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글을 읽지 않아도 선비가 나는 마을이라 불렸다는 산북면 서중리. 산북면이 시작되는 마을이며 현재 80여호가 모여 살고 있을만큼 마을 규모가 크다. 특작으로는 몇해전에 시작한 오미자 농사가 있으며 주로 쌀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1330년경 밀양 박씨,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전주이씨 4성(姓)이 주(主)가 되어 집단적으로 이 마을을 개척한 후 권문(權門)에서는 마을 맞은편 가까운 산인 근품산(近品山)의 品자와 山자를 합하면 암자가 되므로 마을 이름을 근암(近)이라 하였고, 박문(朴門)에서는 서원이 있는 마을이므로 서원(書院)이라 불렀으며, 김문(金門)에서는 집을 보존한다는 뜻에서 보가리(保家里)라 호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書)자와 중(中)자를 따서 서중(書中)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서중리 어르신들 목간가는 날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는 날 서중리 어르신들은 회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되기전 노인회 주최로 뜨거운 온천에 몸담그고 맛있는 회를 배불리 드시곤 헤어지기가 아쉬워 회관으로 모였단다. “우리 동네로 말할것 같으면 예전부터 글을 읽지 않아도 학자가 많이 나는 마을 이라고 했지. 그리고 저기 현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배불리 먹는다고 했고, 근데 머가 더 좋아? 학자하고 부자중에? 재물이야 뺏어 갈 수 있지만 학식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잖아. 그러니 우리마을을 문경에서는 최고 좋은 마을이야.” 마을에 목욕탕이 없어 한번 가려면 연중행사처럼 버거워도 마을 어르신들의 서중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 서중리 최고의 입담 이강태 노인회장
중절모에 양복까지 한껏 차려입은 이강태(77) 노인회장은 마을 주민들이 자랑하는 암기왕.적지 않은 연세에도 마을의 역사부터 소소한 일들까지 머릿속에 넣고 줄줄 외우고 다닌다.
“군대 제대 하면서 퀴즈대회 나가 준장원도 해봤고, 같이 사는 안식구 생일부터 주민번호, 우리 동네 아주머니 성씨하고 이름 모르는게 없지 내가.” 라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마을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로 5년째 노인회장직을 맡아 오고 있는 이회장은 “어렵게만 안살았어도 정식으로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 라며 지난 시절을 아쉬워했다. 제대를 하고 26세에 18살 꽃다운 부인 채옥란(70)여사를 만나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 서중리 주민들의 자랑 근암서원
1544년(중종 39) 근암서당으로 창건되고 나서 지방 유림이 홍언충(洪彦忠)과 이덕형(李德馨)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건립하였다. 이후 1693년 김홍민(金弘敏)과 홍여하(洪汝河)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1669년(현종 10)에 근암서원으로 승격이 되었다. 1786년(정조 10)에 이구(李?), 이만부(李萬敷), 권상일(權相一)을 추가 배향하여 모두 7현을 모시고 있다. 근암서원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생긴 서원으로 규모면에서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며 지역교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경시는 2009년부터 3년간 국비 15억, 도비 4억5000만원, 시비 10억5000만원 총 30억원을 투입해 근암서원 중건사업을 추진하여 완료 하였으며, 관내 초중등 학생들의 예절교육과 인성교육, 한자교육 등을 병행해 실시하며 유림단체의 각종 행사, 서원 스테이, 서원 아카데미 등의 운영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문경 최고의 전통강학 공간의 위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허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