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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 다른 모습: 그리스도교 다시 읽기]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를 알아가는 여정
프롤로그
통계를 내는 시점이나 방법에 따라 정확한 수치는 다르겠지만, 현재 지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종교가 그리스도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의 한 속국에서 나사렛 예수를 따르던 이들의 작은 운동에서 시작된 이 종교는 곧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의 정치와 경제, 문화, 교육, 예술 등 삶의 영역 전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해왔다. 이렇게 누구나 잘 알 만한 말을 하고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지금껏 그리스도교는 한 번도 단일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부터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다양성은 시간의 흐름 속에 다양한 변주를 겪으며 그리스도교 내부의 복잡한 다원성을 형성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에 퍼져있는 다양한 교회 전통을 염두에 두면서도, 알게 모르게 내가 접한 특정한 교회 모습을 그리스도교와 동일시하곤 한다. 이것은 일반 논리로는 역설이라 할 수 있지만,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교회론이 놓여있다. 여러 신앙의 전통이 공존하며 하나의 거룩한 공교회를 이루지만, 동시에 내가 속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자 성도의 교제로서 참 교회이다. 이 두 가지 다른 신앙의 진리에 모두 충실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가시적인 특정한 교회에 헌신하면서도,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살면서 ‘하나의 거룩한 교회’라는 신앙의 알짬을 몸소 살아내는 실천적 지혜이다.
인간 삶이 복잡한 만큼 교회 전통도 다양하기에, 한 개인이 각 전통의 신학과 역사를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솔직히 우리는 자기가 속한 교회 전통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요즘 한국인의 삶이 다른 전통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 바쁘고 팍팍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자기에게 익숙한 영역에서 나와 다른 전통을 알아가는 노력은 여러모로 필요하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차원을 떠나, 낯섦을 향해 나아가는 것 자체가 인지적 정보로는 환원되지 못할 엄청난 배움과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류는 언제나 타자를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얻었고, 덕분에 유아론의 자기 파괴적인 유혹에 저항하며 지금껏 서로 다른 이들과 함께 생존해왔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연재를 통해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를 조금씩 알아가는 소박한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나 세계교회협의회의 활동 등을 통해 서로 다른 전통에 속한 교회들이 진지하게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한, 학문적 신학과 출판계의 성장 덕분에 특정 교회의 전통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타 전통의 신학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움직임과 노력이 몇몇 교회 지도자나 신학자들에게 편중되었다는 느낌은 늘 있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뤄진 교회 정치 혹은 학문적 작업과는 별개로, 우리 삶에 더 가까운 방식으로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를 접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제도권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의 빈약한 상상력에서는 결국 ‘책 읽기’라는 진부한 접근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단, 이번 연재를 기획하며 가톨릭 혹은 정교회의 교리와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한 ‘입문서’로 읽히지 않았으면 했다. 특히 책 한 권 읽고 똑똑해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치사한 방식은 피하고자 했다. 대신 20세기 이후에 활동했던 가톨릭과 정교회 신학자 중 자신의 전통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전체에 영향력을 끼친 사람 몇 명을 선별하여 그들이 남긴 작품을 읽기로 하였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공식 입장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현대사회가 던지는 여러 도전에 신앙인으로서 고민하는 이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했다. 책을 고를 때는 굳이 그 사람의 대표작보다는, 일반 독자들도 읽을 수 있고 또 오늘의 현실에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책을 선정했다. 이번 달부터 본지 지면을 통해 만나보게 될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 작가는 다음과 같다.
비르질 게오르규(O), 칼 라너(RC), 블라디미르 로스키(O),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RC), 베네딕트 16세(RC), 한스 큉(RC), 존 지지울라스(O), 성정모(RC), 벤틀리 하트(O), 발터 카스퍼(RC)
* RC: 로마 가톨릭, O: 정교회
※ 연재 순서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한 가난한 사제의 삶에 비친 그리스도교의 신비
: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의 《25시에서 영원으로》
《25시에서 영원으로》(De la vingt-cinquième heure à l'heure éternelle)는 부제 ‘거룩한 사제인 나의 아버지에 대한 찬양시’가 암시하듯, 저자인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1992, 이하 ‘비르질’)가 탄생부터 20대 초반까지 아버지 콘스탄틴과 함께했던 기억을 아름답게 글로 재현한 작품이다. 비르질은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이자 정교회 사제로서, 자신의 여러 “작품 중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1)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 책을 1965년에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사실 비르질은 20대 초반부터 루마니아인들 사이에서는 시인으로서 널리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몸소 겪었던 끔찍한 수용소 경험을 우려낸 《25시》(La vingt-cinquième Heure, 1949) 덕분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 제목을 사용해서는, 자신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줬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아 《25시에서 영원으로》를 집필했다.
25시와 영원, 이 모두가 우리의 일상적 시간 의식으로 포착될 수 없는 시간이다. 영원이란 개념이야 고대부터 지금까지 철학자나 종교인이 종종 사용하였기에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시간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25시란 어떤 시간일까? 《25시》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그때는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지나버려 모든 희망이 닫혀버린 시점이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이야. 메시아의 왕림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간이지.”2) 25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개발된 기계에 오히려 인류가 노예가 되어버리고 효율성과 힘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서로의 존엄을 무시할 정도로 비인간화된 서구 문명의 ‘현시점’을 묘사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비르질은 칠흑 같은 25시의 상황에서도 영원을 갈망하며 인간성을 지켜냈다. 현실의 암담함에도 와해하지 않았던 희망, 일상의 가벼움에도 휘발되지 않던 믿음의 근원은 어디일까? 이 책은 육신의 아버지이자 거룩한 사제 콘스탄틴을 통해 쌓았던 원경험에 주목한다.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 나는 요람에 누워있었고, 그는 내게로 몸을 숙였다. 아버지와 나, 우리 둘은 굉장히 놀라워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비존재의 밤’에서 이제 방금 빠져 나온 터였기에, 세상에서의 첫 번째 형상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당했다. … 나는 이 지상 세계에서 처음으로 접한 형상이 인간의 얼굴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매우 자랑스럽다. 사람의 얼굴을 봄으로써 나는 하느님을 본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우주 전체를 본다. (11-13쪽)
자기와 닮은 작은 생명체를 보고 경이로 가득 찬 아버지, 그리고 그 얼굴과 함께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세계의 광활함을 보게 된 신생아. 부자간의 상호적 관계에 대한 이러한 미사여구가 귓가에서 곧 증발해버릴 듯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비르질의 시적 언어가 언제나 그의 심오한 신학으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는 루마니아 정교회라는 특별한 정체성을 통해 신앙의 문법을 배워갔다.
루마니아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던 발칸반도에서 점화된 제1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유럽 전체를 불태우던 1916년, 루마니아 북쪽 몰도바의 네암쯔 지방에서 비르질은 탄생했다. 대대로 정교회 사제가 나왔던 집안 출신인 만큼, 어릴 적부터 그는 자신도 장차 사제가 되리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혼란한 정세와 가난이 계속되었다. 돈이 없었던 그는 신학교 대신 군사학교에 진학하였고, 사제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삶을 꾸려가야 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들어서며 소비에트 군대가 루마니아에 주둔하자, 1944년에 비르질은 그토록 사랑하고 찬양하던 조국을 떠나 아내와 함께 독일로 망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과 동맹했던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는 연합군에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흐른 1948년에야 그는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47세가 되던 1963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파리에서 루마니아 정교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비르질의 굴곡진 인생에도 얼핏 비치지만, 루마니아인의 삶은 정교회 신앙과 긴밀히 얽혀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의 인용구도 시인의 열정이 만들어낸 근거 없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나의 조국 루마니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업적을 탐구하고 알고자 한다면, 지도책뿐만 아니라 반드시 하늘에 대한, 저 높은 곳의 실재들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한다.”(29쪽)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동방정교회라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유럽의 그리스도교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루마니아 정교회는 특이하게도 로마 문명과 라틴어에 그 뿌리를 둔다. 주변 나라와 구분되는 이러한 특수성은 루마니아인의 역사적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어린 비르질에게 아버지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먼저 루마니아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해.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로마가 우리의 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하고, 루마니아 말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야.”3) 그렇다면 지리적으로는 동유럽에 속한 루마니아의 정체성에 유독 고대 로마가 큰 비중은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을 ‘불멸자의 민족’이라 불렀던 루마니아 몰도바의 고대 전사들은 동쪽으로 진격하던 로마군에 맹렬히 저항하며 오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2세기 초 이 지역이 로마의 속국이 되자, 그들은 노예가 되느니 자결하는 것을 선택했다. 로마인들은 죽어버린 토착민을 대신하여 제국에서 박해받던 그리스도교인들을 데려다가 금광에서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 결과 “인두로 낙인찍히고 쇠사슬에 묶여 끌려온 거룩한 도형수들, 주교들, 사제들, 순교자들 그리고 고백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가져왔고 그때까지 살아있었던 불멸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 불멸자들은 교회의 가장 탁월한 사제들에 의해 세례받았다. 로마는 결코 미지근한 사람들, 하찮은 사람들을 도형장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27쪽) 이것이 루마니아 정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고, 몰디바의 그리스도인이 다른 동로마제국 사람들과는 다른 언어적·문화적 정체성을 가지는 이유이다. 달리 말하면 루마니아 정교회는 강인한 불멸자들의 피와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의 고귀한 믿음이 함께 섞이며 형성된 교회인 셈이다.
루마니아는 로마로부터 그리스도교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지중해 지역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따라 동쪽으로부터 외세의 침입에 끝없이 시달려야 했다. 약 2,000년 역사 중에 반세기 정도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루마니아는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 타타르족 등 주변 민족의 위협을 받았고, 그 이후로 오스만튀르크의 침략과 지배와 약탈이 5세기나 계속되었다. 이런 극단의 환경 속에서도 불멸자들의 후손들은 “요새나 높은 벽이나 화강암으로 축조된 성”이 아니라 고대 로마 때부터 이어온 “정신 안에 축조된 것”4)에 의지하여 그들의 문화, 풍습, 종교, 언어를 유지했다. 그리스도교가 루마니아 비운의 역사와 함께했기에, 루마니아의 정교회는 그 땅의 고통을 아로새긴 형태로 형성되었다. 일례로 정교회의 핵심 전례라고 할 수 있는 성찬예배(혹은 리뚜르기아)로 마을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쳤던 ‘시만드로’ 혹은 ‘또아까’라고 불리는 몰디바 지방 특유의 나무판자로 만든 종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5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터키 지배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쇠로 된] 종들을 사놓고도 그것들을 사용할 권리가 없었다. 종소리는 모든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그래서 신자들을 신성한 리뚜르기아로 부르기 위해 우리의 시골 사제들과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나무 종인 시만드로를 설치했다. … [아무 침략이 없는 시기에도] 신자들을 리뚜르기아로 부르기 위해 우리는 두 종류의 종을 쳤다. … 왜냐하면 언제라도 또 다른 침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땅 위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교회는 결코 박해의 시대를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92-93쪽)
이방 침략자들은 마을에 들어올 때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자 종을 못 치게 하거나, 쇠 종을 떼어내어 무기를 만들었다. 몰도바 지역 사람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세에 대비하고자, 그리고 이 땅에서는 고난을 피할 수도 없고 참 행복을 소유할 수도 없다는 것을 상기하고자 교회에 나무 종을 늘 매달아두었다. 이외에도 《25시에서 영원으로》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루마니아 정교회의 독특한 모습을 배경 삼아 믿는다는 것의 심오한 의미를 들려준다. 오랜 전쟁과 약탈과 가난으로 갈고 닦아진 루마니아인들의 고난이라는 렌즈를 통해, 종교마저 자신의 기호나 가치관에 따라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상품처럼 여기는 현대인에게는 매우 낯설어져 버린 교회의 모습 혹은 신앙의 본질을 접하게 된다.
하느님 형상인 인간의 형상을 그린 이콘
《25시에서 영원으로》의 특별한 가치는 비르질이 묘사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교, 특별히 정교회 신앙을 배우게 된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책은 교리문답서나 신학 입문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텍스트 삼아 그리스도교를 알게 해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문자언어만으로 종교를 설명하고 이해할 때는 조화를 이루기 힘든 이론과 실천(혹은 교리와 영성)이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이들 사이의 다리를 놓아줄 상상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초대교회부터 성인전(hagiography) 읽기를 권장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현대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지적했듯, 근대의 주지주의적 세계관과 함께 등장한 개신교 전통은 교리와 삶을 분리하는 실수를 범해왔다. “신학의 핵심이 어떻게 하나님인 동시에 인생의 복잡성이 될 수 있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일부 근대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발언’과 ‘인생의 복잡성’을 분리하려 시도했고, 그 결과 그들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되었다.”5) 《25시에서 영원으로》에서 배울 점 중 하나는 저자처럼 삶과 하느님을 함께 이야기하는 법이다.
비르질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사실주의적 묘사와는 매우 다른 방식을 사용하며 아버지의 삶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반적 시각에서 보자면 아버지 콘스탄틴은 극심한 가난과 과도한 사목 활동으로 야위고 병들고 더럽고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다. 평생 시골 교회에서 일하다 보니 세상 사는 일에 서툴고, 종종 자기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곤경에 빠트린다. 하지만 우리가 비르질의 눈을 통해 아버지를 바라보면, 흥미롭게도 마치 그가 하늘에 속한 사람인 것처럼 ‘가볍고 깨끗하고 빛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왜 이런 기묘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까. 그 실마리를 책의 첫 장 ‘이콘을 향해 눈을 뜨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장은 비르질이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사람인 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비르질도 사람인지라 어머니 태에서 막 나와서 본 것을 성인이 되어 의식 위로 올릴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의 첫 장은 11쪽에 걸쳐 갓난아기의 망막에 비쳤던 아버지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다. 비르질은 시인이라는 면책특권을 활용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각 정보를 뇌에 저장하였다가 필요할 때 끄집어내는 일반적인 의식 작용과는 다른 뭔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까.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그나마 확실한 것은 이제 막 태어난 비르질의 의식에 각인된 것은 아버지의 실제 육체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아기의 기억에 자리 잡은 것은 아버지를 통해 지각하게 되는 ‘하느님의 형상’이요, 하느님을 통해 이뤄진 우주와의 만남이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주장 이면에는 이콘에 대한 정교회 특유의 이해가 놓여있다. 이콘은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 등의 모습을 교회 전통에 따라 그려놓은 그림이지만, 정교회의 예배와 신학과 영성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필요하다. 이콘이 정교회 신앙에 필수적인 이유는 다른 일반적 종교화와는 전혀 다른 이콘 특유의 본성 때문이다.
하나의 이콘, 그것은 참으로 하나의 형상, 그것도 순전히 지상적인 그런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적이고 동시에 인간적인(théandrique)’ 형상이다. 천상에도 속하고 지상에도 속하는 형상이다. … 정교회 이콘에서 인간의 형상은 그것이 본래 그랬던 모습으로, 세상 창조 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 이콘 속에서 인간의 몸은 물질과 시간과 공간의 법칙들에서 해방된다. 최초의 본래 형태와 속성들로 돌아간 인간의 형상은 영원하고 그 원형인 하느님을 닮아있다. (14-16쪽)
이콘 화가는 감각의 세계에 속한 색과 선, 면, 형 등을 사용하지만, 이콘에 그려진 성인은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신적인 형상이다. 복잡하고 폭력적인 현실 속에서 자기중심적 중력에 이끌려 “무겁고, 혼합된”(16쪽)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이콘 속 인물들은 현실의 논리를 초월한 듯이 “가벼워지고, 정화되고, 씻긴 얼굴이요 몸”(15쪽)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콘은 지상이 아니라 천상의 실재를 보여주는 “하늘을 향해 열린 창문”이다(16쪽).
그런데 ‘성화’로 번역되는 이콘이 그리스어로 원래 ‘형상’이라는 뜻을 가진 만큼, 이 단어는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 비르질의 경우 이콘을 살아있는 사람, 특별히 아버지에게 적용한다. 이콘 화가들이 사실주의 혹은 자연주의 사조와는 차별화된 상징주의 방식으로 성인을 그리듯,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비본래적인 것을 계속해서 털어내고 오로지 그리스도인의 원형, 즉 이콘만을 상징적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고통의 기억이 아로새겨진 아버지의 깡마른 육체를 섬세하게 묘사할수록, 역설적으로 아버지가 “땅 위에 사는 것이 아니라. … 하늘에 사는 피조물”(32쪽)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평소보다 조금만 더 강한 바람이 불어도 그 바람이 아버지를 땅에서 들어 올려 하늘로 데려가 버리고 말 것”(31쪽) 같은 기묘한 인상마저 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아버지의 가난하고 힘든 삶은 지상의 삶을 언제나 은밀히 감싸고 있는 하느님 은혜를 보여주는 이콘 역할을 한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을 정도로(사 53:2) 메마르고 상한 아버지의 얼굴을 통해서는 일반적 미적 체험과는 다른 숭고한 아름다움이 지각된다.
물론 성서와 교회 전통에 따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하느님의 형상이고, 인간은 유한성과 죄 때문에 눈앞에 있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느님 안에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모든 인간 안에 신성의 불꽃이 있다는 근본적 사실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일상의 무게와 속도에 가려진 이 놀라운 신비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도와줄 그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비르질은 우리가 이 같은 인간적 한계를 초월하는 방법으로 하느님 형상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제시한 셈이다. 인간은 태어나면 곧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그의 경우에는 아버지 콘스탄틴을 처음 보았다. 갓난아기가 하느님의 형상인 다른 인간을 본다는 것은, 지상의 삶의 시작과 함께 타자의 이콘을 통해 “하늘로 초대받았다”(21쪽)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콘적 상상력’을 가질 때에야, 존재하는 모든 것 이면의 신비에 경탄하도록 마음이 새로워지고, 생명 있는 모든 것 속의 고유한 가치를 볼 수 있는 시력도 회복된다. 《25시에서 영원으로》를 읽고 그리스도교 신앙이나 우리의 삶에 관해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느꼈다면, 이는 아마 시인인 저자가 이콘적 상상력 혹은 ‘신적이고 동시에 인간적인’ 관점을 활용해 땅의 현실에 비친 하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
비르질은 24세에 시집 《눈 위의 낙서》로 루마니아 왕국 시인상을 받을 정도로 젊은 나이에 시인으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비록 가난 때문에 사제가 되지 못해 신성한 리뚜르기아를 집례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소명과 업적을 개신교에서 잘 쓰는 일반은총 혹은 문화신학 등의 이질적 범주를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교회에서 시와 기도 사이에 경계가 없다. 이 둘 다 아름다움, 고귀함, 신성함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조화와 아름다움이 그 둘 모두의 법칙이요, 그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온 우주(cosmos)와 영원한 것과 친교한다. 정교회의 신학대전이라 할, 신앙과 기도의 백과사전을 사람들은 《필로깔리아》(philokalia)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정확히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아름다움과 신성함은 단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성함은 아름답고, 아름다움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 그 어디서도 정교회와 정교신앙 안에서만큼, 시인, 화가, 예술가들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한다. (160쪽)
이 인용문을 읽다 보면 ‘신학자가 되려면 서방 교회에서 철학자가 되어야 하지만, 동방에서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이것이 정교회는 이론적 신학이 빈약하다거나, 교리가 비논리적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발상 자체가 이론과 삶, 혹은 이성과 감각을 분리하는 사고에 익숙해져 있음의 방증일 수도 있다. 더 냉철하게 말하자면, 근대 서유럽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움을 진리와 선함에서 분리하거나,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향한 예배라는 맥락과 무관하게 미적 체험을 추구하곤 한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로 정교회의 이콘을 마치 렘브란트나 샤갈의 종교화처럼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교양 있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것이 피조물의 행복이라면, 종교의 본질은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우주는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반사함으로써 우리의 오감을 매혹한다. 하지만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분을 예배하고 관상함으로써 지각하는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미적 체험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자면 《25시에서 영원으로》는 정교회 신앙을 통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도와주는 책이기도 하다. 비르질은 지상에 세워진 하늘인 성당, 하늘을 향해 열린 창문인 이콘,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리뚜르기아 등을 통해 체험되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아버지의 사목활동으로 그 의미를 주석한다. 어린 시절 자신과 아버지가 나눈 신학적 대화를 재구성함으로써, 삶의 계속되는 비극 속에서도 하느님과 인간과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한다. 이때 흥미롭게도 비르질은 아버지의 대답으로 교회의 아버지, 즉 고대 교회 교부(敎父, church fathers)의 문장들을 그대로 인용하는 기법을 종종 활용한다. 그렇기에 이 얇은 책은 시인의 열정과 미문으로 채워졌지만 신학적인 풍미와 깊이가 있고, 특별히 교부 전통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정교회 특유의 방식도 접하게 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5시에서 영원으로》는 비르질의 아버지에 대한 찬양시이자, 정교회 신앙과 영성에 대한 완성도 높은 입문서이자, 우리의 감각적 쾌락을 넘어서는 충만한 아름다움의 경험을 사랑하게 이끄는 ‘필로깔리아’이다. 물론 16세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개신교 종교개혁 신학으로 신앙의 언어와 문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비르질이 설명하는 정교회의 모습과 사제의 역할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세속화가 가져온 의식과 사회의 변화에 길들어져 있는 현대인에게는 20세기 초반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루마니아의 한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못마땅할 것이다. 니체 이후 대중화된 몸과 영혼의 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신봉하는 이들은, 천상과 지상의 세계를 구분하는 비르질의 언어에 반감을 표할지도 모른다. 논리적 추론과 체계적 이론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은 시인 특유의 과장과 모호함에 책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들 수도 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이 책의 약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보자면 이들은 우리가 당연시하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거나, 익숙해져 있기에 발견하지 못하는 신앙의 깊은 본질로 이끌어주는 특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비르질은 “천사 같은 피조물, 하나의 이콘과 같았던 아버지,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었던 아버지, 하느님 자신과 천사들을 닮았던 아버지”(42쪽)를 소개함으로써, 자유주의 정치와 경제의 문법을 떠나서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을 점차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도발적이고 원초적인 의미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타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로 사회가 지탱되고, 진실의 불편함이 싫어 거짓을 기꺼이 추종하는 25시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영원에 대한 갈망을 새롭게 일깨워준다. 아니, 이 모든 것을 차치하더라도 얄팍한 신앙주의 수사와 실체 없는 홍보 문구로 덕지덕지 뒤덮인 출판 시장에서, 《25시에서 영원으로》는 미련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방식이지만 심정 깊숙이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국을 짙게 남겨주는 특별한 책이다.
■ 주
1)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박노양 옮김, 《25시에서 영원으로》(정교회출판사, 2015)의 6쪽, 암브로시우스 조성암 대주교의 ‘머리말’.
2)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 최규남 옮김, 《25시》(홍신문화사, 2020), 65-66쪽.
3) 비르질 게오르규, 박노양 옮김, 《내 이름은 왜 비르질인가》(정교회출판사, 2017), 61쪽.
4) 위의 책, 62쪽.
5) 스탠리 하우어워스, 홍종락 옮김, 《한나의 아이》(IVP, 2016), 4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