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들과의 산책-염창산 진달래 꽃마중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강변에 사발을 엎어놓은 듯 봉긋하게 솟은 산이 있으니 염창산(鹽倉山)이다. 건설교통부 기준에 따르면 해발 100m 이상이 되어야 산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염창산은 높이가 55m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산 전체 넓이가 기껏해야 약 11만 평방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언덕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염창산둘레길을 걷는데 15분이면 넉넉할 정도로 야트막한 산이다. 염창산이 그나마 산이라 불리는 까닭은 주변에 산이 없는 데다 한강에 연해 있는 산기슭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의 북면은 올림픽도로와 접해 있고, 산의 서쪽 산기슭에는 근래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만약 산자락에 있는 군사시설이 없었더라면 증미산은 개발로 인해 오래전에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금 염(鹽)자와 곳집 창(倉)자를 쓰는 서울시 강서구의 ‘염창동’이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이곳 염창산 기슭에 소금창고가 길게 늘어서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그리고 염창산은 안양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한강 하류 서북쪽에 오도카니 서 있다. 조선시대에는 길이 발달하지 않아 삼남지역의 세곡(稅穀)이나 지역의 생산품을 서울로 운반하기 위해 배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세곡이나 각종 지역 생산품을 배에 짐을 싣고 강화도까지 온 다음 다시 한강 하류에서 강물을 거슬러 마포나루로 이어지는 뱃길을 이용했다. 그래서 전라도에서 만든 소금을 여름 내내 이곳 창고에 보관했다가 김장철이 되면 다시 배에 실어 마포나루를 통해 우마차나 등짐으로 한양 성내로 날랐던 것이다.
염창산의 서북쪽은 비탈이 완만하지만 동남쪽은 바위 절벽이 급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염창산의 본래 이름은 증미산(拯米山)이다. 한강 하류는 강화도 앞바다와 접해 있어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옛 문헌에 의하면 증미산 앞 한강에는 썰물 때만 겉으로 드러나는 도깨비바위라는 암초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곡을 실은 배들이 썰물 때 염창산 앞을 지나가다가 종종 이 암초에 걸려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래서 배가 가라앉았을 때 사람들이 쌀가마를 건져내던 곳이라고 해서 건질 증(拯)자와 쌀 미(米)자를 써서 증미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염창산은 인근에 지하철역이 생기고 역의 이름을 ’증미역‘으로 지으면서 다시 증미산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한강물이 산자락을 휘감고 유유히 흐르고 산 앞에는 갖가지 물건을 실은 배들이 분주하게 오르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980년대 말에 올림픽도로를 건설하면서 도깨비바위도 없어져버렸고, 한강과 염창산 사이에 ‘올림픽도로’가 지나가고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리고 산등성이에는 대부분 연고가 없는 40여 기의 무덤과 함께 콘크리트로 만든 군 방어시설이 몇 개 있으며, 이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았던 철조망이 녹이 슨 채 산등성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요즘 우리 집 개 ‘치즈’와 ‘츠요’를 데리고 집으로부터 200여 걸음 떨어져 있는 염창산에 자주 산책을 다니곤 한다. 염창산의 봄은 서울의 여느 산보다 빠르다. 어느새 산기슭에는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염창산 동쪽면 바위 벼랑 아래에는 이미 십수 년 동안 사용하지 않는 꽤나 넓은 골프연습장이 있다. 폐허가 된 골프연습장과 관련해서는 여러 소문들이 떠돌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어째서 골프연습장이 문을 닫은 채 그토록 오래 방치되고 있는지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때만 되면 이 지역의 출마자들이 의례껏 폐허가 된 골프연습장을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사탕발림의 공약을 들고 나오곤 했다. 정치인들의 말은 본시 믿을 게 못 된다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을 보며 공연히 속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어찌하랴. 아직도 골프연습장에는 잡초만 가득하고, 밤이 되면 음산하기까지 하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염창산 참나무 숲에는 사슴벌레가 살고 있었으며, 산등성이에 산나리와 각시원추리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산을 찾으면서 그토록 흔했던 사슴벌레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산나리꽃도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각시원추리꽃만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다. 그리고 산자락에 있던 옹달샘 뒤에는 큰으아리꽃이 많이 피었었는데 십여 년 전 옹달샘도 없어져 버리고 몇 해 전부터 큰으아리꽃도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둘레길을 조성 과정에서 산에 유일하게 자라던 딱총나무와 으름덩굴조차 뽑히고 말았다. 염창산에 오를 때마다 20여 년 전 염창산의 옛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염창산 정상에는 정자가 있고, 둘레길에 마직을 깔았으며, 최근 산기슭에 화장실과 체육관 건물이 들어서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첫댓글 치즈와츠요가 봄구경을 나왔네요
잘했네요
그긴겨울을 집에서만얼마나
답답했겠읍니까
잘하셨어
주인 어른도 복받으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