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의 미국.
이전의 대공황의 비참함, 그에 이어진 세계대전의 암울함에서 해방된 미국인들이 삶을
만끽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늙은) 미국인들이 "골든 에이지" 라며 그리워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 1930년대,
↑ 1940년대,
↑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1950년대. 1950년대는 야구, 핫로드(자동차), 엘비스, 마릴린 몬로 등 미국인들에게 노스탈지아를 불러 일으키는 아이콘들로 가득한 시대입니다.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확장된 경제가 일반 소비자를 위한 경제로 업종변경을 하면서, 미국인들은 인류 역사상 유래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이 시기에 태어나 오직 풍족만을 알고 자란 세대의 미국인들, 소위 "베이비 부머" 들이 이 비정상적인 풍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재앙을 야기하게 됩니다만, 그건 아직 60년쯤 뒤의 이야기이고...
이
물질적 풍요 속에 "T-버드 (포드 썬더버드)" 로 대표되는 자가용차들이 미국 중산층 가정에 널리 보급되고, 자동차의 이용
편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세계 최대규모의 도로망이 미국 전토에 걸쳐 건설됩니다. 종래의 도로와는 달리 일직선으로 쭉 뻗은 자동차용
고속도로인 "프리웨이" 를, 네 바퀴가 아니라 두 바퀴가 달린 탈것, 즉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이 있었지요.
↑ 말론 브란도, "와일드 원". 1953년작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쟈니(브란도)가 타는 모터사이클은 브란도 자신의 소유인 트라이엄프 655cc 입니다. 다시 말해 영국제죠.
↑ 제임스 딘. 제임스 딘이 소유했던 모터사이클이 한두대가 아니라서 이게 어느 것인지 맞추기가 힘듭니다만, CZ(체코산), 노튼(영국), 트라이엄프(영국)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2차대전
종전후 모터사이클을 탔던 이들을 사회경제학적으로 분석할 경우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 및 참전용사들을 다수 포함하는 젊은
층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이야 참전용사라고 하면 대부분이 나이많은 어르신들입니다만, 이때 참전용사들은 그야말로 새파랗게 젊은
친구들이었으니까요.
↑ 그때 참전용사는 대충 이런 느낌.
이
참전용사들 중 많은 이들은, 종전후 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독일의 BMW나 쥔다프, 영국의 트라이엄프나
노튼 같은 유럽 모터사이클들을 접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중 몇몇은 아예 본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동안 모은 군대 월급으로 군용
할리-데이비슨이나 인디언의 육군 불하품(拂下品)을 사서 올라타고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집까지 달렸지요.
지금도 유럽과
미국의 모터사이클의 성능을 비교해보면 평균적으로 유럽것들이 좀더 고성능이라는 평이 있지만, 당시 대륙간 모터사이클 성능차는 상당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참전용사들은 할리와 인디언의
무거운 차체로부터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을 떼어내, 유럽 바이크에 근접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개조를 했죠.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주행에 꼭 필요한 부품만 남기고 그야말로 모조리 쳐냈습니다. 앞 펜더, 뒷 펜더, 방향지시등, 후미등, 심지어
전조등과 앞브레이크까지 떼어냈는데, 이렇게 난도질당한 모터사이클을 "바버"(bobber)라고 불렀습니다.
↑
할리 바버. 말의 길다란 꼬리털을 짧게 쳐내는 것을 "bob" 이라고 하는데, 모터사이클을 경량화하면서 뒷쪽 펜더를 짧게 잘라낸
꼴이 꼭 꼬리잘린 말 같았는지, 바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진에 나온 바버는 뒷쪽 펜더가 그대로 있군요(...)
↑ 바빙의 재료로 인기있는 모터사이클의 하나인 1940년형 인디언 "스포츠 스카웃". 거대한 펜더를 보십시오.
↑ 이런 식으로 펜더만 쳐내도 훨씬 가벼워집니다.
이야기가
잠깐 앞질러나갑니다만, 할리-데이비슨은 나중에 이 바버 스타일 바이크를 본딴 모터사이클을 아예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팔리고 있는 "밥" (bob) 종류들이 바로 바버 바이크들인데, 군더더기 없는 외관에 수수한 검정색 컬러가 옛날 바버
바이크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죠.
↑
할리-데이비슨 "팻밥" 모터사이클. 이런 바버 바이크 제품은 원래 커스텀 작업을 위한 바탕재료로 쓰도록 만들어진 물건이어서 엔진
출력이 높고 겉치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커스텀 작업을 위해 아까운 새 부품을 떼어낼 필요도 없거니와 웬만큼 액세서리를 덧붙여도
속력 저하의 염려가 없죠. 하지만 그 깔끔한 스타일과 발군의 파워에 반해서 바버 형태 그대로 타는 이들도 많습니다.
바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챠퍼(chopper)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군살빼기 작업인 바빙에 비해, 챠핑은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개조작업이었는데요, 당시 미국에는 2차대전에서 돌아온 기술병 출신의 참전용사들이 많았고, 이들의 손을
통해 개조자동차인 핫로드, 그리고 개조모터사이클인 챠퍼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
챠퍼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이 바로 영화 "이지 라이더" 의 캐릭터인 와이어트 (피터 폰다) 가 탄 할리-데이비슨이죠.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조된 이 모터사이클의 모체는 1949년형, 1950년형, 그리고 1952년형 "하이드라-글라이드"
입니다. (이 챠퍼는 촬영을 위해 도합 네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체도 여럿입니다.)
↑ 이쪽이 성형전 사진. 거대한 앞펜더는 엔진과 차체에 오물이 튀는 것을 확실하게 막아주는 기능이 있습니다만... 아닌게 아니라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동네
자동차 개조작업소인 �y샵 (chop shop) 에서 손을 좀 보고 나면, 평범한 모터사이클이 엄청난 길이의 앞포크와 높~다란
핸들바, 소위 에이프 행어를 가진 괴물로 변했습니다. 이 특이한 스타일링이 바로 성능향상 위주인 바빙과 멋부리기 중심인 챠핑을
구분짓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처럼 긴 앞포크는 고속주행에서 모터사이클의 주행 안정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긴 했습니다만
저속주행시 조향성이 극히 나쁘고 또 차 전체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등, 나쁜점이 더 많았습니다.
↑ 성능 향상보다는 멋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챠퍼는 오히려 바버의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을지도? 하긴 "빨리 달릴 수 있다" 는 점만 본다면 서로 통하긴 합니다만...
첫댓글 바빙과 챠핑, 성능향상과 멋부리기...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는 듯 하네
성형과 화장, 업그레이드와 출세
삶 속의 한없는 욕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