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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대민(주일낮)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5:16-17)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성경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거룩을 추구해야 하고(레 11:45) 성령을 받음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갈 5:16; 5:25). 하지만 이것은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오래 참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선한 일을 하며 진실히 행하며, 온유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영생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사람이 죄에서 해방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의 인도를 따르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도 기쁜 일이요, 마귀가 마음에 거하던 지옥 생활에서 성령이 마음에 거하는 천국 생활도 기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걱정하던 세상적인 염려들이 사라지고, 거룩한 열정으로 하나님의 일꾼들로 살아갑니다.
실로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한 시대의 지도자로서 일했던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능히 세상의 것을 거절하고 말씀대로 살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육을 따라 살면 말씀을 지키는데 무능력자가 되고 성령을 따라 살면 말씀을 잘 지키는 능력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려면 적극적으로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따르고 영의 인도를 받아야 하며 성령의 법을 따르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약속의 성령님을 따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속의 성령을 따라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이 있는 자는 복된 자입니다. 율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자는 저주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구석구석을 약속의 성령을 따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성령을 따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성도들 앞에 복된 길을 마련해 두셨고, 그 길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육체의 본성을 따라 행하면 썩을 것을 거두지만, 성령을 따라 행하면 영생을 거둡니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기회가 있을 때 선을 행해야 합니다. 모든 이에게, 특히 믿음의 가정들에 선한 씨앗을 열심히 뿌려야 합니다.
오늘은 말씀의 제목처럼 “성령을 따라” 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됩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입니다. 오늘도 성령에 이끌림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시기를 바랍니다.
1.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합니다.(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합해져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즐거움을 찾음도 당연하지만, 영혼의 즐거움이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이 일은 술이나 세상 물질, 육체의 소욕으로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그 영혼이 기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더구나 성도들은 육의 생활을 버리고 영혼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리고. 육체를 따라서 행하는 사람들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육체대로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망하게 되는 법이므로 성도들은 특별히 육체의 욕심을 좇음이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데서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성도 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이 내게 응하고 내가 말씀을 응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될 때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실 우리들은 전에 믿음 밖에 살 때에 마귀가 이끄는 대로 살아 육체의 욕심을 따랐지만 이제는 성령으로 거듭났기에 성령님이 이끄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만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케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엡5:18).
성령의 활동은 성도 안에서 성도의 옛사람을 죽이는 작업을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죽이고 성령의 요구대로 살게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었던 사도바울도 죄를 추구하는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의 법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고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롬7:18~24)
그런데 하물며 먼지 같은 우리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 결심과 희망사항으로는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므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들이 육체가 하고 싶은 죄의 종에서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날마다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겨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죄와 싸우고 죄를 부추기는 악한 영과 싸워 이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에베소서4장22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성경 여러 곳에서 육체의 욕심,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을 옛 사람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범죄 하는 옛 사람은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부하고 성령의 소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로 육체의 욕심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갈 5:13). 식생활을 포함해 매사에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절제할 때 거룩에 이릅니다.
또한 금식은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생활 중의 하나입니다. 금식은 자신을 향해서 창을 여는 것입니다. 내 육체의 욕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민수기15장39절에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이 말씀은 거룩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좇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사도 베드로는 "너회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회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회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4, 15)고 명령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따르면 우선은 그 길이 편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길은 곧 죄의 길이고 사망의 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생활 목표는 하나님과 자신 앞에서 성결하고 타인과는 화평케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의 마지막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면을 둘러보아도 진정으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며 사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고, 방종한 육체의 욕심과 제 고집과 세상의 유혹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풍조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보다 더욱 뛰어난 열심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고, 우리의 경건을 무너뜨리려는 세상 풍조의 열심보다 더 두드러진 열정으로 기도하고자 노력하여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우리의 영혼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들이 우리의 관심을 더 많이 끌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합니다.
2.육체를 거스립니다.(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육체가 요구하는 삶과 성령이 원하시는 삶은 일치하지 않습니다.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그런데 사람이 타락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 계속 육체의 욕망을 발전시켜 하나님과 맞서는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심리학자 메슬로우는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공통적인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1)생리적인 욕구 (2)안전에 대한 욕구 (3)소속감의 욕구 (4)인정받고 싶은 욕구 (5)자기성취의 욕구인데 이 다섯 가지는 사람이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이런 욕구에서 예외가 되지 않고 누구나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신앙인들이 이 땅에서 이런 욕구에만 얽매어 산다면 그것은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된다 는데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연결시키고 하나님이 원하는 쪽으로 해석하며 그런 욕구를 통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불행하되, 영혼을 따라 살면 행복합니다. 영혼의 욕구를 채우면 만족하되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면 만족이 없습니다. 육체가 추구하는 것은 죄악이로되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생명을 위주로 살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위주로 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본래 죄에 넘어지기 쉬운 생활을 하며, 아직도 죄의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성도의 죄가 소멸 되었다 하나 아직 정욕과 부패성을 가진 죄된 육신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뜻에 따라 살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 안에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점검하여, 성령이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며 성령의 인도함 받기를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욕심과 눈의 욕심과 삶의 자랑 등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그것의 욕심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요일2:15-17)
현대는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육신에 빠져 사는 시대가 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의 행복을 증진하는 어떤 일이 아니라, 더 잘 먹고 마시고 입는 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아가서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켜주는 일에 과도히 열심을 내는 어리석은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어둠의 특성상 쾌락을 즐거워하므로 성령이 자꾸 양심을 찌르는 것이 싫을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죄악과 방탕으로 타락한 삶, 육신의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존귀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참고 견디며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면 우리 안에 있는 육신을 따라가고자 하는 죄와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에서 져서는 안 됩니다. 이 때 육신대로 행하지 말고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하시는 일의 하나는 우리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악을 무너뜨리고 죽이는 것입니다.
분문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카리스마 주석에 의하면 “바울은 여기서 성도들이 늘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성도들의 본성은 계속해서 욕망을 산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들 안에서 성령을 한 생명의 활동이 늘 지속 되도록 성령을 쫓아야 한다. 바울은 육체가 늘 욕망 가운데 거하는 이유를 말한다. 그것은 성령께서 성도의 마음속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성도들이 성령을 쫓지 않기 때문이다(시 1:1 0; 잠 4:23). 성령은 영혼의 좌소(坐所)인 미음으로부터 성도들이 욕망에 휩싸이지 않도록 생명의 활동을 일으키신다(1 절).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성령의 내주하심 속에 일어나는 생명의 활동이 영혼을 통해 본성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지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간절한 마음으로 구해야 등}는 것이다(시1:10- 12;요 3:6;롬 8:13).”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항상 하나님에게 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의 명령대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분을 기쁘시게 할까? 항상 그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최고, 최선의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욕망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이 바로 자기의 뜻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육체를 거스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3.원하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합니다. 그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롬 8:9) 그렇기에 이 성령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눈뜨는 순간부터 육체의 소육을 좇을 것이냐 성령을 좇을 것이냐로 얼마나 큰 영적 전쟁을 치루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치열한 전쟁입니다.
육체의 소욕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로마서7장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로마서6장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에게 내 육신을 내 몸을 내줘서 불의의 병기가 될지, 성령의 소욕을 따라갈지 결단하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육체의 욕심, 즉 내 생각, 내 기준, 내 마음 내 뜻이 우선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시작이며 모든 어려움의 시작이며 모든 고통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은 우선 내가 먼저이고 내 기준이 먼저임을 침을 튀기며 소리치며 외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삶은 끊임없이 전쟁과 싸움으로 쉼 없는 고통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면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성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행하지 못하고 육체의 욕망을 따라 행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이미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 분명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창세기3장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마음속에서 육체의 욕망이 불같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그 육체적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체적 욕망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제어하지 못하면 사로잡힙니다.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고 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까지 하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적 욕망은 반드시 제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육체적인 욕망이 무서운 것은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육체적 욕망은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제어했다고 끝이 아니고 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어느 분의 간증문입니다.
“그는 도박의 습관이 있었는데 교회 다니는데도 계속되었습니다. 늘 후회하지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어느 날 밤 돈을 다 잃고 야밤에 귀가합니다. 또 부부 싸움입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빕니다. 다시는 안 하겠다고 ... 하지만 아내는 믿어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홧김에 주방으로 가서 식칼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자릅니다. 결심의 증거로 ... 그러나 1주일 후 다시 도박판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죽고 싶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 다행히 그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를 뜨겁게 만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그 못된 습관이 저절로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종이 됨으로 다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원리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악 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금쪽처럼 귀한 시간 들을 우리가 귀중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악한 마귀는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마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지금은 악한 시대다’라고 규정했던 것입니다. 시대가 악하기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양 한가지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악 합니다.
이처럼 악한 세상에서 우리 믿는 자들의 삶에 갈등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소욕 중의 한 가지를 죽여야만 갈등은 없어집니다.즉 한 쪽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합니다.우리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함께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그래야 성령의 소욕대로 살며 이기면서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적인 것은 인간 중심의 것이지만 영적인 것은 하나님 중심의 것입니다.육신적인 것은 세상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은 신앙적인 것이고 영적인 것입니다.바울은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죽어 날마다 새로워지는 부활의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육체의 욕심은 쉽게 떨어져 나갑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주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자들은 멸망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많은 유혹에서도 의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진리를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을 혼자 내버려 두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본문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신의 욕심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자 할 때. 성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잡아당깁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른 삶을 살아야 할 성도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곁길로 갈 때,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그는 죽을 때까지 육적 소욕과 성령사이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하므로 적극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1.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합니다.(16)
2.육체를 거스립니다.(17)
3.원하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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