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진실을 발언·표현하는 개체나 집단의 태도는 청취(聽取)·관독(觀讀)하는 개체나 집단을 대체로 불쾌·불편시킬 수밖에 없다.
진실이 더 불쾌·불편하고 더 가혹·잔인할수록 그것을 말하거나 글쓰는 발언자(發言者)와 묘사하는 표현자(表現者)의 태도도 청취자에나 관독자(觀讀者)에게 더 불쾌·불편하고 때로는 더 가혹·잔인하게 감지·인지되기 십상이다.
그런 반면에 이보포류개체 대다수에게 친절하고 상냥하여 쉽게 술술 매끄럽게 읽히고 편의·간결하여 후루룩 뚝딱 맹캐하게 이해되는 부드럽고 말랑힐링하며 예쁘장하고 맛있으며 다정다감하고 따스한 진실은 어쩌면 지극히 드물리라.
그러니까 이보포류개체 대다수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쉽게 술술 매끄럽게 읽히고 간결·편의하여 후루룩 뚝딱 맹캐하게 이해되는 부드럽고 말랑힐링하며 예쁘장하고 맛있으며 다정다감하고 따스한 진실을 발언·표현한다고 자처·자신·자부하거나 감지·인지·인증되는 개체의 태도는 어쩌면 진실을 “거의” 발언·표현하지도 않고 못하며 않고픈 편의주의·비밀주의에 찌든 개체의 태도이리라.
(2017.11.24.06:25.)
아래왼쪽그림은 벨기에 화가·조각가 앙투안 조셉 위에르트(Antoine Joseph Wiertz, 1806~1865)의 1856년작 〈악마의 거울(마경; 魔鏡; Le miroir du diable; De spiegel van satan; The Mirror of Devil)〉이고, 아래오른쪽그림은 에스파냐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호야; Francisco Goya, 1746~1828)의 1798년작 동판화집 《변덕(Los caprichos)》에 수록된 제41번 〈더도 덜도 말고(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Ni mas ni meno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