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야기 1992년 7월 동창호(同昌號)
92년 7월에 여섯 번째로 만난 오래된 보이차는 동창호(同昌號)였다. 동창호는 청 동치7년(靑 同治七年,1869년)에 생산을 시작했으나 청말(靑末)에 폐업했다. 1920년대에 이무차구(易武茶區)에서 보이차 상점들이 영업을 재개 했는데, 주관보(朱官寶)라는 이가 동창호 이름으로 이무정산(易武正山)의 찻잎으로 차를 생산했다.
1930년경 황문흥(黃文興)이 동창호를 인수하여 계속 생산했는데, 그때부터 내비(內飛)의 말미에 ‘주인황문흥근백(主人黃文興謹白)’이라고 썼다. 그리고 이 내비에는 “이무정산의 부드러운 찻잎으로 정제하고 비벼서 만들었다(正山細嫩茗芽精工揉造)”고 했는데, 찻잎에 밝은 전문가들은 대부분 의방차산(倚邦茶山)의 소엽종교목(小葉鍾喬木)의 찻잎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남겼다.
1949년 황금당(黃錦堂)이라는 이가 인수한 후에는 동창황기(同昌黃記)로 이름을 바꾸었다.

[324g의 병차(餠茶)인 동창호 앞면. 플래시 사용하여 촬영.]
처음 동창호를 마셨을 때는 그 향과 맛이 상당히 강렬했다. 그것이 좋아서 수년간 자주 마셨던 차였다. 이 동창호를 함께 마시던 이들 가운데서 기(氣)가 약한 이들은 끝까지 마시기 힘들어했다. 물론 차를 아주 진하게 마시는 이들끼리 하는 다회였기에 그랬을 수 있었을 것이다. 50년 이상 묵은 보이차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다호의 50%이상을 채워서 달여야 숨은 향과 맛이 드러난다. 차를 아낀다고 적게 넣고 달이면 전혀 다른 향과 맛이 된다.

[동창호의 앞면에 붙어있는 내비(內飛). 플래시 사용]
2015년 9월 5일 21시 40분부터 100분간 동창호를 소개하기 위해 15년간 진공 포장되어 있던 병차(餠茶-호떡처럼 둥근 모양)를 열었다. 무게 324g 나가는 동창호였다. 묵은 햇수는 대략 80년 전후로 보면 좋을 것이다. 검은빛을 띤 진갈색의 동창호를 청나라 도광년대(道光年代, 1830~1880년)에 만들어진 2인용 자사다호(紫砂茶壺)에 50%를 채워 달이기 시작했다. 두 잔이 나오기에 한잔은 탕 색을 비교하기 위해 두고 한 잔은 시음을 하는 방식을 취했다.

[동창호 찻잎을 매크로렌즈로 촬영한 것. 플래시 사용.]
첫잔에서 올라오는 향은 어린 시절 오래된 초가지붕에 올라갔을 때 맡았던 것과 비슷했고, 맛은 수십 년 세월동안 삭은 약초의 부드러움과 비슷했으며, 탕 색은 진간장을 닮았다.
두 번째 잔부터 향이 약간 짙어졌고, 쌉싸래하면서 묵은 맛이 나오더니 입안을 화하게 만든 후 코로 밀고 올라왔다. 탕 색은 조금 더 짙어졌다.
셋째 잔에서는 대마의 잎을 태울 때 맡았던 그 향이 났다. 약간의 쓴맛과 신맛이 살포시 모습을 보이다가 단맛이 뒤따랐다. 입안과 코는 아주 시원해졌다.
넷째 잔에서는 신맛이 약간 강해졌고 떫은맛도 조금 나왔다. 입안이 매우 시원한 가운데 달게 느껴지는 침이 계속 솟았다.
다섯 잔째부터는 오래된 숲의 마른 잎을 밟을 때 피어오르던 냄새로 변해갔다. 입이 너무 시원해서 혀가 사라진 듯했고, 차의 기운이 온 몸으로 퍼져 발가락에 전기가 통하듯 했다. 등은 완전히 땀으로 젖었으나 시원한 느낌이다.
여섯째 잔부터는 목젖 뒤로부터 미묘한 단맛이 계속 올라왔으며, 몸이 사라지는 느낌이 되었다. 이때부터는 잡스런 냄새나 맛이 없이 거의 균일하게 지속되었다.
일곱째 잔을 마셨을 때는 오전부터 빡빡한 일정으로 저녁까지 쉬지 못한 피로감이 완전히 사라졌고, 허리에 매달려 있던 둔중한 통증도 사라졌다. 이러한 상태로 20여 잔을 마셨더니 몸도 마음도 고요한 빛 속으로 들어갔다.

[동창호를 2인용 다호에 50% 채워 달여 낸 것. 다호 아래에서 시계방향으로 진행. 플래시 사용]

[차를 다 달인 후에 찻잎을 매크로렌즈로 촬영한 것. 플래시 사용]
나는 이 동창호를 마시면서 어린 시절의 스승 한분을 떠올렸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년간 참선지도를 받았던 해산(海山)노스님이었다. 밀양 표충사 서래각(西來閣)과 내원암(內院庵)에 계시던 동안 매주 찾아뵙고 지도를 받았는데, 얼핏 보면 그저 시골의 노인네처럼 보였다. 하지만 곁에서 모시다보면 부드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날카로운 빛을 감춰버린 선승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모시고 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가을바람처럼 시원한 마음이 되어 있곤 했던 것이다.

[1972년 1월 표충사 내원암에서 있었던 5일간의 영남불교청년연합회 수련법회 후 기념 촬영한 것. 해산 큰스님을 모시고 김지견 박사 및 부산불교청년회 회원 일부와 함께]
동창호를 마신 덕분에 나는 새벽을 향하는 지금, 오래전에 입적한 해산(海山)큰스님을 대하고 앉아 있다. 그 깊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단전에는 숯불의 은근한 열기가 가득하다.
첫댓글 좋은 차도 맛을 짐작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마셔봐야함을~ 얼핏 보면 그저 시골의 노인네처럼 보이시는 스승님도
겉으로 판단하는 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오직 자신의 마음이 열려야만 할것 같습니다.
본래 자신의 지혜의 안목이 활짝 열릴 수 있도록 정진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살핌입니다. 진실한 지혜 발현되시기 바랍니다. ^^
오래된 노차의 효과가 일반적인 차와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조금 느낍니다. 어디 차 뿐이겠습니까. 불교의 문에 들어서면 세상의 온갖 보물들을 가지가지로 누리고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만드는 멋진 삶이길 바랍니다. ^^
날카로운 빛을 감춰버린 선 승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노스님!
푹 삭은 오래된 차의 칼칼하고 강렬한 차맛을 간직한 오묘한 차의 성질!
최고의 경지가 되기까지의 공력을 새겨보며 부지런히 참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와 하나가 되듯이----^^
한 다호에 담긴 차가 한 잔, 두 잔, 스무 잔까지 계속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가는 모습이 신비롭습니다.
그 어느 것도, 그 어느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노차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무상의 화려함과 창조성을 볼 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