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도순태
잠시 붉은 외
싱싱한 은목서 앞에 있고 산딸나무 두 그루 옆을 막은
건물 벽 응달에 내가 아끼는 단풍나무 몇 그루 있지
산딸나무 익은 열매 떨어지고 은목서향 돌아다니는 가을 지나고
단풍나무 붉었지
이때부터 나는 단풍나무 아래 자주 어정거렸지
얇은 바람이 수시로 붉은 잎 사이로 오가며
한나절 나를 붙잡곤 하였지!
찬 기운이 나무에 옮겨 그늘 깊어지고
오후는 마른 햇살 거두어 흐린 저녁을 두었지
십이월 첫 비에
단풍들 바닥에서 젖고
잎들 부동이었지
붉은 그늘 걸쳐놓는 풍경 사라졌지
늦게 짧게 단풍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동안
작은 새 몇 번 다녀갔지
단풍나무라 부르고 단풍이 없는
잠시 붉었던 나무 오래 살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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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 거리
진흙땅 구덩이라는 뜻 가진 시부 거리 마을 튼튼한 토함산 자락에 집 몇 채 두고 있다
시부 거리, 시부 거리. 시부 거리 몇 번 되뇌니 입안이 놋그릇 은근함처럼 따뜻해진다
마을 사람보다 많은 변산바람꽃, 복수꽃, 노루귀
이른 봄과 습윤이 키운 꽃 호객처럼 바쁘게 환하다
낮은 돌담 아래 연둣빛 막 시작하고
뒤편으로 돌아서니 봄 햇살 덤불 속 가득이다
가는 줄기로 센 바람 견디는 변산 바람꽃 작은 돌 사이에 앙징케 안녕하다
야생화 뿌리 덮은 흙덩이 붉다
진흙은 보이지 않는다
강물 소리 울렁울렁 마을 어귀 돌아 나가고
우리는 자꾸 야생화 성지로 들어간다
여기저기 꽃
꽃 구덩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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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태|200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난쟁이 행성』이 있다. 울산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