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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2 - 코제트
약속(1)
장 발장이 파리에 도착하여 맨 먼저 한 일은 7-8세 된 소녀의 상복을 사는 일과 숙소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이 끝나고 나자 몽페르메유로 떠났다.
몽페르메유는 리브리와 셸 사이, 우르크와 마른 강을 가르는 고원의 남쪽 끝에 있다. 상당히 큰 도시로서 1년 내내 회칠한 별장으로 장식되어 있고 일요일에는 잘 차례 입은 시민들로 번잡하다.
1823년까지만 해도 몽페르메유는 흰 집도 혼잡한 주민도 이처럼 많지 않았고 숲 속에 있는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몇 군데에는 지난 세기의 별장이 남아 있어 그 웅장한 구조와 나선형으로 된 발코니, 닫힌 흰 문 위로 갖가지 푸른색으로 돋아 보이는 창문이 옛날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래도 몽페르메유는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이 고장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큰길이 나 있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은 안정되고 넉넉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다만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고지대에 위치하여 물이 부족하다는 것 뿐이었다. 상당히 먼 곳까지 물을 길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니 쪽에 있는 마을 끝에서는 숲 속에 있는 훌륭한 못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셀쪽, 그러니까 교회가 있는 반대편에서는 산 중턱에 있는 작은 샘물로 음료수를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샘은 몽페르메유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셸 가도의 한쪽 구석에 있었다.
그래서 이 고장에서는 물을 길어다 먹는 일이 여간 큰 일이 아니었다. 상류계급이나 테나르디에의 여인숙이나 마찬가지여서 물장사를 하는 노인으로부터 물을 사서 썼다. 이 노인은 몽페르메유에서 물장사를 하며 하루에 8수씩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노인은 여름에는 저녁 7시까지, 겨울에는 5시까지 밖에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문이 닫힐 밤 무렵이 되어 물이 떨어진 사람은 손수 물을 길러 가거나 물 없이 참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어느 집에서나 귀찮은 일거리였다.
테나르디에 집에서는 어린 코제트가 그 일을 도맡아 했다. 그 집에서는 코제트가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었다. 코제트의 어머니로부터 양육비를 받는데다가 일까지 부려 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양육비가 오지 않게 된 뒤에도 계속 코제트를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코제트는 테나르디에 집안의 하녀나 다름없었다. 물이 필요할 때 물을 길러 가는 것은 하녀 노릇을 하는 이 소녀엿다. 코제트는 밤에 물을 길러 가는 일이 무서웠기에 언제나 집에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1823년 몽페르메유에서는 특히 호화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그해 초겨울은 따뜻하여 얼음이 얼거나 눈이 내리지도 않았다. 파리에서 온 곡예사들은 거리 한가운데에 판잣집을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시장으로부터 허가받았다. 행상들도 교회 광장에서 불랑제의 좁은 길에 이르는 곳에 노점을 차렸다. 그 광장의 한구석에 테나르디에의 싸구려 여인숙이 있고 그 집의 식당 촛불 밑에서 마부랑 행상인들이 술을 마셨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부뚜막 앞에서는 테나르디에가 저녁 식사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모처럼 만에 활기가 넘쳤다.
새로 손님 넷이 들어왔다. 이때 코제트는 슬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직 8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많은 고생으로 인해 노인과도 같이 깊은 생각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테나르디에 부인으로부터 매를 맞아 아이의 눈두덩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부인은 가끔 “눈 위에 점이 있다니, 참 보기도 흉해라!” 따위의 말을 했다.
코제트는 생각했다.
‘이미 캄캄한 밤이야. 갑자기 몰려온 손님들을 위해 주전자나 물병에 물을 준비해 두어야 하는데, 물통에 물이 다 떨어졌으니 어떡하지.’
코제트는 흘러가는 시간을 세며 어서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여인숙에 숙박하고 있던 상인 하나가 들어와 상스러운 소리로 외쳤다.
“내 말에 왜 물을 주지 않았어?”
부인이 대답했다.
“주었는데요.”
상인이 짜증스럽게 외쳤다.
“주지 않았다는데 무슨 소리야?”
코제트가 탁자 밑에서 나와 말했다.
“주었어요. 아저씨! 말은 물을 먹었어요. 한 통 가득히 먹었는걸요. 제가 물을 떠다 먹였어요.”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코제트는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상인이 소리쳤다.
“요것 봐라. 조막만한 것이 집채만 한 거짓말을 하는군 그래. 말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잖아, 이 꼬마야! 내 말은 물을 안 마셨을 때는 코를 킁킁거리는 버릇이 있단 말이다!”
코제트는 끝까지 버티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목이 멘 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들릴락 말락 하는 갸날픈 소리였다.
“많이 먹였는데요.”
“그런 소리 그만두고 빨리 물을 갖다 먹여!”
코제트는 또 다시 탁자 밑으로 기어 들어갔ㄷ.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말이 마시지 않았다면 갖다 줘야죠. 그런데 요년은 어디갔지?”
부인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몸을 구부려 탁자 밑을 들여다보았다. 코제트는 탁자 저쪽 끝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발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오지 못하겠니?”
부인이 소리쳤다. 코제트는 숨어 있던 구멍과 같은 데서 기어나왔다.
부인은 계속해서 호통을 쳤다.
“이 거짓말쟁이 계집애 같으니라고, 얼른 말에게 물을 줘!”
코제트는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주머니 물이 없는걸요.”
부인은 문을 활짝 열어 제치며 소리쳤다.
“그럼, 길어와!”
코제트는 머리를 숙이고 난로 곁에 있던 빈 물통을 가지러 갔다. 그 통은 소녀보다도 컸다. 소녀가 안에 들어가도 될 성 싶었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아궁이 쪽에 가서 나무 숟가락으로 냄비 속에 있는 음식을 맛보며 중얼거렸다.
“샘에 가면 물은 얼마든지 있지. 저렇게 못된 것은 처음 봤어. 음…., 이 양파는 넣지 않는 게 좋을 뻔했군.”
그러고는 서랍을 뒤졌다. 거기에는 동전과 후춧가루, 마늘 따위가 들어 있었다. 부인이 덧붙였다.
“그리고 요것아, 돌아올 때 빵집에 들러 큰 빵 하나도 사 와라. 옜다. 15수짜리 하나다.”
코제트의 앞치마에는 작은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소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소녀는 물통을 손에 들고는 열려 있는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누가 도와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어서 가!”
코제트가 밖으로 나가자 문이 닫혔다.
교회 있는 데서 즐비한 노점의 맨끝. 그러니까 테나르디에의 집 문 앞에 있는 노점에서는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거기서는 값싼 유리 세공품과 함석 장난감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주인은 맨 앞줄에 흰 수건을 깔고 그 위에 두 자 가까이 되는 큰 인형을 진열해 놓았다. 인형은 연한 분홍빛 크레이프 옷을 입고 머리는 진짜 머리칼로 만든 금발이었으며 에나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인형은 그 앞을 지나다니는 10세 이하의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몽페르메유에는 이것을 자기 자식에게 사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고 씀씀이가 큰 어머니는 하나도 없었다. 에포닌과 아젤마는 이것을 바라보며 몇 시간이나 그 앞에 서 있었고 코제트도 남몰래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코제트가 물통을 들고 밖에 나왔을 때 그녀는 우울하고 서러웠지만, 그래도 이 훌륭한 인형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이 인형을 ‘여왕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가련한 소녀는 화석처럼 그 앞에 서 있었다. 소녀는 아직 이 인형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코제트는 그 가게 전체가 궁전처럼 생각되었다. 이 멋진 가게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눈이 부셨다. 천국을 보는 느낌이었다. 큰 인형 뒤에도 몇 개의 인형이 있었는데 이것들도 천사와 요정같이 보였다. 가게 구석에서 왔다 갔다 하는 상인이 신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고 있는 동안 소녀는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심부름을 가야 하는 일조차도. 갑자기 테나르디에 부인이 사납게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에 소녀는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저것이! 여태껏 안 나갔네! 너 거기 좀 있거라. 얻엄맞아야 정신이 들 모양이구나.”
코제트는 물통을 들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달리면서 마을을 벗어났고 달리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달리면서도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숲의 어둠은 완전히 소녀를 에워쌌다. 소녀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보이는 것도 없었다. 광대한 어둠이 이 소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한쪽은 어둠 또 한쪽은 낮은 언덕이었다.
숲 언저리에서 샘물까지는 7-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코제트는 낮에 이 길을 몇 번이나 지났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들지는 않았다. 약간의 본능이 이 소녀를 막연하게 이끌었던 것이다. 그동안 괴물을 만날까 두려워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겨우 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코제트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었다. 무척 어두웠지만 코제트는 여기 오는 길에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나 그렇게 했듯이, 소녀는 샘물 위에 늘어져 있는 어린 참나무 가지를 왼손으로 붙들고 거기 의지하여 통을 물속에 담갔다. 너무나 흥분한 상태가 되어 힘이 세 배는 강해진 듯했다.
소녀가 몸을 구부리고 있는 동안 앞치마 주머니에서 동전이 샘물에 빠졌으나, 소녀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15수짜리 동전은 물속에 빠졌다. 소녀는 그것을 물에 빠지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소녀는 통에 물이 가득해지자 그것을 끌어올려 풀 위에 놓았다.
그제야 아이는 피로를 느끼게 되었다. 곧 걸으려 했으나 통에 물을 채우는 데 기력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코제트는 풀 위로 쓰러져 웅크리고 앉았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들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숲은 어두웠고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름에 흔히 보는 저 희미하고 서늘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 굵은 나무가 무섭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볼품없이 마른 덤불이 숲 속 공터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키 큰 풀이 북풍을 받아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시덤불은 먹이를 잡으려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긴 팔처럼 구불거리고 있었다. 마른 히스가 바람에 날려 기세 좋게 날아갔다. 마치 무엇에 쫓겨 도망치고 있는 듯했다. 어디를 둘러보나 음산한 공간뿐이었다.
코제트는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잊은 채, 이 자연의 거대한 암흑에 둘러싸여 있음을 느꼈다. 단순한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공포보다도 더욱 두려운 그 무엇에 휩싸여 있었다. 소녀는 몸을 떨었다. 마음 속까지 스며드는 이 전율이 얼마나 기괴한 것이었던가는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다. 다음날에도 같은 시각에 또 이곳에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 기묘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종의 본능에 따라 하나에서 열까지 세기 시작했다. 이것이 끝나자 반복해 숫자를 세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 것 같더니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물을 긷다 젖은 손이 꽁꽁 어는 것만 같아 일어섰으나 또다시 공포가, 억누를 수 없는 본능적인 공포가 되살아났다. 이제는 빨리 숲에서 빠져나와 마을과 불빛이 있는 곳으로 도망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코제트는 양손에 힘을 주어 물통을 간신히 들어올렸다.
겨우 몇 걸음 걸었으나 물통이 너무 무거워 그 이상은 걸을 수 없었다. 코제트는 통을 내려놓고 한숨 쉬고 나서 다시 걸었다. 걷다가는 멈추고 멈췄다가는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더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녀는 좀 쉬었다가 또 걷기 시작했다. 노인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양팔을 쭉 뻗은 채 걸었다. 그럴 때마다 물이 흘러 손도 발도 차갑게 젖었고, 감각은 마비되어 짜릿해 왔다.
이렇게 되면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소녀의 발걸음은 차차 더디어졌다. 쉬는 시간을 줄이고 되도록 오래 걸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몽페르메유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릴 것인데 그러면 아주머니에게 매를 맞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고통스러웠다. 이 고통은 한밤중에 혼자서 숲 속에 있다는 무서움도다 더 심한 것이었다. 피로가 한계에 달햇는데도 아직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코제트는 낯익은 밤나무 곁에 이르자 멈춰 서서 이제까지보다 좀 더 오래 쉬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물통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물통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커다란 손이 뻗쳐 와서 물통을 번쩍 들어 올렸던 것이다. 소녀는 얼굴을 들었다. 크고 검은 모습이 어둠 속에 어슴푸레 보이는데 그 모습이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뒤에서 나타난 사나이는 줄곧 코제트의 뒤를 다라오고 있었으나 코제트는 발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사나이는 아무 말 없이 코제트가 들고 오던 물통을 들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코제트는 웬일인지 조금도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생의 모든 사건에는 그에 부응하는 본능이란 것이 있다. 사나이는 코제트가 놀랄까 봐 아주 점잖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얘야, 이것은 네게 지나치게 무거운 것 같구나.”
코제트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래요, 아저씨.”
사나이가 말했다.
“이리 줘, 내가 들어다 주마.”
코제트는 물통을 놓았다. 사나이는 소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 무겁구나.”
사나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말을 건넸다.
“얘야, 몇 살이지?”
“여덟 살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니?”
“샘터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여기서 멀겠지?”
“15분쯤 걸려요.”
사나이는 잠자코 있다가 물었다.
“어머니는 안 계시니?”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있는데 저는 없어요.”
이렇게 대답한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처음부터 없었을 거예요.”
사나이는 걸음을 멈추고 물통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굽혀 두 손으로 코제트의 양 어깨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소녀의 조그마한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었다. 사나이가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코제트라고 해요.”
순간 사나이는 감전이라도 된 듯 깜짝 놀랐다. 그는 소녀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어깨에서 손을 떼어 물통을 집어 들고 도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던 사나이가 물었다.
“그럼, 어디 살고 있니?”
“몽페르메유요. 알고 계세요?”
“그리 가는 길이냐?”
“네.”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한 번 더 물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누가 너를 숲 속까지 물을 길러 보냈지?”
“테나르디에 아주머니에요.”
사나이는 태연한 채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무얼 하는 사람이지, 그 테나르디에 아주머니는?”
소녀가 말했다.
“주인아주머니예요. 여인숙을 하고 있어요.”
사나이가 말했다.
“여인숙? 그럼, 나도 오늘 밤 거기서 쉬어야겠구나. 안내해 주겠니?”
소녀가 대답했다.
“가세요.”
사나이는 상당히 빨리 걷고 있었으나 코제트는 따라가기에 힘들지 않않다. 이미 피곤은 느낄 수 없었고 안심과 신뢰감을 갖고 이 사나이를 종종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녀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적이 없었지만 지금 소녀는 희망과 환희 비슷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 올라가는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사나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집에는 하녀가 없니?”
“없어요.”
“그럼 너 혼자 뿐이냐, 해들이라곤?”
“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코제트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이들이 있긴 있어요.”
“아이들이?”
“네. 에포닌과 아젤마인데 그 애들은 테나르디에 아주머니의 딸이에요.”
“그 얘들은 뭐하니?”
“예쁜 인형이랑 소꿉놀이를 하며 놀아요.”
“하루종일?”
“네.”
코제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한참 동안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도 가끔 놀긴 놀아요. 일이 끝난 뒤에 어른들이 놀아도 좋다고 하면요.”
“그래, 넌 무얼 하고 노니?”
“그냥 놀아요. 전 장난감이 없어요. 그 애들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못만지게 해요.”
그들은 마을에 다다랐다. 코제트는 빵을 사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잊은 채 이 낯선 사나이와 함께 빵집 앞을 지나쳐 갔다. 사나이는 더는 질문을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교회 앞을 지날 때, 즐비한 노점을 보고 코제트에게 물었다.
“여기 장이 서는구나?”
“아니에요, 크리스마스 때문에 그래요.”
여인숙 가까이에 이르자 코제트는 겁먹은 듯이 사나이의 팔을 붙잡았다.
“아저씨.”
“왜 그러지?”
“거의 다 왔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물통을 들고 가야 해요.”
“어째서?”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걸 보면 아주머니한테 매를 맞아요.”
사나이는 물통을 넘겨주었다. 얼마 후 그들은 집 앞에 이르렀다. 테나르디에 부인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몹쓸 년! 왜 그리 늦었어! 놀다 왔지?”
코제트는 떨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이 분이 여기서 주무시겠대요.”
부인은 숙박업자 특유의 태도를 보였다. 성난 얼굴이 금세 애교로 바뀌며 손님을 맞이했다.
“손님이세요?”
“그렇습니다.”
사나이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부자 손님이라면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는 법이다. 테나르비에 부인은 손님의 태도와 복장, 짐을 한번 훑어보더니 애교 있던 얼굴이 곧장 성난 얼굴로 변했다. 그러더니 쌀쌀맞게 말했다.
“올라오슈, 영감.”
사나이는 따라 들어갔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사나이의 다 떨어진 프록코트와 약간 낡은 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흔들고 이맛살을 찌푸리며 남편에게 눈짓을 보냈다. 남편은 여전히 마부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약간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이 경우 그러한 동작과 입을 삐죽 내미는 것은 ‘가난뱅이’를 의미하는 신호였다. 부인이 말햇다.
“영감, 미안하지만 방이 모두 찼는데요.”
사나이가 말했다.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헛간이건 마굿간이건 숙박비는 마찬가지로 지불하겠습니다.”
“요금은 40수인데요.”
“40수,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마부가 나직한 소리로 부인에게 말했다.
“40수라고? 20수일 텐데.”
부인 역시 나직하게 말했다.
“저 사나이에게만은 40수예요. 가난뱅이는 그 이상 싸게는 재울 수 없어요.”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물론이지, 저런 사람을 재우면 여관의 격이 떨어지니까.”
그동안에 사나이는 짐과 지팡이를 의자에 올려놓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이를 본 코제트는 포도주 한 병과 컵을 갖다 놓았다. 물을 요구했던 상인이 자신의 물통을 들고 말에게로 갔다. 코제트는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부엌에 있는 탁자 밑으로 가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사나이는 컵에 포도주를 따라 입에 가져가고 있었으나, 그 시선만은 유심히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