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인권유린 드러나 감옥행 박 원장, 출소 뒤 법인대표 복귀
국제신문
이경식 유정환 기자 yisg@kookje.co.kr
2014-05-14 21:21:15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이 전 부산시 공무원 A 씨에게 2000만 원을 보낸 입금표.
- 법인재산매각 등 탈법·비리 계속
- 거대 수익사업체 운영 승승장구
- 부산시, 매년 재산·회계 등 감사
- 2012년엔 특별조사까지 했지만
- 공무원과 '검은 거래' 제기 없어
- 부정비리 제식구 감싸기 의혹
- 시민단체 "유착 사실로 드러나"
- 市 차원 정밀감사·추가 고발
- 검찰수사도 조속히 시행 촉구
대다수 시민의 건전한 상식대로라면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현 느헤미야)은 불법감금 강제노역 구타 성폭행 살해 암매장 등 유례없는 인권유린 실상이 드러났던 1987년 청산됐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만행을 저지른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법원으로부터 불법감금 혐의에 대해선 면죄부를 받고 횡령 등 죄만으로 2년6개월의 가벼운 형을 산 뒤 석방됐다.
이어 1992년 법인 대표이사에 다시 취임해 중증장애인요양시설과 해수온천, 레포츠시설 등 수익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복지왕국'을 재건해 자식에게 대물림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제복지원, 관이 키운 복지마피아
전 시 사회복지과장 B 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복지원 수익사업체들의 리모델링공사를 발주한 계약서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 배경을 파고 들어가면 국가와 일부 '영혼없는' 공무원들의 비호가 버티고 있다.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조치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 지침)에 따라 형제복지원이 부산시와 부랑인 일시보호사업 위탁계약을 맺고 12년간 합법적으로 인권을 유린했던 게 '상식 파괴 드라마'의 1막이었다면, 이후 일부 시 공무원과 유착돼 거액의 대출을 받거나 법인 재산을 처분해가며 지역 사회복지업계의 맹주로 성장해온 게 2막이다.
14일 부산사회복지연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공무원은 부적정한 장기차입허가와 기본재산 처분허가 등으로 박 원장을 비호하고, 박 원장은 그런 공무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그 가족에게 법인 수익사업체의 리모델링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발주하는 등 보답을 했다. 이런 점에서 형제복지원은 사실상 관이 키운 '복지마피아'인 셈이다.
시의 첫 기본재산 처분허가는 박 원장이 법인 대표이사에 복귀한 지 4년 후인 1996년 이뤄졌다. 대상물건은 형제복지원이 들어섰던 부산 사상구 주례2동 대지 2만8310㎡와 건물이었다. 국유지인 이 땅을 공익사업 명목으로 1461만 원의 헐값에 매입한 형제복지원은 2001년 223억여 원에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다.
2005년 4월 형제복지원은 또 50억 원의 장기차입허가를 요청했지만 시는 불허했다. 그랬던 시가 이듬해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50억 원의 장기차입을 허가하고, 그에 앞서 사상해수온천과 장림 빅월드레포츠 수익사업도 허가해줬다.
기장군은 2006년 8월 형제복지원으로부터 10억 원의 장기차입허가 요청을 받고 "기본재산(당시 270억 원)의 100분의 5(11억 원) 미만일 경우 허가받을 필요가 없다"며 잘못된 행정처분을 내려 무허가 장기차입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시는 이어 2008년 6월과 2009년 4월 각각 15억 원과 118억 원의 장기차입을 추가로 허가했다.
■부산시 특별조사, 제 식구 감싸기?
전 시 사회복지과장 B 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업체에 복지원 수익사업체들의 리모델링공사를 발주한 계약서들.
시와 기장군의 이 같은 행정처분은 2012년 9월 실시된 시의 특별조사에서 거의 대부분 '부적정한 조처'라는 지적을 받았다. 시는 조사 후 검찰에 ▷기본재산 매각대금 중 횡령 및 배임(의심금액 14억5000만 원) ▷수익회계 사적용도 사용(6억4000만 원) 및 지출 부적정(6억 원) ▷장기차입금 허가조건 미이행(16억4000만 원) 및 무허가 차입(4억5000만 원) 등 3건을 고발했다. 문제는 특별조사 전 시와 기장군이 매년 형제복지원의 재산 및 회계관리 실태 등을 지도점검하거나 감사했지만 이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실감사 수준을 넘어 비호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원장으로부터 2000만 원을 받은 전 시 사회복지과 공무원 A 씨는 "사회복지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박 원장과 친하게 지냈다. 박 원장이 자서전을 낸다고 해 자료 수집과 정리를 도와줬다"고 밝혀 유착 정도를 짐작게 했다. 아들이 형제복지원 수익사업체들의 리모델링공사를 수주한 전 시 사회복지과장 B 씨는 "복지도 경영이다. 그 사람들이 필요해서 (장기차입 및 기본재산 매각허가 등을) 요구하면 안 해줄 수 없다"며 되레 행정처분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박 원장과 일부 공무원의 이런 유착관계는 시 특별조사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시는 당시 "박 원장이 노환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데다 법인 경리담당 여직원이 퇴직한 상황이어서 유착 의혹은 확인하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특별조사 책임자는 "담당 직원들이 조사해 결과 보고하는 것을 검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사항은 모른다"며 발뺌했다.
유착관계는 검찰 수사에서도 규명되지 않았다. 시의 고발사건을 수사한 부산지검은 법인재산 18억4000만 원을 빼돌리거나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박 원장의 아들을 불구속 기소한 상태다. 당시 부산지검 1차장으로 근무하며 수사를 지휘했던 김오수 대검찰청 형사부장은 "공무원 유착에 대한 부산시의 고발이 없어 수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유착관계에 대한 시의 정밀감사 및 추가 고발과 검찰 수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문제는 지난 3월 24일 입법 발의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도 중요 과제로 던져졌다. 유착관계가 제대로 규명돼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