樂이고, 신信이 용모와 태도에 베풀어져 문리에 맞는 것은 예禮이다.
그런데 〈도道와 덕德을 놓아둔 채〉 예악禮樂에만 치우쳐 행하면 천하天下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저 위정자들이 예악으로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여 〈예악으로〉 자기 본래의 덕을 덮어버리면 덕은 만민萬民을 덮을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런 덕德으로 만물을 억지로 덮어 화육하려 하면 만물萬物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繕性於俗 學以求復其初 滑欲於俗 思以求致其明을 謂之蔽蒙之民
古之治道者 以恬養知 知生而無以知爲也 謂之以知養恬
知與恬交相養 而和理出其性
(선성어속하야 학으로 이구복기초하며 골욕어속하야 사이구치기명을 위지폐몽지민이라하나니라
고지치도자는 이염으로 양지한대 지생이무이지위야하니 위지이지로 양염이라하나니
지여염으로 교상양 이화리출기성하나니라)
세속에 살면서 본성을 닦아서 학문으로 원초原初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구하거나 세속에 살면서 욕심에 골몰하면서 사려思慮를 통해 밝은 지혜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을 일러 몽매한 백성이라고 한다.
옛날 도道를 잘 다스린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혜를 길렀고, 지혜가 생겨나더라도 그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 함이 없었으니, 이것을 일컬어 지혜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지혜와 편안한 마음이 서로 길러주면 화和(인간 사회의 조화)와 이理(인간 사회의 질서)는 본성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다.
☞ 선성어속繕性於俗 : 선繕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수제치평修齊治平과 같은 의미로, 여기서는 〈본성을〉 ‘닦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 골욕어속滑欲於俗 : 골滑은 골몰汨沒하다는 뜻. 골汨과 통한다. 골욕滑欲은 욕심에 빠져서 어지러워짐을 말한 것.
☞ 사이구치기명思以求致其明 : 사思는 앞의 학學과 대비對比되는 글자이다. 명明은 밝은 지혜로 명석한 판단력을 의미한다. 내편 〈제물론齊物論〉편에서 강조된 것과 같은 절대의 명지明知를 말한다.
☞ 폐몽지민蔽蒙之民 : 폐蔽는 가리고 막혔다는 뜻. 몽蒙은 몽매함. 곧 도리에 어두운 인간을 말한다. 이상의 문장은 세속적인 생활 속에 매몰埋沒되어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는 표현으로, 본래의 모습[초初]이나 절대의 밝음[명明]은 그런 상식적인 학문이나 상식적인 사색을 통해서 접근할 수 없는 경지임을 나타낸 것이다.
☞ 지여염교상양知與恬交相養 이화리출기성而和理出其性 : 화和는 인간 사회의 조화, 곧 인화人和를 의미하고 이理는 인간 사회의 질서를 의미한다.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한 표현으로 지知와 염恬으로 상호간에 서로 기르면 성性에서 인仁과 이理, 도道와 의義, 더 나아가 충忠, 악樂, 예禮가 자연히 나와서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
夫德和也 道理也 德無不容仁也 道無不理義也 義明而物親忠也
中純實而反乎情樂也 信行容體而順乎文禮也
禮樂偏行則天下亂矣 彼正而蒙己德 德則不冒 冒則物必失其性也
(부덕은 화야요 도는 이야요 덕무불용은 인야요 도무불리는 의야요 의명이물친은 충야요
중순실이반호정은 락야요 신행용체이순호문은 예야니
예악이 편행즉천하 난의리니 피 정이몽기덕이면 덕즉불모니 모즉물필실기성야리라)
덕德은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것이고, 도道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원리이다. 만민萬民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덕德은 인仁이고, 만물萬物을 다스려 질서 지우지 아니함이 없는 도道가 의義이다. 의義가 분명해지고 만민萬民이 서로 친애親愛하는 것은 충忠이고,
마음속[충忠]이 순수독실純粹篤實해져 본래의 모습[정情]으로 돌아가는 것은 락樂이고, 신信이 용모와 태도에 베풀어져 문리에 맞는 것은 예禮이다.
그런데 〈도道와 덕德을 놓아둔 채〉 예악禮樂에만 치우쳐 행하면 천하天下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저 위정자들이 예악으로 천하를 바로잡으려 하여 〈예악으로〉 자기 본래의 덕을 덮어버리면 덕은 만민萬民을 덮을 수 없게 될 것이니, 그런 덕德으로 만물을 억지로 덮어 화육하려 하면 만물萬物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 부덕夫德 화야和也 : 덕德은 무위자연의 덕德을 말하는 것임.
☞ 덕무불용德無不容 인야仁也 : 만민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는 덕德은 인仁이라는 뜻. 덕德‧도道→인仁‧의義→충忠→악樂‧예禮처럼 도가道家의 덕德‧도道를 근본으로 하고 유가儒家의 악樂‧예禮를 말단으로 하여 제개념諸槪念을 계열화한 문장인데, 〈천지天地〉편 제1장에서 “의義는 덕德에 포섭되고 닥德은 도道에 포섭되고 도道는 자연[천天]에 포섭된다.”고 한 언급이나, 〈천도天道〉편 제5장에서 “옛날 대도大道를 밝게 알고 있었던 사람은 먼저 천天을 밝히고 그 다음에 도와 덕이 이어졌고 도와 덕을 이미 밝히고 난 뒤에 인의가 이어졌고…….”라고 한 내용이나, ≪노자老子≫ 제38장에서 “도道를 잃어버린 뒤에 덕德이 나오게 되었고 덕德을 잃어버린 뒤에 인仁이 나오게 되었고 인仁을 잃어버린 뒤에 의義가 나오게 되었고 의義를 잃어버린 뒤에 예禮가 나오게 된 것이니 예禮란 충忠과 신信이 야박해진 것이고 난亂을 일으키는 으뜸이다.”고 한 내용과 비교된다. 이 점은 유가儒家에 대한 태도가 유화적宥和的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 중순실이반호정中純實而反乎情 락야樂也 : 중中은 위 문장과의 연결을 고려할 때 충忠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순純은 순수純粹함. 반호정反乎情은 본래의 모습[정情]으로 돌아간다는 뜻.
☞ 신행용체이순호문信行容體而順乎文 : 용모와 몸뚱아리[용체容體]는 용모와 태도의 뜻.
☞ 예악이 편행즉천하 禮樂偏行 則天下 난의亂矣 : 도道와 덕德을 놓아둔 채 예악만 시행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는 뜻.
역주16 피정이몽기덕彼正而蒙己德 덕즉불모德則不冒 모즉물필실기성야冒則物必失其性也 : ‘모冒’는 만물을 감싸고 덮어서 화육한다는 뜻. 저들 곧 세상의 위정자들이 인의예악의 규범에 의해 정치를 시행하려고 하여 자기 본래의 덕德을 감추어버리면, 그의 덕은 만민萬民을 화육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니, 할 수 없는데 무리하게 만민萬民, 만물萬物을 덮어 화육化育하고자 한다면, 만물은 반드시 그 본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뜻. “천하가 어지러운 까닭은 저 위정자들이 사람들을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먼저 자신의 덕을 덮어 가렸으니 그 덕이 만물을 덮기에 부족하게 되었는데 덮기에 부족한 것을 가지고 억지로 덮으려고 하기 때문에 만물이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林雲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