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기도를 하게 하시려
에스라 9장 5절 – 8절 2024년 8월 18일 오후 말씀지
방백들과 두목들과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며느리를 삼아서 온 나라가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육적으로 처녀들이 시집가려 하지 않고 나이많은 청년들이 늘어남에 동남아에 처녀들을 돈을 주고 사오는데 동남아의 신앙은 불교요 이슬람입니다. 결국 자동적으로 이교도의 그 신앙이 자녀들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기독교 안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천주교까지 다 하나가 되자는 에큐메니칼 종교 연합운동이요 에스라 때에 혼혈족이 된 것입니다. 혼혈족이 된 것은 신앙이 엉망이 된 것을 나타냅니다. 무조건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행함을 앞세우는 율법주의인지? 세상 복 추구하는 사두개인처럼 세상주의인지? 헤롯당처럼 기도만 앞세우는 신비주의인지? 살펴야 합니다. 모두 각기 교훈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16:12-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는데 또다시 멸망 전의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라는 너무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까지 기가 막힐 일을 몇 번이나 겪게 하사 그때마다 어떻게 모든 일을 해결하신 것을 감사케 하셨습니다. 시40:2-
왕상 19:4에 엘리야도 열심이 특심하여 이스라엘의 우상들을 깨뜨려 부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악한 아합왕과 이세벨이 도리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자기가 한 일이 효과가 없으니 로뎀나무 아래에서 기가 막혀 죽기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상19:4-
복음으로 살리심 받고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게 하사 일군 삼은 분들의 심정이 엘리야와 에스라같습니다. 처음에는 같이 가고자 하는 일군들이 우르르 따르다가도 이리저리 흩어지고 몇 사람 남지 않음에 기가 막혀 자신도 포기하려고 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에스라의 기도를 나타내주시는데 혼혈족이 되어버린 방백들과 그들을 좇은 자들의 잘못한 것을 밝히 보고 있는 에스라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런데도 잘못을 하는 방백들만 꼬집지 않고 ‘우리가’잘못했다고 기도하는 에스라입니다. 기도란? 남의 잘못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입니다. 다니엘의 기도 역시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나타냅니다. 단9:5-
5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대로 무릎을 꿇고
나라가 멸망당했으니 정신을 차려서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하건만 이방인의 아내와 며느리까지 얻어서 육적인 쾌락으로 살았던 자들이요 포로생활 중에도 그와같이 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돌아오게 하셨을 때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하는데 오히려 당당함을 보고 에스라는 힘이 빠지고 기가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녁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저녁 제사인 것입니다. 근심 중에 일어난 것은 저희의 신이 배가 되고 땅의 일만 생각하니 사도바울처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3:19-20
그리스도는 성령을 주시고, 십자가는 날마다 그 사랑이 깨달아지는 역사인데 도리어 장로들 곧 앞서나가야 할 자들인 목사나 직분자들이 육신의 배만 채우고 있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힌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하루 일을 마치고 자기 전 기도가 저녁 제사입니다. 누가 타락한 한국 교계를 보며 저녁마다 탄식하며 손을 들고 기도하나요? 예수님도 생명역사와 멸망 당할 도성을 보시고 새벽에는 혼자 기도하시고 (막1:35) 저녁에는 제자들과 습관을 좇아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눅22:39-
현재 우리나라에는 예배당이 6만개로 많고 교인들은 나라에 총인구 5명 중 한 사람인데 이제 먹고 살만하니 목사들마다 모여서 세미나 심지어 관광이나 하며 세속주의에 빠져있는 것과 교인들은 성경도 모르고 들고만 다니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감각이 없다면 같은 부류요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이일을 어찌 하리요! 하며 엎드린다면 그는 생명 살리는 일에 쓰실 분입니다. 에스겔 때 제사장과 백성들의 가증한 우상 섬김을 보며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셨습니다. 겔9:4-
손을 드는 것은 전적 100%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머리로 이렇게 저렇게 하니 손을 든 것이 아니라 내 손을 들어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인본주의들이 많은 것입니다.
6절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기도는 나의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전5:2-
나의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요 나의 아버지십니다. 에스라가 부끄러운 것은 자신은 율법에 익숙하여 경건한 생활을 기쁨으로 하면서 방백과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 경건한 삶을 부지런히 본을 보이며 가르쳤건만 따르는 자가 너무나 없기에 자신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지금도 목사나 장로들 중직자들이 저녁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엘리야처럼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는 자가 몇 일까요? 왕상18:42-
다 자기들이 먹고 살만하니 이제 됐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하며 자만에 빠진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은 복음도 진리도 바로 알지 못한 탓입니다. 기도가 습관 된 바리새인처럼 사람들 앞에서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내가 이렇게 했으니 복 주옵소서 하며 당당하게 뻔뻔하게 세상 것을 더 구하는 자들이 많은데 (눅18:11) 세리처럼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감히 눈을 들어 하늘도 보지 못하고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자는 참으로 적은 것입니다. 눅18:13-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에스라의 기도는 자기도 죄인의 자리에서 간절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 할 때에도 오히려 피하면서 자기의 죄가 머리털보다 많다고 고백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시40:12-
오늘도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번 일로 인해서 에스라로 기도하게 하시고 10장에서 이방 여인들을 다 끊는 자들이 생겨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인들을 청산하는 이것을 또 반대하는 자도 나오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모세 역시 끝까지 듣지 않는 목이 곧은 백성들도 있었으나 계속 인도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앞선 자의 영광을 쌓으시는 것입니다.
7절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전의 열조들의 죄악을 바로 보지 못하면 우리도 바벨론 포로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죄악은 택하여 구원하여 주시고 불러서 그 몸을 성전으로 삼아 주셨으나 몰라서 그 몸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보며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안타까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는 그들과 같지 않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게 하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이방에 악한 왕들을 두신 이유입니다. 한 시대에 보내신 자들이니 모두가 그 몸을 성전 삼고 날마다 거룩 생활을 하지 못하면 막대기인 앗수르 몽둥이인 바벨론 열방의 왕들의 손에 붙이사 나라를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삿13:1, 렘44:30-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 잘못살면 반드시 징계를 받게 되는데 칼에 죽는 것은 열매가 없는 사망의 자리에 떨어지고 신령한 기쁨이 사라져 영은 죽고 육만 사는 자가 되는데 이제 고통이 극심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로잡힌 것은 포로가 되어 지긋지긋한 삶을 살게 되는데 애굽에서는 종이었으나 가나안을 빼앗기면 포로 생활입니다. 이때 사단에게 속아 세상 영광을 마귀에게 속아 물질 욕심에 귀신에게 속아 정욕에 빠져 가정이 파탄납니다.
노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 곧 가정, 건강, 물질 등을 차례대로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이제 밟히는 자리에 포도나무 둥치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불사르는 자리에 떨어져 온갖 불행을 맛보게 십니다. 요15:6-
오늘날 같으니이다 말씀은 과거에도 말씀하시고 이루셨듯이 오늘도 내게 양식으로 주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계시록까지 주시고 영광성에 들어가게 하사 영원토록 즐겁게 하시는 것이 100% 다 이루시는 것입니다. 계21:6-
8절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은 은혜를 베푸사 진노 중에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로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나이다 거룩한 처소는 하늘나라 영광성이며 못은 박혀있으니 흔들림없이 견고한 것입니다. 전12:11-
앞선 지혜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실 때 받아야 그 말씀이 찌르는 채찍과 같아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자를 만나야 합니다.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모든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나누니 받아먹어 자기 양식 삼은 자들은 잘 박힌 못과 같이 그 영광 성에 들어가 기어코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 다 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창세기의 아담의 신앙이 아벨에게 에녹에게, 에녹의 신앙이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죽 이어져 나에게도 오는 것입니다. 사 22:23에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목적을 두고 흔들림이 없이 나아가고 있습니까? 죄악으로 인해서 바벨론의 포로까지 되게 하시고 70년이 지나서 성전을 다시 세워주시고 올라오게 하셔서 생명의 양식을 나눠주시는데 이때에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눈을 밝히사 조금 소성케 하시는 것은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가나안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여서 바벨론으로 들어 치시고 올라오게 하셨으니 이제 왜? 애굽에서 종노릇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하셨는가? 포로에서 올라오게 하신 뜻을 밝히 깨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영적세계를 바로 보고 살기를 각오하고 나가게 하시는 것이 소성케 하시는 것입니다. 엡1:18에도 사도바울의 기도를 본받아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눈을 밝히는 것은 영적인 세계를 보게 하사 지금도 이루시는 역사를 깨닫게 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