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건강상의 이유로 늘 여러 날에 걸친 여행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 제가 최근에 몇차례의 여행 끝에 경험하게 된 것은 모든 여행은 걱정보다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는 몇 달 전부터 계획 됐던 일이었지만 역시, 5박 6일이란 일정으로 인해
적지 않게 부담이 됐습니다.
때 마침 성지순례 한 달을 앞두고 시어머님 상을 치르게 되어 여러 가지 부담이 가중되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고심 끝에 이번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우리 부부를 순례에 초대해주신 분의 배려를 크게 생각하는
데오필로의 마음을 따르기로 하였고
어쩌면 돌아가신 어머님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순례를 포기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애지중지하는 무거운 카메라는 일단 포기하고 ‘건강하게만 돌아오자’ 라는 굳은 결심으로 5박 6일을
나가사키현, 고토, 신 가미고토의 성지 순례에 임했습니다.
이번에도 작년 베트남에서처럼 나흘 째 되는 날 심한 두통과 속병으로 일정을 잠시 포기해야 했지만,
육체적 고통이 늘 그렇듯 건강의 상실과 그 뒤를 잇는 회복의 기운은 제게 작은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첫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후쿠에 공항, 고토시, 신 가미고토, 나가사키, 사세보, 히라도, 이키치키 등을 경유하며
6일째 후쿠오카에 돌아오기까지 일본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유산과 보고들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경험했습니다.
특히 신자 본보기로 26명의 그리스도인을 처참하게 처형하는 극심한 종교 박해와 함께
원폭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나가사키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 조각상, 기념관, 박물관 등 여러 시설들이 있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현존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원폭의 피해는 그 당시 일본으로 끌려와 노동자로 착취당했던 수많은 조선인들도 비껴가지 않았기에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을 기리는 상이 따로 제작되어 있었습니다.
5박 6일동안 성지순례를 하며 해상텍시등 온갖 교통수단을 다 경험했는데,
이번 여행을 위해 국제운전면허를 준비한 데오필로는 이틀간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는 렌트카를 운전했던 경험을
몹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지금도 자신의 운전경험을 카멜레온의 적응력에 비유하며 주변에 무용담처럼 들려 주고 있습니다.
렌트카에 타면서부터 시작된 두통과 심한 속병으로 고생한 저와는 달리
테오필로는 ‘렌트카 운전이 빠진 성지순례’는 ‘앙꼬없는 찐빵’이 될 만큼
자신의 존재감 확인에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는 실감이 드는 부분이네요.
나가사키 현 안에는 130여개의 성당이 있는데, 그 중 삼분의 일 이상이 고토에 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성당(천주당)을 순례하여 각 성당 개개의 특징을 기술할 순 없지만,
대체로 스테인드 글라스(유리화)가 인상적으로 아름다웠고
성당마다 독특한 유리화가 많았습니다.
(고토에는 동백꽃이 유명하여 동백꽃의 유리화가 많다)
작은 오두막 성당과 달리 크고 화려한 성당들은 1961년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성당의 특징
(제단이 벽면에 붙어있고, 감실, 성체등이 중앙에 있으며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크기가 큰 14처 그림, 팔각형의 기둥, 8분활의 천정형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습니다.
이후 46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굳은 신앙으로 고난을 겪고 참으며 이겨낸
키리시탄(포르투갈어 ‘크리스타오’에서 유래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 자손들의 손에 의해 세워진
나가사키의 교회들이 긴 박해의 시기를 고스란히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천주교 박해사를 다룬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는
자신 때문에 신자들이 모진 고난을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가 ‘왜 일본에 가톨릭이 뿌리내릴 수 없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늪지대야. 어떤 묘목이라도 그 무서운 늪지대에 심으면 잎이 누렇게 말라버리지.
우리는 이 늪지대에 그리스도라는 묘목을 심은거야.”
일본은 늪지대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천주교에 끔찍한 박해를 가했습니다.
1614년 에도막부시대를 연 도루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일본 전역에 금교령이 내려 진 이후 1873년
신앙의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25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의 키리시탄들은 박해에 시달리며 죽임을 당했습니다.
박해 기간이 워낙 길어서인지 신자들은 지금도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지키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선교에 대한 의지가 약해 교세는 수십년 째 제자리걸음이라는 군요.
일본의 복음화 율을 0.4%에 불과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봅니다.
성당은 오두막형태든, 크고 화려하든 그 작은 섬에 놀라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주일미사도 제대로 봉헌되지 못하는 성당이 많았고
박해의 영향인지 내부 사진 촬영도 극히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양해를 얻어 스마트폰으로 성당의 여러 모습들을 많이 담았습니다.
일본의 천주교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키현은 가톨릭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일본에서 그나마 가톨릭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입니다.
1549년 일본에 도착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는 이듬해
나가사키현의 작은 섬 히라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신자 본보기로 처형된 26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순교 일번지답게 나가사키의 복음화율은 4,35%로 일본의 복음화율 평균 10배입니다,
박해가 심한 곳에서 하느님의 축복은 피땀 어린 신앙의 유산을 보고로 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유산을 세계에 알리고자 나가사키의 노쿠비 성당 등 12곳은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전주교구의 아름다운 나바위 성당도 이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한편 이키쯔키에는 잠복시대부터 신앙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지켜 내려온 사람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숨어서 모여 자신들이 임명한 사제의 주도로 기도 모임을 갖는 것이지요.
긴 세월 잠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그들을 ‘카쿠레 키리시탄’
(카쿠레는 ‘숨는다’라는 뜻)이라고 부르고 있고요.
우리를 고토열도에 있는 키리스탄 동굴로 안내해준 배(어선)의 선주는 카쿠레 키리스탄의
9대째 사제였는데, 원래 사제직은 아들에게 승계하도록 규율로 정해져 있는데 9대째는 아들이 없어
사위인 자신에게 승계됐다고 했습니다.
9대째 숨겨서 간직해온 기도서와 성가집(라틴어를 일본어로 음을 옮겨놓은)을 보여주었는데 주로 성모신심을 표현한 성가와 기도문이 많았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지금에도 왜 이런 신앙을 유지하느냐’의 질문에 이들은 신앙의 자유안에서도 신앙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신앙의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천주당(성당) 순례를 많이 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수백장의 사진들이 그때의 감동을 다 전해주진 못하지만
일본인 신자들과 한국말로 미사봉헌 했던 기억을 축동성당 입구에서 자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축동성당 앞에 서면 늘 드렸던 기도에 이제 한 가지 기도를 덧 붙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당이 저만큼에서 보이면 성당입구 닭 조형물이 상징하는 베드로 성인께
‘성 베드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예수성심상을 향하여 ‘예수 성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고
정면에 보이는 성모상을 향하여는 ‘성 마리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젠 한 가지 기도를 더 바칩니다.
‘일본의 성인 성녀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요.
그리곤 한국의 성인 성녀께도 전구를 청합니다.
그러면 마음 한편이 든든해 집니다.
이렇게 많은 성인 성녀의 전구를 받고 있으니까요.
스마프폰 사진이라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앞으로 일본성지순례를 하게 될 형제 자매님들을 위해 일본의 천주당(성당)중심의 사진을 여러 장 올려 보았습니다.
하마와키성당
고백소
로야노사코(강옥)순교기념성당
1868년 로야(감옥)가 있던 자리에 성당이 세워짐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 고토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이곳 히사카시마 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포박된 잠복신자 200여명은 6평 남짓한 감옥에 10개월간 수용되었는데 공간이 좁아 발이 채 안닫게 서있었으며
질식사와 가혹한 고문으로 수감중 39명이 옥사하였고 후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42명의 순교자 위령비
도자키 성당
후쿠에 성당
손은 왜 꼭 잡고 ~~
가시라 가시마 천주당
고 다이노우라 성당
가시라 가시마 천주당 - 일본 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석조 성당
천주교묘지
다카노스 크리스천 순교비
아오사 가우라 천주당
특산품인 소금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소금 제조과정 - 바닷물을 끓여가며 소금을 걷어낸다
오소성당
키리스탄 9대 사제가 키리스탄 동굴로 실어다 준 어선에서
키리스탄 동굴 입구
신앙의 선구자 현향비- 중앙의 나가사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가스팔 오사쿠는 고토에서 처음으로 오우라 천주당을
찾아가 사제를 만나 전교사가 되어 고토에 돌아와 전교자 양성소를 만들어 교육에 힘썼다
아직도 기리성당 근처에는 가쿠레 키리스탄 미을이 존재한다
키리스탄들을 박해했던 고문틀
후미에상 - 그리스도인을 밝혀내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모 마리아나 예수상이 새겨진 후미에상을 밟고 지나가게 하며
배교를 강요했다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이 많다
나가사키항의 공원의 아침 모습 = 요가하는 부부
오우라 천주당
|
첫댓글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이 여름에 5박 6일의 긴 여행에 많이 지쳤을 텐데...
아주 상세한 여행 기록에 저도 동행한 듯 합니다.
성바오로 출판사의 '나가사끼의 노래'을 읽어보고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성인들의 도우심으로 건강과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해요 ^^*
나가사끼의 성지들을 이렇게 볼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생생한 성당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 정말 좋네요.
큰일 치루시고 다녀오시느라 몸은 좀 고되어도 더 많은걸 얻는것이 여행인듯 합니다.
기회가 되면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은혜로운 순례 여정이 축복의 나날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덕분에 꽁짜 순례^^* 감사~!
일본에도 많은 박해가 있었다는것을 이번여행에 통해 새삼 알게 되었으며, 특히 일본은 천왕이외의 신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심한 박해가 있었고 많은 순교자들 있었다는것을 알았으며, 한가지 놀라던것은 많은 성당들이 한달에 1 ~ 2번 미사를 하는곳이 있지만 모든성당들이 너무나 잘 관리되고 있음에 지금은 몇몇 되지 않는 신자분들이 너무나 신앙심이 두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키리스탄 동굴은 너무 깊은인상과 9대의 사위사제 그분도 일본말은 잘알아듣지 못했지만 너무나 신앙의 자부심이 대단함에 경의를 보냅니다.. 소금아이스크림은 약간짜지만 넘 맛있었어요 ㅎㅎㅎ
자세한 정보와 성지는 짱 입니다
10년 전에 배낭으로15일간 일본여행 갔다왔지만
이런 감동 없었읍니다 이렇게 공짜로 구경 해도 돼나요 ?
자세하고 꼼꼼 하게 짚어 주심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거리와 가는곳 마다 공기는 아주 좋더라구요
여기도 처음 저기도 처음이니 볼만 하드라구요 암~튼 감사합니다
제가 함께한것 같아요 건강과 행복 하소서 하느님 은총 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