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1일 물날
날씨 : 어제보다 포근하다. 아니 조금 후덥지근한 날씨다. 미세먼지가 심하다
하루 쉬고 조금 10시 40분쯤 학교에 닿았다. 본디 어린이들은 11시 30분까지 학교에 오기로 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와 있다. 시우는 이틀 모둠살이를 한 것이 많이 자랑스러운 얼굴이고 오제는 날마다 보다 하루 쉬고 봐서인지 애정 어린 부드러운 눈빛을 보여준다. 지환이는 정우형이 비석돌을 발로 찼다며 속상해서 크게 운다. 한 주만에 본 강산이는 뭔가 헬쓱해 보인다. 숲속놀이터로 우리 아이들을 많이 기다렸으리라.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주고 텃밭으로 갔다. 토종무와 구억배추 개성배추가 쑥 자랐다. 이젠 벌레도 두렵지 않은 듯 파랗고 넓은 잎을 뽑낸다. 가지는 그 사이 순지르기와 잎 치기를 해주지 않아 가지들이 작게 많이 매달려있다. 씨앗을 받으려 익히고 있는 가지가 제법 색이 옅어졌다. 목화가 어찌 되었을까 살피는데..
어머나 세상에, 그 약하던 줄기에 새순이 가득하고 꽃망울이 무지 많이 생겼다. 기적! 기적이다. 하지만 이제 곧 서리가 내릴 텐데, 이제 꽃 피면 우얄꼬. 그 생명력이 경외심이 일면서도 한 편으로 그 끈질긴 생명이 애잔하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잎을 살리고 꽃 피우고 열매 맺으려는 목화의 몸부림에 ‘나 또한 하루도 허투루 살지 말자!’는 다짐을 조심스레 한다.
시와 그림 내보이기가 있는 날, 경기도립과천 도서관 앞에 아이들이 한 작품을 내보였다. 올해는 조금 다르게 재사용, 재활용이 많다. 1학년들은 한 번 걸었던 현수막과 버려지는 종이상자와 가을을 담은 나뭇잎과 풀들을 말려서 시를 꾸몄다. 6학년은 지난해 한글날 만들었던 웃옷과 손수건, 광목천을 써서 다시 쓰거나 옷으로 입을 수 있게 했다. 더불어 코팅 비닐을 많이 줄였다. 우리 1학년은 한 해 내내 ‘푸른샘이 지구를 지키는 행동’을 큰 공부로 가져가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고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를 삶에서 지켜내려고 애쓴다. 현수막천은 바람에 날리는 것이 조금 흠이긴 하지만 밑에 전에 쓰던 집게를 물리는 크게 뒤집히지는 않는다. 버려지는 현수막 천에 아이들과 작업을 하는 것은 큰 재미였다. 천에 매직으로 글을 써야 해서 아이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아이들을 좀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또 좀 틀리면 어떠랴.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림으로 바꾸고 다시 쓰면 되기도 하고^^ 마음을 편히 먹고 해서 그런지 아이들은 크게 틀림없이, 어려움 없이 시원시원하게 작품을 만들었다. 아이들 한 해 공부를 펼쳐내는 날이니 선생들도 아이들도 조금 들뜨긴 했다. 작품을 내보이는 곳에서 오늘 딴 강낭콩을 까고 있는데 어쩌다 내 남방 길이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짧은 것이 좋다하고 수인이는 조금 긴 것이 좋다하여 내가 짧은 남방의 장점을 이야기 하며 “봐, 이렇게 오똑한 엉덩이도 예쁘게 보일 수 있고”하며 걷는데 수인이가 “선생님, 엉덩이가 없어요. 납작해요.”한다. “그럴 리가, 내 엉덩이가 얼마나 통통 하고 올라붙고 예쁜데.”하자 수인이는 다시 “아니에요. 납작해요. 너무 오래 앉아있었나 봐요.” 한다. 이런 내 엉덩이가 한 번도 납작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오늘부터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 운동 열심히 해서 이틀 뒤에 보여주기로 했는데, 쩝! 이틀 만에 없는 엉덩이가 생길까?
날씨가 많이 뜨겁지 않아서 일까? 1학년들과 맨 마지막으로 공원에 가서일까? 오늘 시와 그림 내보이기는 많이 짧게 느껴진다. 아이들 시 한 번 다 읽고 콩 조금 까다보니 벌써 마침회 시간이다. 학년마다 악기나 노래를 함께 내보였는데 1학년들이 피리를 꽤 잘 분다. 눈빛이 강렬하다. 한 음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뜻이 눈에 보인다.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배움을 펼치는 아이들이 참 대견스럽다.
선생들 마침회를 마치고 지난 번에 진숙선생님과 평택에 가서 만들어 온 씨아를 돌렸다. 처음에 뻑뻑해 잘 안돌아가 기름을 조금 바르니 잘 돌아간다. 삐그닥 삐그닥 씨아가 돌아가며 뽀송 뽀송한 하얀 솜이 빠지고 까만 씨가 톡 내 앞에 떨어진다. 예쁘고 보드라운 하얀 솜, 그런데 잘 돌아갈 때 넘 조심하지 않았는지 씨아의 기아가 톡 부러졌다. 더 부러질까 걱정되어 작업을 멈추고 집에 돌아와 강상원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리니 그냥 더 작업을 하고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한다. 요즘 난 둘레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꽤 많은 줄 알았는데 요즘 접하는 것들은 내가 잘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 참 많다. 그렇다 보니 둘레에 많은 사람들에게 묻고 배우고 때론 손을 빌리기도 한다. 내게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처럼 내가 받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누군가에게 베풀고 살아야 할 텐데... 하루하루 빚이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