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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k 5 위로를 듣다 (도반-필림)
우리는 트레킹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커다란 도미토리에서 같이 잠을 잤는데, 학생 때 흔히 그랬던 것처럼 무서운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시간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걸 알아버리면 그다음, 세상에 떠도는 무서운 이야기쯤은 아마도 시시하기만 하겠지요. 저는 그 밤에, 이제 다시는 제 인생에 젊음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음이 사라지면, 젊음과 같이 동반되었던 마법같은 연금술도 사라지겠지요. 서로에게 작용하여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젊음이고, 조금이라도 침범당하거나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스러움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갈팡질팡하는 것은 미숙함이라고, 마음이 제멋대로 명명하는 사이 그날 밤 어둠은 깊고, 바람소리는 정말로 요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래층에서 식사를 마치고 마당에 나오니 바람은 그쳤는데 기온이 여전히 쌀쌀합니다. 프랑스팀이 잔뜩 옷을 껴입고 텐트 밖으로 짐을 빼냅니다. 비에 젖은 마당이라 간밤에는 습기 때문에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밤, 늦도록 자기들의 텐트 속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일까요? 밝은 불을 켜놓고, 환하게 웃던 그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2층의 난간에서 잠깐 보았었지요.
트레킹의 다섯 번째 날은,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롯지의 바로 뒤가 철제다리였습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트레킹 자체를 상당히 망설였던 일행 중에 한 분은 전날 오후 다리에 나와 답사까지 했는데, 가이드 타시와 요리사 노르지가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연습한 덕분인지, 오늘은 여유있게 다리를 건너고 뒤따라오는 저를 보고 스틱을 한 번 흔들어 줍니다.
“다리를 자꾸 건너서 난 이제 고소를 극복했나봐.”
풍경은 여전히 나무가 많은 숲길입니다. 설산이 눈앞에 보입니다. "마나슬루예요?"라고 제가 묻자 마나슬루는 아직 멀었고
"7187m 시링기 히말"이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처음 만나는 설산이 손톱만합니다. 그래도 자꾸만 올려다보게 됩니다.
공기가 상쾌합니다.
익숙해지자 마음은 다시 트레킹을 따라오지 않은 것처럼, 제멋대로의 자기만의 길을 따라 흐릅니다.
‘마음은 본래 그런 거야, 경계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흘러가는 것이 마음이지.’ 혼자 도망치기 미안했던지 가끔은 전에 들었던 그런 법문도 한 번씩 제 귓가에 살짝 물어다 줍니다.
듣는 순간 마음을 흔들었던 그 법문들은 그곳에서도 희미하게나마 잔걱정들을 물리쳐 줍니다.
갑자기 툭 터진 모래사장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무릉도원이네.”
무릉도원이라는데, 그 풍경은 어쩐지 눈에 익숙합니다.
멀리로 깎아지른 골짜기가 있고, 깨끗한 모래와 굽이쳐 흐르는 한가로운 물이 있고, 고즈넉한 집 한 채가 풀잎 지붕을 이고 쓰러질 듯이 서 있는 외딴 곳,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눈에 익었더라, 헤아리다가 문득, 낮잠을 자려고 눕거나 혼자서 심심해지면 무심코 올려다보던 그림액자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린시절, 너무나 익숙하게 거기 그렇게 걸려 있었던, 그림 액자에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고 멋을 내 흘려 쓴 글씨가 있었고, 바탕에는 저렇게 물이 흐르고 초가가 있고 물레방아도 있는, 너무나 고요해서 도저히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은 풍경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글씨를 막 깨우는 어린 저는 그림을 보고, 시를 한 번씩 읽고, 그러다 생각날 때마다 저는 항상 그 액자를 누가 가져왔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엄마인가 언니인가가 “삼촌이.”라고 귀찮은듯 대답해 주곤 했습니다.
놀랍거나 신기해하지도 않으면서 너무나 당연한 듯 저는 물을 건너고, 아주 오래 전에 보고 또 보았던 그 풍경, 그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또박또박 걸어서 초가를 마주하고 초우따라에 배낭을 풀고 나니, 문득, 사무치게 고요한 마음입니다.
초우따라를 기대어 올려다 본 하늘은 더 높고, 더욱 파랗고, 설산이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하늘을 올려다 볼수록 제가 서 있는 그곳은 낮고 고요한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 자리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기 한 번쯤 쉬어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무로 만든 초우따라와 외딴집이 있고, 그런데 그 외딴집과 초우따라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없다…우리말고는.
그런 느낌이 그렇게 고즈넉한 기분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아무도 살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가 그곳을 지나가고, 그곳에서 한 번쯤 무거운 짐을 풀고 쉬어가리라는 믿음을 확실하게 가진 사람만이 거기 그렇게 초우따라와 초가를 지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의 믿음이, 그의 배려가 무릉도원 같은 풍경보다 더 신비했습니다. 물 한모금을 마시고, 허리에 두 손을 짚고 그곳을 한 바퀴 빙빙 돌아보자 더욱 마음에 사무쳤습니다.
그곳에서 땀흘리며 망치질을 한 사람에게, 등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그 곳을 지나간 사람들에게,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는 행복하라는 축원을 합니다.
어느날 저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흐뭇하도록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음'
다시 길을 걷습니다. 일부러 부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충만된 저의 마음은 숲길을 걷는 제 몸 옆에 나란히 다가와 눈이 보는 것, 귀가 듣는 것, 피부가 감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자 걷는 일은 몹시 즐겁고 수월해집니다. 저도 모르게 자꾸 하늘을, 설산을, 구름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윽고 우리는 높은 가지에 꽃처럼 붉은 이파리를 매단 포인세티아가 늘어서 있고, 담장에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으며, 바닥은 돌로 다듬어 매끄럽게 깔린 풍요로운 마을을 만났습니다. 일렁이는 햇빛을 피해 농가의 풀밭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은 기름에 튀긴 티베탄 빵이고, 삶은 야채와 생 야채 몇 가지와 꿀과 잼과 소시지 등이 곁들여 나왔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서자, 낮은 지붕위에 곡식과 채소를 말리려고 올려놓은 바구니들이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저의 베란다에 그런 것을 널어놓은 적은 없지만, 마당있는 집에 살 적에 엄마는 항상 그렇게 했었기 때문에 그 모습들이 정다웠습니다. 햇빛이 우리를 따라오고 우리는 길을 따라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고 작은 다리들을 건넜습니다.
한참을 걸은 뒤, 앞선 마을보다 더 멋있게 돌담을 쌓아놓은 마을을 만났습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넓적하고 검은 돌을 골라서 깔아놓은 도로는 멋있었습니다. 마치 흙으로 넓은 길을 만들어놓았던 투르판의 교하고성을 보았을 때처럼, 뭔가 사람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이는 교하고성은 순전히 붉은 흙으로 만든 성이며 폐허였다는 점이고, 제가 마나슬루 지역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만난 마을은 돌로 길을 쌓고, 담장을 만든 마을이며,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현재형으로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비용을 모아서 도로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자랑스럽게 돌에 새겨놓을만 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보고 싶었던 ‘마니월’을 만났습니다.
마니월은 부처님의 말씀을 돌에 새긴 담장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돌에 새겨서, 절이 아닌 누구나 지나다니는 마을의 한중간에 턱턱 쌓아놓은 것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부처님이 몸소 저자거리로 내려오신 듯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그 마니월을 만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걷고 또 걸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언젠가 멋진 석굴들을 돌아보는 여행 끝에 빈 벽과 바위만 보면 부처님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신기하게도 몇 년 뒤의 어느 날 저녁에, 염화실의 법문을 들을 때 큰스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돈이 많다면 아파트의 벽을 모두 사서 <수처작주 입처개진> 같은 부처님 말씀을 적어 놓고 싶다” 저는 뭉클해진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었습니다. 그 때 차분하게 번져오는 담청색의 하늘을 기억합니다.
같은 생각,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는 사실을 또한번 저는 그 높은 마을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에 섬세하게 조각된 부처님의 말씀, 아름답게 채색된 글자들,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그 반들반들하게 바람에 깎이고, 햇빛에 따뜻하게 익은 글자들을 만져봅니다.
들었던 많은 법문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순간 그 자리에 모두 모였습니다. 마음으로 가득히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잊지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토록 오래전에, 그토록 정성스럽게 우주를 향해 쏘아올린 그 아름다운 메시지를 잘 보아두었습니다.
그것이 거기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만 기억한다면, 아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그 기도들이 저를 지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강력한 그 위로를 다시 받고 싶다면 마음을 가만히 그곳을 향해 주파수를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작은 냇물에 머리를 감고 해바라기를 하던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먼저 ‘나마스떼!’ 인사하자 ‘나마스떼!’ 라고 메아리 같은 인사를 되돌려 줍니다.
이윽고 길고 험한 다리를 건너고, 마을처녀들이 공동 수도에서 빨래를 하는 아늑한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마을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빨래를 하는 여인들이 아름답고, 그 사이 풀밭위에 미리 쳐놓은 우리 초록색 텐트가 반갑습니다.
아직도 쓰고 남을 만큼 넉넉하게 남아있는 따뜻한 햇볕이 고맙습니다.
마을 공동 수도에 내려가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하고, 각자의 텐트에 짐을 정리한 우리는 식당텐트에서 촛불을 켜놓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trek 6. 지금 이대로 괜찮다(필림-뎅)
밤에 별이 가깝게 다가와 있었는데 아침은 조금 춥습니다. 높은 산봉우리 때문에 절벽길에 그늘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습니다. 자주 마주치다보니 얼굴이 저절로 익은 프랑스팀이 ‘봉쥬르’ 인사를 합니다.
반사적으로 웃음을 짓고 굿모닝!하고 답합니다. 봉쥬르, 혹은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조금 지난 뒤에야 입속으로 웅얼거립니다.
우리가 먼저 캠프사이트를 차지해서 프랑스팀들이 어제 조금 더 올라간 캠프사이트에 텐트를 쳤습니다. 덕분에 오늘의 운행은 그들이 우리보다 앞섭니다.
배낭을 맨 채, 스틱을 짚고 서서 프랑스 대원들이 바라보는 곳에는 원숭이떼들이 너무 멀리, 조그맣게 보입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원숭이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어서 그냥 넋 놓고 가만히 쉬고 있는데 불쑥 ‘대마초다!’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뭔가 숨겨야 할 것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쿵쿵 두근거립니다.
고개가 저절로 대마초라는 식물로 돌려집니다.
보기에는 시든 꽃 같은데 향기가 상긋합니다. 꽃향기도 좋지만, 한국에 가서 자랑하자고 사진을 찍자고 웃는 모습을 보자 천진한 기분이 듭니다. 사실, 대마초를 봤다는 것이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보면 안 되고 가지면 안 되는 금기를 이렇게 지천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고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여름 유럽을 여행했던 저의 친구는 양귀비 꽃밭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해주고 사진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양귀비 꽃밭에 대한 저의 느낌은 거의 없었지만, 제가 언젠가 유럽에 가게 된다면 친구와 똑같이 양귀비 꽃밭을 좀더 오래 자세히 보게 될 것이고, 그리고 분명히 셔터를 누르며 그 친구 얼굴을 그려 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우리는 뜻밖의 향기에 모두 기뻐합니다. 대마초 말린 것을 파이프에 말아서 깊이 흡입을 해야만 환각작용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향기만으로도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들다니 대마는 분명히 마력적인 식물인 것 같습니다.
소심한 저는 시든 꽃잎 몇 개피를 따서 지갑에 넣었고, 어떤 분은 텐트 속 방향제로 쓴다고 한다발을 모았습니다. 상한 사과를 서랍 속에 넣고, 시가 안 써질 때마다 서랍을 열어 사과 향기를 맡았다는 영국시인이 생각났습니다.
그날 우리는 아주 아찔한 다리를 건넜습니다. 가운데가 움푹 패이고, 패인 곳에 돌까지 올려놓은 다리였습니다. 위험한 다리를 건널수록, 건널 때는 몸과 마음이 바싹 하나가 됩니다.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해 다리를 건너고 나서 돌아보면, 아득하고 먼 세계를 지나온 것처럼 시간과 공간이 모두 잊혀지고 텅 빈 기분이 됩니다.
뎅이라는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반갑습니다. 표지판을 만나고도 한참을 걸었습니다.
기대 때문인지 멀고 험난한 오르막이었습니다. 이윽고 카니라고 하는 돌문을 지났습니다.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문인데, 멀리서라도 그런 문을 보면 무조건 반갑습니다.
안에는 공책만한 칸들이 나뉘어져 있고, 칸마다 채색된 그림도 있습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강행군을 했는데, 힘이 거진 소진될 즈음에 길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키친팀을 보았습니다. 같은 거리를 걷는데도 언제나 기운이 넘치고 유쾌한 그들을 보면 저절로 기운이 납니다. 더구나 식탁 서빙을 해주는 빠상은 굉장히 멋내기를 좋아하는 청년이어서 그의 패셔너블한 모자나 반바지같은 여러 의상 소품들이 그 어려운 고장에서도 알록달록 바뀌는 것을 보면 멋내기 좋아하는 저희 조카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숙소인 집의 돌벽을 지나서 계단을 몇 개 내려가니 햇빛 아래 수직으로 세운 깃발과 수평으로 세운 깃발이 펄럭입니다. 마당을 건너 밭을 지나서 이웃에 서있는 초르텐도 보입니다.
초르텐은 대원스님의 사이트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티벳식 탑입니다. 카트만두에서 보았던 탑이 조그맣게 축소된 듯, 탑 위에 그려진 붓다아이가 반갑습니다. 눈이 있어서, 탑이 꼭 저를 내려다 보고 말을 거는 것만 같습니다.
소박하게 펄럭이는 깃발과 마을 입구를 알리는 돌탑 카니를 보니, 그동안 그토록 보고 싶고, 느끼고 싶던 불자들의 마을에 도착을 했구나 설레이고 어쩐지 안심입니다.
마당 끝편에 맨드라미처럼 붉은 꽃이 피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고 텐트를 쳐놓은 간이 화장실도 있습니다. 붉은 꽃은 꽃이 아니라 곡식이라고 합니다. 좁쌀처럼 자잘한 그 열매를 아낙들이 키로 까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숙소의 그 붉은 열매는 우리들에게 ‘그 아래는 천길 절벽’이라는 신호가 됩니다.
“저기 저 붉은 꽃 아래는 내려가지 마세요.”주의를 받습니다.
식사 준비를 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한 우리는 햇볕을 피해 그늘에 자리를 폅니다. 그늘은 바람 때문에 조금 춥습니다. 민소매 옷을 입은 서양커플은 뜨거운 햇빛이 내려쬐이는 풀밭에서 빵과 차로 요기를 합니다.
영화속 한 풍경 같습니다. 햇빛 속에 그들은 자유로워 보입니다. 모자도 없이 그 뜨거운 햇빛 아래 차를 마실 용기는 없지만, 무엇이건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두 사람을 보니 좋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텐트 속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데 바람이 대단합니다.
바람 때문에 구름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하얀 설산이 신비롭습니다.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수직으로 세운 깃발을 룽다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바람의 말, 풍마(風馬)라고 합니다. 수직 으로 세운 깃대는 앞 발을 들고 선 말의 형상이고 휘날리는 천들은 말의 갈기와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룽다가 탁한 바람을 맑게 하고, 거센 바람을 따듯하게 해준다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한편 룽다와 똑같은 깃발을 수평으로 널어놓은 것은 타르초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수직으로도, 수평으로도 매달아 놓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한 쪽으로만 편향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까요?
부드러운 바람을 기원해야 할 만큼 그곳의 바람은 거칠고 심난합니다. 그래도 바람이 많이 불수록 부처님의 말씀이 세상에 더 많이 전파된다는 생각은 기분좋은 상상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부처님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세상에 많이 전파되어 행복하고, 바람이 잠잠하면 내 사람살이가 평온하여 행복하고…마음 하나 바꾸어서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는 신호들이 따뜻합니다.
마음 밖의 세상을 쫓아 이쪽으로 저쪽으로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 상처받고, 다시 다른 방향으로 꺾어 상처받는 저 자신에게, 수평으로, 수직으로 사이좋게 펄럭이는 깃발이 그러지 말라고, 거친 바람조차 미워하지 말라고 다독다독 저를 감쌉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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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나슬루 잘 읽었습니다..
慧明華님,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의 글과 사진을 보았더니 대마초 향기를 맡은 듯 상쾌합니다. 그리고 흐뭇하도록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것이라는 행복의 사전적의미도 되새깁니다. 만족할 줄 아는 자가 제일 부자라는 부처님의 말씀과 일치하네요.
향기로운 차 한잔을 들고 잔잔히 읽어 나갑니다, 오래 묵은 헷세의 글 처럼..._()()()_
충분히 힘들겠다느꼈을 상황들이, 그대로 자유롭고 넉넉하게 다가오니...몇년 사이 제 마음의 변화를^^ 알게 되네요...혜명화님
유록색으로 물든 오월의 연두빛처럼 맑고 고운 혜명화님의 글과 사진...힘찬 에너지원이 되어 새롭고 희망찬 일상을 꿈꾸게 합니다...힘든 순간 순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해져 오는 따뜻한 마음...언제나 함께합니다.
참으로 고맙게 잘 보고 갑니다
한 번쯤 무거운 짐을 풀고 쉬어가리라.....마나슬루의 초가에서 ^^*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또 이렇게 슬그머니 돌아온 여행기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오후 친구를 만나서 광릉에서 바람을 쐬고 종이커피를 마시고, 의정부 예술의 전당 야외무대에서 동물원의 공연을 한시간동안 보았어요. 좋아하는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도 들었습니다. 저는 그노래의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부분만 유독 좋아했었는데, 20년쯤 지난 지금, <바람이 불면 음-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바람이 불면 음-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음 -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 이 대목이 유난스럽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영상에 재밌는 글 까지 실어주셔서 잘 감상했네여 ,,,ㅎㅎ^ 여행비 안들고.....
다녀오실때는 힘드셨죠.저는 가만히 평화롭게 감상 잘했습니다. 그 마음에 향기가 느껴집니다.고맙습니다._()()()_
삶의 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여행......고맙습니다._()()()_
"마니월" ()......혜명화님, 이어진 여행기 너무나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_()()()_
혜명화님~ 오래동안 기다렸던 여행 후기 반갑게 읽었습니다. 힘들게 다녀오신 길을 저는 참으로 편안히 그때의 감상을 느끼며 따라 갔습니다. 고맙습니다. _()()()_
타르초가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는 소리 함께 느껴 봅니다.남쵸호수 언덕위에 정신도 못차릴 정도로 펄럭이던 타르초....녹음의 싱그러움과 파란 하늘을 담은 모습 인상적이네요.살속 깊이 닿는 느낌을 주는 여행기 정말 잘 보았습니다.^^*_()()()_
아무나 흉내낼수 없는 이 글 솜씨.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 화려하게 펼친 사진솜씨. 그 맵씨하며.... 慧明華님보고 읽으며 감탄했습니다._()()()_
_()()()_
앞으로 올 사람들에게는 행복하라는 축원을 합니다... 慧明華 님의 행복축원이 천파만파로 ... 고맙습니다... _()()()_
티벳풍경은 정말 절경이군요. 그림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철제다리. 마니월..... 잘 보았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