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이소 여기가 팔공산 파계사 입니다
오신다고 수고 많았습니다,
파계사(把係寺)에대한 연혁이 없어 종무소 및 관관안내소에서 문의 했으나
알지못했습니다,
다만 영조대왕의 탄생에 대하여
조선숙종 임금이 어느날 대궐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신하에게 "남대문을 살피게 하니 정말 한 승려가
쉬고 있었다,
그 승려가 바로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은 영원선사에게 왕자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보였고,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 했으나
바로 훗날의 영조대왕이다,
크게 기쁘한 숙종임금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린다,
현응은 지혜로운 승려였다,
당시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로 승려들이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이에 현응은 왕실 선대 임금의 위페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 냈다고 한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영조대왕의 도포 하마비가 있다,
하마(下馬) 란? : 지위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 들어오라는
곳이라고 한다,
*
*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 입니다,
* 파계사 벙종각 입니다,
* 진동루 : 파계사 원통전 앞이 있는 누각으로 1715년(숙종41)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파계(把溪):가 원래 아홉 갈래나 되는 절 좌우의 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지기(地氣)는 흘러가는것을 방비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으며 진동루(鎭洞樓) 또한
파계라는 이름 만으로는 이 곳의 기를 제압할수가 없어 기를 진압한다는 의미로 이름
지어 젔다고 한다,
진동루는 정면 5칸, 측면3칸, 규모의 2층으로 가공하지 않은 방형의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아래층 어칸을 통로로 하고, 2층에는 통간 우물마루를 했다,
건물의 규모에 비해 부재가 다소 약한 감이 있다,
천장은 연등 천장이며 조산시대 중, 후기 양식에 어울리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제 10 호 이다)
*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불전을 말한다,
파계사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사각(네모형식) 으로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 되었다가 1605년 계관법사가 중건하고, 1695년에 현응조사 때 삼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축양식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맛지붕으로 기단 위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후 둥근
기둥을 올리고 있다, 법당애부의 불단은 은해사, 백흥암, 의 수미단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넣어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불단의 상부에는 보개(寶盖)를 설치하고 있다,
* 설선당 : 설선당은 강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원통전을 중심으로 적묵당과 마주하고 있다,
1623년(인조 1년) 개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어 두차례 걸쳐 중건하였고 1762년 지붕을
다시잇는 공사를 시행한 후 1976년에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다,
건물정면7칸, 측면7칸 규모로 전체적인 모습이 "ㄱ" 자 형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겹치마의 팔작지붕이며, 구조양식은 고복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공포가
갖추어지지 않은 민도리 집이다,
이 건물은 대중식당과 강습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양식과 기구 수법이 간결
하면서도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7호이다,)
* 기영각 : 대구광역시 문화재 제11호 인 기영각은 영조대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뜻으로
이름한 전걱이다, 1696년(숙종35년) 현응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1974년 과
1983년 두번에 걸친 보수공사가 있었다, 이 건물은 화강석 바른층 쌓기 기단위에
건립된 정면3칸, 후면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 파계사원통전 앞에 조성되어있는 " 당간지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