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 혁신과 발달로 인해 일자리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노동의 중개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진행 중이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에서 드러나는 고용관계를 전통적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연장선상으로만 이해해서는 이들을 적절히 보호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 발달이 우리 사회의 노동 측면에서 미치는 변화에 초점을 맞춰 기술변화가 제기하는 노동-사회정책의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요즘 서점에 가면 인공지능이나 로봇기술 등 빠르게 바뀌는 기술변화가 인류에 미칠 영향과 관련된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올해 3월에 있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4대 1로 꺾으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상황이 상상으로부터 갑자기 현실로 내려온 느낌이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등에서 보았듯이 기술이 발전한 미래를 다룬 많은 영화가 기계와 인간의 대립이나 기계의 인간 지배 등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또 기술변화를 다룬 많은 책이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기술변화에 대해 갑자기 높아진 관심의 저변에 불안감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선택이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도한 낙관이나 과도한 비관 모두 경계하면서, 기술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어떤 현실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지 숙고하고, 대비해야 할 때다. 이 글은 기술이 우리 사회에 미치거나 이미 미치고 있는 변화 가운데 노동과 관련된 측면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 기술변화가 제기하는 노동정책과 사회정책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디지털화'가 초래하는 노동세계의 변화
용어를 따라잡기조차 숨 가쁘도록 진행되는 기술변화의 핵심을 한 단어로 담는 표현은 '디지털화'다. 디지털화란 '정보를 비트의 흐름으로 부호화하는 것'으로 정의되며 모든 종류의 정보를 컴퓨터 및 유사 기기의 고유언어인 0과 1로 바꾸는 것이다. 디지털화와 정보처리기술의 발달로 정보재생산의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가 빠르게 처리되고 센서기술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 3D프린팅,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노동의 미래에 폭넓고 깊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초에 7년 만에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장관 회의의 주제가 일의 미래(Future of Work)였고, 다보스 포럼에서도 주요 주제의 하나였다는 점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가. 일자리 증감 논의의 허실
여러 주제 가운데 대중매체에 자주 회자되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과연 디지털 기술이 확산되면서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World Bank)은 올해 발간된 세계개발보고서에서 OECD 국가에서 자동화에 따라 사라질 위험에 처하는 일자리가 57%이고, 중국의 경우에는 이 숫자가 77%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할 뿐이다. 산업혁명기에 있었던 기계파괴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이후 기술변화가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우려는 역사적으로 수차례 반복됐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듯이 인류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전기에 기반을 둔 대량생산(제2차 산업혁명), 정보기술에 기반을 둔 자동화(제3차 산업혁명) 등 300여년도 되지 않는 동안 여러 차례 커다란 기술변화를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일자리 이상으로 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져 왔다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사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인지, 아닌지를 놓고 지금 설왕설래하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 그 역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시점에서 모두에게 확실한 변화와 우리 곁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변화에 먼저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그러한 선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 일자리 배분의 문제
첫 번째로 기술변화에 따라 고용 규모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일자리가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되는가 하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고,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있으므로 일자리의 총량이 어떻게 되든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의 내용이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미 일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하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가르쳐서 청년들을 노동시장으로 내보낼 것인지, 그리고 일자리를 바꾸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기술변화에 따라 교육과 훈련 제도 및 내용을 적절히 바꿔야 한다. 다음으로 일하는 시간의 배분이다. 노동의 총량은 단순히 '일자리 수'가 아니라 '일자리 수와 일자리 당 평균노동시간의 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기술변화에 따라 필요로 하는 노동의 총량이 줄어들더라도 이를 나눠서 하면 일자리 수는 늘어날 수 있다.
매디슨에 따르면 1870년부터 1998년까지 서구 선진국의 연간 총노동시간은 2,950시간에서 1,500시간으로 줄어들었다. 노동시간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늘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근로시간이 줄지 않았다면 일자리 수가 지금의 절반 남짓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토요일에도 일하던 10여년 전과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이틀을 쉬는 요즘의 삶을 생각해 보더라도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자리의 수가 어떻게 될지는 불확실하지만, 미래에도 근로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자리 감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미래 사회에 맞는 근로시간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다. 새로운 '플랫폼 노동'의 확산
기술변화가 일자리의 규모에 미치는 영향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돼 있지만, 수면 아래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고용관계의 변화를 시야에서 놓친다면, 기술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를 이해할 수 없다. 디지털화는 노동을 작은 단위로 분할해 정보 플랫폼을 통해 중개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물론 기술적 가능성이 주어진다고 해서,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것이 곧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소비를 조직하는 방식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디지털 기술이 기존의 생산과 소비의 조직방식을 재편하는 현상은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꽤 그럴듯한 이름 아래 널리 퍼졌다. '에어비앤비'를 통한 주거 공유와 '우버'를 통한 자동차의 공유는 기존의 자본주의적 소비와는 다른 양식의 협력적 소비를 지향하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받았고, 다양한 노동도 재능의 공유라는 이름 아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개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협력적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공유경제가 노동과 관련해서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각종 근로기준 및 최저임금 등 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약화하고, 사회보장제도의 수혜로부터 배제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노동의 세력이 사회적으로 약화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프리드먼은 플랫폼 노동의 확산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표준적인 고용관계가 해체되고, 불안정한 고용이 1980년대 이후 확산되고 있는 현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위 표준적인 고용관계는 장기고용과 기업 내 직무사다리에 기반을 둔 고용관계다. 우리 사회에서는 고용이 보장된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등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노동권에 대한 보호가 약해지면서 소위 '긱(gig)'으로 지칭되는 불안정한 노동이 늘어났다.
우리나라에서 공유경제의 대명사인 '우버'는 허용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에어비앤비'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반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노동의 중개는 이미 여러 영역에서 진행 중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대리운전서비스와 음식 배달이다. 아직은 전화로 호출하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리운전 서비스의 거의 전부, 음식 배달 서비스의 상당 부분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중개되고 있다. 퀵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중개되는 노동은 '플랫폼 노동'이라고 부르거나 '크라우드 워크'라고 부른다. '카카오드라이버'나 '배민라이더스'는 호출(주문)에서 서비스 제공, 결제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한 진일보한 모델을 보여준다.
3. 플랫폼 노동의 고용관계와 노동-사회정책 과제
플랫폼 노동에서 드러나는 고용관계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들을 전통적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디지털 특고로 개념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새로운 플랫폼 노동을 '디지털 특고'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어버릴 경우, 다양한 고용관계의 차이를 감추고 실질적인 보호 측면에서 진전이 전혀 없는 현재의 문제 상황이 지속할 우려가 있다. 특고의 경우 최저임금, 근로시간, 휴일, 휴가 등과 관련해서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당연한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이 어떤 성격을 갖는가는 실제 노동과정에서 지휘통제가 이뤄지는 방식에 따라 임금근로자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 임금노동자와 부분적인 특징만을 공유하는 경우, 독립적인 자영업자에 가까운 경우 등으로 달라진다. 특히 이러한 차이는 직종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직종 내에서도 존재한다. 플랫폼 노동뿐만 아니라 소위 특고 일반에 대해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 접근하는 방식이 타당한지에 대해 심각하게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관계에서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사회보장 제도와도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고용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보험제도가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한 본질적인 질문은 디지털 기술의 확산에 따른 고용관계의 다양화에 대응해 사회보험의 적용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앞으로도 유효할까 하는 것이다. 고용형태에 따라 실제 사회보험의 적용률에 큰 차이가 있고, 플랫폼 노동의 경우 특고로 묶여서 사회보험의 적용으로부터 배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의 폭과 깊이, 그리고 속도를 고려한다면, 사회보장 측면에서도 사회보험제도의 보호 범위를 전통적인 임금근로자에서 특고로까지 확장하는 방안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인 기본소득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