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인 하우스 아티스트 한재민 트리오 리사이틀 공연후기
***출연
첼로 한재민
바이올린 크리스토프 바라티
피아노 박재홍
#프로그램
1. Rachmaninov: Trio élégiaque No. 1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3중주 1번 "엘레지")
2. A.Dvorak - "Dumky" for piano trio, op.90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 제4번 “둠키”)
3. Tchaikovsky: Piano Trios in A minor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오늘 공연을 준비하면서 한재민, 박재홍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트리오 엘레지 제1번’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 가단조-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며’는 엘레지예요. 엘레지는 누군가를 추모하는 마음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추모하고 위로하죠. 그만큼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곡들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드로브작 ‘피아노 트리오 제4번-둠키’의 ‘둠키’는 슬라브 정서를 담은 일종의 명상곡으로 이 또한 ‘위안’을 전합니다
“좋은 음악가로 남고 싶은 건 모든 음악가의 욕심이죠. 하지만 음악은 무대에서 연주가 끝나는 순간 사라지는 시간예술이에요. 연주되는 그 시간 동안 좋은 음악을 남길 수 있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계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너무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 그 위대한 음악을 공연장에서 좋은 음악으로 남기는 게 목표입니다.”
아직 젊디 젊은 아티스트인데 그들의 생각은 음악의 본질에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연주되는 그 시간동안 좋은 음악을 남기겠다........
여느 야심찬 포부나 원대한 야망보다 더 다가오는 진정성있는 바램이어서 더 그들의 음악에 관심이 갑니다
한재민 : 2006년생 / 2021년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쿨 최연소 우승
박재홍 : 1999년생 / 2021 부조니 국제콩쿨 우승
차세대 대세 연주자인 그들이 보여준 오늘 공연은 한마디로
혼자서도 잘해~ 함께 하면 더 잘해 ~~ 였습니다
미친 호흡, 미친 몰입감, 그리고 벅찬 감동 !!!
관객석은 어두워지고 무대가 환해지면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 것이죠
문을 열고 한재민, 박재홍, 크리스토프 바라티 순서로 들어옵니다
한재민은 시그니처 빨간 양말 신었습니다
첫번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3중주 엘레지가 시작됩니다
이곡은 생각보다 찰떡같은 호흡은 아니었어요
박재홍 피아니스트의 영롱한 피아노 타건으로 시작은 너무 좋았지만
일단 오늘 내내 바이올린 박자가 아주아주 조금 달아나는 느낌이고
느린 박자에서는 더 두드러지고 빠른 박자에서는 괜찮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3중주 1번이 그의 초기작품이다보니 나중에 연주한 두 곡보다는 화성이나 리듬이나 어렵지않은 곡인데
그들은 어려운 곡에서 더 진가를 발휘합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절절한 감정이 덜 전달되긴 했지만 무난히 첫번째 곡이 끝나고
두번째 드보르작 피아노 3중주 '둠키" 부터 박, 한, 크 이 트리오의 합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드보르작 "둠키"는 여섯개의 "둠카"로 이루어져 있어서 "둠키(둠카의 복수형)" 이라고 한다는데 그 여섯 개 각각이 너무도 개성적이고도 리듬감 충만한 연주였고 각 악기의 독주와 합주가 절묘하게 들고 나는 감각적 연주가 무척 귀를 사로잡습니다 이곡은 예습으로 들었을 때는 잘 안들렸는데 오늘 공연장에서는 아주 개성넘치면서도 따뜻한 위로, 비통한 슬픔 이런 게 다 느껴졌습니다
오늘의 가장 좋았던, 그리고 감동의 쓰나미가 몰아쳤던 곡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3중주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곡은 차이코프스키가 선배 작곡가인 루빈스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곡한 곡이고 이곡을 계기고 러시아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선배 작곡가를 추모하는 전통이 생겼다고 할 만큼 엘레지의 성격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곡이면서 차이코프스크 작곡의 정수를 보여줄 만큼 짜임새있고 아름다운 서정미가 넘칩니다
오늘 박재홍, 한재민, 크리스토프 바라티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3중주는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의 느낌이 다 스며들어있는
한 사람의 인생, 삶의 대단원, 우주의 완성이 느껴지는 감동이엇습니다
1악장에서 첫부분 첼로의 독주가 가슴을 후비는 순간부터 피아노가 중심을 잡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한소절씩 화답하고 다시 세 악기가 합쳐져서 절규하는 그 시간이 내내 한 인간이 살아낸 인생의 아픔, 고독이었어요
2악장이 되니 1파트에서 1악장의 고뇌와 절규를 털고 그래도 생의 아름다움을 누려보자 노래하는 듯, 우리보다 먼저 간 선배들이 깔아 준 길 위로 다시 힘차게 달려보자 하는 듯 위로와 회유를 합니다
오늘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피날레 파트였는데요
박재홍 피아니스트은 흐트러지지않게 중심을 잘 잡고 곡을 끌어가는데 정말 대단한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아무리 누군가 박자가 조금 달아나도 다시 붙잡아다 놓습니다 타건이 강할 때나 부드러울 때나 그만의 영롱하고 매끈한 소리가 나옵니다 리듬감이 거의 타고난 듯 박자, 강약을 이끄는 힘은 최고였습니다
박재홍이 없었다면 이 트리오가 과연 어떤 소리를 내었을지....
한재민 첼리스트는 거의 직관적인 연주를 하는 듯 미친 보잉과 인상적인 헤드뱅잉으로 눈을 뗄 수 없게 하네요 첼로 독주 파트가 되면 그 풍성한 울림있는 소리에 빠져드는데 내내 그 소리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연주 몰입감도 좋지만 무엇보다 첼로라는 악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 본능적으로 아는 그였습니다 깊은 소리, 거친 소리, 피치카토 어떤 부분이든 그의 손으로 내는 소리는 첼로가 낼 수 있는 가장 깊은 소리였습니다
크리스토프 바라티는 이 엄청난 두 연주자 틈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 바이올린 연주로 마지막까지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었는데요 초반에 박자가 조금 달아나는 느낌은 피날레에서는 그 엄청 빠른 박자의 물결에서 한 음도 허투루 내지 않는 어마어마한 기량을 보여줍니다
파이널 부분에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각각의 독주를 믹씽해 놓은 것처럼 세 악기 각자의 기량도 대단했고 합도 완전히 맞아떨어져서 시너지로 폭발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공연을 실연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장장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세 연주자로 인해
잠시 인생이라는 고해에서 헤매이다가 빠져나와 다시 회생한 듯
음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흠뻑 경험한 공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