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그늘/靑石 전성훈
을사년 설 연휴가 시작된 일요일, 재미교포 고교 동창이 명절을 지내려고 귀국하여 환영 및 신년 모임을 한다. 맑게 개었던 엊그제와는 전혀 딴판으로 오늘은 하늘이 뿌옇게 잿빛이다. 금세라도 비나 눈이 쏟아질 듯 날씨가 꿉꿉하지만, 이 정도의 날씨면 겨울치고는 야외 활동 하기에 그런대로 괜찮다. 가끔 찾는 혜화동 로터리 중국집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즐긴다. 오늘따라 한 친구가 귀한 중국술을 가지고 와서 한 잔씩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음식점에 손님이 술을 가지고 가면 음식점에서 별도로 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주류 반입비라고 부르는 콜키지이다. (corkage, cork charge의 줄임말). 그런데 장난삼아 페트병에 술을 담아 오면 그냥 마실 수 있다. 물론 음식을 주문하면서 별도로 술을 주문한다. 재미교포 친구가 점심을 낸다고 하자, 모두 손뼉을 치며 고마워한다. 기분 좋게 술기운이 돌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 모르고 이어진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목소리도 커지고, 젊은 날의 객기를 떠올리면서 웃음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간다.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음식점에 손님이 없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창경궁으로 향한다. 혜화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소화도 시킬 겸 술도 깨라고 자연스럽게 고궁 산책에 나선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끼리의 불문율같이 정해진 코스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고궁 입장료가 무료이다. 물론 평상시에도 우리는 무료입장이다. 창경궁에 들어서면 창경원으로 불리던 시절 벚꽃놀이하던 때가 생각난다. 특히 밤 벚꽃놀이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어떤 사연을 엮어 보려고 친구와 젊은 아가씨에게 집적거리며 소위 ‘작전’을 걸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정말 철모른 채, 10대의 낭만을 만끽하던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이다.
창경궁을 벗어나 창덕궁으로 들어서니, 비원을 구경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평일에 예약하고 구경해야 하는데 갑자기 찾아가면 비원에 들어갈 수가 없다. 언젠가는 사전 예약을 하고 가볼 생각이다. 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에 보이는 5개의 오얏(자두) 꽃무늬는 조선왕조 시절에는 없었다고 한다. 오얏 꽃무늬는 전주이씨를 뜻하며 국가를 상징하는 문양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 7월 창덕궁 수리를 하면서 일본인 감독이 일본인 인부를 시켜서 오얏 꽃문양을 새겼다고 한다. 창덕궁 인정전 수리 전후의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2027년 7월까지 보수 공사를 하기에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다. 창덕궁 정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몇백 년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긋던 어느 날 밤의 광경을 그려본다. 왕궁의 화려한 불꽃놀이도 아닌데, 왕궁의 정문을 반정군(反正軍)에게 활짝 열어주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임금을 저버린 수위대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역사는 이긴 자의 이야기만 흐르고, 패배자는 그림자처럼 서서히 잊혀져 간다. 임금 광해를 내쫓고 등극한 인조 임금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백성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그 후손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치욕을 겪은 게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과거이다. 창덕궁을 나서며 망한 왕조의 서글픈 역사의 한 단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답답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오로지 정권을 잡겠다는 권력의 화신만 있을 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서글픔 아니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우리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갈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는 인물을 뽑아야 하는 주사위를 던질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 정치가들이 올바르게 국민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들지 않는다. 극도로 갈라진 국민의 생각과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 각자의 올바른 생각과 결단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존속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기를 바랄 뿐이다. (2025년 1월)